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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02화 (59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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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아들인 데이비드에게 밀려 경영에서 물러 났다고 알려져 있는 임페리얼 호텔 회장 브룩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좋군.”

마이애미 해안가. 비싸 보이는 최고급 보트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에,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보트 위에 한 노년의 백인 남자가 웃통을 훌훌 벗어 던진 채, 갑판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 노년의 남자가 바로 브룩스 회장이었다.

그는 아들 데이비드에게 협박을 받은 뒤, 그 충격으로 잠시 업무에서 손을 떼고 유유자적 보트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선체 안에서 늘씬한 자태의 금발 미녀가 한 손에는 칵테일 잔을,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누가 봐도 우아한 걸음걸이로 브룩스 회장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왔다.

그녀는 미국 모델계에서는 꽤나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타 모델 린제이 와슨으로, 현재 브룩스 회장과 연애 중이었다.

그녀 역시 일에 치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였기에, 브룩스 회장의 보트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끝장 몸매의 린제이 와슨이, 비키니 차림에 위에 입으나 마나한 속이 다 비치는 가운을 걸치고 갑판 위를 무슨 런웨이 무대처럼 걸었다. 그 그림 같은 장면을 정작 브룩스 회장은 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선글라스 위, 하늘에 가 있었으니까.

“브룩스. 여기....”

그게 불만인 듯 브룩스 회장 곁에 다가 온 린제이 와슨의 목소리가 어째 퉁명스러웠다. 그러던 말든 브룩스 회장은 자기 옆에 와 있는 9등신의 늘씬한 미녀보다는 그녀 손에 들려 있는 칵테일에 더 관심을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그녀 손에서 칵테일 잔을 거의 뺏듯 해서 입으로 가져간 그는 한 모금 칵테일을 마신 다음 말했다.

“고마워. 제이.”

하지만 브룩스 회장의 그 말에는 전혀 진정성이 들어있지 않은 듯 느껴졌다. 자기가 무슨 메이트도 아니고 말이다. 기분이 상한 린제이 와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별말씀을요.”

그때였다. 브룩스 회장이 그녀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보고 말했다.

“내 핸드폰은 왜?”

브룩스 회장의 말에 그제야 린제이 와슨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 올려서,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브룩스 회장을 핸드폰을 보고는 말했다.

“문자 메시지가 온 거 같아서 가져와 봤어요. 도로 갖다 놓을게요.”

휴가 중이라 브룩스 회장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웬만한 전화는 받지 않았다.

당연히 문자 메시지도 심심할 때 한 번에 몰아서 확인을 했고. 그게 생각이 난 듯 린제이 와슨이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들고 온 브룩스 회장의 핸드폰을 도로 선박 내부로 가져다 두려 했다.

“잠깐. 줘 봐.”

“네?”

“내 핸드폰 달라고.”

“그, 그래요.”

린제이 와슨은 늙은이의 변덕에 치를 떨며 손에 쥐고 있던 그의 핸드폰을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그 핸드폰을 받은 브룩스 회장. 그는 바로 핸드폰에 걸린 비밀번호를 풀고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 한국의 준열에게서 온 문자로군. 음?”

브룩스 회장은 핸드폰의 글이 잘 안 보이는지, 게슴츠레 눈을 뜨고 핸드폰을 거의 코앞까지 가져다 대고는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더니 버럭 소리를 쳤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준열의 지분이 20%를 넘을 수 있지?”

* * *

브룩스는 백준열이 보내 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자신의 변호사이자 투자 컨설턴트 테일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데 빨리 알아 봐.”

-네. 회장님.

백준열의 거짓말은 뉴욕 증권가에 알아보면 금방 들통 날 일이었다. 하지만 백준열이 갑자기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거짓말을 그에게 전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해서 브룩스는 귀찮지만 테일러에게 백준열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게 했다.

그렇게 테일러가 백준열이 자신의 회사 지분을 20%넘게 확보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안, 브룩스는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뜯으며 갑판 위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10여분 쯤 시간이 흘렀을까?

지이이잉!

브룩스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울렸고 브룩스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회장님.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미스터 백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브룩스의 입에서 엄마, 아내와 관련 된 미국식 욕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 욕설을 묵묵히 들어주던 테일러. 브룩스의 입에서 욕설이 잦아들자 테일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 백의 요구 사항이 뭡니까?

