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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01화 (59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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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현재 한국에 있는 임페리얼 호텔의 수는 모두 4곳. 서울과 경주, 광주, 그리고 제주도에 있는 임페리얼 호텔은 지금까지 적자가 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런 호텔 사업을 임페리얼 호텔 본사에서 철수 결정을 내릴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물론 최근 들어 서울 임페리얼 호텔에서 무리하게 직원들을 잘라서 국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으면서 손님이 급격히 줄어 이번 달 매출에 타격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주명석은 그것도 임페리얼 호텔에서 자체적으로 직원들을 새로 뽑는다면 곧 해결 될 문제라고 봤다.

잘린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문제라면, 새로 임페리얼 호텔에 고용 될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즉 임페리얼 호텔 측에서 새로 고용한 사람들을 내세운다면, 여론의 집중포화에서 그들이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 줄 터였다.

한데 무슨 생각인지 엄석태 대표가 새로 직원을 충원할 채용 계획에 자꾸 태클을 걸었다. 환장할 노릇은 엄 대표가 그 이유를 속 시원하게 자신에게 얘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괜히 이런저런 트집만 잡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요즘 엄석태와 사이가 좋지 않은 주명석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부회장이 어제 직접 연락이 와서 엄석태 대표와 같이 임페리얼 호텔 인수합병 테이블에 함께 자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주명석으로서는 감히 회사 오너인 데이비드 부회장의 부탁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엄석태와 같이 이곳 삼명호텔에 오긴 했는데, 이곳에서 그의 은인인 백준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당연히 주명석은 백준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엄석태 몰래 수시로 사인을 보냈다. 그래서 주명석은 눈치껏 백준열과 같이 화장실로 갔고, 거기서 백준열과 짧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백준열이 주명석을 화들짝 놀라게 할 질문을 해왔다.

“혹시 데이비드가 한국에서 호텔 사업을 접고 철수할 거라고 말하던가요?”

“네? 그, 그게 무슨....”

주명석이 알기로 엄석태 대표와 자신이 여기 온 것은 순전히 이슈화를 위해서였다.

즉 삼명호텔 측과 인수합병 테이블을 마련하므로 해서, 현재 언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임페리얼 호텔의 관심을 인수합병으로 돌려서, 일종의 물 타기를 통해 호텔 이미지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주명석은 데이비드가 진짜 삼명호텔에 임페리얼 호텔을 넘기려 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삼명호텔에서 실제로 임페리얼 호텔을 인수합병 할 거고요.”

“허어....”

백준열이 더 이상 주명석이 헷갈리지 않게 확실하게 얘기해 주었다. 주명석도 많이 놀라긴 했지만 백준열의 말은 믿는 기색이었다. 하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은인인 백준열이 그에게 거짓말을 할 리 없었으니까.

“그럼 데이비드 부회장이 저를 속인 거네요? 아아. 그래서 엄 대표가....”

주명석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 동안 데이비드 부회장과 엄석태 대표가 해 온 이해되지 않을 짓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핵심만 말할게요. 우리 쪽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협상이 임페리얼 호텔 측에 유리하게 잡힌 상탭니다. 그래서 이 판을 뒤집기 위해서....”

백준열은 빠르게 주명석이 이후 뭘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얘기했다. 그 말을 다 듣고 난 주명석이 백준열을 보고 말했다.

“그렇게 해 드리면 저희들의 고용은 보장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총지배인 답게 주명석은 호텔 직원들을 대표해서 묻고 있었다.

“물론이죠. 임페리얼 호텔이 이렇게까지 된 건 직원들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주명석이 흔쾌히 자신의 뜻대로 해주겠다는 말에 백준열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가시죠.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었네요.”

그 말 후 백준열이 먼저 화장실을 나갔다. 그러자 주명석은 그제야 지퍼를 내리고 변기에 소변을 봤다.

막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살짝 오줌이 마려웠던 것이다. 이대로 나갔다가는 또 화장실에 와야 할 거 같았던 그는, 그냥 편하게 소변을 보고 가기로 한 것이다.

“허 참....”

그때 소변 누던 주명석이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그럴 게 막상 백준열이 그에게 요구한 게 너무 별 게 아니어서 말이다.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라니....”

그랬다. 백준열은 주명석에게 자신이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라고 했다. 괜히 나서지 말고 말이다.

그게 뭐 어렵겠나? 보아하니 백 대표가 확실히 다 준비하고 여기 온 거 같았다.

“이거 잘하면 엄 대표가 식겁하는 걸 볼 수 있을 지도....”

