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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09화 (60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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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렇게 박성철은 다섯 번의 전화를 걸었고, 그때마다 장혜원은 성실하게 그의 전화를 전부 다 받았다. 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내는 즉시 그녀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랬더니 여섯 번째 전화에서 박성철이 먼저 애원조로 말했다.

-여보. 제발 전화 좀 끊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줘.

“하세요. 하고 싶은 말. 대신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요. 나 이제 당신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 아니니까.”

-그, 그래. 알았으니까 내 말 좀 하자.

“하라니까요.”

-성수동 집에 갔는데 없더라고. 해서 걱정이 되어 그러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 주면 안 될까?

박성철이 자신의 친정에 갔다는 말에 장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은 그녀가 시댁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친정 식구들도 이제는 다 알게 되었다는 얘기니 말이다. 아마 곧 부모님을 비롯해서 그녀의 오빠와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올 테지.

“친구 집에 있어요.”

-친구 누구?

“내 친구가 누군지 말하면 당신이 알아요? 그리고 여기 위치를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지는 않네요.”

장혜원은 안 그래도 꼴도 보기 싫은 남편이 지금 그녀가 있는 곳에 나타난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이제 너무 싫어서 막 소름이 돋고 진저리가 쳐졌다.

-뭐? 왜 알려주고 싶지 않은데?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장혜원의 말에 기분도 상하고 의심 병이라도 생긴 듯 박성철의 목소리 톤이 싹 변하자 장혜원이 바로 말했다.

“전화 끊을까요?”

-아, 아니. 끊지 마.

“하고 싶은 말이 이게 다에요? 그렇다면 더 통화를 할 것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고칠게. 그러니 제발 한번만 기회를 줘.

박성철이 싹싹 빌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반응에 장혜원의 마음은 더 식어버렸다. 그녀가 백준열을 만나기 전에 그가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그녀는 박성철의 지금 말을 믿고 한 번 더 기회를 줬을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박성철이라는 남자의 자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남자는 온통 백준열 뿐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기회를 주고 자시고 할 게 애초 없었다.

“아버님께서 전에 말씀하셨잖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당신은 그 버릇 못 고쳐. 그러니 그냥 원래 사는 대로 살아. 주위에 너 좋다는 여자들 많잖아? 그 중 하나 골라서 집안에 들여앉혀. 아아. 이왕이면 어머님 마음에 쏘옥 드는 여자로 고르는 거 잊지 말고. 아니면 그 집에서 견딜 여자 없을 테니까.”

장혜원은 진심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걸 듣는 박성철은 그녀가 자신을 비웃고 모친을 비하하는 걸로 들렸다.

-너 정말 이러고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

“어. 아주 잘 살 거 같아.”

박성철의 어투만 들어도 장혜원은 알았다. 그가 지금 상당히 배알이 꼬여 있는 상태란 걸 말이다. 그녀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말이다. 그런 그라면 곧 화를 낼 것이고.

-허얼. 이제 말까지 놓네. 좋아. 네가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지 모르겠지만 곧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거다.

“후회라....그건 너와 결혼하고 지금까지 쭉 해온 거라 별로 무섭지도 않네.”

-뭐? 너 말이면 단 줄 알아? 이게 어디서....

박성철이 기어코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자, 장혜원은 더 들을 것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걸로 충분해.”

장혜원에게 있어 곧 전남편이 될 박성철에 대한 예의는 이 정도하면 할 만큼 했다.

그녀는 곧바로 걸려 온 박성철의 전화를 끊어버리고, 그의 번호를 아예 수신 차단 해 버렸다. 박성철은 결국 그 성질에 못이겨서, 장혜원과 유일한 연결고리인 핸드폰 통화 찬스를 날려 먹었다.

* * *

김종훈은 백준열을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는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생각할 시간이었다. 백준열을 무턱대고 기다리면서 김종훈은 그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국정원에서 사실상 쫓겨나서 삼명그룹의 하수인이 되었을 때까지 김종훈은 계속 가슴이 답답했다. 거기 뭔가 응어리 진 게 있는 거처럼 말이다. 한데 그 답답한 가슴이 생각을 쭉 해 보면서 뻥 뚫렸다.

