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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85화 (5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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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왕종우는 자신의 딸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 그들에게 갈 생각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이 딸이 입원해 있는 제주병원과 가까웠기에. 그런데 그 생각이 바뀌었다.

“돈부터 받아야지.”

물론 의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왕종우가 의뢰 실패한 걸 모른다.

왕종우는 시치미 뚝 떼고 그들에게서 가서 늙은이를 죽였다고 하고 의뢰비를 받아 챙길 생각이었다.

그 의뢰비로 병원비를 정산하고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그들이 뭘 어쩌겠나?

고작 제주도에서 조폭 짓이나 하는 것들이 말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덤벼도 왕종우는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막말로 마음먹기에 따라 그 혼자서 놈들을 다 없애 버리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왕종우도 상대를 너무 얕잡아봤다. 아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고 해야 하나?

“죽여!”

원래 놈들이라면 왕종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조폭들이 그를 노리고 있던 상황에서 작정을 하고 덤비니, 다수의 그들을 혼자서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는 그들의 홈그라운드. 놈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격인 왕종우로서는 살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애초 내게 의뢰비를 줄 생각이 없었구나?”

왕종우는 제법 연기를 잘했다. 그래서 그에게 이번 의뢰를 맡긴 제주도의 한 토착 조폭 조직의 두목도, 처음부터 그가 살인 청부를 완수했다고 믿는 눈치였다.

남은 건 의뢰비를 받는 건데 그때 그 조폭 두목 녀석이 돌변했다. 그리고 숨어 있던 조폭들이 왕종우를 죽이려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그때부터 시작 된 싸움이 놈들의 아지트 밖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자기 아지트와 그 근처라고 지리적으로 밝았던 조폭들에 의해, 왕종우는 재수 없게 막다른 골목까지 내 몰렸다. 거기서 왕종우는 20명도 넘는 조폭들과 혈투를 벌였다.

“헉헉헉....”

그 과정에서 조폭들이 절반 넘게 쓰러졌고 그들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아직 멀쩡한 조폭들이 7명 정도 남았다.

반면 벽에 기대서 겨우 서 있는 왕종우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그 피의 대부분은 그가 흘린 게 아니라 그와 싸우는 과정에서 조폭들이 그에게 뿌린 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종우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싸우다 다친 상처뿐만 아니라 아까 지혈했던 상처들이 터지면서, 꽤 많은 피를 흘린 듯 지금 왕종우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도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 거 같은데, 이대로라면 얼마 버틸 수 없었다.

‘여길 빠져 나가야 해.’

자기 혼자라면 저 놈들과 끝까지 싸우다가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딸이 있었고, 그 딸을 병원에 두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왕종우는 자꾸 흐릿해져 오는 정신을 깨우기 위해 질끈 혀를 깨물었다. 그러자 혀에서 피가 나면서 피 맛이 입안에 강하게 맴돌았다. 그 피 맛에 왕종우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가 킬러 교육을 받을 때 수차례 겪어 온 죽을 고비의 순간들이 그의 뇌리에 떠오르면서, 그의 몸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이 그의 육체를 지배하면서 왕종우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크크크크....다 죽인다.”

그의 본능이 그의 몸에 말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자들을 다 죽이라고. 그래야만 그가 사니까 말이다.

“뭐, 뭐야?”

“저, 저 새끼 왜 저래?”

갑자기 돌변한 왕종우. 벽에 겨우 기대서 숨 쉬기도 힘들어 하던 그가 지금까지 연기라도 한 듯 생생한 모습으로 변해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자, 막다른 골목에 두 다리 곧게 펴고 서 있던 조폭들은 다들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 눈치를 봤다.

파파파팟!

그 사이 왕종우가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한 마리 사나운 늑대로 돌변한 그가 순식간에 7명의 조폭들을 앞발로 할퀴고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런 광폭한 왕종우의 폭력을 7명의 조폭들은 감당해 내지 못했다. 먼저 기선을 제압당한 게 컸다. 뒤늦게 그들도 반격을 가했지만 이미 늦었다.

“....커억!”

마지막 조폭의 목에 놈들에게서 뺏은 잭나이프를 박아 넣은 왕종우. 그가 쓰러지는 조폭을 옆으로 밀쳐 내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내 디뎠다.

