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80화 (57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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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랬더니 윤재구 회장의 전화다. 윤 회장이 걸어 온 전화라면 당연히 받아야 했기에, 나는 일단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날세. 알아보니 자네 말이 다 사실이더군.

그 사이 내가 그에게 해 준 말들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친 모양이었다.

“네. 뭐....”

어차피 다 사실이니 나로서는 윤 회장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째든 이번에도 확인이 됐다. 윤 회장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걸 말이다. 근데 그 말하려고 어르신이 이 시간에 내게 전화를 한 건 아닐 텐데....

-자네에게 염치없지만....부탁을 좀 해야겠네. 대신 대가는 확실하게 치르도록 하지.

부탁이라? 그게 뭔지 모르지만 아쉬울 거 하나 없는 어르신이, 내게 굳이 부탁을 하겠다니 나로서도 살짝 긴장이 됐다.

“제가 뭐라고....과연 어르신의 부탁을 들어 드릴 능력이 될지는....”

-겸양이 과하면 과공(過恭)이라 했네. 지금 자네 나이에 그 정도 위치에 있기 어디 쉬운가?

윤 회장은 내가 서울 최대 조폭조직인 태석파의 뒷배란 걸아는 양반이다.

그러니 여기서 더 빼는 건 자칫 윤 회장을 기만하는 짓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하아....일단 그 부탁이 뭔지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전화를 받는 사이, 내 방으로 들어 온 호텔 직원에게 가져 온 음식들을 식탁에 세팅해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차피 자네도 아는 사실이니 그 이유는 따로 말하지 않겠네. 내 장남 말일세. 그 녀석을....

윤 회장은 잠시 말을 끊었다. 아무래도 내게 진짜 하기 힘든 말을 하려는 듯 했다.

-....자네가 제거해 주게.

“네에?”

나는 깜짝 놀랐다. 윤 회장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을....자기가 무슨 조선시대 어느 왕(영조)도 아니고 말이다. 영조야 자기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윤 회장은 그런 욕심도 없는 양반이 아니던가?

하지만 윤 회장은 이 말을 하기 전에 내게 먼저 말했었다.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차마 그에게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나? 그 전에 정리할 건 정리 해야지.

백 회장은 그 이유를 내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끝에 회한 섞인 목소리로 ‘정리’라는 말을 꺼냈다. 그 정리가 시사하는 바를 내 어찌 모르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알아서....처리토록 하겠습니다.”

내가 자신이 듣고자 하는 대답을 하자, 그가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에게 주기로 한 유산을 자네에게 넘기지.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그래도 어르신이 주신다는 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한때 투자의 신으로 불렸던 양반이다. 그런 분이 장남에게 남긴 유산이 얼마나 대단할지는....뭐 두고 보면 알겠지. 사실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여기서 무슨 더 말을 하겠나? 우리 사이에 10여초 정도 침묵이 흘렀고, 그 어색함을 윤 회장이 먼저 깨며 말했다.

-늦은 시간에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했네.

“아닙니다. 어르신.”

-그럼 잘 부탁하겠네.

“네.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나는, 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호텔 직원에게 팁을 주어 내 보낸 뒤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 * *

왜 요즘 노래가사에 그런 대목이 있지 않았나?

[....한 순간 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그 가사처럼 윤 회장과 무거운 통화 후에, 내 가슴에 돌이 하나 얹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음식 앞에 앉자 입에 절로 침이 고였다. 식욕이 간단히 내 가슴에 얹힌 돌을 치워 버렸달 까?

“그래. 일단 먹고 보자.”

나는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가 시킨 음식들을 골고루 반씩 먹고 나자, 배가 불러 더는 못 먹을 거 같았다. 그래서 더 무리하지 않고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같이 시킨 디저트를 즐겼다.

샤인머스캣 생크림 케이크는 생각보다 그리 달거나 느끼하지 않았다. 또 적포도와 블루베리 등을 넣은 마카롱도 괜찮았고. 그것들과 같이 마시는 커피 역시 딱 내 취향이었다.

나는 남은 커피 잔을 들고 소파로 가서 앉으며, 소파테이블에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은 뒤, 거기 있던 R드래곤이 내게 남긴 외장하드를 살폈다.

“이 안에 향후 10년 히트할 곡들이 들어 있단 말이지?”

나는 R드래곤의 원한을 풀어주면서 이 외장하드와 함께 그의 작곡 능력까지 챙겼다.

물론 그 작곡 능력을 테스트 하거나 써 먹을 기회는 여태 한 번도 없었지만. 그거야 언제든 해 보면 될 일이었다. 막말로 그 능력이 날아가거나 퇴락할 일 따윈 없었으니까.

