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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79화 (57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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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삼명호텔 1층 로비 카페에서 내가 주문했던 디저트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를 내가 얼추 다 먹어 갈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제주도에 있는 윤재구 회장이었다.

“뭐지?”

윤 회장과는 딱히 통화할 일이 없었다. 내일 엘베 동물병원 가는 문제로 잠깐 문자를 주고받았기는 했는데....

“동물병원 가는 거 때문인가?”

내일 같이 따라가도 좋다고 했는데, 윤 회장이 왜 내게 이렇게 전화를 건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르신이 건 전화를 오래도록 받지 않은 건 예의가 아닌지라, 나는 일단 그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자네 지금 시간 좀 있나?

전화 받기 무섭게 백 회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뭔가 다급하고 조급해 보이는 것이, 그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 같았다.

“네. 시간은 있는데....무슨 일입니까?”

-그게....

윤 회장은 지금 자신의 근심을 내게 털어놨다. 그런데 그게 하필 내가 아는 바였다.

“그러니까 저보고 JG자산투자운영의 총괄본부장인 구재경 전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봐 달란 말이로군요?”

-맞네.

윤 회장의 말에 따르면 지금 구 전무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단다. 서울에 있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찾고 있는데 오리무중이었고. 그래서 내가 상당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윤 회장이 이런 부탁을 해 온 거다. 물론 나는 구재경 전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안다.

‘당신 아들이 납치해서 벌써 죽였거든.’

구 전무가 죽은 창고에는 소각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따라서 지금 쯤 구 전무의 시신은 다 타서 한줌의 재가 되어 있을 공산이 컸다.

‘이거 사실대로 말해 줘야 하나?’

하지만 일단 그에 관한한 모든 사실을 지금 통화 중에 윤 회장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마치 내가 윤 회장의 주변을 쭉 감시해 오고 있었다는 느낌을 그에게 줄 수 있었으니까. 해서 나는 일단 윤 회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그와 통화를 끝냈다.

“윤 회장의 촉이 보통이 아니로군.”

윤 회장이 총애하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구 전무는 남이 아니던가? 그런 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거 까지 다 캐치 해 낼 정도라면, 그건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나는 조금 남은 디저트 샌드위치와 이미 식어 버린 커피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나서 카페를 나와서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삼명호텔은 따로 VVIP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해서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묵고 있는 층으로 올라가서는, 로얄 스위트룸으로 향했는데 이때도 복도와 룸 주위로 삼명그룹의 경호원들이 남아 있었다. 물론 그 수는 10여명 가까이로 현저히 줄어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했는데, 다들 피곤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그 양반도 참....다 철수 시켜도 된다니까.”

나는 내 말을 참 안 듣는 삼명그룹 경호실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내가 묵고 있는 로얄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갔다.

* * *

로얄 스위트룸은 내가 없는 동안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마치 새로운 손님을 받기 위해 리부트가 된 듯 말이다. 그래서 나로서도 처음 이 룸에 들어 왔을 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좀 쉬자.”

나는 털썩 널따란 소파에 앉으며 마침 내 다리를 올릴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보이는 소파 테이블 위로 내 두 발을 올렸다. 그러고 잠깐 멍 때리고 앉아 있던 나는 좀 전까지,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윤재구 회장 문제를 떠올렸다.

“역시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대가 윤재구 회장이었다. 그의 정보력은 나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그런 그라면 내가 해 주는 말의 진위 여부야 금방 확인이 가능 할 터. 그런 사람에게 뭘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에게서 겨우 얻어 낸 신뢰에 스크래치나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지.”

결국 나는 윤재구 회장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벌써 알아낸 건가?

“네. 근데....”

전화는 해 놓고 내가 정작 말하기를 주저하자, 윤 회장이 말했다.

-괜찮네. 이 나이 먹고 무슨 일인들 안 겪어 봤겠나? 일하다가 뜬금없이 아내의 죽음을 전해들은 날세. 자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해도 크게 놀랄 일 없으니 말해 보게.

“네. 뭐 그렇시다면....”

