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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08화 (60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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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박성철은 지금 자신의 삶에 크게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해서 그와 관련 된 일이 아닌 한, 줏대가 없는 편이었다. 회사에서도 부친이 시킨 일은 열심히 했지만 나머지 일은 그냥저냥 내버려 뒀다.

“아, 아버지. 집 사람이랑 헤어지는 건 좀....”

근데 그런 박성철이 부친의 말에 지금 반기를 들었다. 사실 상 그가 이렇게 아버지 앞에서 부친의 말에 처음으로 토를 다는 순간이었다.

“뭐라고?”

당연히 자기 말을 순순히 따를 거라 여겼던 미욱한 아들 녀석이 반기를 드니 박정명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 얼굴에 움찔하며 박성철이 딱 봐도 겁먹을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박성철은 자기 할 말을 끝까지 내뱉었다.

“저 혜원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면 아이들은 어쩌고요?”

박성철의 그 말에 박정명이 기가 차는지 피식 거리며 웃었다.

“그 입으로 며늘아기를 사랑한다는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네가 내 아들이지만 정말 염치없는....하아....됐고. 아이들도 며늘아기가 데리고 가기로 했다.”

“네에?”

“뭐?”

“아, 아니. 아버지가 뭔데 제 아들들을....”

박성철은 박정명이 자기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 멋대로 자기 아들들의 양육권을 아내에게 넘기기로 했다는 말에 격분해서 버럭 평소처럼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은 중간에 끊겼다.

짜악!

그의 고개가 홱 옆으로 돌아가면서 말이다. 화끈거리는 자기 뺨에 손을 가져간 박성철이 자신을 때린 부친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부친의 다른 손이 그의 얼굴로 날아왔다.

휙!

하지만 늙은 부친의 손찌검을 보고도 피하지 못할 박성철이 아니었다. 그는 앞서와 달리 부친의 손을 슬쩍 뒤로 고개를 젖히며 피했다.

“피, 피해?”

한데 그게 아무래도 박정명을 더 격분케 만든 모양이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박정명은 사정없이 박성철의 머리를 손으로 후려쳤다.

퍽!

“아악! 왜 때려요?”

20대 시절, 그러니까 박성철이 결혼을 하기 전에 그는 지금처럼 박정명에게 맞았다.

물론 박정명이 성실하게 잘 사는 아들을 때리지는 않았다. 박성철이 워낙 개망나니 짓을 매일 같이 저지르니 그때마다 화풀이로 아들을 때리기 시작한 게 어느 새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 습관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도 몇 차례 더 있었다. 그만큼 결혼하고도 박성철이 사고를 쳐 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아들에 대한 폭력은 박성철이 아들을 보고 나서 그쳤다.

그리고 지금껏 박정명은 다 큰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한데 지금 박정명이 그 다 큰 아들을 때린 것이다. 이에 그 다 큰 아들인 박성철이 반발을 했다.

“왜 때려? 네놈이 잘만 했어 봐. 그 아이가 너와 헤어지자고 했겠느냐?”

“그, 그건....아무튼 이혼은 절대 안 돼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저 같은 놈이 어디서 그런 여자를 만나요?”

“못 만나면 안 만나면 되지.”

“네?”

“아들 둘 있으면 그걸로 됐다. 거기 묶고 앞으로 네놈 즐기고 싶은 대로 혼자서 즐기고 살아.”

“아,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지금 박정명은 자기 아들 박성철에게 이혼 후 정관 수술을 하고 나서, 그가 만나고 싶은 여자 실컷 만나고 다니라는 얘기였다. 물론 그런 여자들과 결혼할 생각은 하지 말고 혼자 살면서 말이다.

* * *

그래도 자기 일이랍시고 이혼 못한다고 버티는 철없는 아들을 보며 박정명은 속에 천불이 났다. 이혼하기 싫었다면 진즉 자기 처자식을 잘 챙기던지. 그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서 자신의 아내에 집착하는 박성철을 보면서, 박정명은 결국 자기 뜻을 관철 시켰다.

어차피 아들 박성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박정명이 아들의 돈 줄을 꽉 틀어쥐고 있었으니까. 박정명의 돈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게 바로 박성철이었기에, 그의 저항은 너무도 미미하고 맥없이 끝났다.

“카드 다 내놓고 차키도 꺼내 놔.”

“....”

“크음. 꼴보기 싫다. 그만 나가.”

