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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앞으로 삼명가 본가에서 특이 사항이 생기면, 그 즉시 김 집사가 내게 알려주기로 했다.
당연히 내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니다. 김 집사가 눈치껏 알아서 그렇게 하겠다고, 현관 밖까지 나를 따라 나와서 슬쩍 그렇게 전해왔다. 나는 그저 웃으며 가만히 고개만 한번 끄덕여 줬다.
김 집사의 충성심은 그가 하기 나름이다.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자라면 그에게 줄 돈은 여기서 끝이고, 내 관심을 끌만한 짓을 그가 한다면, 더 많은 돈이 그의 월급 계좌에 꽂히게 될 테지.
저택에 들어갈 때처럼 저택 밖에 나오자, 삼명그룹 경호팀장이 또 내 옆에 붙어서 나를 대문까지 안내했다.
대문이 열리고 대문 밖으로 나가자 문대식이 나를 맞았고, 그 사이 다른 경호팀원이 내가 탈 차 문을 열었다. 내가 차에 타자 문대식이 그 차문을 닫은 다음, 차 뒤로 돌아서 내 옆자리에 탔다.
“출발!”
문대식은 차에 타자마자 바로 내가 탄 차를 출발 시켰다. 그리곤 옆에 나를 보고 물었다.
“회사로 갈까요?”
“어.”
내 대답은 운전석의 경호팀원도 들었을 터라 문대식은 따로 앞쪽에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다.
“으음....”
그 사이 나는 팔짱을 낀 체 시선을 오른쪽 차창으로 돌렸다. 오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벌여 놓은 일이 좀 많다보니.
당장 좀 전 백승렬 회장과 나눈 대화를 두고 이동훈 실장과 조율해야 할 문제도 있었고, 주말 사이 내가 지시했던 문제들과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후속 처리만 해도, 오늘 내 일정은 만땅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 올린 문제는....
“김 비서의 복수라....”
은밀히 김 비서의 뒤를 캐서 그녀의 원수가 누군지 알아냈다. 또한 그녀가 스스로 복수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과, 그게 이뤄지려면 지금 그녀 능력으로는 10년, 아니 20년이 걸려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복수에 조금 개입하기로 결심했다. 길어도 3년, 빠르면 내년까지 그녀가 복수를 완수할 수 있게 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그러려면 그녀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자금과 인맥, 즉 권력이었다. 하지만 둘 다 쉽게 쟁취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었다. 그게 쉬웠다면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게 부자와 권력자겠지.
돈이야 지금 김 비서가 가지고 있는 돈을 뻥튀기 시켜 줄 수 있었다. 내 투자사인 블랙머니에서 그녀 돈 관리를 맡는다면, 올해 안에 그녀 돈을 10배까지 부풀려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인맥 문제는 더 쉽게 해결이 가능했다.
그녀를 내 비서 겸 총괄 본부장에 앉히면 됐다. 총괄 본부장의 직급은 부 사장 급으로 하고 대외업무에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면 알아서 그녀에게도 인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러다보면 내 비서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겠지. 해서 나는 아예 이번 기회에 김 비서를 대신 할 새로운 비서를 뽑을 생각이었다.
‘좋아. 김 비서 복수 문제는 여기까지 하고....’
내가 그 다음 오늘 처리할 문제를 내 머릿속에서 떠올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양태석이었다. 나는 지금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양태석의 전화를 받았다.
양태석은 가급적 내가 전화 받기 거북해 하는 시간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러니까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의 경우, 그는 내가 전화를 해도 잘 받지 않는 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주로 그 시간은 피해서 전화를 하는데 지금은 조금 이른 감은 있었지만 출근 시간이라 양태석이 이렇게 전화를 걸어 올만 했다.
“네.”
-대표님. 윤현수 말인데 어젯밤에 잘 처리 됐습니다.
“잘 됐네요.”
하지만 나도 알고 양태석도 알았다. 고작 그거 때문에 양태석이 지금 이 시간에 내게 전화한 게 아니란 걸 말이다. 해서 내가 대답 후 가만히 기다리자 양태석이 알아서 이어 말했다.
-그리고 좀 전에 제주도에서....누군가 윤재구 회장을 죽이려 한 모양입니다.
“뭐라고요?”
-다행히 윤 회장은 무사한데 경호원 두 명이 크게 다쳐 제주병원에서 긴급 수술 중에 있다고....
나는 윤 회장은 무사하다는 양태석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윤 회장을 죽이려 사주한 그 아들 윤현수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러자 그 의문을 양태석이 바로 풀어주었다.
-윤현수 밑에 광명 도끼파 강재경이라고 있는데, 그 놈이 제주도 조폭 조직을 통해 킬러를 고용한 거 같습니다. 강재경을 잡아봐야 자세한 건 알겠지만 저희 쪽 생각은 강재경이 윤현수가 죽었다는 걸 몰라서 생긴 일 같습니다.