“요구사항?”

-네. 그러니 회장님께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낸 거 아니겠습니까?

“아아. 그렇지. 맞아. 내 뒤통수를 치려면 문자 메시지 같은 걸 보낼 리 없지.”

그제야 이성적인 생각을 시작한 브룩스. 그가 테일러에게 말했다.

“녀석의 요구사항이 뭔지 내가 물어보고 나서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네. 그러십시오. 전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테일러와 통화를 끝낸 뒤 브룩스는 곧장 한국에 있는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백준열이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받았다.

“준열. 원하는 게 뭔가?”

브룩스는 긴말하지 않고 백준열에게 곧장 물었다. 그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말이다.

“....해 달라는 말이군. 잘 알겠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그렇게 백준열의 요구사항이 뭔지 파악하고 통화를 끝낸 브룩스. 그는 곧장 테일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 백준열의 요구사항을 얘기했다. 그러자 생각하고 자실 것도 없이 테일러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십시오. 어차피 한국 시장은 적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돈을 벌어주는 곳도 아니잖습니까? 이번 기회에 깨끗이 정리하시고 내친김에 데이비드까지 쳐 내 버리시죠?

“뭐?”

-이제는 최대주주가 된 미스터 백이 아닙니까? 그의 도움을 좀 받으면 데이비드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싹 쓸어내 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테일러의 그 말을 듣자마자 브룩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게 가능하겠나?”

-가능하니까 이렇게 말씀 드리는 거지요. 맡겨 주십시오.

“알았네. 그렇다면 준열의 요구를 받아드리도록 하겠네.”

브룩스도 사업가다. 그런 그가 주는 게 있는데 뭐라도 더 받아내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해서 테일러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의 요구사항을 들어 주는 대신 브룩스는 당연하다는 듯 백준열에게 원하는 걸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데이비드를 쳐 내는 데 협력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왜? 어렵겠나?

-아뇨. 친구는 친구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역시 준열은 타고난 사업가야. 하하하하.”

그렇게 브룩스와 백준열 모두 윈-윈 하는 선에서 얘기가 잘 되었고, 서로 웃으며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브룩스의 가식적으로 웃고 있던 얼굴이 굳었다.

“준열. 무서운 새끼. 언제 우리 주식을 그렇게 끌어 모은 거야? 이거 단도리 제대로 해야겠는걸.”

브룩스는 지금 한가로이 보트 여행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대주주들 단속부터 해야 했다. 자칫 그들 몇 명이 백준열에게 붙는다면 그때는 진짜 그의 경영권을 백준열에게 내 주어야 할지 몰랐다.

“제이. 나 뉴욕에 갈 거야. 그러니 너 당장 배에서 내려.”

“뭐, 뭐라고요?”

일방적인 브룩스의 통보에 린제이 와슨이 눈꼬리를 치켜떴다. 그러던 말던 브룩스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선착장으로 차가 왔고, 그 차를 타려는 브룩스.

그런 그를 린제이 와슨이 붙잡으며 말했다.

“어디 가는데요?”

“말했잖아? 나 뉴욕 가야 해. 바쁘니까 비켜.”

그렇게 차를 타고 마이애미 공항으로 가버리는 브룩스. 그런 그를 보고 한 동안 어이없어하던 린제이 와슨. 그녀는 그제야 브룩스가 배에서 내리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Fuck!....나 지금 그 늙은이에게 차인거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주인 없는 배에서 자신의 짐을 빼야했고, 급한 대로 마이애미 해안가의 한 호텔에 방을 잡았다. 그리고 브룩스 회장을 욕하며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나름 식품업계에서는 대기업 소리를 들어왔던 그림산업.

장장 20년 넘게 그 그림산업을 키워 온 박정명 회장. 그는 자신의 자식들이 회사를 더 키워 나가 줄 것을 기대했다. 식품업계의 대기업이 아닌 진짜 대기업으로 말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자식들 공부만큼은 확실히 시키려 했다. 그러나 어디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되던가?

그건 박정명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기대와 달리 자식들은 엇나갔고, 결국 회사를 키우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자식들은 오히려 그가 회사를 키우는 데 방해만 되었다. 일을 맡기면 죄 문제만 일으켰으니까.

