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07화 (60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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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박 회장은 두어 숟가락 밥을 떴다. 그러다 입맛이 없는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왜요? 맛이 없어요? 어디 내가 맛을....”

그러자 그 옆의 아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허....”

그런 아내에게 박 회장이 눈짓을 보냈다. 조용히 하라고 말이다. 그녀가 박 회장과 살아 온 세월이 몇 년이던가? 남편의 그 눈짓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 본 아내가 즉각 그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박 회장의 시선이 그의 아내에서 뒤편으로 넘어갔다.

“아가?”

박정명이 불쑥 며느리인 장혜원을 찾았다. 그때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해야 할 것을 분류해 통에 담고 있던 장혜원.

“네?”

갑작스런 시아버지의 부름에 놀란 장혜원이 뒤돌아서 박정명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박정명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차 한 잔 하자꾸나.”

그 말 후 먼저 식탁에서 일어난 박정명은 곧장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시어머니가 홱 장혜원을 쏘아보며 말했다.

“너 회장님께 무슨 실수한 거 있니?”

“네?”

표독스런 시어머니의 얼굴과 말투에 장혜원은 습관적으로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다. 안 그랬다가는 시어머니가 더 그녀를 몰아세울 테니 말이다. 그렇게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며 힘없이 말은 하는 장혜원.

“그, 그런 적 없어요.”

“흥. 뭐 그런 주변머리라도 있었으면....아니다. 됐고. 뭐하니? 네 시아버지 기다리시겠다. 빨리 찻물 받아 서재로 가지 않고.”

“네.”

장혜원은 주방 설거지와 뒷정리는 도우미 아줌마들에게 맡기고,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보이차의 찻물부터 우렸다. 그렇게 찻물이 우려지는 사이 다기를 챙겨서 서재로 갈 준비를 끝낸 장혜원.

쪼르르르!

그녀는 잘 우려 난 보이차의 찻물을 다기 주전자에 부었다. 그 다음 자기 잔을 챙겨 시아버지 박정명이 있는 서재로 향했다.

똑똑똑!

장혜원이 노크를 하자 바로 서재 안에서 박 회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장혜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서재 문을 열었다. 그러자 널따란 서재 안 창가에 있는 고풍스런 원목 책상에 박 회장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곧장 그 원목 책상 쪽으로 걸어갔는데....

“아니. 여기 말고 저기서 마시겠다.”

그때 박 회장이 그녀의 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평소 차를 자신의 책상에 앉아 즐기던 박 회장. 그런 그가 응접 소파에서 차를 마시겠다고 하자, 장혜원은 자신이 들고 들어 온 차 주전자와 찻잔이 올려 진 쟁반을 응접 소파 테이블 위에 일단 올렸다.

그 사이 박 회장이 책상에서 일어나서 응접 소파의 상석에 와서 앉았고 장혜원도 쟁반에 올려 져 있던 차 주전자와 찻잔을 박 회장이 앉은 소파 맞은 편 테이블에 옮겨 놓았다. 그리곤....

“차 드세요.”

박 회장은 혼자 차 마시는 걸 즐겼다. 해서 장혜원은 차를 가져다 드리는 것으로 자기 할 일은 다 했다고 보고 서재를 나서려 했다. 하지만....

“잠깐....”

“네? 뭐 더 필요하신 거라도?”

“아니. 더 필요한 건 없고....잠깐 앉겠느냐?”

앞서 박 회장은 장혜원에게 차 한 잔 하자고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게 꼭 그녀에게 박 회장이 할 말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닐 거란 게 장혜원의 생각이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박 회장이 이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며느리인 그녀에게 말하지는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여태 박 회장은 그래왔었다.

며느리에 대한 불만의 90%를 시어머니를 통해 전달하면서, 시어머니로 하여금 그녀를 꾸짖게 해서 이 집 안 주인의 권위를 세워왔달 까?

그랬기에 장혜원은 차만 내어 드리고 서재를 나오게 될 것을 확신했었다. 대신 내일 아침에 시어머니께 한 소리 들을 생각에 벌써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근데 시아버지 박 회장이 진짜 그녀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해서 장혜원은 의아해 하며 시아버지 옆 소파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 * *

퇴근하는 길부터 시작해서 좀 전 식사를 할 때까지 박정명은 과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했다. 하지만 별 뾰쪽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하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 있는 그대로 얘기하자.”