여기 들어 올 때는 20명도 넘은 자들이 몰려 들어왔지만, 골목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달랑 한 명. 왕종우 뿐이었다.

* * *

“크으으으윽....”

왕종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온몸에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치 며칠 동안 고문이라도 당해 몸이 너덜너덜 해진 상태 같았다.

10년 전이었던가? 임무 수행 중 적에게 생포 되어 나흘 동안 매일 같이 고문을 당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몸 상태가 딱 그때와 비슷했다. 다행히 그가 속한 조직에서 적들의 아지트를 급습해서 그는 가까스로 살수가 있었다. 그때 고문실에서 그를 발견한 조직원들 중 하나가 그에게 급하게 주사한 게 바로....

왕종우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을 움직여서 그의 차 글로브 박스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이제 딱 하나 남은 앰플약을 깨서 주사기를 꽂고 약액을 빼낸 다음 자신의 팔에 주사기를 꽂아서 약액을 주입 시켰다.

“....아아....”

그리고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그의 온몸에 약효가 퍼지면서,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그 끔찍한 고통들이 싹 사라졌다.

예전 그가 한때 적을 뒀었던 중국 조직에서 만든 마약성분의 진통제. 모르핀의 효력을 능가한다는 그 강력한 효과에 왕종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 약은 통증만 없애줄 뿐 그의 몸 상태는 진짜 위급했다. 특히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일단 병원으로 가자.”

병원에 가면 그를 보고 급한 대로 수혈부터 해줄 테지. 지금은 그가 사는 게 급했다. 왕종우는 흐릿한 시야에도 이를 악물고 운전을 했고, 드디어 자신의 딸이 입원해 있는 제주병원에 다다랐다.

“어어. 이봐요!”

그런데 병원 입구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만 정신을 놓아버린 왕종우.

부아아앙!

그가 몰던 차는 그대로 병원 주차장의 차단기를 부수고 그대로 병원 건물로 돌진해 들어갔다.

쿠쾅쾅쾅!

잠시 후 국산 SUV차량이 제주병원 본관 건물 옆 유리벽을 깨고 그 안쪽 기둥에 처박힌 채 멈춰 섰다.

치이이이!

차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었고 차 안 운전석에 있던 사람은 의식을 잃은 듯 운전대에 기대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다행히 제주병원 본관 건물의 경비원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화기로 우선 차에 불길이 번지는 것부터 막았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어서 운전석에 타고 있는 사람을 꺼냈다. 그 사이 다른 경비원이 응급실에 연락을 취했고 잠시 뒤 제주병원 본관 옆에 응급센터에서 나온 응급의와 간호사들이 왕종우를 챙겨서 응급센터로 갔고, 왕종우는 그의 생각대로 긴급 수혈을 받고 일단 살 수 있었다.

“....으으으으....”

왕종우는 수술까지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몸에 워낙 상처가 많았지만 대부분 다 외상으로 그가 위중할 정도로 몰아가지는 않았다. 그가 맞은 그 강력한 진통제 덕분일까? 수혈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서 왕종우는 의식을 차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정신을 차린 걸 일부러 티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계속 정신을 잃은 거처럼 굴면서 응급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시로 응급의와 간호사들이 그를 찾아와 그의 상태를 살피고 갔지만 그들은 왕종우가 벌써 정신을 차려서 오히려 그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지금....’

왕종우는 응급의와 간호사들이 한 시간에 한 번, 응급실 의국에서 대략 5분 정도 쉬면서 회의를 하는 걸 간파했다.

그는 그 틈에 자신의 팔에 꽂혀 있던 링거 주사바늘을 빼냈다. 혈액 팩에서 남은 아까운 피를 그렇게 남겨 놓고 왕종우는 조용히 응급실을 빠져나와, 이 병원 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는 병실이 있는 건물 쪽으로 향했다.

병실 건물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씻을 수 있는 샤워실이 있었다. 그걸 아는 왕종우는 그 샤워실로 들어가서 여전히 피 칠갑 상태인 자신의 몸을 씻었다.

“....크으으으윽....”

조폭들과 싸우면서 몸 성한 곳이 없어진 그의 몸에 물이 닿자 끔찍한 고통이 일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마약성분의 진통제가 그 고통을 빠르게 잡아주었다.

왕종우는 그렇게 자기 몸에 피를 지운 뒤, 샤워실 옆에 있던 세탁실에서 챙긴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자 졸지에 환자의 모습으로 변한 왕종우.

