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89화 (58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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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삼명케미컬 생산 2부 대리라....”

국정원에서 그의 직급이 대리이긴 했다. 하지만 저번에 세운 공으로 특진 대상이었던 김종훈.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과장이 되어 기뻐하고 있어야 할 자신이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자신과는 별로 맞지도 않는 부서에, 대리라는 직급의 인사 발령서를 보고 있자니 확실히 멘탈이 흔들렸다.

“정신 차려. 김종훈.”

그런 자신을 스스로 다잡으며 김종훈은 서류 봉투 속에서 사원증을 꺼내서 목에 걸었다.

그냥 주위에 사람들이 다 사원증을 걸고 있는데, 자신만 그렇지 않다는 게 아까부터 아무래도 그의 신경을 은연 중 긁고 있었던 거 같았다.

“그나저나 수원까지 언제 가냐?”

문제는 그가 발령 받은 삼명케미컬 공장이 서울이 아닌 수원에 있다는 점.

김종훈은 터덜터덜 삼명그룹 본사 건물을 걸어서 빠져 나온 뒤, 지상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에이C....”

그런데 그 사이 삼명그룹 경비업체 직원이 그의 차에 불법 주차 스티커를 붙여 놨다.

그것도 잘 안 떨어지는 놈으로다가 말이다. 경비업체 직원이야 회사에서 발급한 주차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는 차를 단속해야 하니 자기 할 일을 한 거뿐이지만, 그 잘 떼 지지 않는 스티커가 떡하니 앞차 유리창에 붙어 있으면 차주 입장에서는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 떼어 봐야 자국만 남을 뿐, 나중에 퇴근할 때 스팀 세차를 할 생각을 하며 김종훈은 그냥 자기 차에 탔다. 그리고 차를 몰아 수원에 있는 삼명케미컬 공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 삼십분 뒤에 삼명케미컬 공장 입구에 도착한 김종훈. 그래도 경비에게 거기 사원증을 내 보이니 공장 문은 순순히 열어주었다. 공장으로 들어가서 차를 주차하고 곧장 공장 사무실로 향한 김종훈. 거기 사무실에서 인사 담당을 찾아서 인사 발령서를 내밀었다.

“아아. 새로 오시기로 하신 김종훈 대리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인사과장인....”

인사 담당은 바쁜 와중임에도 짜증 내지 않고 김종훈을 상대해 주었다.

“공장장님 미팅은 이번 주 중에 잡힐 겁니다. 생산 2부의 강성중 부장님은 지금 출장 중이시고 윤수민 과장은 공장에 나가 있는데, 아마 점심 먹고 들어 올 테니 그때 만나면 될 겁니다. 자리는....저기가 생산 2부니 거기 가서 우선 비어 있는 자리 중 하나를 쓰세요.”

“고맙습니다.”

김종훈도 알았다. 조직 생활을 해 온 입장에서 인사과장이 새로 발령 받아 온 직원에게 이 정도 말해 주는 게 얼마나 양호한 대우인지 말이다. 그래서 머리 숙여 꾸벅 인사를 한 김종훈은 생산 2부가 쓰는 부스로 향했고 거기 비어 있는 책상 중 한 곳에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럴 것이 여기 사무실 안에서 서 있는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으니까.

다들 자기 일 하기 바빠 보였기에 김종훈은 앞으로 자신이 쓰게 될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 상태를 살폈다. 그것만으로 한 시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고, 사무실 안 직원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새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무실의 누구도 김종훈을 챙기지 않았다. 뭐 그런다고 멍청하게 점심을 굶을 김종훈도 아니었지만.

김종훈은 알아서 공장 안에 있는 직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공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본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생산 2부 부스 안에 누가 있었고, 그가 바로 인사과장이 아까 말한 윤수민 과장임을 직감한 김종훈이 그에게 막 다가 가려 할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종훈의 핸드폰이 울렸고 바로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든 그는 어디서 걸려 온 전화인지 확인했다. 그랬더니....

“비서실?”

회장 비서실에서 갑자기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곳으로 발령 받고 나서 다시는 여기서 전화 받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김종훈. 스파이 짓으로 뭐 그쪽 눈 밖에 확실히 난 상태니까.

그는 몸을 돌려서 사무실 밖으로 도로 나가며 회장 비서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종훈 대리님? 여기 회장 비서실인데요.

“네.”

