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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미국이요?”
“어. 정확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South Carolina)의 컬럼비아, 그러니까 이번 주 일요일 밤에 컬럼비아 공항으로 바로 가는 비행기 노선 있으면 그 비행기로 잡아 줘.”
당연히 일등석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네. 일단 확인해 보고, 비행기표 구매 여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내 말에 대답은 했지만 김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미국 남동부 대서양안에 있는 주로 백준열은 거기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김 비서가 아는 한 JYB엔터와 관련해서도 그곳과 연결점은 전혀 없었기에, 그녀는 내가 왜 거기 가려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투자 사업에 대해 전부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내 해외 투자에 관한한 김 비서는 아는 게 전무 했다. 그거야 내가, 아니 백준열이 일부러 그렇게 분리를 했으니까.
김 비서는 국내 연예기획사 쪽에 특화 되게, 박 비서는 국내외에 걸친 내 투자사업에 맞춰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용인술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에 관한한 백준열은 천재였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 인재들이 그의 주위에 득실거렸으니까. 그 중에 몇 명만 데려다 써도 백준열이 벌인 사업은 무난히 운영이 되었고 또 성과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그걸로 만족해선 안 됐다. 그랬기에 따지고 보면 별거도 아닌 삼명家의 첫째 백준경에게 당한 거고.
‘이제는 아니지만....’
내 앞에 거추장스런 똥차 두 대도 치워 버렸고, 이제는 텅 빈 아우토반을 쭉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 한데 내가 삼명그룹 회장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부터 신경 써야 할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세계 경제의 흐름이다.
글로벌 기업인 삼명그룹이 경쟁해야 할 무대가 바로 세계 경제고, 그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즉 미국 쪽에 만약을 위해 뭔가를 준비 해 두는 게 향후 내가 삼명그룹을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 슈퍼 로또로 불리는 메가 밀리언을 핑계로 다음 주에 미국에 가려는 거고.
‘이왕 미국에서 시작할 사업, 내 돈 들여서 할 거 없잖아?’
무엇보다 한국의 자본이 미국으로 들어가면, 그걸 모를 미 정부가 아니었고 바로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미국에서 사업을 벌이면 그것 역시 미 정부에서 빠르게 관심을 가지겠지만.
뭐 어째든 내가 미국의 복권 당첨금을 한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자국 주식에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서 미 정부는 일단 호의적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막상 투자로 달러를 빡빡 긁어모으기 시작하면 그때는 그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현지에 사람도 고용해야 하고....”
생각해 보니 미국에서 보내게 될 일주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 같았다. 사실 이번 미국행은 나도 좀 쉴 생각을 가지고 가는 출장인데, 이거 잘못했다가는 여기만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제발 미국에서는 일을....많이는 벌이지 말자.”
어차피 거기서 내 행보는 미국 정재계에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래를 아는 내가 하는 투자가 실패 따윌 할 리 없으니까.
막상 이렇게 사고 치지 말자고 거듭 다짐하지만, 또 금세 그걸 까먹고 사고를 쳐 대니....정말 나란 놈은 나도 잘 모르겠다.
* * *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내가 책상에서 몸을 일으킬 때였다.
-대표님. 이번 주 일요일 저녁 8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편으로 컬럼비아로 가는 비행기 표 예매했습니다.
나 같은 경우 비행기표 구하는 건 쉬웠다. 왜냐하면 항공사 마다 일등석이 매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알았어. 점심 뭐 먹을 거야?”
-....
내 물음에 잠시 말이 없던 김 비서. 그녀가 이내 인터폰으로 대답을 했다.
-등뼈찜이요. 돼지등뼈김치찜이 먹고 싶어요.
“잘하는 데는 알고?”
-네. 제가 자주가는 단골집 있어요.
“좋아. 거기로 가자.”
뭘 먹을지 정한 나는 벗어 놓은 정장 상의를 챙겨 입고, 책상 옆 협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서 대표실을 나섰다. 그러자 김 비서도 가방을 챙겨 매고서 내 쪽으로 다가왔고, 비서실을 나서자 바로 경호팀원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그리고 문대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드시러 가실 겁니까?”
그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김 비서를 찾았다.
“김 비서?”
그러자 김 비서가 뭐라고 문대식에게 얘기를 했고, 우리는 그 길로 김 비서의 단골 맛집으로 향했다.
“으음....쩝쩝쩝....”
묵은지와 특제 양념이 잘 첨가 되어서 돼지고기의 느낌 함을 싹 잡아줬다. 푹 삶긴 돼지고기는 간이 잘 베어 술술 목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뭉근하게 잘 익은 김치는 그냥 밥도둑이었다. 해서 나도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어?”
