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75화 (57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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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내가 YH엔터 사옥 건물로 가서 도대체 뭘 하다가 거의 2시간이 다 되어 나타났는지, 문대식은 궁금해 하는 얼굴이었지만 대 놓고 묻지 않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별일 아닐 경우 문대식에게 얘기를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남에 건물에 들어가서 뭘 훔쳐 나왔는지 떠들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내가 차에 타고 유료 주차장을 빠져 나와 삼명호텔로 돌아가는 동안 차 안은 계속 정적이 감돌았다.

디로링!

그 적막을 깬 게 바로 내 핸드폰이었다. 문자 메시지가 왔고 나는 누가 보낸 건지 대충 확인했다.

“응?”

그런데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이 윤재구 회장이다. 내용은 별 거 아니었다. 내일 엘베 데리고 동물병원 가는데 자기도 따라가도 되냐는 건데....

원래 나라면 안 된다고 했을 거다. 엘베가 윤 회장 애견의 새끼를 가지지 않은 게 밝혀져서 내게 좋을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뭐 이제 상관없으려나?”

윤 회장에게서 받을 거 다 받은 상태였다. 그는 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고, 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서 나를 감동시켰고 내 호감을 샀다.

나는 나의 적은 확실하게 밟아주지만 ,또 내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윤 회장은 앞으로 내가 잘 챙겨 주기로 이미 마음먹은 사람. 그런 그를 계속 속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윤 회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 엘베와 같이 동물병원에 가도 좋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바로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고맙다고.

“허얼....”

근데 어째 70살도 훌쩍 넘기신 어르신이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게 나보다 빠른 거 같았다.

그렇게 내가 윤 회장에 대해 생각을 할 때 문득 든 생각은, 그의 미래와 더불어 그의 자식들이었다.

나이와 지금 그의 건강 상태로 봐서 윤 회장은 그리 오래 살 거 같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제주도에서 편하게 요양하다 조용히 임종을 맞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윤 회장은 자식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아들 셋 다 망나니고, 두 딸들은 돈 쓰는 기계고 말이다. 그래도 윤 회장 같은 자상한 아버지를 뒀으니, 그 인성이 나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깐 윤 회장과 내 부친인 백승렬 회장을 비교해 봤다. 둘 다 돈이 무지하게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인성 면에서 윤 회장이 백 회장보다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또 남의 동생이 더 귀여워 보이는 법이긴 하지만....

“윤 회장 장남은 아버지를 많이 존경하겠네.”

아무래도 자식들 중에서 가장 오래 윤 회장을 겪어 온 그의 장남이 부친에 대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개 짖는 소리」 스킬을 사용했다. 나도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윤 회장의 장남에게 말이다. 「개 짖는 소리」 스킬의 최대 장점이 바로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윤재구 회장의 장남처럼 그 사람을 정확히 특정만 하면 이렇게 그 사람을 도청, 감청 할 수 있다는 거다.

“....”

나는 가만히 윤 회장 장남과 그 주변에서 떠드는 얘기를 경청했다. 그때 움직이는 차 안의 내 옆에 앉아 있던 문대식. 그가 내가 핸드폰을 들고 혼잣말로 뭐라 계속 중얼거리는 것을, 아까부터 계속 곁눈질로 힐끗 거리며 쳐다봤다. 그러며 여러 차례 마른 침을 삼키는 게 뭐라 말을 하고 싶은 거 같았는데, 그때 마다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또 침만 삼켰다.

* * *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윤 회장 같은 분의 아들은, 그것도 장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싶어서 말이다. 비록 개망나니 소리를 듣고 있다지만 그래도 JG투자운영사의 대표라고 하지 않았던가?

“에?”

그런데 뭐가 좀 이상했다. 윤 회장 장남은 분명 투자사 CEO다. 그런데 왜 견신 시스템의 「개 짖는 소리」 스킬을 통해 내가 듣고 있는 소리들은....

‘뭐야? 순 조폭 두목이잖아!’

윤 회장의 장남은 지금 서울 근교 창고에 누군가 납치 감금해 놓고, 그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미친....”

놀랍게도 그는 제주도에 있는 부친을 죽이려 들고 있었다. 제주도의 중국 조폭 조직을 동원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는 모처에 연락을 취해 부친의 살인청부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근데 윤 회장 장남이 급해 보였다. 마치 내일까지 꼭 부친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처럼 말이다.

그의 말을 쭉 도청, 감청하다 보니 중국 조폭 조직 쪽은 며칠 더 시간이 걸릴 거 같았다. 하지만 살인청부를 의뢰한 쪽은 25억에 합의를 봤다.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때 지금 더 급한 건 윤 회장 장남이 살인청부를 의뢰한 쪽이었다.