그렇게 나름 기대를 가지고 주명석이 협상 자리로 돌아갔을 때였다. 협상 장의 분위기가 어째 좀 냉랭했다. 아무래도 백준열과 주명석이 없는 동안 서지연 대표와 엄석태 대표가 가볍게 서전(緖戰)이라도 한판 벌인 거 같았다.

* * *

임페리얼 호텔의 데이비드 부회장으로부터 모종의 밀명을 받고, 서울 임페리얼 호텔 대표를 맡은 엄석태. 그가 받은 밀명은 바로 임페리얼 호텔을 최대한 비싼 값에 매각하고 최대한 돈을 챙겨서 미국 본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한데 임페리얼 호텔의 국내 여론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번번이 매각 협상이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기도 전에 파토가 나버렸다. 그렇다고 헐값에 호텔을 넘길 수도 없고 말이다.

근데 또 데이비드 부회장은 매일 같이 연락을 해 와서 엄석태를 괴롭혔다. 어서 호텔을 매각하지 않고 뭐하냐고 말이다.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진행 중인 그의 탈모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말이다. 한데....

“오오! 됐다. 됐어.”

하늘이 그의 머리가 다 빠지는 것 만큼은 차마 못 보겠던지, 뜻밖의 곳에서 먼저 임페리얼 호텔을 인수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곳은 바로 삼명호텔.

국내 호텔 업계에서 삼명호텔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삼명호텔의 모기업이 어디던가? 바로 국내 대기업 서열 1위인 삼명그룹이다. 그러니까 임페리얼 호텔을 인수할 충분한 자금력을 가진 곳에서, 무려 먼저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그 말은 삼명호텔이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임페리얼 호텔의 인수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고, 임페리얼 호텔 입장에서는 충분한 가격에 호텔을 매각해 버릴 절호의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어서 알려 드리자.”

엄석태는 이 기쁜 소식을 지금은 뉴욕에 있는 데이비드 부회장에게 알렸다.

-크하하하하. 역시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군. 엄 대표. 잘 좀 해 봐.

“물론입니다. 저의 특기가 바로 기업인수합병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많은 돈을 삼명그룹에서 뜯어내 보겠습니다.”

-그래. 내 특별히 인수가의 1%를 자네에게 성공보수로 지급하도록 하지.

엄석태는 데이비드의 1%라는 말에 눈살을 팍 찌푸렸다. 그래도 되는 게 지금 두 사람은 전화 상 통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엄석태의 입에서는 자신이 지금 지어 보이는 불만어린 표정과는 달리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나 주시겠다니. 반드시 이 협상을 성공 시켜 보이겠습니다.”

-내 엄 대표만 믿겠어.

그렇게 데이비드 부회장과 통화를 끝낸 엄석태. 그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이런 C발 짠도리 새끼. 성공보수가 고작 1%가 뭐야?”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처분할 경우는 기본적으로 성공 보수가 10%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부회장은 9%나 깎은 거다. 단지 임페리얼 호텔의 인수합병 시 다룰 비용이 워낙 크다보니 1%라고 해도 최소 백만 불 이상은 받을 수 있었기에 엄석태는 당장 데이비드 부회장에게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석태는 그 성공보수 비율을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10%, 다 받아내고 만다.”

협상 테이블에는 여러 변수가 많았고, 그로 인해 자칫 협상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되게 엄석태가 만들지는 않을 테지만, 마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거처럼 연출하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게 데이비드 부회장에게는 금방이라도 협상이 파토날 거처럼 굴어서, 엄석태는 자신의 성공보수 비율을 10%까지 올려 받아 낼 생각이었다. 한데....

“뭐, 뭐라고요?”

삼명호텔 측을 대표해서 온 서지연이라는 새파랗게 젊은 여자 CEO가 턱도 없는 가격의 인수가를 제시했다.

처음에 엄석태는 서지연이 인수가에 ‘0’을 두 개는 빠트린 체, 잘못 보고 얘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5백만 달러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때였다. 서지연의 옆에 앉아 있던 백준열이 심드렁하니 엄석태를 보고 말했다.

“그것도 챙겨 줄 때 받는 게 좋을 텐데 말입니다.”

마치 선심 쓰듯 말하는 백준열을 보고 엄석태는 그제야 이 협상 테이블이 많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 * *

나는 현재 임페리얼 호텔 지분을 꽤나 많이 보유한 대주주다. 임페리얼 호텔에서 그 사태가 터졌을 때 내 보유 지분은 14.8%였었다. 그 말은 지금은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겠지?

