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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왕종우는 늙은이 타깃의 총구를 피해 일단 소파 뒤로 숨었다. 엽총의 산탄은 다행히 관통력이 높지 않았다. 해서 소파도 지금으로써는 충분히 참호 역할을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늙은이 타깃은 신중하게 산탄을 아꼈다.
철컥! 쓱! 차악!
근데 왕종우가 소파 뒤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늙은이 타깃은 아예 빈 엽총에 새롭게 총알을 장전하는 게 아닌가? 왕종우가 잠깐 늙은이 타깃에게 시선을 떼자, 총구를 치우고 총알 재장전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역시 이런 배포만으로도 보통 늙은이가 아니었다.
“젠장....”
왕종우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늙은이 타깃의 수작에 일방적으로 놀아나고 있는 거 같아 기분이 상당히 더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집에는 두 사람 뿐이었고, 비록 늙은이 타깃이 엽총을 가지고 있다지만 유리한 건 왕종우 자신이었다.
“저 칼만 빼 올 수 있다면....”
아직 죽지 않았는지 얕게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창가에 쓰러져 있는 경호원.
저 경호원의 앞가슴에 박혀 있는 자신의 군용 칼을 도로 회수만 한다면 왕종우는 얼마든지 늙은이 타깃을 죽일 수 있었다.
몸을 던져서 먼저 늙은이 타깃으로 하여금 엽총을 쏘게 한 뒤, 왕종우는 타깃이 재차 자신을 향해 총을 쏘려 할 때, 그 사이 생기는 틈에 충분히 군용 칼을 던져서 늙은이 타깃의 몸에 군용 칼을 박아 줄 자신이 있었다.
그게 어디든 일단 군용 칼이 늙은이 타깃의 몸에 꽂히면, 그는 제대로 엽총을 쏘지 못할 것이고 그때 늙은이 타깃을 제압하거나 아예 여세를 몰아 죽여 버리면 됐다. 물론 운이 좋아서 던진 군용 칼에 늙은이 타깃이 단번에 제거 되어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그런데....
웨용~ 웨용~
갑자기 별장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경찰 사이렌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사설경호회사?”
그러니까 저 늙은이 타깃이 엽총가지고 그를 희롱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새 사설경호회사에 연락까지 취한 모양이었다.
“쳇....”
이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왕종우의 시선이 다시 창가에 쓰러져 있는 경호원의 가슴에 꽂혀 있는 자신의 군용 칼로 향했다.
저 칼만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면 마지막으로 몸을 던져 자신이 생각한 대로 늙은이 타깃을 노렸을 텐데....
왕종우는 지금이라도 저쪽으로 몸을 던져서 저 칼을 회수할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몸이 정상이라면 그런 모험을 충분히 감행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부상을 당한 상태였고, 당연히 정상적으로 그의 몸이 움직여 주지 않을 터. 그런 몸으로 무리해서 저쪽으로 몸을 던져 칼을 회수하려다, 오히려 저 늙은이 타깃이 쏜 총에 또 맞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진짜 끝이다.’
자신이 죽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그가 죽음으로 해서 남겨진 그의 딸은? 해서 왕종우는 이번 의뢰가 실패하더라도 절대 죽을 수 없었다. 또 여기서 잡힐 생각도 없었고.
‘일단 여기서 빠져 나간다.’
이미 사이렌 소리가 별장 입구 쪽에서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말은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이 곧 이 안으로 쳐들어 올 거란 얘기고....
그들에 의해 별장 건물이 포위되기 전에 왕종우는 건물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상 입은 그가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에 의해 잡힐 가능성이 높았다.
파파팟! 휘리릭! 파파파파팟!
소파 뒤의 왕종우가 한 마리 표범처럼 몸을 던져서 바닥을 텀블링한 후, 벌떡 몸을 일으켜서 뒷문이 있는 별장의 복도로 뛰어가는 동안 늙은이 타깃은 엽총을 쏘지 않았다. 아마 쏴 봐야 왕종우를 맞추지 못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끝까지 신중한 늙은이 타깃이었다.
“쳇....”
만약 늙은이 타깃이 들떠서 엽총에 있는 두 발의 산탄을 좀 전 왕종우에게 다 쐈다면, 왕종우는 아마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에게 포위당하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뒤돌아서 늙은이 타깃을 제거하려 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늙은이 타깃은 산탄을 한 발도 쏘지 않았다. 그러니 왕종우도 더는 그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버리고, 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별장 뒷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 * *
“거기 서!”
하지만 왕종우의 움직임은 곧 별장 건물을 포위하려 움직인 사설경호회사 직원에게 들킬 수밖에 없었다. 서라고 서는 킬러가 어디 있겠나? 왕종우는 냅다 담벼락으로 내달렸다.