나는 윤 회장의 장남인 윤현수가 구 전무를 납치해서 죽이고, 그의 시신을 태워 없애 버린 사실을 그대로 얘기했다.

“허....허....허....”

괜찮을 거라는 자신의 호언장담과 달리 내가 말하는 사이사이 윤 회장은 놀란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윤현수가 구 전무의 시신까지 태워 없앴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흘리던 그 간헐적인 헛웃음도 더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아아....좀....아니 많이 충격적인 얘기로군. 물론 자네 말이 다 사실이겠지?

“어차피 회장님 쪽 정보라인을 통해서 알아보실 거 아닙니까?“

-후후후후. 뭐 그렇긴 하지.

“그리고 회장님 장남분 말인데....”

나는 이어 윤 회장의 장남인 윤현수가 조폭 두목들의 뒷배이며, 인두겁을 쓴 괴물임을 대략적으로 얘기했다.

-크음....알겠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아들 얘기를, 그것도 안 좋은 쪽 얘기를 타인에게 듣는 게 윤 회장 입장에서 그리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살짝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나와 더는 통화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순순히 그와 통화를 끝내 주었다.

“뭐 그것 역시 어차피 윤 회장이 다 알아 볼 테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또 모를까? 윤 회장은 구 전무 쪽 내 말을 알아보다가, 자신의 장남에 대해서도 캐 볼 게 확실했다. 내가 윤 회장이라도 그런 말을 들었는데 그걸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테니까.

* * *

제주도에서 조용히 요양 중이던 JG투자운영의 윤재구 회장. 그는 자신의 애견을 잃고 나서 큰 슬픔에 잠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녀석이 남기고 간 씨를 바로 옆집 암캐가 배고 있었으니까.

이미 그 암캐의 주인에게서 만약 암캐가 임신을 했다면, 그 새끼 중 한 마리를 자신이 데려가는 데 합의까지 본 상태. 그래서 요즘 윤 회장은 새로운 희망에 들떠 있었다.

“으음....”

한데 엊그제와 어제, 연거푸 악몽을 꾸었다. 그래서 불길한 느낌이 좀 들었는데 불과 10분 전에 서재 책상에 앉아서 좋아하던 책을 보다가 잠깐 졸았다. 근데 그 짧은 순간 꾼 꿈에 자신과 같이 JG투자운영을 일궈 낸 구 전무가, 피투성이가 된 채 그 앞에 나타나서 자신은 억울하다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그 꿈이 너무도 선명해서 윤 회장은 구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그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닌 가해서 말이다. 그랬는데 평소라면 어지간하면 그의 전화를 받는 구 전무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가?”

그래서 한 시간 쯤 뒤 다시 걸었다. 그런데도 구 전무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역시나 주말인데도 회사에 일하러 나갔다는 말만 들었다.

별수 없이 윤 회장은 JG투자운영의 총괄 본부실에 전화를 걸었고, 거기 비서를 통해서 구 전무가 골프장 회동 후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 중에 연락이 끊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비서는 그 때문에 경찰에 신고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느낌이 안 좋아.”

윤 회장은 서울에 있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구 전무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다 생각이 난 게 바로 백준열이었다.

“서울 최대 조폭조직인 태석파를 뒷배로 두고 있는 그녀석이라면....”

윤 회장은 백준열이라면 자신의 정보라인 보다도 더 빨리 구 전무를 빨리 찾아 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일부러 전화해서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연락하고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구 전무가 이미 죽었고, 그를 죽인 게 자신의 장남 현수란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전화상으로 받아 보는 가장 충격적인 얘기였다.

자신의 아들들이 개망나니라는 건 그도 익히 아는 바였다. 하지만 백준열이 말하는 자신의 장남은 사람의 탈을 쓴 악마였다.

‘그, 그럴 리가....현수 그녀석이....’

그래도 자기 핏줄이라고 처음에 윤 회장은 백준열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백준열이 한 말에 대한 진위 여부를 자신의 정보력을 총 동원해서 알아보게 했다.

