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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구재경은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 금니 남자가 말한 회장님이 누군지 곧 볼 수가 있었다.
“허어....윤현수 대표?”
처음 구재경은 자신이 본 게 제주도에 있는 윤재구 회장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외모로 따지면 윤 회장의 자식들 중에서, 그를 가장 닮은 게 바로 장남인 윤현수였으니까. 하지만 자세히 보니 윤 회장이 너무 젊어보였다. 그래서 몇 차례 더 눈을 깜빡거린 구재경은 지금 자기 앞에 나타난 자가, 윤 회장이 아닌 그 아들인 윤현수 대표임을 알 수 있었다.
“크크크크. 그래. 지금 심정이 어때?”
윤현수가 구재경 앞에서 두 손을 바지 속에 넣고는, 껄렁하게 머리를 흔들어대며 말했는데, 그게 구재경의 눈에도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때였다.
“회장님!”
금니 남자가 의자를 들고 조금 호들갑스럽게 나타나서는, 그걸 구재경의 뒤에 놓으며 말했다.
“여기 앉으셔서 천천히 말씀 나누시지요.”
“그럴까? 고마워. 태수. 아니 박 사장.”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그 말 후 금니 남자가 활짝 웃었다. 당연히 남자의 이빨 중 절반 이상이 금니다 보니, 반짝이는 금니가 고스란히 다 드러났다. 하지만 윤현수는 이미 뒤돌아서 금니 남자가 가져 온 의자에 앉고 있어, 그 웃는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금니 남자는 그런 윤현수의 등을 보면서 짓고 있던 웃음 끼를 싹 지웠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로 윤현수의 뒤통수를 잠시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구재경 쪽으로 돌렸다.
구재경은 그런 금니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그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며, 처음 금니 남자를 봤을 때부터 구재경은 기분이 영 께름칙했다. 뭔가 불길하달까? 이런 기분은 55년을 살아오면서 처음이었기에, 구재경은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찰싹!
그때 누가 그의 뺨을 가볍게 쳤다. 그게 누군지야 뻔했기에 구재경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그러자 윤현수가 보였고,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지금 어디 보고 있는 거야? 이봐. 박 사장. 이 인간 상태가 왜 이래?”
윤현수가 갑자기 뒤로 시선을 돌렸고, 그 즉시 금니 남자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교통사고 후 막 정신을 차린 상태라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입니다. 진정제 놓고 정신 제대로 돌아오면 그때 보시겠습니까?”
금니 남자의 그 말에 윤현수가 한 손에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을 했다.
“으음....됐어. 뭐 반갑다고 또 봐.”
그 말을 하면서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린 윤현수. 그가 이제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구재경에게 말했다.
“구 전무. 그 동안 수고 많았어.”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구재경이 어이없어하며 윤현수를 쳐다 볼 때였다.
“앞으로 회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구 전무는 먼저 가서 아버지나 기다려.”
“네에?”
윤현수의 아버지는 윤재구 회장이다. 그런 윤 회장을 자신이 왜 기다린단 말인가? 그리고 먼저 가라니? 대체 어디를....
“헉! 설, 설마....지, 지금 날 죽이겠다는 겁니까?”
기겁한 구재경이 버럭 소리치듯 외치자, 윤현수가 실실거리며 비릿하게 웃고는 말했다.
“역시 구 전무야. 눈치 하나는 겁나 빨라요. 빙고. 저기 먼저 가서 기다리라 보면 곧 당신이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는 윤 회장이 곧 거기 나타날 거야.”
윤현수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구재경은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나 싶었다. 어째든 윤 회장은 윤현수의 부친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죽이는 걸 그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너무 놀라 구재경이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없어 할 때였다.
스윽!
구재경 앞에 앉아 있던 윤현수가 몸을 일으켰다.
“재미없네. 어이. 박 사장. 여긴 당신이 잘 알아서 정리 해. 난 딴 볼일이 좀 있어서 어디 좀 가 봐야 하니까.”
“네. 그러십시오. 여긴 제가 잘 알아서....뒷정리까지 확실해 해 두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윤현수는 자기 앞에 무리를 숙이는 금니 남자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려 준 뒤 휑하니 나가버렸다.
“잠깐만! 윤....우웁!”
뒤늦게 정신을 차린 구재경. 그가 다급히 여길 나가는 중인 윤현수를 향해 소리를 지를 때였다. 두툼한 손 하나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조용히 해. 곱게 죽고 싶으면....”
그 말에 구재경은 또 다시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그러며 뭔가에 목이 막힌 듯 구재경은 더는 윤현수를 부르지 못했다. 아니 부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윤현수의 모습은 완전히 창고 안에서 사라졌고.
* * *
구재경의 입을 틀어막은 금니 남자. 그의 정체는 성남의 밤을 지배하는 성남 제일파 보스인 박태수였다. 하지만 박태수는 무늬만 제일파 보스지, 실제 제일파 보스는 좀 전에 이곳 창고를 나간 윤현수였다.
조폭들의 낭만적인 주먹 시절은 이미 오랜 옛 추억에 불과했다. 요즘은 조폭 조직도 돈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조직을 꾸려 가려면 돈 없이는 안 되니까.
그 결과 조폭 조직도 돈 있는 놈이 보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성남과 광명 쪽 조폭들은 JG투자운영의 대표인 윤현수 밑으로 들어갔다.