“지금 해보지 뭐.”

나는 그 생각과 함께 이곳 로얄 스위트 룸에 있는 노트북에 외장하드를 연결해서, 하나씩 그 파일을 열어 노래들을 들어봤다.

백준열은 연예기획사 대표였지만 음치에 막귀 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원귀들의 원한을 풀어 주면서 그들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제 나는 노래도 잘 부르게 되었고, 또 천재 작곡가의 능력 때문인지 R드래곤이 작곡한 노래를 듣고, 그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 바로 이해가 됐다. 그리고 느낌이 왔다.

이중에 지금 발표하면 올해 최고의 히트곡이 될 만한 곡이 어떤 곡인지 말이다.

“이 두 곡이군. 하나는 빠른 템포의 디스코 팝 장르고, 다른 하나는 그루브 한 느낌이 살아있는 힙합이랄까?”

내가 내 입으로 말해 놓고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작곡천재의 능력 때문인 거 같은데, 아무래도 이 곡들을 바로 쓰긴 어려웠다. 누가 이 노래를 부를지에 따라서 적절한 편곡 작업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편곡을 직접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니 꼭 내가 해야 했다. 그래야 이 노래들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거 같달 까?

따라서 일단 R드래곤의 외장하드에서, 당장 내가 써 먹을 수 있는 두 곡을 따로 노트북에 카피 해 놓고 외장하드는 다시 분리시켜, 내 견신시스템의 상태창 을 열고 인벤토리 안의 개톤백 속에 넣어뒀다.

나머지 곡들은 내년 또 후 내년에 외장하드를 꺼내서, 히트할 곡만 이런 식으로 카피해서 써 먹으면 될 거 같았다.

“아아. 맞다.”

그때 윤 회장이 내게 한 부탁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양태석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양태석은 내 전화를 바로 받았고 그런 그에게 나는 윤 회장의 장남인 윤현수를 사로잡는 것에서, 처리하는 쪽으로 지시를 바꿔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양태석 입장에서도 그런 놈을 사로잡는 거보다 처리하는 게 더 편했던 모양이었다. 흔쾌히 내 지시를 받아드렸다. 윤 회장과 달리 나는 내 할 말을 다 하자, 양태석에게 바로 말했다. 이만 끊겠다고 말이다.

* * *

양태석은 늦은 시간이지만 백준열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아까 그에게 했던 JG투자 운영의 윤현수 대표를 찾아서, 잘 잡아 놓으라는 지시를 뒤집고 그냥 처리하라지 뭔가?

태석파 총보스인 양태석의 입장에서야, 그 윤현수란 자를 잡는 거나 처리하는 거나 거기서 거기였다.

단지 밑에서 그 일을 맡아 직접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조직원들 입장에서야, 사로잡는 것과 처리해 버리는 건 차이가 크겠지만.

양태석도 현장에서 그런 일을 해 봤기에 알았다. 사로잡는 거 보다 처리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하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런 건 빨리빨리 알려줘야 했다. 기껏 힘들여서 생포해 놨더니 뒤늦게 연락이 와서 처리하라면 밑에 조직원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준호야. 나다.”

-네. 형님.

해서 양태석은 그 일을 맡긴 자신의 오른팔 격인 정준호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내가 아까 말했던 윤현수 말인데. 생포 안 하고 처리해도 된다니 그런 줄 알아.”

-그래요? 잘 됐네요. 알겠습니다.

“네가 직접 나선 거냐?”

-네. 형님 지신데 제가 챙겨야죠.

“알겠다. 빨리 처리하고 너도 쉬어라.”

-네.

양태석은 정준호와 통화 후 흐뭇하게 웃었다. 아마도 그의 곁에 정준호가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태석파란 조직을 정비하지 못했을 터였다.

“이제 조직의 두뇌 역할을 해 줄 자가 내일 올 테니, 네 고생도 끝이다.”

그 동안 정준호가 사실상 태석파를 정비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휘하의 사신대도 챙겨야 했고, 또 자신의 나와바리도 관리했다. 몸이 3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정준호.

하지만 이 조직의 군사 노릇을 해 줄 자가 내일부터 와서 자신을 보좌해 준다면, 정준호도 자기가 해 오던 일의 삼분의 일이 줄게 될 터였다.

“내일 그 얘기를 하면....준호 녀석이 많이 좋아하겠지?”