“지금 시간이....”

나는 시간을 확인한 후 핸드폰에 전화번호부로 들어가서 제주경찰청 수사과장 최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 백준열입니다.”

-아아. 네.

최철호는 다행히 내가 누군지 아는 듯 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한 두 시간 뒤부터 서울에서 제주도로 들어오는 비행기에....”

나는 최 과장에게 모종의 부탁을 좀 했다. 그런 내 부탁을 최 과장이 순순히 받아드리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박대순 경찰청장이 최 과장에게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제주도에서 내가 봤던 호기심 많았던 최철호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나야 그가 내가 한 부탁만 잘 들어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길게 통화를 이어가지 않고, 그쯤에서 마무리 짓고 전화를 끊었다.

“뭐 이걸로 시간은 번 거 같고....근데 좀....아니 많이 괘씸하네. 아무리 개새끼라도 제 애비 목줄을 물어뜯으려 들다니 말이야.”

“네?”

내가 혼자 한 말인데 기어코 궁금함을 못 참겠는지 내 옆에 문대식이 끼어들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만 나는 문대식에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또 지금 상황에서 그의 도움은 전혀 필요 없었고 말이다. 나는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양태석이었다.

어제와 오늘, 그는 내가 시킨 일을 확실하고 깨끗하게 처리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처리자 철수를 쓸까 하다가 나는 또 양태석을 선택했다.

-네. 대표님.

양태석은 전화 연결 음이 채 세 번 울리기 전에 내 전화를 받았다.

* * *

양태석은 내가 자기 밑으로 쓸 만한 책사를 보내 준다는, 앞선 통화의 내 말에 상당히 고무 되어 있었다. 그러던 말든 나는 그에게 지금 내가 전화 건 용건을 말했다. 그걸 쭉 다 듣고 난 양태석이 대답했다.

-JG투자운영의 현 대표 말이로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한 번 캐보고 말씀하신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태석 다운 신중한 대답이었다. 우선적으로 제주도에 급한 불은 끈 상태라, 양태석에게도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그를 쪼지 않고 그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뒀다.

그가 뭘 어떻게 하든지 윤 회장의 호로 자식인 그 장남 윤현수만 잘 잡아 족쳐 놓으면 됐으니까.

당연히 윤현수의 목숨까지 거두는 건 나로서도 함부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만약 놈을 죽여 놨는데 그걸 윤 회장이 알고 나를 원망하기라도 한다면....

내가 잘 챙기겠다고 해 놓고 오히려 윤 회장에게 가슴 아프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끼. 운 좋은 줄 알아. 네 아버지 아니었으면 넌 벌써....’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때 양태석이 조심스럽게 네게 물어왔다.

-그래서....제 책사는 언제 볼 수 있습니까?

“아아. 책사. 그....최철기씨는 월요일에 출근하는 대로 양 전무 밑으로 인사조치 될 겁니다.”

-최철기라....알겠습니다.

양태석은 자신의 책사가 될 사람의 이름이 최철기라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흡족해하며 나와의 통화를 빠르게 끝냈다. 딱 봐도 밑에 시켜서 최철기에 대해 알아 볼 요량 같았다. 어째 내가 시킨 일 보다 최철기 쪽에 더 관심을 보인달 까?

철컥!

그때 목적지인 삼명호텔에 도착했고 먼저 차에서 내린 문대식이 쪼르르 차 뒤를 돌아 내가 앉은 쪽 차문을 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곧바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곧장 묵고 있는 로얄 스위트 룸으로 올라가지 않고, 호텔 로비에서 주위를 쭉 살피다가 눈에 띠는 카페가 보여서 거기로 들어갔다.

그 카페에서 디저트 샌드위치와 함께 커피를 시킨 뒤 나는 이동훈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련님.

아까 내가 전화 했을 때보다 이 실장의 목소리가 한결 가볍고 또 부드러웠다.

“내가 찔러 준 정보 덕을 톡톡히 보신 모양이네요?”

-네. 뭐....영 부인 뇌물 수수 건은 유익하게 잘 써먹었습니다.

그 말은 내게 이 실장이 내일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의 영혼까지 탈탈 다 털어 먹었다는 소리로 들렸다. 하긴 썩어도 준치라도 대통령이 그냥 그 자리에서 내려오려 들지는 않았을 테지. 하지만....

‘그 놈에 가족이 문제지.’

그 가족 때문에 대통령은 물러나면서 응당 자신이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거다.

‘그러게 왜 나를 건드려서....’