“잡아!”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이 우르르 왕종우를 잡기 위해 그를 쫓았다.
휘리릭! 처억!
하지만 왕종우는 별장 담장을 가볍게 넘어서 그가 세워 둔 차로 달려갔다. 무슨 곡예나 기예 같아 보일 정도로 왕종우의 몸이 유연하게 훌쩍 담벼락을 넘었는데,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은 그 정도 실력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쪽수가 많았고 동료의 어깨를 발판 삼아 기어코 담장을 넘어갔다. 하지만....
부우우우웅!
그 사이 왕종우는 대기시켜 놓은 자기 차에 들어가서 시동을 걸고 곧장 차를 출발 시키고 있었다.
“거기 서!”
그렇게 왕종우가 모는 차가 출발하고 나서 그제야 뒤따라 온 사설경호회사 직원들. 그들 중 하나가 하나 마나한 소리를 내 뱉었다.
차 안의 왕종우에게는 어차피 그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설혹 그가 들었다고 한들 그가 그 말을 듣고 차를 세울 리 없었지만.
“저, 저....”
“하아....C...."
그들은 달아나는 왕종우의 차를 멀뚱히 지켜봐야만했다.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이 타고 온 차는 지금 반대편인 별장 정문 쪽에 있었다. 그래서 그 차로 달려가서 왕종우의 차를 쫓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 사이 왕종우가 탄 차는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차 넘버는 외웠지?”
“네. 제주 바 XXXX입니다.”
“경찰에 신고해.”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에 도움을 받는 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매뉴얼대로 경찰에 신고를 한 후 그들의 고객이 있는 별장 안으로 향했다.
별장 안에는 엽총을 든 윤재구 회장이 여전히 주방 식탁에 앉아 있었다.
“회장님. 그 총은 저희를 주시죠?”
사설경호회사 팀장이 윤 회장에게 다가가며 말하자, 그가 바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 이게 내 생명 줄인데 그 생명 줄을 그쪽에 넘길 수야 없지.”
사설경호회사 직원들이 킬러를 잡았다면 또 모를까. 윤 회장은 자신의 손에 들린 엽총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곧 경찰이 올 겁니다.”
사설경호회사 팀장의 말은 경찰 눈에 엽총을 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의도에서 나온 말 같았다. 하지만 윤 회장은 끄덕도 않고 대꾸했다.
“총기 사용허가는 받았으니 그쪽이 걱정할 건 없고....혹시 그 놓친 킬러 잡을 방법이 없겠나?”
“....”
사설경호회사 팀장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멍하니 윤 회장을 쳐다봤다.
“쯧쯧....진짜 모르나 보군. 알았네.”
그러니까 좀 전 윤 회장이 사설경호회사 팀장에게 물은 것은, 그에게 불법적인 루트로 좀 전 자신을 죽이려 한 킬러를 처리할 방법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사설경호회사 팀장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그쪽으로 물든 자가 아니란 소리였고, 윤 회장도 그런 사설경호회사 팀장을 억지로 그쪽 세계로 끌어 들일 생각은 없었다.
눈앞의 사설경호회사 팀장 말고도 세상에는 그쪽 세계에 물든 자들은 얼마든지 넘쳐났으니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회장님.”
그리고 그런 작자가 이내 윤 회장 눈앞에 나타났다. 근처에 있던 사설경호회사 팀장이 그 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걸 보니 그보다 더 상사인 모양이었다.
“누구?”
“XXX가드 박성수 전무입니다.”
“으음....자네와는 얘기가 통할 거 같군.”
윤 회장은 박성수 전무를 가까이 불러서 무슨 얘기를 했고, 그 말을 들은 박 전무가 알았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제주도에서 경호 쪽으로는 도가 튼 박성수. 그는 친구와 동업으로 경호 회사를 차렸다. 원래는 혼자 차릴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자금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에 땅 부잣집 친구 녀석을 꼬드겼고 그 녀석을 사장 자리에 앉혀주고, 자신이 전체적인 실무를 전담했다. 그렇게 성장한 사설경호회사가 바로 지금 제주도에서 가장 큰 경호회사인 XXX가드였다.
현재 XXX가드는 직원만 200명이 넘었다. 하지만 그들 현장 관리는 여전히 박성수가 총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VVIP고객인 윤재구 회장이 죽을 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장 통답게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 나온 박성수.
그에게는 킬러에게 당해 생명이 위중한 두 명의 직원들 보다 윤 회장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직원들이야 다시 뽑으면 되지만 윤 회장 같은 VVIP고객은 잃으면 회사가 입게 될 데미지가 상상이상으로 너무 컸으니 말이다. 그러니 윤 회장이 이렇게 살아남은 건 그에게나 경호회사 입장에서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윤 회장이 운이 좋았군.”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박성수는 윤 회장이 킬러로부터 살아남은 게 다 그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운이 좋았군.”