양태석은 당연히 내일 백 대표가 보내 준, 조직 내 군사 역할을 맡을 자가 온 걸 정준호가 알게 되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태 태석파의 조직을 자기 혼자 쭉 컨트롤 해 왔던 정준호였다. 그런데 하루사이 그 일에서 손 놓게 되고, 다른 자가 그 일을 맡아서 한다고 생각해 보라. 당연히 박탈감과 함께 심각한 불안감이 몰려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태석은 단순히 정준호가 내일부터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준호가 자신에게 불만을 갖고, 그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1도 없었던 것이다.

“준호 뿐 만 아니라 딴 녀석들도....내일 완전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되겠어. 하하하하.”

양태석은 내일 오게 될, 그 군사 노릇을 해 줄 자를 자신의 측근 조직 간부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또 그렇게 모인 김에 환영식까지 같이 해 줄 생각으로 그 장소를 골라서 미리 예약까지 했다.

그리고 측근 조직 간부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일괄적으로 보냈다. 내일 오후 6시에 조직 긴급 간부 회의를 삼명 호텔 컨벤션 홀에서 열기로 했다고 말이다. 조직 간부들은 전부 참석하라는 총 보스의 지시까지 덧붙여서. 근데 정준호를 비롯한 내일 놀래켜 줄 주요 간부들에게는 일부러 그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냥 내일 양태석이 직접 그들에게 전화로 알려줘서 놀라게 만들 생각으로 말이다.

* * *

정준호는 귀찮지만 양태석이 내린 지시를 따랐다. 직접 수하들을 이끌고서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JG투자운영의 윤현수 대표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서, 그곳으로 수하들을 데리고 이동 중에 그는 양태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윤현수를 사로잡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사로잡아야 한다고 해서 조직원의 수를 두 배로 늘렸는데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제거 하는 쪽이면 이쪽에 아주 쓸 만한 칼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신대에 속한 조직원들 중에 칼을 정말 잘 쓰는 녀석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정준호는 이미 그를 잘 써 먹고 있었다.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신속하게 제거해야 할 자들의 경우, 그 자를 보내서 처리하게 했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남은 예전 태천파 조직 간부들이 꼬리를 말고, 순순히 현 태석파에 흡수 되어 온 것이다.

“춘석아. 수고했다. 한 잔 받아라.”

“네. 형님.”

정준호는 자신의 칼인 임춘석이 이번 역시 예외 없이 윤현수를 깔끔하게 제거하자, 윤현수의 시신을 밑에 수하들에게 처리하게 시키고, 임춘수를 데리고 근처 룸빵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임춘석과 술잔을 기울였다.

“형님. 제 잔 받으십시오.”

“그래. 따라봐라.”

정준호는 임춘석과 주거니 받거니 양주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그때 룸빵 마담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룸 안으로 들어왔다.

“정 사장님. 진짜 오랜만이시다.”

화장을 떡칠한 마담이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정준호 옆에 와서 앉으며 슬쩍 그의 팔짱을 꼈다. 그러던 말든 정준호의 시선은 옆에 마담 보다는 그 앞에 늘어선 아가씨들에게 꽂혀있었다. 그건 정준호의 왼쪽 소파에 앉아 있던 임춘석도 마찬가지였고.

“강 마담. 여기 물이 어째 예전만 못한 거 같은데?”

정준호가 시선을 여전히 앞쪽 아가씨들에게 둔 체 시큰둥하니 말하자, 그 옆에 마담이 바로 발끈했다.

“무슨 소리에요? 눈이 삐었....아니 자세히 좀 봐요. 제네 들 다 25살밑이라니깐. 물갈이 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러시면 저 섭섭해요. 진짜.”

정준호의 나와바리 안에도 룸빵은 많았다. 그래서 정준호도 룸빵에서 물갈이 한 번 하는 데 돈이 품이 얼마나 드는지 잘 알았다. 근데 이곳 룸빵 마담이 물갈이를 했다니, 딱히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마담의 말처럼 사실 지금 그의 앞에 늘어선 아가씨들은 다들 B급 이상은 됐다. 그중에 둘은 A급으로 보였고.

“너, 그리고 너.”

정준호는 그 A급 호스티스 둘을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그러자 정준호 옆의 임춘석도 생각이 같았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와 혜정이 남고 다들 나가.”

그러자 정준호 옆에 마담이 어느 새 그에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정준호가 찍은 두 호스티스들을 빼고 나머지 아가씨들을 룸 밖으로 내 보냈다. 그러며 그녀도 몸을 일으켜서 앞쪽으로 나갔다. 그 사이 두 호스티스들이 알아서 정준호와 임춘석 옆 자리에 가서 살포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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