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78화 (57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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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천억이 뉘 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현 대통령이 욕심이 엄청나다는 건 이동훈 실장도 익히 알았다.

그 끝없는 욕심과 아집, 그리고 제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한 탓에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초로 탄핵 되어 청와대에서 쫓겨 날 뻔 했는데, 또 눈치는 빨라서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로 자기 멋대로 결정해 놓고서, 이렇게 당당하게 삼명그룹에 퇴직금을 요구하니, 이동훈도 사실 기가 찼다.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대통령이었다. 그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약점들은 죄 삼명그룹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같이 죽자고 물귀신처럼 삼명그룹을 물고 늘어진다면, 삼명그룹도 많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곤란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미리미리 손 쓰는 게 삼명그룹의 2인자이자 백 회장의 비서실장인 자신이 할 일이었고.

따라서 지금 이동훈으로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한 상태였다.

대통령이 요구하는 천억을 주자니 백 회장이 그 사실을 알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안 주자니 대통령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거 도련님께 단단히 신세를 지게 됐군.’

이동훈에게는 이 난제를 해결할 비장의 카드가 한 장 있었다. 그건 바로....

-설마 나한테 천억을 못 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삼명이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말이야.

나름 포커페이스를 유지 중인 대통령. 하지만 실제 속은 꽤나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대통령의 상당히 뼈 있는 그 말에, 이동훈이 목소리에 시종일관 변화 없이 처음처럼 상냥하게 대답을 내놨다.

“물론입니다. 저희 삼명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에 성공한데는 대통령님의 공헌이 크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걸 아니 다행이로군. 이래서 내가 이 실장을 좋아해. 받아 쳐 먹고 나 몰라라 하는 뻔뻔한 장사치들은 정말 딱 질색이야. 그래서 경제 정책에 손을 좀 보려 한 건데....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의 자리에 미련이 많이 남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 번 엎질러 진 물이었다. 그걸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 정도야 누구보다 잘 아는 대통령. 그는 그렇기에 자신의 노후만이라도 풍족하게 살고자, 과한 퇴직금을 삼명그룹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님. 저희 삼명그룹은 기업입니다. 기업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고 새는 돈이 없게 만들어야 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뭐, 뭐요?

대통령은 지금 이동훈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신의 말에 잘 동조하다가 갑자기 이동훈이 엉뚱한 소리를 지껄여 대니 의아해 질 수밖에. 그런 대통령에게 이동훈이 차분하게 자신이 하던 말을 마저 이어서 해나갔다.

“대통령님께서 저희 삼명그룹을 위해 공헌 해 주신 바에 따른 수고비는 그때그때 지급 되어 온 것으로 압니다. 선거 지원금에 정치 자금조로 말입니다.”

-그, 그건....

“그러니 저희 입장에서는 사실 정산해 드릴 퇴직금이 없는 상황이지요. 오히려 대통령님께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시면서, 향후 밀어주시기로 한 사업들이 줄줄이 차질이 생기게 됐습니다. 거기다가 새로운 대통령에게 들어가야 할 생돈 또한 선거기간 중 지출해야 할 판이고요.”

한마디로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삼명그룹은 되레 손해가 극심하다는 얘기였다.

그 말은 곧 대통령에게 줄 퇴직금은 없다는 얘기고....

능구렁이 대통령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게 퇴직금 못 주겠다는 건가?

갑자기 대통령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변했다. 누가 대통령 아니랄까? 그 위압감이 상당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훈은 여전히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못 주겠다는 게 아니라 금액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흥....좋아. 그래서 삼명에서 얼마 주겠다는 건데?

대통령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뉘앙스는 지금 이동훈이 얼마를 제시하더라도 대통령을 결코 만족 시키지 못할 것임을 미리 암시해 주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이동훈은 대통령에게 얼마를 주겠다는 말 대신에, 자신이 가진 비장의 카드를 슬쩍 꺼냈다.

“엊그제 영부인께서 청와대에서 서진그룹 사모와 만나셨더군요.”

-뭐?