결국 박정명이 선택한 건 정공법, 즉 사실 그대로 며느리에게 얘기하고 그녀의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염치없고 뻔뻔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그가 생각을 정리했을 때 서재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고, 박정명은 일단 며느리를 서재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며느리를 응접 소파에 앉힌 다음 그녀를 보고 말했다.

“너에게 미안한 말을 좀 해야겠다.”

“네?”

“실은....”

자신이 한 말을 뒤집어야 했기에 말하는 게 좀 힘들었다. 하지만 막상 또 입을 떼니 할 말은 줄줄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당연히 박정명의 얘기를 듣고 그의 며느리 장혜원은 화들짝 놀랐다.

“아, 아버님....지, 지금 저보고 그이랑 헤어지라고 하신 거 맞나요?”

“그래. 맞다. 왜 너도 원하지 않았더냐?”

“하지만....아버님께서....”

박정명이 그랬다. 그녀를 정신병원에 쳐 넣어 버릴 거라고 말이다.

“크음. 그건 내가 화가 난 김에 그냥 해 본 소리고....”

평소 농담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 박정명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 소리에 장혜원이 속으로 기가 차 할 때였다.

“네 남편 오거든 내가 얘기할 테니, 넌 오늘이라도 당장 이 집을 나가도 좋다.”

“네에?”

장혜원은 도저히 지금 박정명이 하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에 동그래졌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였기 때문에.

‘가만....이거 혹시....’

그때 장혜원의 머릿속에 백준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기 전 그가 그녀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그녀와 남편을 이혼 시키겠다는 그의 말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박정명은 마저 하던 말을 이어나가려 했는데 그 말을 잠깐 주저했다. 마치 자기 입으로 이 말은 싶지 않다는 듯. 하지만 해야 할 말이긴 한 듯 짧게 탄식 후 결국 말을 내 뱉었다.

“하아....효원이, 세원이 말인데....네가 데리고 가서 키우거라.”

“네에에?”

설마 아이들까지 이렇게 순순히 그녀에게 내어 줄줄 몰랐던 장혜원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박 회장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하지만 아팠다.

‘꿈이 아냐.’

장혜원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헤매서는 안 됐다. 그녀에게 있어 이런 절호의 기회가 다시 찾아 올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때문에 이 기회는 반드시 잡아야 했다.

“그, 그럴게요.”

박 회장이 딴 소리 하기 전에 장혜원은 그의 뜻을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래. 고맙다. 그만 나가 봐라.”

박 회장은 그런 그녀에게 힘없이 축객 령을 내렸다. 실제 어깨가 축 늘어진 박 회장의 모습이 이제 더 이상 장혜원에게 거역할 수 없는 거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늙고 욕심 많은 늙은이로 비춰질 뿐이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장혜원은 뒤돌아서 조용히 서재 밖으로 나갔다.

* * *

주말에 그 개쪽을 당해 놓고도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박성철은 오후 3시쯤 회사에서 나와서 여자를 만났다. 한데 그 여자는 그가 데리고 다니기에 누가 봐도 너무 젊었다.

“오빠. 나 저거 사줘.”

“어. 그래.”

파릇파릇한 여대생은 데리고 침대에서 즐길 때는 좋았다. 하지만 그것 빼고 나면 그녀는 박성철이 감당하기 버거운 게 사실이었다.

돈 쓰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 끼고 다닐 때는 정말 여대생이 내뿜는 그 에너지에, 역으로 자신의 기가 다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났는데 호텔은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나? 해서 박성철은 여대생을 졸졸 쫓아다니며 그녀가 원하는 건 죄다 사 주었다. 그리고....

“저기 가자.”

“엉큼하긴....좋아요.”

근처 호텔로 가자니 그래도 그가 자신을 위해 쓴 돈 때문인지, 순순히 따라가 주는 여대생. 하지만....

“아잉. 오빠. 벌써 끝이에요?”

자기 위에 올라 탄 상태의 박성철의 가슴을 더 밀어 옆으로 치운 뒤, 여대생이 자기 배와 가슴 위에 뿜어져 있는 그의 정액을 불쾌한 눈으로 쳐다보며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안. 내가 좀 피곤해서....”