그런데 내 맞은편에 앉은 김 비서가 쌓아 올린 빈 밥그릇의 높이가 어째 나 보다 높다.
“아줌마. 여기 밥 볶아주세요.”
근데 그걸로도 부족한지 김 비서는 밥까지 볶아 먹었다. 물론 나도 볶은 밥을 두어 숟가락 떠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어 기분이 좋아서일까? 김 비서의 목소리 톤이 제법 올라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호팀원들도 아주 만족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 얼마라고요?”
무슨 돼지 등뼈 찜 먹으러 와서 백만 원 넘게 음식 값이 나오다니. 당신들 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내가 경호팀원들을 쳐다보자 그들이 슬슬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특히 문대식은 튀어나온 배를 숨기려고 내게서 뒤돌아서기까지 했다.
“저, 저....하아....”
나는 계산을 하고 김 비서의 단골 가게를 나와 마침 근처에 있던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좋다고 따라오는 경호팀원들을 보면서, 이들이 지금 나를 경호하는 건지 먹고 마시러 내 주변에 있는지 헷갈렸다.
* * *
오후 2시부터 이번에 JYB엔터에서 데뷔할 걸그룹들의 최종 평가가 있었다.
보통 한 연예기획사에서 같은 걸그룹을 동시에 데뷔시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것도 신인 걸그룹을 말이다.
우리 JYB엔터 같은 대형 기획사에 대표가 나니까 가능한 일이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JYB엔터와 같은 급으로 평가 받는 대형 기획사도 기존 걸그룹과 신인 걸그룹을 같이 데뷔 시키지는 않았다. 한데 우리는 지금 2개의 신인 걸그룹을 같이 데뷔 시키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두 걸그룹 중 하나는 전 걸그룹 해피 걸스의 멤버들로 구성 되어 있었기에 완전한 신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걸그룹으로 완전히 탈바꿈 한 상태라 기존 팬덤이 따라 줄지는 미지수였다.
“자아. 이제 그만 가볼까?”
나는 커피 전문점에서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절반 쯤 마신 뒤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내 주변의 경호팀원들이 빠르게 자신들이 마시고 있던 음료를 비우고, 자신들의 본업인 내 경호에 나섰다.
내 앞에 앉아 있던 김 비서도 절반 쯤 마신 딸기 요구트 스무디를 두고 일어나서, 어딘가 전화를 하면서 먼저 커피 전문점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녀 뒤로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내가 나갔고, 잠시 후 우리 앞으로 차가 와서 쭉 늘어섰다. 그 차를 타고 우리는 JYB엔터 본사 사옥으로 향했다.
그렇게 회사로 돌아가니 막 오후 1시였다. 점심시간이 끝난 JYB엔터 직원들의 오후 업무가 시작 됐다. 하지만 나는 오후 2시까지 1시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김 비서랑 한 빠구리 해?”
예전의 백준열이었다면 이런 자투리 시간에 김 비서를 불러서 자기 성욕이나 채웠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 일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이 있다고나 할까?
“크흠....두 걸그룹들을 확실히 띄우려면 역시 곡이 중요하겠지?”
그리고 나는 무조건 히트 칠 R드래곤이 만든 곡 2개를 지금 가지고 있었다. 바로 내 호주머니 속의 USB 안에 R드래곤의 외장하드에서 카피한 2곡이 들어 있었으니까.
이따가 최종평가 후 두 걸그룹의 데뷔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 데뷔곡들이 별 시원찮을 경우....
“이 곡들을 줘야지.”
하지만 지금 USB안에 담겨 있는 곡들은 편곡 전이었다. 두 걸그룹의 컨셉트은 아마 다를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한 연예기획사에서 두 개의 걸그룹을 같은 컨셉트로 데뷔 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뭐 뻔하지.”
이 당시 걸그룹은 청순 아니면 섹시 컨셉트가 주류를 이뤘다. 해서 나는 두 곡을 각기 청순, 섹시 컨셉트에 맞게 편곡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내가 대표실 문을 열고 나오자 김 비서가 놀라 일어서며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밑에 스튜디오 좀 다녀 올 게.”
“스튜디오요?”
김 비서는 거길 내가 왜 가냐며 나를 빤히 봤다. 그런 그녀에게 사실대로 내가 편곡 작업하러 간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대신....
“이번에 새로 들인 장비들이 뭔지 좀 보고, 프로듀서들 만나서 요즘 곡 트렌드가 어떤지 얘기나 나눌까 해서.”
“네? 아아....”
여전히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보이는 김 비서. 하지만 대표인 내가 일일이 비서에게 어디 간다고 얘기하고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김 비서를 뒤로하고 대표실을 나섰고, 그런 나를 보고 경호원들이 당황해 하며 어디로 전화를 걸며 내게로 다가오는 걸 보고 말했다.