“그래. 돈. 돈을 벌어야 해.”

김종훈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혈족인 외삼촌을 죽였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딱 한 사람. 그 뿐이었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지만 자신의 손으로 외삼촌을 죽인 건, 그에게 있어 결코 작은 상처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상처를 안고 자신은 더 살아야 한다는 거고. 또 외삼촌의 가족들, 그러니까 외숙모와 외사촌들과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챙길 테니 말이다.

그 모든 게 김종훈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비록 외삼촌은 없더라도, 그가 외삼촌 노릇을 대신해 주면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도움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었고. 해서 김종훈은 외삼촌의 가족들을 사실상 자신이 부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돈을 좀 많이 벌어야 했다.

자신의 월급을 죄다 외삼촌 가족들에게 갖다 줄 수는 없는 노릇. 무엇보다 김종훈도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살아야 했으니까. 부모님을 잘 모시고 또 그 역시도 가정을 꾸려서 살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두 살림에 생계비를 대려면 두 명의 가장 몫을 해 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보통 일을 해서는 그가 필요로 하는 돈을 벌수가 없었다.

“으음....”

백준열을 기다리며 삼명호텔 로비에서 꼬박 밤을 지새운 김종훈.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대신 진지하게 고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백준열이었다.

“쯧....”

이제야 전화를 하다니. 어제 자신이 그렇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던 그가 말이다. 뭐 어째든 그가 무슨 소릴 하는지 들어 봐야겠다 싶어 김종훈은 그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바로 사과부터 해 왔다. 그리고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보더니 바로 여기로 오겠단다.

김종훈은 그러라고 하고 백준열을 기다렸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더 생각을 해 볼 생각이었다.

“역시 직장 다녀서는 어렵나?”

김종훈은 삼명그룹에 다니는 걸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하려는 데....

“뭐, 뭐야?”

백준열이 금방 그 앞에 나타났다. 보아하니 이곳 호텔에 묵고 있었던 거 같았다. 그때 자신에게 다가온 백준열이 말했다. 해장국 한 그릇하자고 말이다. 그 말이 김종훈에게는 좀 신선하게 들렸다. 재벌 3세가 서민들이나 먹는 해장국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김종훈은 이번에도 그러자고 하고 그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해장국 집에 같이 간 두 사람. 김종훈도 그렇고 백준열도 김종훈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두 사람은 그 말을 하는 것 보다 허겁지겁 해장국부터 먹었다.

특히 김종훈은 어제 저녁을 굶었기 때문에 배가 많이 고팠다. 그래서 해장국 한 그릇으로는 사실 성에 차지 않았다. 그걸 또 백준열이 귀신같이 간파 한 듯 말했다.

“한 그릇 더 할래요?”

“....네.”

김종훈은 조금 느리게 대답을 했다. 신기한 듯 백준열을 쳐다보며 말이다. 그러자 백준열이 종업원을 불러서 해장국 한 그릇을 더 시켰다. 해장국은 금방 나왔고 김종훈은 염치불구하고 그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백준열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곧장 답장이 왔고 그 답장을 보고 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 짓을 백준열은 김종훈이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때까지 계속 했다.

* * *

해장국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김종훈과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한데....

‘어라?’

김종훈의 몸에 서린 빛들 중에 진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연회색이 제법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근데 그 연회색 사이로 식욕을 뜻하는 살구 빛이 맺혀 있었다. 그 말은 지금 김종훈이 해장국 한 그릇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해서 나는 바로 그에게 말했다. 한 그릇 더 할지를 말이다. 그러자 김종훈이 나를 신기해하며 해장국 한 그릇을 더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김종훈에게 해장국 한 그릇을 더 시켜 주고 핸드폰을 꺼내서 내가 잠든 사이 혹시 온 연락이나 문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랬더니 박 비서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나는 즉시 그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장혜원의 일이 잘 풀렸군.’

박 비서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아이들과 같이 어제 시댁을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간 곳은 바로 내가 은신처로 쓰라고 알려 준 내 소유의 오피스텔이었다.

“거기 좀 좁지 않나?”

