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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81화 (57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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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정준호는 임춘석을 살뜰하게 챙겼다. 조폭들은 대개 자기들 밖에 모른다. 그런 조폭들 중에서도 두목급 조폭들은 특히 이기적이다. 정준호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그가 유독 임춘석을 챙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윤현수가 있었던 룸빵 아뜰리에에서도, 정준호는 임춘석만 따로 룸에 불러서, 그곳 룸에서 술을 같이 마셨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뜰리에에서 그 정도 챙겨줬으면 충분했을 텐데 또 여기까지 데려와서는, 이제 자기와 같이 A급 호스티스를 옆에 끼워 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건 확실히 도가 넘은 예우였다.

“자 마시자.”

“네. 형님.”

둘은 여자를 끼고 희희 거리며 술을 마셨고, 잠시 뒤 취기가 오르자, 각자 여자를 데리고 자연스레 룸빵을 나섰다.

정준호는 임춘석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계속 자기 수중에 두고 싶었고, 임춘석은 정준호가 이렇게 자신을 챙겨 주는 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남녀 간에는 궁합이 중요하듯 정준호와 임춘석의 이해관계가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맞아 떨어지는 듯 보였다.

“춘석아?”

호텔에 가기 위해서 룸빵 입구 앞에서 차를 기다릴 때 정준호가 옆에 임춘석을 불렀다.

“네. 말씀하십시오. 형님.”

그러자 임춘석이 정준호를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걸 보고 흡족해 하며 웃던 정준호. 그가 임춘석에게서 시선을 휘황찬란한 밤거리로 돌리며 말했다.

“우리 같이 이 서울 밤의 지배자가 되자.”

“....”

밤의 지배자. 그게 뜻하는 게 뭔지 모를 임춘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 서울의 밤을 지배하는 조폭 조직은 태석파였으니까. 그리고 그 태석파의 총 보스는 양태석이었고.

아까도 언급했지만 정준호는 현 태석파 총 보스인 양태석을 재끼고, 자신이 그 자리를 꿰차려는 야심을 이제는 이렇듯 서슴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임춘석은 그런 정준호를 돕겠다고 이미 말해 놓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딴 소리를 했다간 자칫 내일 뜨는 아침 해를 영영 보지 못하게 될지 몰랐다. 그 정도로 정준호는 비정하고 속이 좁은 자였다. 그랬기에 임춘석은 아까부터 정준호와의 대화에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 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양태석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그러려고 정준호가 자신을 그의 곁에 두고 있다는 걸 모를 임춘석이 아니었다. 임춘석의 대답이 그래도 마음에 든 듯 정준호의 얼굴에 입 꼬리가 연신 실룩거렸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흐흐흐흐.”

잠시 후 두 대의 차가 차례로 룸빵 입구 앞에 멈춰 섰고, 먼저 정준호가 아가씨와 같이 차에 타서 움직이고, 그걸 지켜보던 임춘석도 이내 자기 옆에 아가씨를 대기 중인 차에 태우고 근처 호텔로 향했다.

“내가 언제부터 생각 같은 걸 했다고....”

호텔로 가는 중 임춘석이 차창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임춘석도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이 기호지세임을 알았다. 호랑이에 탄 그는 이제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든, 양태석이 죽든....”

정준호라는 호랑이는 결코 중간에 그를 내려주지 않을 테니까.

* * *

나는 윤재구 회장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게 궁금해서, 견신 시스템의 「개 짖는 소리」 스킬을 사용해 윤 회장을 도청, 감청을 해 봤다. 그랬더니 그 결과....

“쯧쯧쯧....”

윤 회장 처량하게 제주 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당연히 건강상 술을 마셔서는 안 됐지만, 혼자 중얼대는 말을 들어 보니 그는 소주 한 병을 두고 두 시간 동안 술에 물을 타 가면서 마시고 있었다. 그러며 자신의 장남을 원망하고 또 비정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하긴 나라고 해도 내 자식 놈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나면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자괴감이라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거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서 무자식 상팔자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결혼과 가정을 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마 그 때문에 내일 아침에 백 회장과 트러블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삼명그룹 회장 자리야 나도 욕심이 있으니 받겠다고 결심했지만, 결혼과 자식 문제만큼은 절대 백 회장 뜻대로 되지 않을 터였다.

“시간 참 빨리도 가네.”

오늘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러다보니 벌써 잠 잘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나나미는 일본에 잘 갔나 몰라?”