그러니까 윤현수만 조진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즉 명백한 내 판단 미스라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윤현수를 제거할 때 그 밑에 조폭 조직 수뇌부도 같이 처리했었어야 했다.
그 역시 양태석이 눈치 차리고 말했다.
-이미 새벽에 조직원들 보냈습니다. 오늘부로 성남 제일파와 광명 도끼파는 해체 될 것이고 거기 두목들은....윤현수 뒤를 따를 겁니다.
적절한 조치였다. 따로 내가 더 덧붙일 말이 없었기에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고, 양태석과의 통화도 더 할 말이 없는 관계로 이내 끝났다.
* * *
왕종우는 수술실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무신론자인 그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란 걸 해 본적이 있었던가?
중국 흑사회 소속 킬러로 한 때 이름 깨나 날렸던 그는 사람 죽이는 재주는 있어도, 사람 살리는 재주는 없었다.
“제발....”
그의 간절한 기도를 저 위에 높으신 분이 들어 주신 걸까? 아니면 이곳 수술실에 오기 전 응급의가 말한 대로 현대의학이 발달해서 딸이 살아 난 건지, 어째든 딸은 죽지 않고 수술실을 나왔다.
“선, 선생님....”
“왕연희양 보호자 되십니까?‘
“그, 그렇습니다. 저희 연희는....”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중환자실에서 경과 지켜보고, 내일 오전에 괜찮으면 병실로 옮기도록 하죠.”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수술 집도의로부터 직접 수술이 잘 됐다는 말을 들은 왕종우는 그제야 가슴에 올려져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치워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왕연희양 보호자님?‘
“네.”
곧바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그 앞에 나타났다.
“이 병원 원무과장입니다.”
“아네.”
“아직 수술비가 들어오지 않아서....월요일까지 납부 가능하시죠?”
“네. 그래야죠.”
“그럼 저는 그렇게 알고 이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딸의 목숨을 살렸는데 그 돈이 얼마인들 아깝겠나? 하지만 지금 그가 영업 중인 중국집의 규모를 키우느라 통장에 있는 돈뿐 아니라, 은행 대출까지 최대한 받아 쓴 상태에서 3천만 원 가까이 되는 딸의 수술비를 월요일까지 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왕종우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며칠 더 말미를 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
“하아....”
결국 딸의 수술비와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중국에서 제주도로 오면서 끊은, 그 일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딱 한 번이야. 이번만 하고 다시는....”
왕종우는 제주도에 안면 있는 중국 조폭 조직을 통해서 긴급한 살인청부 의뢰를 알아봤다. 그랬더니 한국인 늙은이 하나 제거해 주는 데 10억을 주겠다는 의뢰가 있었다. 의뢰인은 서울에 사는 자였다.
물론 그만큼 어려우니 의뢰인 측에서 10억을 주겠다고 한 거겠지. 하지만 한때 중국에서 조폭 두목의 목을 십 수 명도 넘게 따 본 왕종우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경호원 몇 명 지키는 집 안의 늙은이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었다.
“좋아. 그 일 내가 맡도록 하지.”
그렇게 오랜만에 살인청부를 받아서 피를 보게 된 왕종우. 그는 중환자실에서 딸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그곳 간호사의 말을 듣고 자정 넘어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몰아서 그가 제거하기로 한 늙은이가 살고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
“저기로군.”
주변에 다른 별장들에 비해서 두 배는 족히 넓어 보이는 공터, 그러니까 마당을 가지고 있는 저택. 그 저택 안에 경호원 4명이 있음을 원거리에서 망원경으로 확인한 왕종우. 그가 시간을 확인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 할 필요 없겠지.”
그 말은 저 안에 있는 경호원들은 그다지 신경도 쓰이지 않는단 소리였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외뢰를 완수하고 딸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렸다가 새벽 4-5시쯤 움직이려던 생각을 바꿨다.
스스슥!
얼굴에 복면을 쓴 왕종우. 그는 군용 칼 한 자루를 챙겨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타깃이 사는 저택 쪽으로 움직였다.
* * *
왕종우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휘릭! 처척!
간단히 저택의 높은 담장을 뛰어 넘은 그는 널따란 마당을 가로질러서 건물 쪽으로 접근했고 그때 운 좋게 건물 뒷문이 열리고 경호원 한 명이 나왔다. 그리곤 품속을 뒤져 담배를 꺼내서는 담배를 피웠다.
보아하니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니 밖에 나와서 피우는 모양이었다.
‘잘 됐네.’