원래 알고 있는 걸 더 세부적으로 파서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게 시간이 적게 걸렸다.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더 상세히 살피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랬기에 백준열이 자신에게 해 준 말들에 대한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2시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허어....허어....”

윤 회장은 백준열이 한 말이 전부 사실임을 전해 들었고, 입에서 계속 헛웃음만 나왔다.

그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자신의 장남인 윤현수가, 부친인 자신까지 죽이려 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윤현수에 대해 깊게 파다 보니 윤 회장의 뛰어난 정보조직이, 그 부분까지 어떻게 알아 낸 모양이었다.

“허어....사람 새끼가 아니구나!”

윤 회장은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내 아들이 악마임을 알았는데 그 처리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말이다.

“거제도에 있는 정신요양병원에 넣어야 하나....아니면....”

그래도 자식이니 살려두어야 할지 아니면 깨끗하게 없애 버리는 게 좋을 지를 두고 윤 회장은 생각 끝에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 내가 낳은 악마니 내가 거둬서 가자.”

그가 죽고 없으면 악마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윤 회장은 자기가 죽기 전에 먼저 장남인 윤현수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비정해 보이지만 지금 그게 윤 회장에게 있어서 최선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기 손으로 자신의 아들을 없앨 수 있단 말인가?

“어려운 부탁을 좀 해야겠군.”

윤 회장은 백준열에게 자신이 장남에게 주기로 한 유산을 내 놓기로 하고, 윤현수의 처리를 부탁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 * *

윤 회장과 통화 후 TV를 켰고 잠깐 TV를 시청하다가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깐 존 거 같았는데....

“어?”

깨어보니 주위가 깜깜했다. 나는 로얄 스위트 룸을 환하게 밝히고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어휴....”

벌써 시간이 9시가 다 되어갔다. 그때 배에서 꼬르르 소리가 났다.

아까 카페에서 먹은 샌드위치 가지고는 녀석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룸서비스로 늦은 저녁 식사 주문을 했다. 그 다음 호텔 측에서 알아서 제공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TV를 틀었는데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대통령 하야를 두고 여태 특집 뉴스 방송만 주구장창 해대고 있었다.

뭐 온 국민의 관심이 그쪽에 있다 보니 그럴 만도 했지만, 그 일의 주범격인 나로서는 대통령의 ‘대’자만 들어도 짜증이 치밀었다.

해서 나는 요즘 인기 있는 예능 채널을 틀었다. 그랬더니 거기에 R드래곤이 속해 있는 블랙홀 멤버 중 하나인 수혁이 특별 게스트로 나와서, 주말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멤버들과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름 웃음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게 내 눈에 가식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럴 것이 R드래곤을 통해서 나는 그가 어떤 인간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니까.

“저 새끼가 매니저를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는 그 놈인가 보네?”

인성에 문제뿐만 아니라 녀석은 성형 중독에 마약은 기본적으로 깐 체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일진 출신으로 학창 시절 온갖 패악으로 유명했는데, 데뷔 전 성형 수술로 얼굴을 싹 바꾸는 바람에 아직까지 들통이 안 나고 있었지만, 그의 정체가 폭로 되는 순간 그의 연예계 생활도 끝장이라고 보면 됐다.

그러니까 저 수혁이라는 블랙홀 멤버는 그냥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던 거다.

그런 주제에 인기 아이돌이랍시고 저렇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알짱거리는 게 내 눈에 가소롭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 맞다. 외장하드!‘

나는 오늘 오후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YH엔터 본사 건물까지 가서 챙겨 온 R드래곤이 남긴 외장하드를 내 견신 시스템의 상태 창 속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받으려고 몸을 일으켜서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으로 가는데....

딩동! 딩동!

이번에는 초인종이 울렸다. 아마도 내가 룸서비스로 시킨 저녁 식사가 온 모양이었다.

나는 울려대는 핸드폰을 챙겨들고 인터폰 쪽으로 쭉 걸어갔다. 인터폰의 비디오 화면에 룸서비스로 온 호텔 직원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열림 버튼을 눌러 방문을 열어주고 여전히 울리는 핸드폰에 누구 전화인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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