맞다. 현재 나의 임페리얼 호텔 지분 보유율을 20%를 넘겼다. 미국의 정보통으로부터 전해 듣고 얼마 전 갑자기 쏟아져 나온 뉴욕 증시의 임페리얼 호텔 지분을, 내가 싹 다 쓸어 담아 버린 탓이었다.

고로 현재 나는 데이비드 부회장의 아버지인 부룩스 회장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었다.

거기에 오늘 내가 차명으로 매입한 주식이 약 3%정도로 브룩스회장과 데이비드 부회장의 지분을 합친 것만큼은 됐다. 즉 내가 미친 척 굴면 현재 브룩스 회장이 쥐고 있는 임페리얼 호텔의 경영권을 내가 가져 갈 수 있었다.

물론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미국인이 아니고, 또 나보다야 브룩스 회장이 확보하고 있는 대주주들이 많을 테니까.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브룩스 회장은 나이가 많고, 그 많은 나이만큼이나 의심병도 심했다. 거기다가 미국의 정보통에 의하면 브룩스 회장은 요즘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불안정한 정신 상태의 브룩스 회장이,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임페리얼 호텔 지분율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무슨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이미 썩은 팔 하나 쯤 잘라내는 걸 크게 고민도 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나는 삼명호텔에 도착했을 때 브룩스 회장의 핸드폰에다 문자 메시지를 하나 보내놨다.

그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면 브룩스 회장은 바로 알아봤을 것이고, 내가 얼마의 임페리얼 호텔 지분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테지.

사실은 내가 굳이 서지연을 만나서 이런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면 임페리얼 호텔은 언제든 내가 챙길 수 있었으니까. 단지 일을 벌이는 게 싫어서 두고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서지연에게 인수가로 5백만 달러를 제시하라고 한 건, 그게 박 비서가 상정한 임페리얼 호텔 측의 철수 비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거기 최대주주로서 임페리얼 호텔 측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던 것이다.

“하아. 대체 이 무슨....지금 이 자리가 장난인 줄 아십니까?”

엄석태 대표가 버럭 화를 냈다. 하긴 호텔 인수가로 턱도 없는 돈을 제시하니 화가 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자신과 협상 중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데이비드에게라도 알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데이비드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설득하려고 온갖 제안을 해왔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나는 훨씬 수월하게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다. 기다리던 브룩스 회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영어로 브룩스 회장과 통화를 했고, 이 협상 자리에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네. 브룩스 회장님. 네. 네....아아. 내가 원하는 거요? 그건....”

나는 브룩스 회장에게 정확히 내가 원하는 걸 얘기했고, 그는 화끈하게 빠른 결정을 내렸다.

물론 잠깐 생각할 시간을 요구하긴 했다. 아마도 그의 고문 변호사이자 투자 컨설턴트인 테일러와 상의할 시간이 필요했겠지. 하지만 그 시간을 길지 않았다.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 온 브룩스 회장은, 내가 예상한대로 요즘들어 별로 돈벌이는 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한 한국에서 손을 털고 철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철수 할 때 임페리얼 호텔을 내게, 아니 삼명호텔에 넘기기로 했고.

이를 위해서 브룩스 회장이 임페리얼 호텔 본사 쪽의 제대로 꾸려진 인수합병 실무자들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부회장이 주도 중인 지금 이 협상 테이블은 나가리인 셈이었다.

서지연은 이제 미국에서 오기로 한 임페리얼 호텔 본사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인수합병을 추진하기만 하면 됐다.

“....”

내가 브룩스 회장과 통화 직후 협상 자리에 침묵이 흘렀다. 엄석태 대표와 주명석 총지배인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건 내 옆의 서지연도 마찬가지였다.

“더 할 말 없죠? 그럼 일어납시다.”

나는 그런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휑하니 커피숍을 나왔다.

“같이 가!”

그런 내 뒤를 서지연이 뒤쫓아 왔다. 근데 그녀가 대뜸 내 팔짱을 끼는 게 아닌가?

“왜 이래? 사람들 보잖아?”

“뭐 어때? 너 여자 많은 거야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거고.”

“허어. 이거 안 빼?”

“못 빼. 그 보다....빨리 가자.”

“어어....”

나는 서지연의 손에 이끌려서 근처 엘리베이터로 갔고, 마침 올라가던 중인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 안으로 서지연이 나를 밀어 넣었다.

“어서 타.”

“뭐, 뭐하자는 건데?”

서지연에게 그렇게 떠밀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내가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는데, 정작 그녀는 그런 내 눈길을 슬그머니 피했다. 그나마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 안에서까지 내게 적극적으로 팔짱을 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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