-삼명케미컬로 난 발령이 취소되었습니다.

“네에?”

이 무슨 참신한 개소리란 말인가? 기껏 인사 발령을 내 놓고 그날 바로 취소되었다니?

-지금 즉시 여기로 오시라는 비서실장님이 지십니다.

“네. 뭐 알겠습니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일단 시킨 대로 하기로 하고 김종훈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곧장 생산 2부 부스로 향했다.

원래라면 자기 바로 위 사수가 되었을 윤수민 과장. 해서 정중히 그에게 인사를 해야 했는데, 김종훈은 인사 대신 자신이 기껏 정리 해 둔 책상 위에 서류 봉투를 먼저 챙겨 들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꾸벅 윤수민 과장에게 인사를 하고 생산 2부 부스를 빠져 나왔다.

“아, 아니. 잠, 잠깐만....”

그걸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윤수민 과장. 아마도 자기 밑에 새로 직원이 보충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름 가오를 잡고 있었던 그로서는, 김종훈이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나가버리는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종훈은 윤수민 과장이 불러도 그냥 못 들은 척하고는 곧장 공장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그런 그를 윤수민 과장은 어이없이 바라보다 씩씩거리며 인사과장에게로 향했다.

잠시 뒤 사무실 안에서 두 사람이 언성을 높였고, 잔뜩 화가 난 인사과장이 본사 인사부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본사 인사부에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뭐, 뭐라고요? 인사 발령이 잘못 났다니 그게 무슨....”

하지만 어쩌랴. 본사 인사부에서 그렇다는데 말이다. 결국 이번 분기에도 자기 밑에 직원을 보충 받지 못한 윤수민 과장. 아무래도 올해 안에 그의 눈 밑 다크 서클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 * *

김종훈은 느긋하게 수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서울로 향했다. 그렇다보니 그가 삼명그룹 본사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가 다 됐다. 그는 아직 자신의 앞차에 붙어 있는 불법주차스티커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번에는 본사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 들어갔다. 당연히 그의 차는 지하 1층 주차장 차단기 앞에 가로 막혔다.

“비서실장님이 불러서 왔습니다. 확인해 보시던가.”

아주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가는 김종훈. 하긴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발령 내 놓고 그게 잘못 됐다고, 다시 본사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린 이동훈 비서실장이 김종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들어가세요.”

연락을 해 본 경비실에서 차단기를 열어 주었고, 김종훈은 지하 주차장에 빈자리에 차를 대고 본사 회장비서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거기에 이동훈 비서실장은 없었다.

“여기....”

대신 오늘 아침에 그에게 달랑 서류 봉투 하나 주고 가버렸던 그 불친절한 비서실 직원이 또 그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하아....”

한숨과 함께 서류 봉투를 받지 않고 잠시 그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던 김종훈.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 결국 그 서류 봉투를 받았다. 그러자 그 직원이 말했다.

“백준열 대표님께서 연락주시면 그분 뵈러 가면 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김종훈이 그 직원을 빤히 쳐다 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종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자 그 직원이 뭐하냐며 어서 전화 받으라며 눈짓을 했다.

“여보세요?”

그래서 김종훈은 자신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삼명 호텔로 와서 이 전화번호로 전화 하세요.

뚜뚜뚜뚜뚜뚜....

웬 젊은 남자가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내 뱉고는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게 아닌가?

“허얼....”

김종훈이 어처구니없어 할 때 비서실 직원이 불쑥 물었다.

“백 대표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그, 그게....삼명호텔로 와서 전화하라고....”

좀 전 자기가 받은 전화가 백준열 대표의 전화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상대가 자신이 누군지 밝힌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김종훈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몇 달 이곳 회장 비서실에서 일한 적이 있는 김종훈은 당연히 백준열이 누군지 알았다. 그가 백준열과 만난 적도, 전화상으로 통화를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는 말하는 어투에서 상사의 여유가 느껴졌달 까?

“뭐하세요? 빨리 삼명호텔로 가지 않고?”

김종훈의 말을 듣고서 비서실 직원이 바로 그를 재촉했다. 김종훈은 회장 비서실에서 등 떠밀려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자신의 차를 몰고 백준열을 만나러 삼명 호텔로 향했다.

* * *

JYB엔터로 영입한 최철기를 잘 설득시켜서 양태석의 태석파로 보내는 데 성공한 내게 블랙 머니 박 비서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 그래. 어. 어....”