대통령은 또 이동훈이 자신과 중요한 얘기 중 삼천포, 아니 딴 길로 빠지자 목소리 톤을 확 높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의 심기를 건드린 이동훈에게 대통령이 제대로 역정을 냈다.

-이 실장.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인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예의를 모르는 소인배였군.

대통령에게 예의 없는 소인배 소리까지 들었지만, 이동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처음과 똑같이 차분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서진그룹 사모께서 영부인께 꽤 거액을 돈을 주셨더군요.”

-....

이동훈이 돈 얘기를 꺼내자마자 대통령은 침묵했고, 그 다음부터 대화의 주도권은 이동훈에게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삼명 2인자가 없는 얘기를 지어 내서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을 리 없단 걸 대통령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말고도 알고 보니 영부인께서 여기저기 많은 돈을 받으셨던데. 거기에 영식과 영애도....”

이동훈이 자신의 가족들의 뇌물과 횡령, 배임에 관해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나오자 대통령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퇴직금은....받지 않는 걸로 하지.

“아아. 네. 그러시군요. 뭐 대통령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야....저희는 그 뜻을 따라야겠지요.”

이동훈은 못 이기는 척 대통령의 말을 받았고, 대통령은 바득 이를 갈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대신....내 가족은 건드리지 말게. 만약....

하지만 이동훈은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끝까지 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만약은 없습니다. 대통령님과 달리....저희가 대통령님과 대통령님의 가족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번에는 이동훈이 대통령에게 뼈 있는 말을 전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먼저 삼명가의 혈족, 그러니까 백준열을 건드리지 않았냐고 말이다.

-....

이동훈의 말이 틀린 게 없다 보니 대통령도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통령의 퇴직금이라는 거대한 똥을 백준열이 제공한 영부인의 뇌물 정보로 바로 치워 버리는 데 성공한 이동훈은 한결 여유 있게 남은 문제들을 처리해 나갈 수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동훈은 토요일에 이어서 일요일까지 밤샘 근무를 해야 했을 것이고, 아내에게 제대로 약점을 잡힐 뻔 했다. 왜냐하면 오늘이 그의 결혼기념일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오후 5시쯤 대충 급한 불을 다 끈 이동훈은 퇴근을 했고, 아내와 삼명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유명 레스토랑에서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당연히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 있게 해 준 백준열에게 이동훈은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백준열을 대해 왔다. 하지만 그 미운 놈이 이왕이면 좋은 놈이 되어, 앞으로 같이 손발을 맞춰 일해 나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런 일도 없을 터였다.

이일로 인해 이동훈은 확실히 백준열을 훨씬 좋게 보게 된 것만은 확실했다.

* * *

성남 제일파의 박태수와 광명 도끼파의 강재경은 그들의 뒷배이자 실질적인 조직의 보스 윤현수가 태석파의 사신대에 의해 제거 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윤현수가 그들에게 내린 지시를 계속 이행 중에 있었다.

그나마 박태수의 경우는 JG투자운영의 구 전무를 죽이고 그 시신을 완벽히 처리하는 일을 비교적 수월하게 처리했다. 구 전무를 제거한 창고에 소각시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뒤 박태수는 윤현수가 또 무슨 일을 시킬지 그걸 걱정하며, 자신의 아지트에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박태수와 달리 제주도의 중국 조직과 접촉하는 일은 맡은 강재경은 피가 빠짝 마를 지경이었다.

“하아. 또 실패인가?”

아무래도 제주도로 직접 가지 않고 아는 인맥으로 알아보다 보니 제대로 접촉도 되지 않고 또 시간만 많이 잡아먹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이라도 제주도로 날아가야 하나 고민 중에 있었던 강재경.

그런 그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다.

“뭐? 연변 쪽으로 은퇴한 킬러가 있는데....지금 딸내미 수술비가 필요하단 말이지? 좋군 좋아. 으음? 뭐라고? 10억을 달라고 한단 말이지?”

순간 강재경의 두 눈에 탐욕의 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일단 맡겨. 성공하면....그때 너희들이 손써도 되고. 5억 어때? 뭐? 하아. 좋아. 6억. 콜?”