“회사 안에서 움직일 거니까 다 따라 올 거 없이 두 사람만 붙어요.”
내 그 말에 경호원 둘이 내 양옆에 붙었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남았다. 그렇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있는 스튜디오로 내려갔다.
* * *
JYB엔터의 모든 곡 작업이 이뤄지는 7층 스튜디오 작업실. 그곳에 스튜디오 절반가량이 지금은 비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곡 작업에 영혼을 갈아 넣었던 JYB엔터 소속 프로듀서들. 그들은 오늘 있을 JYB엔터 두 걸그룹의 데뷔 앨범에 들어갈 곡 작업을 드디어 오늘 아침에 끝내고 다들 뻗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들고, 총괄 프로듀서인 오재명이 대표와 임원들 앞에서 잘 설명해서 그들의 승낙을 얻어 내는 것 뿐.
그래서 오재명과 그를 돕고 있는 프로듀서 한 명이, 지금 스튜디오 하나를 차지하고 마지막으로 두 걸그룹의 타이틀곡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제 한 시간 뒤에 두 걸그룹의 최종 평가가 치러지고 문제없이 통과가 되면, 바로 타이틀 데뷔곡에 대한 평가가 있을 예정이었다.
대표야 막귀니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지만 임원들은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짬밥이 있다 보니 허투루 곡을 내 놨다가 제대로 뺀지 맞을지 몰랐다. 그래서 오재명이 이렇게 끝까지 모든 곡을 직접 듣고 문제가 될 만한 게 없는 지 일일이 살폈다. 그러다 좀 전에 들은 곡을 두고 옆에 프로듀서에게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했다.
“좋아. 좋기는 한데 뒤쪽이 좀 구려.”
“그렇죠. 이게 다 예전에 주로 쓰던 오디오 샘플을 써서 그래요.”
“그렇다면 후반부에 그 오디오 샘플을 제거하고 미디파일에 트럼펫 소리를 입히면....”
프로듀서는 오재명이 시키는 대로 작업을 했다. 그리고 다시 그 곡을 쭉 들으며 프로듀서가 오재명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와아! 한결 세련 된 느낌이 드네요.”
그런 프로듀서를 보고 오재명이 피식거렸다. 하지만 이내 뭐가 불만인지 얼굴을 굳히고 뭐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믹싱과 마스터링에 그렇게 신경을 쓰라고 해도 이러니....쯧쯧쯧.”
그러다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본 뒤 오재명이 옆에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자.”
시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 그가 들어야 할 곡은 아직 5곡이나 남아 있었다. 시간상으로야 충분히 그 5곡을 다 들어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곡들이 그의 성에 어지간히는 차서 그가 손을 보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렇게 오재명이 다음 곡을 듣기 시작하고 30분쯤 흘렀을까? 그 옆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누군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들리기 시작한 130BPM(분당비트수)이상의 빠른 템포의 곡에 신경이 뺏긴 오재명과 프로듀서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거 너무 빠른데?”
“그래요?”
“120BPM 정도로 맞춰 봐.”
“알았어요.”
시작부터 삐꺽거리자 오재명도 프로듀서의 얼굴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오재명이 총괄 프로듀서가 아니었다.
“잠깐....거기....거기 랩을 오디오 소스로 넣는 건 어때?”
“랩이요?”
“두 걸그룹에 래퍼 다 있짆아?”
“래퍼? 아아. 그러면 되겠네요.”
그렇게 난 코스의 곡 하나가 더 넘어가고 그 다음부터 나오는 여분의 두 곡은 다행히 오재명이 들어도 무난한 요즘 트렌드의 곡들이었다.
“휴우. 됐다.”
다행히 오재명은 회의 시간에 맞춰서 두 걸그룹의 데뷔곡들 점검을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다.
“나 먼저 갈 테니까 넌 곡들 잘 챙겨서 와.”
오늘 회의에서 데뷔곡이 급한 건 아니었다. 그 보다 두 걸그룹의 최종 평가가 먼저였다.
그 평가를 통과해야 두 걸그룹의 데뷔가 최종 결정 될 테니 말이다. 오재명도 그 최종 평가를 내리는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그랬기에 회의 시간에 늦지 않게 가야만 했다.
철컥!
스튜디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오재명. 그는 곧장 회의가 열릴 예정인 10층 대 회의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음?”
그때 그의 뒤쪽에서 무슨 멜로디가 들린 거 같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오재명. 하지만 귀를 쫑긋 세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재명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시 걸어갔고, 마침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오재명이 10층으로 올라 갈 때였다.
♫♬♩♩♬♪♫~,♩♬♪♫♬♩~
오재명이 나온 스튜디오 바로 옆에서 오재명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던 그 멜로디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