-용건이나 빨리 말씀하시지요.

내가 잠깐 딴 생각 좀 하는 사이 이 실장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아. 미안해요. 안 그래도 바쁘신 분이신데. 딴게 아니라 공항 출입국관리소와 법원, 검찰에....”

나는 앞서 제주경찰청 수사과장 최철호에게 부탁 한 걸 좀 더 뒷받침 해 줄 생각으로 이동훈 실장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혹시 모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뭐 그 정도는 제 선에서 곧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이 실장과 통화를 막 끝냈을 때, 내가 주문했던 디저트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가 나왔다.

* * *

신비 에이전시 출신 은퇴 처리자 배준섭은, 재향처리자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과 같이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올해 배준섭이 69세로 제일 젊고 나머지 세 명의 은퇴 처리자들은 다를 70살이 훌쩍 넘은, 진짜 노인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인생은 70살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노인정에 가도 60살은 영계 취급 받고 말이다.

“아버님. 여기....”

“아이고. 색시 참 참하게 생겼네.”

“네. 근데 손은 좀 놓고....”

근데 저 늙은이들은 나이를 어디로 쳐 먹었는지 주책바가지로 변해 있었다. 자기 손녀 뻘인 스튜어디스의 손을 잡고 또 그녀들의 뒤태와 드러난 다리를 보고 군침을 질질 흘리면서 말이다.

하긴 좀 주책없기는 하지만 70살 넘게 먹은 노인이 자식을 보는 경우도 있다는 데, 그 노인들에 비하면 저들은 아주 많이 팔팔한 편이니....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너무 주위의 이목을 끄는 것은 좀....

“크음....다들 작작 좀 합시다.”

재향처리자회의 회장으로서 배준섭이 한 소리 하자, 그제야 구시렁거리며 더는 추태를 부리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는 은퇴 처리자들. 대신 그들이 자신을 열심히 씹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배준섭은 상관없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비행기는 앞으로 30분 뒤에 제주도에 상공을 날고 있을 것이고, 그때까지 잠을 자면 비행기 따는 동안 지친 몸을 어느 정도 회복 할 수 있을 터였다.

‘몸이 확실히 예전 같지가 않아....’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시간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흐른다고. 지금 배준섭의 나이가 69살이니 시속 69Km로 늙어 가는 셈이다. 그러니 몸이 예전 같을 리 없었다. 눈을 감자마자 바로 수마가 몰려 왔고 그대로 잠이 든 배준섭.

“으음....”

누가 흔들어서 잠에서 깬 배준섭.

“제주도요.”

그의 옆에 앉은 재향처리자회 회원이 비행기가 제주도 상공에서 다다르자 그를 깨운 것.

시선을 옆으로 돌린 배준섭의 눈에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주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10여분 뒤 무사히 제주공항의 활주로에 안착한 비행기에서 내린 배준섭과 3명의 은퇴 처리자들.

“어?”

그런데 평소 제주 공항의 모습과는 달랐다. 공항 경찰 뿐 아니라 일반 경찰들도 공항 안에 바글거렸다. 그리고 출입 심사가 상당히 까다롭게 진행 되고 있었다. 특히 제주도로 들어 온 사람들의 경우,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찰들 협력해서, 철저한 신원 조회를 벌이고 있었다.

마치 서울에서 제주도로 온 사람들 중에 테러리스트나 반드시 잡아야 할 연쇄살인범, 혹은 탈옥수가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젠장....”

원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었다. 아직 제주도에서 뭔 짓을 벌인 건 아니지만, 사람을 죽이러 들어 온 배준섭과 은퇴 처리자들 입장에서, 이런 퍼포먼스는 그들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환영식이었다.

“어쩔 거요?”

그때 비행기에서 배준섭 옆에 앉았던 은퇴 처리자가 심각한 얼굴로 물어왔다. 배준섭과 은퇴 처리자들의 경우 신분 조회를 하게 되면, 무조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과 경찰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냥 일반적인 입국 심사대를 통과 하는 거야 가능했지만, 저렇게 철저하게 신분 조회를 하게 되면 그들의 감춰진 특별한 이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걸 과연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과 경찰이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물론 풀려나긴 할 거다. 법적으로 그들이 책임 져야 할 일, 즉 죗값은 다 치렀으니까.

대신 하루나 이틀 정도 공항에 잡혀 있다가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 의뢰 시간이 끝나 있겠지.

“하아....틀렸다. 갑시다.”

배준섭은 몸을 돌려 세우며, 눈치껏 세 시간 뒤 서울로 가는 마지막 국내선 비행기 표를 빠르게 예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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