누가 비열한 조폭들 아니랄까? 강재경은 지금 킬러에게 줄 의뢰비를 중간에서 착복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와 통화 중인 제주도의 조폭 조직을 통해서, 킬러가 JG투자운영 윤재구 회장을 제거하면 그 즉시 킬러를 죽이게 하고, 그 의뢰비 10억 중 6억을 제주 쪽 조폭 조직에게 넘기고 나머지 4억은 자기가 챙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강재경으로서는 전화 한통으로 4억을 벌게 되었으니, 스스로 생각해 봐도 상당히 만족스런 전화 통화가 아닐 수 없었다.

“회장님이 좋아하시겠군.”

통화 직후 강재경은 윤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윤현수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에이 씨. 또 어디서 술 퍼먹고 뻗은 모양이로군.”

한 시간 동안 10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를 했는데도 윤현수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강재경은 더 이상 전화 거는 걸 포기했다.

“별수 없지. 내일 전화 드릴 수밖에.”

그때는 윤 회장이 죽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제주도의 그 연변 출신 은퇴 킬러가 오늘 밤 윤재구 회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나도 한 잔 빨고, 빨리 발 닦고 자야겠다. 뭐 그 전에 그년 맛 좀 보고 말이야.”

오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강재경.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 한손으로 어루만지며 광명에 있는 자신의 단골 룸빵으로 향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윤현수처럼 강재경도 룸빵에 점찍어 둔 호스티스가 있었던 것. 주색을 밝히는 건 둘 다 똑같았다.

* * *

“헉헉헉....”

제주병원의 응급실. 한 중년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잠깐만....”

그런 그를 병원 관계자가 막아섰다. 하지만 그 중년 남자는 그 관계자를 가볍게 피하고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 있는 환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연희야. 연희야....”

실성한 사람처럼 누군가를 찾는 그 중년 남자를 붙잡은 건 목에 청진기를 감고 있는 응급의였다. 중년남자도 응급의는 알아본 듯 그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중년남자를 보고 응급의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 딸....왕연희를 찾고 있습니다.”

“왕연희? 아아. 혹시 샛별 초등학교 다니는....빨간 가디건의....”

응급의가 정확히 이름은 모르나 두 시간 전에 교통사고로, 이곳 응급실에 실려 온 한 초등학교 여아에 대해, 대략적으로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하자 중년남자의 두 손이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맞습니다. 그, 그 아이....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러며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중년남자.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등골에 소름이 돋으려 했는데....

그 보다 양팔이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거 같은 통증이 먼저 일었다.

응급의는 중년 남자가 잡은 자신의 양팔에 가해진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악! 이 손 좀....”

그러자 중년 남자가 황급히 잡고 있던 응급의의 양팔에서 자신의 손을 떼어냈다.

‘무슨 힘이....’

응급의도 나름 스포츠를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근력 운동을 많이 한 편인데, 지금 눈앞에 중년 남자처럼 억센 손아귀 힘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봤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여아라면 지금 긴급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수, 수술이라고요?”

수술이란 말에 많이 놀란 듯 중년 남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바로 자세를 유지하는 중년 남자.

“네. 교통사고 시 뇌와 장 파열이 심해서....”

중년 남자는 응급의의 말에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더 하얗게 변하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런 그가 측은했던지 응급의가 그래도 희망적인 말을 끝에 가서 해 주었다.

“....상태가 위중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수술로 충분히 살릴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거, 거기가 어딥니까?”

“네?”

“내 딸이 수술 받고 있는 곳 말입니다.”

“아아. 수술실이라면 2층에 있는....”

응급의로부터 딸아이가 수술 받고 있는 수술실의 위치를 알아 낸 중년 남자. 그가 힘없이 뒤돌아서 응급실을 나갔다. 그런 그를 잠시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던 응급의.

“김 선생님. 여기....”

“네. 갑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그가 돌봐야 환자는 아직 남아 있었고, 그 환자에게로 달려간 응급의의 머릿속에서 좀 전 봤던 중년 남자의 기억은 빠르게 지워졌다. 하긴 그래야 지금 눈앞의 다른 응급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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