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06화 (6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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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물론 「개눈깔」아이템과 「개코」아이템을 통해서 김종훈의 본심을 알아보니, 지금 그가 상당히 열 받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기껏 이쪽에서 만나자고 해 놓고 이렇게 늦게 나타났으니, 내가 그에게 할 말은 없다. 무엇보다 연락조차 되지 않았으니 더 말해 뭐하랴.

“사과는 앞서 했고. 해장국 한 그릇 하러 갈까요?”

평소의 나라면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해장국을 시켜 먹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호텔 1층 로비고 호텔 밖, 길 건너편 건물 1층에 24시 뼈 해장국 체인점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시든 지요.”

김종훈은 시종일관 자신의 본심을 내게 들키지 않게 말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그건 보통 사람들에게나 먹히지 나는 아니다. 이미 나는 내 두 가지 아이템을 사용했고, 그로인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색과 풍기는 냄새로 인해서, 그의 지금 심리 상태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종훈은 지금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이었다. 근데 그걸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

“갑시다.”

나는 앞장서서 호텔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 내 뒤를 김종훈이 따라왔고. 그렇게 우리 둘이 막 호텔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내 뒤에 김종훈이 내 옆으로 빠르게 걸어와서 나와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이렇게 혼자 나다니셔도 됩니까?”

내 경호 문제를 김종훈이 걱정해 주고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이럴 일이 없지.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김종훈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싸움 실력이 있었고.

“예외도 있는 법이죠.”

이번에는 내가 쿨하게 대꾸하자 김종훈이 피식 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외라....”

자신으로 인해서 내가 특별히 지금의 예외적인 행보를 하고 있단 거 자체가 김종훈으로서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나에게 내 보이고 있던 그의 몸에 적의의 빛이 꽤 많이 옅어진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김종훈에게서는 여전히 불신과 적의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불쾌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여전히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를 데리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해장국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날이 제법 밝았고 해장국 집 안에 우리보다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사람들도 두 테이블이나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 뒤를 이어서 줄줄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가게 안에 절반가량이 손님으로 찼다.

우리는 해장국 두 그릇을 시켰고 각자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고, 사소한 말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점원이 뜨끈뜨끈한 해장국 두 그릇을 내 왔다.

“빠르네.”

“그러게요.”

우리는 해장국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었다. 전국적 체인망을 갖춘 뼈 해장국의 국물 맛이야 당연히 좋았고 우리는 그 해장국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이게 한 숟가락 뜨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장국 한 그룻을 뚝딱 해치우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건 김종훈도 마찬가지였던 듯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 그는 해장국을 그릇 째 들이키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해장국 한그릇 먹는 데 5분밖에 안 걸렸다. 그렇게 해장국을 먹으면서 얘기하려던 게 졸지에 해장국 다 먹고 나서 얘기를 하게 됐다.

* * *

오늘도 유치원 간 아이를 자신이 직접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 온 장혜원.

그 아이를 씻기고 간식까지 먹이고 나서, 학원에 보내고 나자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와서 그녀에게 말했다.

“에미야. 오늘 저녁은 멸치 쌈밥 먹자.”

“멸치 쌈밥이요?”

“그래. 청양고추 넣어서 매콤하게.”

갑자기 멸치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NO라는 말은 그녀가 입에 담을 수 있는 대답이 아니었다. 대신 장혜원은 시아버지인 박 회장을 걸고 넘어졌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맵고 짠 반찬은 삼가라고 하셨는데....”

그러나 시어머니는 장혜원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건 걱정 마라. 네 시아버지 오늘 저녁 먹고 들어오실 테니까.”

이러면 장혜원도 어쩔 수 없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차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또 이 집에서 시아버지 없을 때는 시어머니가 왕이었다.

“네. 준비할게요.”

“그래. 아아. 그리고 민주도 올 거야. 장 서방도.”

“아, 아가씨네 가요?”

“그러니 넉넉히 준비해라.”

그 말 후 더 이상 장혜원은 쳐다도 보지 않고 홱 몸을 돌려서 안방으로 도로 들어가 버리는 시어머니.

“하아....”

장혜원은 기가 찼다. 결혼하기 전에도 시누이 노릇을 톡톡히 하더니, 시집가서도 이런 식으로 장혜원을 엿 먹이는 박민주. 바로 박정명 회장의 막내딸이 보나마나 제 엄마인 시어머니에게 멸치 쌈밥이 먹고 싶다고 한 거다.

