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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99화 (59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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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최철기는 주변 눈초리에도 전혀 쫄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하던 얘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아아. 물론 혼란스러운 조직을 이만큼 안정시킨 것에 대해 저도 충분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나 제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조직이 기반도 없는 모래 위에다가 성의 토대를 쌓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토대를 더 높게 쌓아야 하는 제 입장에서, 그걸 추진하는 게 헛수고나 마찬가지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그때였다. 최철기의 예상대로 정준호 쪽 조직 간부 중에 성질 급한 작자가 발끈하며 나섰다.

“헛수고라니! 지금 준호형님이 한 일이 헛수고라고 지껄인 것이냐?”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럴 거 같이 살벌한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그 조직의 간부. 하지만 최철기에게 있어 그 자는 자신의 미끼에 걸려 든 먹잇감에 불과했다.

“네. 헛수고 맞습니다. 하나 묻지요. 여기가 태석파입니까? 아니면 준호파입니까?”

기습적인 최철기의 질문. 하지만 그 질문을 받은 조직 간부는 어버버 거릴 뿐 무슨 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

회의석상은 최철기의 그 말로 인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못했고 다들 두 사람의 눈치 보기 급급했다. 최철기가 좀 전 언급한 그 두 당사자들을 말이다.

태석파의 총 보스인 양태석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반면 정준호는 당혹감에 주위를 살피다가 양태석을 보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형님.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나 양태석은 그렇게 생각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손을 들어서 정준호를 향해 내뻗었다. 그러니까 더 말 하지 말란 제스처였다. 양태석은 한 번 꼭지가 돌면 좌고우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 시켜야만 그제야 주위 얘기를 들었다. 양태석의 그런 고집스러움을 모를 정준호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정중호는 양태석의 손짓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최 선생. 할 말 더 있으시오?”

양태석이 굳은 얼굴로 자기 옆에 최철기에게 물었다. 그러자 최철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기반을 다지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만큼 여기 계신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최철기는 뻔뻔하게 웃으며 회의석상 양쪽에 앉아 있던 조직 간부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말에 양태석이 흡족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그러자 그걸 보고 회의석상의 조직 간부들이 서둘러서 양태석을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

회의장은 박수갈채로 가득했는데 다른 조직 간부들과 달리, 딱 한 사람 정준호 만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박수를 치지 않고 넋 나간 얼굴로 앉아 있었다.

* * *

조선시대 때 역모를 획책 하고 있던 대신이 있었다. 한데 궁궐의 내전에서 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정무를 보고 있을 때, 누가 나서서 그가 역적이라고 고변했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역모는 진행 중인데 왕 앞에서 역적이란 게 탄로 난 꼴이었다.

즉 이건 조사하면 바로 나올 일이었다. 그리고 왕은 다른 건 몰라도 역모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존재.

“재훈아?”

“네. 형님.”

“준호가 딴 생각 중이냐?”

그리고 왕은 굳이 조사하고 자실 것도 없었다. 역모가 탄로 난 이상 살기 위해서 그 역모에 가담한 자들이 앞 다퉈 왕에게 고변 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양태석은 정준호와 적당히 친한 조직의 간부 이재훈에게 물었다.

이미 정준호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조직 간부들이야 무조건 아니라고 할 테니 말이다.

잠깐 눈깔을 굴리던 이재훈. 그가 창백한 얼굴의 정준호를 잠깐 봤다가 이내 양태석에게 말했다.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으음....”

이재훈의 대답에 양태석의 입에서 굵은 탄식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 찍힌 기분이겠지. 정준호는 그 누구보다 양태석이 믿었던 최측근 수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태석은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그 충격에서 벗어났다. 왜냐하면 이러려고 최철기가 양태석에게 불신의 씨앗을 심은 것이니 말이다.

“준호한테 가 있는 사신대는....”

사신대라는 말에 조직 간부들의 눈이 다들 반짝 거렸다. 그리고 일제히 눈빛을 빛내며 양태석을 쳐다봤다.

하긴 사신대를 누가 가지냐에 따라서 태석파의 조직 내 권력의 향배가 바뀌었다. 그러니 조직 간부라면 누구나 사신대를 탐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그 사신대....제가 맡겠습니다.”

예상 밖의 인물이 나섰고 그로인해 회의장이 다시 한 번 혼란에 휩싸였다.