아까 내가 삼명 호텔에 돌아왔을 때 나나미는 일본으로 훌쩍 떠나고 없었다. 내가 YH엔터 사옥에 볼 일 보러 간 사이 깬 나나미가, 나처럼 이렇게 쪽지 한 장 남겨 놓고 일본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준열상. 일본에 급한 일이 생겨서 그것 좀 정리하고 올게요. 당신을 사랑하는 나나미가.]

나는 나나미가 남긴 쪽지를 한 번 더 읽어 보고는, 그 쪽지를 구겨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몸을 일으켜서 침실로 향했다.

나나미에게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사실 지금 내 마음 같아서는 나나미가 일본 가서 다시 서울로 안 왔으면 싶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는 내 여자들도 사실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데 외국인 여자까지 신경쓰고 사는 게 좀 부담스럽다고나 할까?

“막말로 내가 나나미가 좋아 죽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나나미가 나를 더 많이 좋아하다보니 그런 거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 좋다는 여자를 버릴 만큼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 해서 그녀가 돌아오면 나는 언제든 그녀를 내 여자로 받아드리고 대우해 줄 생각이었다.

“내일도 바쁠 테니 이만 자자.”

그래도 오늘은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씻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침대에 몸을 뉘인 상태에서 바로 잠을 청했다. 그러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둘 다 피곤했던 나는 빠르게 수마가 몰려왔고, 그대로 깊은 수면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 * *

백준열이 볼 일이 있어서 호텔 방을 나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잠들어 있던 나나미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원래 그녀 핸드폰은 꺼진 상태를 쭉 유지했다. 그녀가 그런 이유는 일 때문에 걸려 오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어제 골프치고 그곳 화성시 피닉스 골프장 내의 부대시설인 타운 하우스에서 자고, 아침 일찍 라운딩을 한 번 더 돌고 나서 서울로 올라 온 나나미. 그런 그녀가 백준열에게 전화를 하느라 이동 중 차에서 전원을 켰고, 그와 통화 후 다시 전원을 끄는 걸 깜빡한 것이다.

“하아아....”

시끄러운 핸드폰 소리에 나나미는 결국 잠에서 깨어버렸다. 백준열과 같이 있을 때는 잠을 잘 자는 그녀였지만, 원래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그녀였다. 그래서 귀에 거슬리는 작은 소리에도 잠을 못자는 그녀가, 시끄러운 핸드폰 소리에도 계속 자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나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자신의 핸드폰이 있는 쪽으로 갔고, 누구 전화인지 부득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짜증나네.”

어련히 자신이 알아서 할까. 그새를 못 참고 그녀의 소속사 하이브 사쿠라의 대표인 안도가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나나미는 성질나서 그냥 받지 않으려다가 이왕지사 잠이 싹 달아난 마당인지라 그냥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나나미. 어떻게 됐어?

“계속 만나서 설득 중이에요. 근데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아니. 후지TV에서 연락이 왔는데 모레 ‘즐거운 모임’에 게스트로 출연해 줄 수 있냐고 해서 내가 출연할 수 있다고 했거든.

“뭐, 뭐라고요?”

그러니까 소속사 대표가 자기 멋대로 예능 방송 스케줄을 잡았다는 얘기였다.

기가 찬 나나미가 뭐라 말을 하려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그녀가 지금 화를 내 봐야 그녀가 내일 후지TV의 버라이어티 예능 방송 ‘즐거운 모임’에 출연 확정이 되어 있는 상태가 바뀔 리 없었고, 그걸 대놓고 펑크를 내도 뒤탈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일본내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래서 나나미는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고 안도 사장에게 물었다.

“내일 어디서 몇 시 촬영인데요?”

-그게....이번에 촬영지가 좀 멀어. 하코네라고....거기 온천호텔인 대하장에 아침 7시까지 오라고....

“하코네요? 거, 거긴....”

하코네는 도쿄 인근에 위치한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도쿄 인근이라고 해도 산 속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 도쿄에서 거기 가는 데 차로 5-6시간이나 걸렸다. 그러니까 내일 스케줄이라도 내일 일본으로 가서는 촬영시간에 맞추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거기다 첫 촬영이 아침 7시라면 전날 거기 온천호텔인 대하장에서 자고 촬영에 임해야 했다. 즉 그녀는 지금 일본으로 가야했다.

“바로 갈게요.”

나나미는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가기로 했고, 안도 사장과 통화 후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때 호텔 측에서 방 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힐튼 호텔 측에서 그녀 짐을 보내줬다는 것이다. 그 짐을 룸으로 보낼지 아니면 그녀가 찾으러 프런트로 내려올지를 삼명호텔 측에서 물었다.