박 비서는 내가 시킨 일들에 대해 쭉 보고를 했다. 그 중에서 서진그룹의 인수합병 문제가 주를 이뤘다.

“....라서 나를 꼭 만나야겠다 이거로군? 주말? 안 돼. 미국에 갈 거라서. 주중에 보자고 해. 어....어....수요일? 골프? 뭐 나쁘지 않겠네. 일단 그쪽에 의사 타진해 보고 다시 연락 줘. 어. 그래.”

나는 일단 박 비서와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10여분 뒤 다시 박 비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어. 수요일 오후 3시에 서울CC? 좋아. 그렇게 약속 잡아.”

김명진 회장의 장남인 김학수는 어떡하든 나를 만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치 나를 만나기만 하면 서진그룹과 나 사이의 문제가 다 해결 되기라도 할 거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연히 인수합병은 계획대로 밀어 붙여야지. 민영석 실장과 잘 상의해서....”

나는 이미 서진그룹을 먹어치우기로 작심했고 김학수와 만난다고 해도 그게 바뀔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박 비서와 제법 길게 서진그룹 인수합병을 두고 얘기를 나눴고 그 얘기가 얼추 마무리가 되자, 박 비서가 또 다른 내가 시킨 일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림 산업 박정명 회장과 2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내 중학교 동창이자 새롭게 내 여자로 삼기로 작심한, 하지만 아직은 유부녀인 장혜원을 돌싱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를 박 비서가 맡아서 처리 중에 있었다.

“음. 그렇지. 그쪽이 원하는 대로 일단 다 들어 준다고 해. 그 다음 며느리 이혼 문제를 꺼내고. 박 회장은 아마도 우리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야. 회사와 며느리.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그는 회사를 선택할 사람이니까.”

내 말에 박 비서도 동의를 했다. 박 비서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그림 산업 박정명 회장은 체면을 중시하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그래. 수고하고. 변수가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어. 어.”

박 비서와 거의 40분 가량 길게 통화를 하고 난 나는 김 비서를 불렀다.

“수요일 오후 3시에....”

그리고 그녀에게 이번 주 수요일 오후에 서진그룹 김학수 부회장과 골프 스케줄 잡혔음을 알려주고 더불어 그녀에게 물었다.

“점심 같이 먹을까?”

“....네.”

평소라면 나와 같이 식사하는 걸 단호하게 거부했을 김 비서였다. 하지만 나에게서 총괄본부장 자리를 맡기겠다는 얘기를 들은 지금, 나의 점심 같이 먹자는 말은 이미 그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뭐 먹을지 생각 해 놔.”

나는 점심 메뉴를 기꺼이 김 비서에게 양보했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내 여자 중 한 명인 미녀 프로 골퍼 민혜주였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 전화할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바로 전해해 주니 내 입장에서는 이런 게 바로 이심전심이 아닌가 싶었다.

“어. 주말? 당연히 잘 보냈지 그럼. 넌? 오오. 그래? 축하해. 나나미? 지금 한국에 없어. 일본에 급한 볼일이 생긴 모양이더라고.”

민혜주는 조금 전에 치른 국내 골프대회 8강전에서 상대를 이기로 4강 진출에 성공했음을 알려왔다. 당연히 나는 축하를 해주며 그녀와 나나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민혜주가 나나미를 어지간히 좋게 본 모양이었다. 하긴 거의 프로급의 골프 실력을 가진 나나미다 보니 민혜주도 관심 있어 할만 했다.

“하긴 나나미 정도 미모에 그 정도 실력이면 돈 많은 늙은이들 줄을 서겠네. 뭐 내일 온다니까 내가 얘기는 해 보도록 할게. 아아. 그리고 수요일 오후에 시간 되면 서울CC로 와. 왜긴. 골프 치려고 그러지.”

4강전이 주말이지만 민혜주는 기꺼이 모레 수요일 오후에 서울CC에 와 주겠다고 했다. 확실히 의리하나는 있는 민혜주였다. 백준열이 주위에 친구랍시고 있는 놈들 중에, 의리라고 있는 놈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민혜주가 대단한 거였다.

“어어. 그래....으음. 모레 거기서 봐.”

그렇게 민혜주와 통화를 끝낸 뒤 나는 다시 김 비서를 불렀다. 다음 주에 미국 가려면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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