“최 선생이?”

하지만 자기 옆에 최철기를 쳐다보는 양태석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최철기는 확신했다. 양태석이 사신대를 자신에게 넘길 거란 걸 말이다.

반면 조직 간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양태석에게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직에 대해 뭣도 모르는 외부 인사에게 사신대를 맡길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최 선생이 사신대를 맡으시오.”

“네.”

조직의 총 보스, 그러니까 왕이 그러라고 했고 당사자인 최철기가 그걸 수용함으로서 사신대는 최철기의 수중에 들어갔다. 조직 간부들 중 그 누구도 양태석의 결정에 이의를 재기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양태석은 그들에게 있어서 왕이었으니까.

* * *

양태석은 자신의 배신한 것이 거의 확실한 정준호의 팔 다리부터 잘라냈다.

그 중 최우선적으로 조직 내 가장 강력한 무력을 자랑하는 사신대부터 뺏어서 오늘 처음 본 최철기에게 넘겼다.

처음 최철기가 사신대를 달라고 했을 때 양태석도 뻥 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 사신대는 그에게 있어서 딱 계륵과 같았다. 조직 간부 중 누구에게 넘겨도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 간부가 아닌 제 3자라면....

‘과연....’

양태석은 최철기가 다 생각이 있어서 자신에게 사신대를 달라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삼국지에서 보면 왜 지략가들이 기기묘묘한 책략을 내 놓지 않은가?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최철기는 바로 그 지략가 노릇을 하려고 백 대표가 자신에게 보내 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생각을 자신이 일일이 다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 해서 양태석은 최철기를 믿고, 아니 최철기를 보내 준 백준열 대표를 믿고 그의 요청을 다 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양태석은 조직 간부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신대를 기어코 최철기에게 넘겼다. 그 뒤로 양태석의 주도 하에 정준호의 팔 다리를 자르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 됐다.

“현태, 병석이, 용건이, 병호.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양태석의 말에 조직 간부들 중 넷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정준호의 최측근들이었다.

그 사이 회의장 문이 열리고 조직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네 명의 조직 간부들을 붙잡아서 회의장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은 끌려 나가며 정준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정준호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누가 뭐래도 태석파의 총 보스는 양태석이었고, 지금 이곳 컨벤션 홀을 장아갛고 있는 조직원들의 90%이상은 양태석에게 충성하는 친위 조직원들이었으니까.

물론 친위 조직내에 정준호가 심어 놓은 간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간부도 양태석이 없을 때 친위 조직에 영향력을 가지지, 이렇게 떡하니 양태석이 있는 자리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들이 뭐라고 한다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일 친위 조직의 조직원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양태석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다면 또 모를까.

“대명아. 애들 보내서 준호 나와바리 정리해라.”

“네. 형님.”

정준호가 양태석의 2인자가 되기 전에 양태석의 오른팔이었던 손대명. 그가 흔쾌히 양태석의 명을 받는 걸 보고 정준호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자신의 손발이 잘리고 그의 기반까지 무너지게 생겼다. 이제 정준호에게 남은 건 그의 몸뚱이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숨 줄도 바람 앞에 등불 신세였다. 그가 양태석을 재끼고 태석파 총 보스가 되려 한 게 들통 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아....내가 어쩌다가....’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정준호는 꽃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태석파의 총 보스 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데....

‘저 놈 때문에....’

정준호는 생각했다. 시간을 한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양태석 옆에 서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저 놈을 갈아 마셨을 텐데.

그때 그 놈, 최철기가 정준호의 눈길을 느끼기라도 한 듯 그를 쳐다봤다. 이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최철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치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 했다.

“으아아악!”

그걸 보고 있자니 정준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최철기를 가리키며 외쳤다.

“너 이 개....으윽!”

그때였다. 뒷머리가 쩌릿하더니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됐다. 당연히 입으로 말도 할 수 없었고. 그 상태에서 정준호의 몸에 급격히 앞으로 기울었다.

쿵! 터털썩!

회의 테이블에 그대로 머리를 찧은 다음 그대로 테이블 밑으로 사라져 버린 정준호. 그런 그 옆에 앉아 있던 조직 간부들이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테이블 아래 쓰러져 있는 그를 살폈다. 그리고 두 눈을 까뒤집고 입에서 게거품을 내 놓고 있는 그를 보고 그 중 한 명이 외쳤다.