장혜원은 일단 그녀의 단골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재벌가의 경우 엄선된 식재료를 제공 받는 가게들이 따로 있었다.

비록 그런 재벌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식품업계에서 대기업 소리를 듣는 그림산업이다. 그런 곳의 회장 집에 따로 식재료를 제공하는 곳이야 당연히 있었다.

“여보세요? 성 사장님. 여기 평창동이에요. 혹시 멸치 있을까요? 아뇨. 생멸치요. 멸치 쌈밥하려고요. 네. 있다고요? 하아. 다행이다. 그럼 멸치 2Kg하고 쌈 재료도 필요하겠네요. 네. 네? 지금 당장은 배달이 어렵다고요?”

시간 상 한 시간 안에 재료가 준비 되어야만 저녁 준비를 제 시간에 맞춰 할 수 있었다.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네. 어쩌겠어요. 사정이 그렇다는데. 네. 지금 출발할게요. 네.”

그렇게 통화를 끝낸 장혜원. 그녀는 바로 겉옷 하나를 걸치고 차키와 지갑을 챙겨 들고 차고 쪽으로 향했다.

좀 전 전화 한 식재료 가게까지는 차로 30분 거리. 출 퇴근 시간에 걸리면 큰일이기에 장혜원은 서둘러 움직였다.

잠시 뒤 차고에 간 그녀는 아이를 태워 온 자신의 차에 다시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몰아서 식재료 가게로 달려갔다.

* * *

한 시간 뒤 집으로 돌아온 장혜원. 다행스럽게 출퇴근 시간 도심 도로를 벗어날 수 있었던 그녀는 차고에 차를 대고, 차에서 가져 온 식재료들을 챙겨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작은 사모님. 이리 주세요.”

부잣집 답게 이 집에도 일하는 가사 도우미 분들이 계셨다. 하지만 그녀는 시어머니 지시를 우선적으로 따랐다. 그러다 할 일이 없거나 지금처럼 식사 준비를 할 때에는 다들 주방에서 장혜원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니 직접 장 봐온 장혜원이 잔뜩 짐을 들고 나타나자, 가사 도우미들이 분주히 뛰어나와서 그녀에게서 짐을 받아들었다.

“멸치 쌈밥할 거니까 안산댁은 멸치 손질 좀 해 주시고, 미림댁은 쌈 재료들 씻고 멸치조림에 들어갈 야채 좀 썰어 놔 줘요.”

장혜원은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주방으로 향했다. 그 뒤 분주히 식사 준비를 시작한 장혜원.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상을 다 차린 장혜원이 멸치 조림에 마지막으로 송송 썬 대파를 넣고 있을 때였다.

“다 됐니?”

안방의 시어머니가 나와서 물었다. 보나마나 주방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나온 것이리라.

“네. 어머니.”

“민주 다 와 간다니까 이제 밥 퍼거라.”

시어머니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밥만 빠져 있자 그 말 후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장혜원은 시어머니가 드실 밥부터 퍼서 시어머니 앞에 대령했다. 그 뒤 시누이와 그 시누이의 남편이 먹을 밥을 펐다.

“엄마. 나 왔어.”

그때 장혜원의 시누이, 박민주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녀 뒤로 그녀의 남편이 쫄래쫄래 뒤따라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장모님.”

“어어. 어서와. 장서방.”

시누이의 남편은 장혜원의 시어머니께 인사 후 장혜원을 보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자신의 아내와 같이 시어머니 맞은 편 식탁 자리에 앉았다. 그걸 보고 장혜원은 가스레인지 위에서 자글자글 끓고 있는 멸치조림을 챙겨 들고 식탁 한 가운데 비어 있는 자리에 갖다 놨다.

“와아. 멸치조림 제대로다. 자기야. 어서 먹어 봐. 우리 언니 멸치조림 끝내 줘.”

시누이가 맞은편에 자기 엄마도 있는데, 국자로 먼저 멸치조림을 떠서 자기 남편에게 주는 걸 보고 장혜원은 쓰게 웃었다. 한데 시어머니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장 서방. 여기....쌈에 싸 먹어야 제 맛이지.”

“네. 장모님.”

자신의 사위 하나는 끔찍이 챙기는 시어머니였다. 사위 챙기는 거 십분의 일만이라도 며느리인 자신에게 해줬어도....