그러니 뭘 믿고 그놈들에게 회사를 맡긴단 말인가?

그래서 박정명 회장은 자식들이 아닌 손자들에게 기대를 품고, 어떡하든 오래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손자 중에서 그의 마음에 드는 녀석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행인 건 자식들과 달리 손자들은 그나마 싹수가 보인다는 점이었다.

한데 그나마 대기업 행세를 하고 있던 식품업계에, 진짜 대기업들이 속속 뛰어들면서 그림산업의 기존 사업들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허어. 이거 큰일이군.”

다른 사업으로의 진출은 고사하고 기존 식품업계의 위치를 지키기도 어려워졌다.

살아남기 위한 그림산업의 처절한 투쟁이 시작 된 것이다. 한데 모자란 그의 자식들은 그것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사고를 쳐댔다.

“하아....어째 도움이 되는 자식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렇게 홀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박정명 회장. 하지만 점차 회사 상황은 나빠졌고 그로인해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해서 박정명 회장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투자자를 유치했는데....

“찾아오는 것들은 죄 사기꾼뿐이고....”

말만 번드르르하니 투자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뒤를 캐보면 다들 사기꾼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블랙머니 측에서 연락이 왔다.

박정명 회장도 요즘 국내 투자사 중에서 가장 핫한 곳 중에 한 곳이 블랙머니라는 투자사임을 알았다. 그랬기에 주말 임에도 그쪽 연락을 받았고. 그랬더니....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요?”

그쪽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다른 곳도 아닌 블랙머니에서 직접 그림산업에 투자를 하겠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림산업의 주가가 폭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조건 상향 곡선을 그릴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네. 네. 그럼 내일 점심 때 거기서 보도록 하지요.”

블랙머니 측에서 얼마나 투자를 할지 모르지만 박정명 회장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그쪽 투자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 소문이 날 테니까. 블랙머니에서도 투자할 정도로 그림산업의 투자 미래가 밝다는 게 말이다.

그렇게 소문만 잘 나면 사기꾼들이 아닌 진짜 그림산업에 투자해 줄 투자자들이 그를 찾아 올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림산업은 지금의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터였다.

해서 박정명 회장은 블랙머니 측의 연락을 받고 나서 바로 회사에 갔다.

일요일이지만 내일 점심 때 있을 투자자와의 만남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 * *

어제 늦게까지 회사에 있었던 박정명 회장. 물론 직접적으로 그가 뭔가 일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버티고 있어야 회사가 돌아갔고, 밑에 직원들도 제대로 일을 했다.

해서 그는 어젯밤 11시까지 회사에 붙어 있었다.

“....피곤하군.”

그래선지 아침 출근길에 몸이 무거운 박정명 회장.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갑자기 일요일에 회사에 불려 와서 일을 하게 된 기획부 직원들이, 꽤 흡족할 만한 투자유치 관련 사업기획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주 좋아.”

박정명 회장은 몇 번이나 그 기획서를 확인하고, 그걸 잘 챙겨서 약속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원래 블랙머니 측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12시였지만, 박 회장은 20분 더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정갈한 한정식이 꽤나 유명해서 미리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곤지암은 박 회장의 단골 음식점이었다. 이곳 주인이 박 회장의 고교 동창인지라 그는 바로 전날 예약을 하고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사장인 친구는 요즘 몸이 아파 가게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아들이 박정명 회장을 반갑게 맞았다.

“아저씨. 어서 오세요.”

“그래. 아버지 몸은 좀 어떠시니?”

“좋아지시긴 했는데 아직 가게 나오시기는 무리시죠.”

박 회장의 친구인 이곳 곤지암의 사장은 작년 말에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 가니 뇌출혈이었고 몇 분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라나? 그렇게 운 좋게 살게 된 친구는 아직까지 정상적인 생활까지는 영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친구 때문에 박 회장은 매달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 그로서는 그 친구가 그의 건강에 타산지석이 된 셈이었다.

“방은?”

“매화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중요한 손님이니 잘 좀 부탁한다.”

“최고로 준비해 뒀으니 염려 마세요.”

그렇게 친구 아들과 인사 후 예약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간 박 회장은 실로 오랜만에 초조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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