“119불러! 빨리!”

* * *

10여분 쯤 뒤 컨벤션 홀 안으로 들어 온 119구급대에 의해 정준호가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하지만 양태석은 냉정했다.

“애들 붙여.”

양태석은 졸도한 정준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정준호 밑에 조직원들이 아닌 친위 조직원들을 보내서 정준호를 지키게 했다. 그 사이 양태석의 지시 하에 정준호 흔적 지우기 작업이 태석파 내에서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정준호가 쓰러지고 나자 조직 비상 간부 회의도 사실상 끝났다. 회의장 안에 조직 간부들은 양태석 눈치 보기 급급했다. 조직 내 간부들 중 절반 이상이 정준호에게 넘어갔거나 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양태석은 그런 조직 간부들 앞에서 보란 듯 정준호의 팔다리, 즉 최측근들을 잘라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정준호와 손을 잡고 반란에 가담하려 한 자들에 대한 처분만이 남았다. 하지만....

“물이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번 한번 만 봐 주시지요.”

최철기가 양태석에게 적극적으로 정준호에게 넘어간 조직 간부들을 옹호해 주었다.

“알겠소.”

그리고 그걸 양태석이 받아드리면서 정준호에게 넘어 갔던 조직 간부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다들 고마워 하는 눈길로 최철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남은 조직 간부들로부터 빠르게 인정을 받는 데 성공한 최철기. 그가 흡족해 하며 웃을 때 그런 그에게 양태석이 말했다.

“술 한 잔 합시다.”

양태석이 따로 그에게 할 말이 있다는 소리였다. 해서 최철기는 흔쾌히 대답했다.

“네. 그러시지요.”

그 대답을 듣고 양태석은 더 이상 이 회의장에서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주위 조직 간부들에게 말했다.

“이만 해산들 해.”

그리곤 회의장을 나갔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서 최철기가 나가자, 그제야 회의장 안에 남은 조직 간부들이 참아왔던 말문을 열었다.

“C발. 죽는 줄 알았네.”

“그러게. 그나저나 준호 형님은....”

“형님은 무슨, 준호 그 새끼는 끝났어.”

“야! 너 말이 좀 심하다?”

“뭐가 심해? 어? 너 지금 준호 그 새끼 편드는 거냐?”

“뭐, 뭐라는 거야? 이 C발. 너 이 새끼 내가 언제 준호 형, 아니 준호 그 새끼 편들었다고 그래?”

회의장 안에 분위기는 완전 어수선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태석파 조직 간부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건 바로 불과 한 시간 여전 까지만 해도 조직의 2인자였던 정준호와 확실히 손절하기 급급한 분위기란 점 말이다.

* * *

평소 나는 김 비서를 먼저 퇴근 시킨 뒤 퇴근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김 비서가 할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내가 먼저 퇴근길에 올랐다.

“수고해.”

“네. 퇴근하세요.”

나는 경호팀원들에게 둘러 싸인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때 경호팀원들 사이에 있던 문대식이 물었다.

“어디 가실 겁니까?”

나는 바로 대답을 했다.

“삼명호텔.”

“어? 거긴 어제 묵으셨던 곳 아닙니까?”

나는 호텔을 이용해도 하루 이상 그곳을 이용하지 않았다. 물론 서울에 특급 호텔이 좀 있다지만 그렇게 많은 건 또 아니다. 그런 고로 나는 많게는 한 달에 세 번까지 한 호텔을 이용하긴 했는데, 지금처럼 한 호텔을 내리 이틀 묵지는 않았다. 그걸 알기에 의아해 하며 문대식이 한 말이었다.

“그러게. 근데 거기서 누가 좀 보자고 해서.”

나는 오늘 밤에 삼명호텔에서 김종훈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김종훈 때문에 내가 굳이 어제 묵었던 삼명호텔에 또 가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 약속을 잡기 전에 이미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약속의 주인은 바로 삼명호텔의 CEO인 서지연.

그녀는 얼마 전까지 백준열의 누이였다가 이제는 그의 여자가 되어버린 서지연.

그녀가 퇴근 직전에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임페리얼 호텔 측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나보고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해 온 것이다.

“그게 누군데요?”

“성격 급한 누가 있어.”

서지연이 벌써 임폐리얼 호텔 인수합병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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