“거기 두세요. 지금 내려 갈 테니까.”

다행이라면 백준열이 힐튼 호텔에 그녀 짐을 여기로 가져 오게 한 덕분에, 그녀가 짐 가지러 힐튼 호텔을 들리지 않아도 되었다. 해서 그녀는 이곳 삼명호텔에서 곧바로 김포공항으로 갈 수 있었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일본 국적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준열상. 모레 봐요.”

호텔 방에 쪽지는 남겨 놓았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가 보고 싶은 나나미였다.

그래서 그녀 맘이야 가급적 내일 백준열을 봤으면 했지만, 그 산골 촬영을 끝내고 그녀가 부랴부랴 서울로 날아온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은 밤일 터. 해서 그녀는 그냥 모레 밝은 낮에 서울로 와서 백준열을 볼 생각이었다.

* * *

정말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아하아아암....”

평소의 나라면 이 시간에 호텔이나 내 여자 집의 침대 위에서 이렇게 하품을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차 안이다.

“다 왔습니다.”

내 옆에 타고 있던 문대식이 그걸 보고 아직 잠을 털어내지 못하고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내게 말했다. 그 말에 앞쪽을 쳐다봤더니 과연 삼명가 본가 저택이 내 눈에도 보였다.

“아침부터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 저택을 보자 그제야 걱정이 됐다. 이전에는 형제들이 있어서 백 회장의 관심이 어느 정도 분산이 되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그러니 백 회장의 잔소리가 내게 집중 될 건 뻔한 노릇.

그나마 저 저택의 김 집사를 내 편으로 끌어 들이는 데 성공한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뭐 사실은 그쪽에서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내가 그 손을 잡아 준 거지만.

뭐 어째든 삼명가 본가 저택에 모든 실무를 돌보고 있는 김 집사가 내 사람이 되었으니 저곳이 더 이상 용담호혈은 아닐 거란 거지.

[회장님. 심기가 좀 불편해 보이십니다. 가급적 말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김 집사가 오늘 백 회장의 컨디션이 어떤지도 넌지시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고 말이다.

잠시 뒤 삼명가 본가 저택 대문 앞에 차가 도착하자, 문대식이 먼저 내려서 내가 내릴 차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아쉽지만 문대식과 내 경호팀원들은 삼명가 본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대신 삼명그룹 경호실의 실장 밑에 팀장 중 한 명이 나를 에스코트해서 현관문 앞까지 따라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본가 저택 안 현관에서 집사장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바로 물었다.

“회장님은?”

“지금 안방에 계십니다. 여쭤봤는데 따로 안방에서 하실 말씀은 없으시다고. 바로 식당으로 가시면 됩니다.”

해서 나는 집사장과 같이 식당으로 갔고, 거기 휑한 빈자리 중에 백 회장이 앉는 상석의 바로 오른쪽, 원래는 장남인 백준경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나야 거기 앉고 싶지 않았는데, 굳이 집사장이 그 자리를 빼주니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식탁에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회장님 모시고 오겠습니다.”

집사장은 곧장 백 회장을 데리고 안방으로 갔고, 5분 쯤 뒤 백 회장이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백 회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내 쪽으로 성큼 다가 온 백 회장은 식탁의 상석,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를 보고 나도 뒤따라 앉았고. 백 회장이 수저를 들자 나도 따라서 들었다.

“....먹자.”

백 회장은 식사 중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개 일 얘기는 식사 후 서재로 불러 따로 얘기를 하고. 물론 식사 중에 자식들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가차 없이 호통치고 나무랐지만.

김 집사로부터 말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 터라, 나는 가급적 백 회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식사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백 회장과 내 음식 취향은 비슷했다. 국과 찌개가 꼭 있어야 하고, 밥상이 푸짐하니 예스러운 맛을 추구한달 까? 뭐 그래서 사실 나는 백 회장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게 그리 싫지는 않았다. 단지 그가 내게 시비를 걸거나 잔소리만 해 대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통령 처리를 비교적 깔끔하게 했더구나?”

한데 식사 중 백 회장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 뭐....”

내가 대통령을 하야 시킨 것에 대해서 딱히 백 회장에게 할 말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백 회장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 일에 대해 다 전해 들었을 테고 말이다. 백 회장도 그 부분을 내 입으로 또 듣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꺼낸 말의 주제를 바로 딴 쪽으로 넘겼으니까.

“그래서. 언제 선 볼 생각이냐?”

‘에이 C....’

근데 내게 있어 가장 민감한 문제를 이런 식으로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백 회장이 제대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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