내가 장혜원에게 내어 준 오피스텔은 38평형으로 그녀와 아이들이 당장 쓰기에 불편함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그렇고 아이들이 살던 곳에 비한다면 좁아터진 곳일 터. 해서 나는 박 비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 오피스텔 빌딩에 더 큰 평수의 방을 알아보라고 말이다. 내 기억, 아니 백준열의 기억이 맞다면 그 오피스텔 빌딩에서 가장 큰 평수는 60평이었다. 그 정도면 장혜원과 아이들이 당분간 지내기 충분할 거 같았다.

“아아....”

그렇게 박 비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놓고 나서 나는 아차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이 몇 신지 깜빡하고 있었던 것. 보통 이 시간에 직장인들은 자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한데 박 비서로부터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그 말은 박 비서가 지금 깨어 있었다는 소리고 나는 그 답장을 바로 확인했다. 그리고 그와 한 동안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딱히 이 시간에 전화 하기는 부담이 되는 가벼운 일들에 대한 보고와 그에 대한 피드백 정도 수준으로. 하지만 그것도 곧 끝이 났다. 내 눈앞에 김종훈이 한 그릇 더 해장국을 해치우고 냅킨으로 입가를 딱는 걸 보고서 말이다.

“더 먹을래요?”

나는 형식적으로 김종훈에게 물었다. 물론 그가 충분히 배가 부르단 건 그의 몸에서 내뿜고 있는 빛에서 연회색이 사라진 걸 보고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됐습니다. 그보다 할 말 있으시면 하십시오.”

김종훈이 먼저 내게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장소가 좀 그렇다. 해서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 말을 하며 내가 여기서 나가자고 고갯짓을 하자 그걸 알아들은 김종훈이 말했다.

“뭐 그러시죠.”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뼈 해장국 집을 나와서 다시 삼명호텔로 향했다. 아무래도 프라이빗한 대화를 나누기에 해장국 집이나 길바닥 보다 호텔 로비가 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삼명호텔 1층 로비로 돌아왔다. 그리고 프런트로 간 내가 거기 직원에게 부탁을 좀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이 맛있게 커피 두 잔을 타서 그걸 가져왔고, 나는 그 중 한 잔을 김종훈에게 건네며 말했다.

“김종훈씨. 제 수행비서가 되어주십시오.”

“네?”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 놓고 말 할 줄은 몰랐던지 김종훈의 얼굴에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 표정은 내게서 커피 잔을 받자마자 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원래 포커페이스로 돌아온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얼마 주실 겁니까?”

“네?”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그만큼 김종훈의 반응은 내 예상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대개는 그러지 않나? 자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는 지, 또 직위가 어떻게 되는 지가 궁금하지, 보수부터 따지지는 않지 않냐 는 말이다.

“보수야 충분히....”

“저는 좀 많이 받았으면 합니다. 대신....일을 더 많이, 아니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자신이 잘 알아서 내게 어필까지 해 오는 김종훈. 나야 그가 내 수행비서만 되어준다면 그에게 얼마를 써도 좋았다.

‘근데 돈독이 왜 이렇게 오른 거지?’

김종훈의 몸에 서린 빛 무리 중에서 지금 가장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빛은 재물, 즉 돈 욕심을 상징하는 진한 황금빛이었다.

“얼마나 원하는데요?”

“적어도 연봉 1억은 돼야 합니다.”

“2억 드리죠.”

1억이야 내게 껌값이니까. 내가 김종훈에게 그가 생각 중인 연봉의 2배를 부르자....

‘와아....’

나에 대한 불신, 불쾌, 짜증 가득하던 그가 급변했다. 신뢰, 유쾌, 호감에 꽉 찬 기분으로 말이다. 그걸 대변하듯 그의 몸에 서린 빛 무리가 싹 다 바뀌어 있었다. 나에 대해 완전 호의적으로.

‘미친....’

돈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나 바뀐다니. 나로서는 김종훈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뭐 어째든 나로서야 나쁠 거 없었다.

나한테 넘쳐 나는 돈으로 김종훈 같이 뛰어난 인재를 곁에 둘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그 사이 김종훈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깍듯하게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네. 저도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런 그에게 나는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차 한 대가 삼명호텔 입구 앞에 멈춰 서더니, 그 차에서 문대식이 내리는 모습이 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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