윤 회장의 손에 들려 있는 엽총과 집 안의 피탄 흔적을 보고서 박성수는 바로 현장의 상황을 파악했다. 자기 경호회사 직원들이 한 것은 킬러를 여기서 쫓아낸 거뿐이었다. 그 사이 킬러와 맞서서 윤 회장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킨 것이다. 그래도 어째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니겠는가?
박성수는 안면몰수하고 윤 회장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윤 회장이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따로 불러 은밀하게 얘기를 했다.
“....킬러를요?”
“가능하겠나?”
“물론 가능합니다. 아시겠지만 돈으로 안 될 일은 없으니까요.”
박성수가 제주도에서 경호 일로 밥 먹고 살아 온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그 동안 그는 그쪽과도 연결이 됐고 요즘은 중국 조직과도 심심찮게 만나고 있었다.
중국 조직의 경우 대 놓고 제주도로 조직원들을 보낼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제주도로 오게 된 조직의 간부의 신변을 지켜 줄 인원이 부족할 수밖에. 그래서 중국 조직에서 먼저 XXX가드 쪽에 경호를 맡겨 왔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지금은 중국 조직들과 XXX가드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국내 조폭 조직들이야 더 말할 거 없었고.
“좋군.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아. 그 킬러를 내일까지 내 앞에 데려 오게. 죽이지 말고.”
끝에 윤 회장이 붙인 단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박성수는 그의 요구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차피 그 일은 자신이 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그저 윤 회장이 말한 킬러가 누군지 알아내서 제주도 그쪽 바닥에 돈만 뿌리면 됐다. 그럼 그쪽에서 알아서 그 킬러를 사로잡아 올 테니까.
그러려면 먼저 윤 회장을 죽이려 한 그 간 큰 킬러가 누군 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이곳 현장, 윤 회장의 별장에는 고성능 CCTV가 작동되고 있었다. 이미 CCTV를 살피라고 김 팀장에게 지시를 내려놓았다.
김 팀장은 이곳 현장 책임자로 윤 회장이 말을 못 알아들은, 아직 그쪽으로 물들지 않은 그 사설경호팀장이었다.
“찾았나?”
“네.”
김 팀장이 CCTV에 찍힌 킬러의 얼굴이 비교적 확실하게 나온 사진을 현상해서 박성수에게 내밀었다. 그 사진을 보고 박성수가 흡족해 하며 말했다.
“한 300장 뽑아 와.”
“네.”
다른 팀장이라면 사진 300장 뽑아서 그쪽에 뿌리라고 지시했을 텐데, 김 팀장은 그쪽을 영 모르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박성수가 그 일을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누군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쪽 바닥에 이 사진을 뿌리면, 그 자가 누군지는 곧 드러날 터.
“안 됐군.”
누가 됐던 그쪽의 먹잇감이 된 순간 제주도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아니 버티지도 못하고 곧 잡히겠지. 박성수는 이 사진의 주인을 오늘 중에 볼 것을 확신했다.
* * *
왕종우는 늙은이 타깃의 별장을 빠져 나오면서 수시로 백미러를 통해 뒤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뒤에 보이는 차량은 하나도 없었다.
“휴우우....”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쉰 그는 일단 차에 비상깜빡이를 켜고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차를 도로변에 세웠다. 그리곤 자기 몸에 상처를 살폈다. 그러자 옆구리 쪽 상처에 피가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덜컥!
그는 조수석 대시보드 아래 글로브 박스 안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 구급상자 안에는 기본적인 외상 치료를 위한 붕대 뿐 아니라, 주사기와 앰플약이 있었는데 정확히 무슨 약인지 아무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왕종우는 서슴없이 그 앰플 주둥이를 부수고 주사기를 꽂아서 능숙하게 약을 주사기에 담았다. 그리고 그 주사기를 자신의 팔뚝에 도드라지게 난 혈관에 꽂아 약을 주입시켰다.
“으으윽....”
약액이 몸에 들어갈 때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입 밖으로 신음소리를 내던 왕종우. 그런 그의 얼굴이 이내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앰플 속 약액의 성분이 마약성 진통제 인 거 같았다.
왕종우는 자신이 주사한 약액이 온 몸에 돌기 시작하자 바로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구급상자에서 핀셋같이 생긴 수술도구를 꺼내서 산탄 총알이 박힌 자신의 몸에서 탄알을 빼냈다. 그리고 상처에 지혈과 항생 성분의 가루약을 뿌린 뒤, 그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았다.
그렇게 급한 대로 응급 처치를 마친 뒤, 왕종우는 다시 차를 몰아서 자신의 딸이 입원한 제주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