왕종우는 조용히 그 경호원 쪽으로 접근했다. 상대는 완전 방심하고 있었고 그런 경호원에게 두어 걸음까지 까치발로 접근해 들어간 왕종우. 그가 막 담배를 다 태우고 재를 털고 있는 경호원에게 달려들었다.
퍽!
그리고 들고 있던 군용칼의 칼자루로 그 경호원의 훤히 드러난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경호원은 머리를 맞자마자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고 그런 그의 몸을 뒤졌다. 그런데 나온 게 핸드폰과 지갑 밖에 없었다.
딱 봐도 경호원들이 제대로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다. 이러면 왕종우로서는 일 하기 더 수월해졌다.
달칵!
왕종우는 이미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서 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타깃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좀 전 왕종우가 망원경으로 건물 안을 살폈을 때, 그가 제거해야 할 늙은이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이 늦은 시간까지 자지도 않고 주방 쪽 식탁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근처에 경호원이 두 명 배치되어 있었고. 거실 창가 근처에 한 명, 그리고 출입구 앞에 한 명이 지키고 있었다.
한데 그 중 출입구를 지키던 경호원이 담배 태우러 나왔다가 왕종우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뒷문을 통해 거실 쪽으로 이동하면서 몸을 숨긴 체 살펴보니, 출입구 쪽 경호원 말고 나머지 세 경호원들은 좀 전 그가 망원경으로 봤던 그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왕종우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일단 먼 거리에 있는 창가의 경호원을 칼을 던져서 잡고, 그는 몸을 날려서 타깃의 근처에 있는 경호원 둘을 처리하는 걸로 말이다. 그 다음 늙은이 제거하는 건 식은 죽 먹기 일테고.
파파파팟!
결심이 서자 왕종우는 바로 움직였다.
“어?”
그가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오자 시야 상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거실 창가 쪽의 경호원. 하지만 그 경호원은 그의 맞은편에 있는 두 명의 동료 경호원에게 그걸 알려 줄 수가 없었다. 그의 입보다 먼저 날아온 칼이 그의 앞가슴에 꽂혔으니까.
“컥!”
털썩!
오히려 그 경호원이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에 동료 경호원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돌아갔고, 그 사이 왕종우는 늙은이 곁을 지키고 있던 두 경호원들을 덮치고 있었다.
퍽!
정면에서 머리로 경호원의 안면을 들이 받은 왕종우. 그가 즉각적으로 그 옆에 경호원의 목을 손날로 쳤다.
“켁!”
얼마나 세게 들이 받았는지 왕종우의 박치기에 당한 경호원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 옆에 왕종우의 손날에 목을 맞은 경호원은 두 손으로 목을 잡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에 있던 싱크대에 부딪쳐서 몸을 휘청거렸다.
빠악!
그때 그런 그의 턱에 정확히 발차기를 가하는 왕종우.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 이뤄진 날랜 연계 공격이었다. 그 공격에 타깃의 근처를 지키던 경호원 둘이 너무도 허무하게 제압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이 타깃 뿐. 그래도 왕종우는 방심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서 타깃을 찾았다.
근데 타깃이 주방 식탁에 그대로 앉은 채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 이럴 때는 놀라거나 그보다 더 나아가면 살아보겠다고 내 빼야 하는 거 아닌가? 한데 지금 왕종우 눈앞의 늙은이 타깃은 무관심한 눈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치 왕종우에게 당해 쓰러진 경호원이 자신이 고용한 경호원이 아니란 듯, 그리고 지금 처한 상황 역시 그에게 닥친 게 아닌 거처럼 말이다. 마치 남에 집에 불났을 때 그걸 구경하는 제 3자의 눈으로, 늙은이 타깃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왕종우는 속으로 기가 찼다. 하지만....
“헉!”
타아앙!
자세히 보니 그 늙은 타깃의 옆구리에 옆총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왕종우는 황급히 몸을 옆으로 던졌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보다 좀 더 빨리 총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근거리인지라 총알은 빠르게 그를 날아와 그의 몸에 박혔다.
‘젠장....’
엽총에 들어 있던 산탄이 뿌려지면서 몇 발이 왕종우의 왼쪽 팔과 옆구리에 맞았다.
휘릭! 파앗!
그렇지만 왕종우는 화끈 거리는 통증을 무시하고 몸을 몇 바퀴 더 뒹굴었다. 엽총이 한발로 끝나지 않을 걸 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철컥!
느지막이 엽총 장전하는 소리만 울릴 뿐 늙은이 타깃은 그를 향해 두 번째 산탄을 쏘지 않았다. 대신 여유 있게 총구를 자신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히익!”
왕종우로서는 그 총구가 자신을 겨누자, 그 즉시 몸을 옆으로 날릴 수밖에 없었다. 멍청히 총구가 겨눠지는 걸 두고 보고 있다가 총알에 맞아 뒈지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