박정명은 자기 할 말을 아들에게 다 했기에,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제 박성철이 뭔가 할 말이 있는 지 박정명 앞에 쭈뼛거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기 할 말을 박정명에게 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서 서재를 나갔다. 그걸 보고 박정명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한심한 놈. 사내새끼가 자기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박정명도 박성철이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대충 짐작은 했다. 보나마나 이혼을 쉽사리 받아드리지 못하는 거 같았다. 평소 우유부단한 녀석이 그래도 자기 아내와 아이들 문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 했다. 그러나 그게 박정명에게 먹혀 들리는 없었다. 그러려면 박성철이 백준열보다 더 나은 제안을 해야 하는데, 박정명도 알다시피 그의 아들 박성철은 그럴 위인이 못됐다.

그래도 처량하니 저렇게 서재를 나가는 아들의 축 처진 뒷모습에 박정명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방법이 아니면 회사도 지키고 또 투자를 통해 회사를 지금보다 더 크게 키워 나갈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 없는 걸 말이다.

“오늘 따라 담배가 당기는군.”

그 말 후 박정명이 고풍스런 자신의 마호가니 책상 서랍, 맨 밑에 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쿠바산 시거가 있었고 그 시거 하나를 꺼내 입에 문 박정명.

틱! 치익! 치이익!

그는 책상 위에 장식용 라이터로 시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깊게 한 모금 담배 연기를 빨아 폐부 깊숙이로 보냈다.

“후우우우....”

그 직후 내 뱉은 그의 날숨에 하얀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근데 오랜만에 시거를 피우니 진한 스카치 한 잔이 생각났다. 그런 그의 눈에 책상 옆 장식장에 전시 되어 있는 양주가 보였다. 평소라면 워낙 아끼는 술들이었고 또 서재에서는 술을 마시는 걸 원체 꺼렸던 박정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술이 너무도 간절히 한잔 당겼다. 해서 박정명은 장식장 안에서 연식이 좀 된 양주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그 병뚜껑을 연 다음....

“벌컥벌컥....”

양주를 병째 들이켰다. 이렇게 양주를 물마시듯 시원하게 마신 적이 언제던가?

젊은 시절 호기롭게 몇 번 마신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술을 이런 식으로 급하게 마신 적은 없었다. 한데 다 늙어 자식 때문에 이렇게 마시고 있으니....

* * *

아무리 부친이라고 해도 자기 것을 건드리는 게 박성철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부친에게 반항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지금 이 나이 먹고 처음으로 했다. 하지만 부친의 뜻을 꺾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그 뒤 자괴감에 빠진 박성철은 아버지의 서재를 나왔고 그런 그에게 모친이 말했다.

“너 정말 네 처와 헤어질 거니? 아이들도 그년에게 내어주고?”

모친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까 그의 아내가 좋아서 난리가 났다고 한 거고. 모친이 아내를 탐탁찮게 여긴다는 건 박성철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엄마를 그년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지 싶었다.

“엄마. 말조심 좀 하세요. 그년이라니요?”

“뭐? 너 지금....이 상황에서 네 처의 편을 드는 거니?”

“누가 누구 편을 들어요? 그리고 제가 헤어지기 싫다고 한들 아버지가 헤어지라는 데 그럼 어쩌라고요? 자신 있으시면 엄마나 나서서 저희 이혼하는 거 좀 막아주시던가요?”

“....”

박성철의 말에 모친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모친이 나선다고 한들 부친의 결정이 바뀔 리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모친이 경을 치고 이 집에서 쫓겨날지 몰랐고. 애초 자기한테 불리한 짓을 영악한 모친이 나서서 할리 없었다. 그걸 알기에 박성철은 아예 모친에게 기대고 하고 있지 않았다.

박성철은 갑자기 자기 앞에서 합죽이가 된 모친을 보고 한숨을 내 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저택 2층으로 올라갔다.

그 2층에 박성철 내외의 방과 아이들의 방이 있었다. 박성철은 아이들의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걸 보고 말했다.

“아직 학원에서 오지 않은 모양이군.”

해서 박성철은 자신과 아내가 같이 쓰는 2층의 안방으로 향했다.

벌컥!