하지만 그녀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시부모가 아무리 자신에게 잘 해줘봐야 뭐하겠나? 남편이 그녀에게서 마음이 떠난 게 옛날인데 말이다. 남편 생각하니 바로 이혼이 떠올랐고, 이혼 하니 백준열이 생각난 장혜원.

‘....보고싶다.’

백준열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 장혜원. 그래서 그와 엊그제 골프장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는데....

“....좀 줘요. 언니. 내 말 듣고 있어요?”

“네?”

시누이 박민주가 장혜원에게 뭐라고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잘 듣지 못한 장혜원이 시누이를 쳐다보자 그녀가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내 말도 못 듣고....”

시누이의 짜증 가득한 잔소리가 막 시작 될 때였다. 현관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그리고....

“회장님. 오셨습니다.”

오늘 저녁 먹고 들어 올거라던 박정명 회장이 집에 왔고 그 때문에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시누이의 남편이 식사하다 말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르르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들 뒤로 앞치마를 두른 장혜원이 따라 나가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시아버지가 오면서 시누이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시집간 시누이는 어떻게 된 게 시집가서도 이렇게 친정에 들러서 예전에 그녀에게 한 행사를 그대로 해 대고 있었다. 한데 시어머니는 그걸 그대로 방치했다. 딸이 시댁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러겠냐며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 딸이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여기 친정에 와서 자기 며느리에게 마음껏 풀어도 좋다는 건가? 장혜원도 엄연히 친정에 가면 시어머니의 딸처럼 귀한 딸인 것을 말이다.

“식사 하시고 오신다면서요?”

“약속이 취소 됐어.”

“아빠 저희 왔어요.”

결혼 한 딸과 사위가 인사를 하는데도 박정명 회장은 별로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왜 또 왔어?”

퉁명스럽게 자신의 딸과 사위를 쳐다보며 말하는 박정명 회장.

“또 오다뇨. 누가 들으면 우리가 매일 여기 오는 줄 알겠네.”

“일주일에 세 번이면 많이 오는 거 아니냐? 시집 간 녀석이 왜 이리 친정 출입이 잦은 거야?”

그 말을 하면서 박정명 회장이 그들 뒤에 앞치마 차림의 며느리 장혜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알았어요. 이제 안 오면 되잖아.”

바로 삐치는 박민주. 하지만 박정명 회장은 그걸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 제발 좀 오지 마라. 만날 안 온다고 하고 왜 자꾸 오는 건지. 쯧쯧.”

그렇게 혀를 차며 자기 딸 옆에 사위를 잠시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박정명 회장. 그러자 사위가 몸둘 바 몰라 하며 자기 아내 뒤로 슬그머니 몸을 숨겼고, 그걸 보고 박민주가 발끈했다.

“아빠. 왜 장 서방 눈치 주는 건데?”

“그, 그만. 민주 너도 그만하고 가. 장 서방. 민주 데리고 빨리 가.”

성격이 불같은 박정명 회장을 그대로 빼닮은 막내 딸 박민주. 그 둘이 싸우면 그 사이에 낀 자신이 피곤해진다는 걸아는 장혜원의 시어머니가, 그들이 싸우기 전에 먼저 박민주와 자신의 사위를 현관 쪽으로 떠밀었다.

“밀지 좀 마요. 간다고. 가. 자기야. 가자.”

“어어.”

박민주는 알았다. 부친과 싸워 봐야 그녀에게 덕 될 게 하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부친이 진짜 화가 났을 때는 이렇게 내 빼려 해도 내 뺄 수가 없다는 걸. 해서 부친이 놔 둘 때 지금 내 빼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딸과 사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는 걸 어처구니 없어하며 쳐다보던 박정명 회장.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안방으로 들어갔고, 그런 그를 따라서 움직이던 시어머니가 장혜원에게 말했다.

“아버님 밥상 새로 차려라.”

“네.”

대답 후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간 장혜원. 그녀는 식탁 위에 음식을 다 치우라고 도우미 아줌마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위해 새로 정갈하게 밥상을 차렸다.

10여분 뒤에 박정명 회장이 시어머니와 같이 식당으로 들어왔고 식탁의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런 박정명 회장의 앞에 그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서 드세요.”

그런 박 회장 옆에 앉으며 그의 아내가 말했다. 마치 그녀가 밥상을 차리기라도 한 거처럼 말이다. 평소라면 이런 아내의 모습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밥상을 차린 며느리를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박 회장은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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