그는 그 상태로 자신의 딸이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비록 수혈을 받았다지만 왕종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샤워 후 몸이 으슬으슬하니 춥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게 열이 나기 시작한 거 같았다. 마약성분의 진통제가 그의 고통은 없애줘도 한기와 열이 나는 거 까지는 막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종우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그런 그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기어코 딸이 있는 중환자실에 다다랐다. 그때 마침 운 좋게 중환자실 안에서 간호사가 나왔고 그는 즉시 그 간호사를 붙잡았다. 그리고 딸에 대해 물었다.

“헉헉...왕연희....어떻습니까?”

그가 너무도 힘겹게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물어서 였을까? 그 간호사가 오히려 왕종우를 보고 걱정스런 얼굴로 대답하며 말했다.

“연희는 괜찮아요. 다 정상이니까. 근데 괜찮으세요?”

간호사는 직업병이라서 그럴까? 서슴없이 왕종우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왕종우의 손이 더 빨랐다. 왕종우가 간호사의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억지로 웃기까지 하며 왕종우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고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어필을 했다.

“네. 뭐....”

딱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 왕종우. 그가 자기 입으로 괜찮다니 중환자실 간호사도 어쩔 수 없었던지, 몸을 돌려서 화장실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근무 중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중환자실을 나온 모양이었다.

왕종우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중환자실의 경우 면회시간이 아니고는 보호자가 환자 상태를 알아보기 어려웠으니까.

“후우....”

왕종우는 수술 받은 딸아이에게 여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자 그 다음 문제가 그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병원비....’

의뢰는 실패했고 의뢰비를 받으러 간 곳에서는 그를 죽이려 들었다. 그래서 제주도의 조폭 조직 하나를 없애버렸다. 그 과정에서 놈들 중 몇몇은 죽었을 거고, 경찰에서 조사가 시작 되면 그를 잡으려 들 터였다.

“길면 하루....”

날이 밝으면 딸이 일반 병실로 옮겨 질 것이고, 그때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가야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뭐 하나 준비 된 게 없었다. 하다못해 그의 몸도 이렇게 성치 못하니....

몸에 나는 열이 더 심해진 듯 점점 더 의식이 흐릿해지는 왕종우. 그는 당장 끓고 있는 몸에 열이라도 식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해열제를 사러 병원 밖 약국으로 향했다.

“젠장....”

그런데 병원 주위로 조폭들이 쫘악 깔렸다. 왕종우가 알기로 자신에게 살인청부를 한 조폭 조직은 그리 큰 조직은 아니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지금 병원 주위로 제주도의 조폭들은 다 와 있는 거 같았다.

이대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가는 자신이 들킬 것이 확실했기에, 왕종우는 발걸음을 돌려서 근처 화장실로 향했다.

여기서 바로 뒤돌아섰다가는 병원 밖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놈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기에 취한 임기응변이었다.

다행히 그가 환자복 차림이었고 핏자국을 깨끗하게 지웠기에, 그를 보고 당장 의심하는 조폭들은 없었다. 무엇보다 조폭들이 아직 병원 안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기에, 환자 같아 보이는 왕종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와서 이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면 그를 찾아내는 건 시간 문제였다.

무엇보다 놈들이 이렇게 대 놓고 병원에 왔다는 건, 자신의 딸이 여기 입원해 있다는 걸 저놈들도 알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자신이 딸을 데리고 이 병원을 빠져 나가는 게 힘들어졌다는 거고, 당장 자기 딸의 신변도....

왕종우는 화장실에서 나가자마자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고 딸아이가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허어....”

그리고 중환자실이 있는 복도의 코너에서 봤다. 누가 봐도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중환자실 주위에 포진해 있는 조폭들을 말이다.

조폭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나름 외모에 신경을 쓴 거 같은 데, 왕종우가 보기에 저들은 한눈에도 조폭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 놓고 핸드폰 게임 중인 자들도 있었다. 주변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있는 게, 딱 봐도 왕종우를 잡기 위해 온 자들이 아니었다.

저들은 지금 저 중환자실 안에 있는 자신의 딸, 왕연희를 감시하기 위해 저기 있는 거뿐이었다.

그걸 보고 있던 왕종우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러면 자신의 딸이 저들에게 인질로 잡힌 거나 진배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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