“피곤하면서 왜 만나 제? 치잇. 나 먼저 씻을 게요.”

주말의 그 일 때문일까? 여대생과 제대로 된 섹스도 못해보고 파정을 해 버린 박성철.

그는 처량하게 고개 푹 숙인 자신의 자지를 내려 다 보고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

아무래도 주말 복상사의 후폭풍이 한 동안 지속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자 박성철은 한껏 풀이 죽었다.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여자와 그 짓 할 때가 가장 즐거웠는데 이제 그 즐거운 짓도 한 동안 못할 거 같자 기분이 급격히 다운 되었다. 그러다 힐끗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6시가 조금 넘었다.

“집에 가서 발 닦고 자야겠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박성철은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았다. 해서 씻지도 않고 벗어 놓은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막 호텔 방을 나가려는데 수건 한 장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여대생이 욕실에서 나오며 그를 보고 말했다.

“오빠. 어디 가게?”

“어. 급한 일이 생겨서 가보게.”

박성철의 대답에 여대생이 얼굴을 팍 찌푸렸다.

“저녁은?”

“저녁?”

그러고 보니 오늘 여대생과 저녁까지 먹고 내일 아침까지 호텔 방에서 그 짓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눈앞에 여대생은 꼴도 보기 싫었다.

“미안. 오늘은 같이 못 먹겠다. 대신....”

박성철은 지갑을 꺼내서 거기서 수표 세 장을 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러자 입 꼬리가 슬쩍 올라 갔다가 내려 온 여대생이 말했다.

“알았어. 오빠. 이번은 봐 줄게. 하지만 다음에 이러면 나 진짜 삐질 거야?”

“그래. 다음에는 내가 확실하게 널 챙겨 주마.”

박성철의 그 말이 마음에 든 듯 여대생은 피식 거렸고, 그런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박성철의 입이 삐뚜름했다. 그리고 호텔 방을 나온 박성철.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다시 볼 일 없을 테니까.”

박성철에게 여대생은 그의 성생활을 위한 즐기는 도구에 불과했다. 한데 그 도구가 질린다면 다른 도구로 바꿔야지 어쩌겠나? 호텔 복도를 걸으며 박성철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그는 곧장 로비를 가로 질러서 호텔 출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의 차가 입구 앞에 대기 중이었고, 그 차에 탄 박성철이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집으로 가자.”

“네.”

그렇게 박성철을 태운 차가 평창동에 위치한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고, 출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는 관계로다가,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박성철은 곧장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와 집안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녀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실에 모친이 나와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입에 대빵 삐져나와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많이 일찍 퇴근한 아들을 보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집안 꼴 잘 돌아간다.”

보나마나 모친이 며느리에게 잔뜩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를 마중 나와 있어야 할 아내가 보이지 않자, 박성철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모친에게 물었다.

“효원 에미 어디 갔어요?”

“어디 가긴. 제 방에 있지. 아주 좋아서 난리다. 난리.”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모친을 쳐다 보던 박성철. 그때였다.

“나 좀 보자.”

갑자기 들려 온 아버지 목소리. 흠칫 놀란 박성철이 뒤늦게 서재 쪽을 쳐다보자, 그 새 자기 할 말을 끝낸 부친이 뒤돌아서 열려져 있던 서재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쯧쯧쯧....”

그때 혀를 차는 모친, 그 소리를 듣고 박성철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자, 그녀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고 모친이 대체 뭣 때문에 저러는 지 의아해 하며, 박성철은 일단 부친의 서재로 움직였다. 그리고 부친을 따라 서재 안으로 들어가면서 안에서 열려져 있던 서재 문을 닫을 때였다.

“이리 와 앉거라.”

서재 안의 응접 소파 상석에 먼저 앉아 있던 부친의 말에 박성철은 응접 소파 쪽으로 걸어가서 부친 옆 소파에 앉았다. 그런 그에게 부친이 바로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 왔구나?”

“네. 뭐....”

주말에 겪은 황당한 일로 인해 오늘 아침부터 부친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박성철. 그는 부친이 아침에 이어서 그 잔소리를 이어나갈까 그게 걱정인 듯 힐끗 부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너....에미랑 그만 헤어지거라.”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부친의 말에 박성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구보다도 가부장적인 아버지 입에서 가정을 깨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 박성철 인들 상상이나 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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