그 안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박성철. 그런 그의 눈에 커다란 캐리어 두 개가 활짝 열린 체 안방 드레스룸 입구 앞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한데 그 캐리어에 이미 옷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리고 드레스룸 안에서 누가 봐도 신나 보이는 장혜원이 나왔다. 그때 그녀와 박성철의 눈이 딱 마주쳤고, 순식간에 웃고 있던 장혜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 얼굴 표정 변화에 박성철은 안 그래도 치밀어 올라 있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C발....나와 헤어지는 게 그렇게 좋냐?”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뱉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어어. 좋아.”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장혜원의 입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고야 말았다.

“너무 너무 좋아. 너랑 헤어질 수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아.”

장혜원의 그 대답에 꼭지가 돌아버린 박성철. 그는 그 자리에서 미쳐서 날 뛰었다. 눈에 보이는 건 다 때려 부쉈고 그 때문에 장혜원이 힘들게 캐리어에 정리한 그녀 옷들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지랄에 박정명 회장이 잔뜩 굳은 얼굴로 2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아들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박성철!”

“으아아아아아!”

그러자 박성철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부친을 밀치고 1층으로 내려갔고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 때문에 장혜원은 안방을 치우고 다시 짐 가방을 싸야 했지만 그게 전혀 싫지 않았다.

“룰루랄라라....”

“저, 저....”

신나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장혜원을 보고 시어머니가 치를 떨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자기 짐에 이어서 아이들 짐까지 쌌다. 그리고 그 짐들을 자신의 차에 실은 다음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 그녀를 집안사람 누구도 막지 않았고, 또한 그 누구도 배웅 나오지도 않았다.

* * *

남편인 박성철도 그랬고, 시부모인 박정명 부부 역시도 장혜원이 집을 나가면 아이들을 데리고 그녀의 친정에 갈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그녀와 아이들이 당장 갈 곳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엄마. 우리 어디가?”

“성수동 외가 집에 가?”

장혜원의 두 아들들이 차에서 그녀에게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이에 그녀가 대답을 했다.

“아니. 성수동 외가 집은 안 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한 후 그녀가 말했다.

“엄마 친구 집에 가.”

“엄마 친구 집?”

“어. 그 친구가 한 동안 자기 집에서 우리가 살아도 된다고 해서.”

“와아. 엄마 친구 좋으신 분인가 보다.”

“어. 좋은 사람이야.”

그 친구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도 엄마가 웃고 있는 것만 보고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엄마가 그 친구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백준열은 장혜원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가 쓸 수 있는 피신처를 따로 제공해 주었다.

그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평창동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백준열 소유의 오피스텔 빌딩에 비어 있는 방이었다.

그 방의 호수와 비밀번호를 백준열이 오늘 오전에 미리 장혜원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내놨던 것. 해서 장혜원은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그 오피스텔 빌딩으로 가고 있었다. 당장 아이들 데리고 갈 곳 없었던 그녀에게 있어서, 그곳은 가기 딱 좋은 은신처였으니까.

“프리첼 빌딩. 저기다.”

“어. 가깝다.”

“와아. 우리 학원보다 더 가까운 데 있었네.”

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은 곳에 엄마 친구의 집이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장혜원도 따라 웃었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준열이한테 고맙다고 문자 보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오피스텔 빌딩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장혜원. 하지만 그때부터 아이들 챙겨서 오피스텔 빌딩에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간 그녀는 눈앞에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치여서, 그곳에서 잠들 때까지 백준열에게 문자 보내기로 한 생각은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음 날 아침에도 마찬가지로 잊고 있었다. 아이들 깨우고 챙겨서 어린이집, 유치원 보내기까지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까지 말이다.

“아아. 맞다. 준열이....”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보내 놓고 차 한 잔 마실 때 그제야 어제부터 백준열에게 보내기로 한 감사의 문자 메시지가 생각났다. 그래서 막 그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벨레레레레~

하필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것도 지금 그녀가 제일 전화 받기 꺼리는 인물의 전화였다. 바로 남편 박성철 말이다. 하지만 그 인간과는 이혼문제로 앞으로 정리해야 할 게 많았기에 장혜원은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너 지금 어디야?

“그건 왜 묻죠?”

-어디냐고!

전화해서 버럭 화부터 내는 박성철. 예전의 그녀였다면 어떡하든 그의 화부터 진정시키려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는 이제 남남이 될 사이니 말이다.

띠익!

장혜원은 남편 박성철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박성철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네.”

-너 지금 내 전화를....

전화를 받았는데 여전히 자신에게 화를 내는 박성철. 해서 장혜원은 이번에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앞 번처럼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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