윤현수는 그런 그들을 합법적인 회사의 직원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박태수가 성남 제일파 보스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그 밑에 조폭들은 그가 아닌 윤현수를 자신들의 보스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박태수는 일종의 조폭계의 바지사장인 셈이었다. 당연히 쪽팔리니까 그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건 사실이었다.
“괜한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죽어.”
박태수는 눈앞의 JG투자운영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구재경에게 너무도 무심히 사형 선고를 내렸다.
“안, 안 돼. 사, 살려 주시오. 내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
구재경은 누구나 그렇듯 이번 삶에 미련이 많은 모양이었다. 살고 싶어 안달인 걸 보니 말이다. 하지만 구재경은 몰라도 박태수는 그가 이렇게 될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윤현수가 바드득 이를 갈며 그럴 거라고 이미 수십 번 넘게 그에게 말해 왔으니까.
즉 윤현수는 그 동안 자신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성남과 광명의 조폭 두목들에게 풀어 온 거다.
“씌워.”
박태수는 그 말 후 더는 말하고 자실 것도 없다는 듯 구재경에게서 뒤돌아섰고, 묶인 신세의 구재경 뒤에 서 있던 조폭 중 하나가 검은 비닐봉지를 구재경의 머리에 씌웠다. 그리고 그 검은 봉지를 타이트 하게 묶었다.
“우우웁....웁....”
살아보겠다고 구재경이 숨 쉬려는 발악이 창고 밖으로 나가는 박태수의 귀에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가 창고를 나가고 창고 문이 닫히는 순간 더는 구재경이 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고 밖에서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며 박태수가 말했다.
“날씨 한 번 좆같네.”
비라도 오려는 듯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흐려 있었다. 박태수는 곧장 창고 밖에 대기 중인 자신의 차로 향했고 차에 타기 전, 그의 차 문을 열어 준 조직원에게 말했다.
“시체 잘 처리 해.”
“네.”
박태수는 그 대답을 들으며 차에 탔고 잠시 후 그를 태운 차가 조용히 창고를 빠져 나갔다.
부우우웅!
그 차가 사라지자 좀 전 박태수에게서 지시를 받은 조폭 조직원이 창고 쪽으로 돌아갔다. 그가 창고 안에 들어서자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에이 씨. 냄새....”
아마도 구재경이 죽는 과정에서 똥오줌을 싸 댄 모양이었다. 그때 그 조폭 조직원에게 마스크를 건넸고 마스크를 쓴 그 조폭 조직원이 안에 있던 다른 조폭 조직원들에게 외쳤다.
“빨리 처리하고 술 한 잔 빨러 가자.”
그 말에 창고 안 조폭 조직원들이 움직였고 잠시 후 구재경의 시신은 그 창고 안에 있던 소각로에 넣어져서 연기와 재만 남긴 채,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
* * *
성남 제일파 보스인 박태수보다 먼저 창고를 나온 윤현수. 그가 차 안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강 사장. 어떻게 됐어?”
그가 대 놓고 물었고 그 물음에 상대가 성심 성의껏 대답을 했다.
-중국 다렌의 조직과 접선에 성공은 했는데 그쪽에서 좀 과한 요구를 해 오고 있습니다.
“과한 요구?”
-네. 서울에 자신들의 둥지를 틀 수 있게 해 달라고....
“뭐? 허어....그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그래서?”
-이쪽에서 좀 더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잘했어. 이것들이 어디서 그저 먹으려고....”
서울 안에서 조폭 조직을 운영해 나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윤현수도 성남이나 광명이 아닌 서울에 조폭 조직들을 운영하고 있었을 테니까. 한데 중국 놈들이 서울에 자리 잡게 해 달라고? 그랬다간 내년 어느 날이 윤현수의 제삿날이 될 터였다.
서울의 조폭 조직들이 그와 그 밑에 조폭들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특히 서울에서 외국 조직이 자리 잡고 활동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그러려면 서울의 최대 조폭 조직들의 비호가 있어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고 독자적으로 외국 조직이 서울에서 자기 멋대로 사업을 벌인다? 그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멋도 모르는 중국 변방의 조직 따위가, 서울에서 자기들 영역을 갖추고 사업을 하게 해 달라니, 윤현수는 기가 찼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그쪽은 손 떼고 딴 쪽을 좀 더 알아 봐.”
-네. 회장님.
원래는 구재경을 제거하는 김에 오늘 중으로 제주도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윤재구 회장도 같이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맡아 줄 제주도의 짱깨들이 생각보다 까칠하게 굴고 있었다.
윤현수는 부친 제거 문제를 광명 도끼파 두목인 강재경에게 맡겼다. 강재경은 화교 출신으로 중국어에 능했다. 그런 그의 능력을 믿고 이번 일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그가 일을 처리하는 게 미숙하자, 윤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주도에 짱깨들 버글거린다는 데 그 중 몇 놈 못 포섭해서는....”
윤현수의 입장에서는 중국 조폭 조직 어디가 됐던 자기 아버지 윤재구 회장만 없애주면 됐다. 그게 설혹 조직이 없는 뜨내기 양아치들이라도 상관없었고 말이다. 한데 강재경은 계속 제주도에 있는 중국 조직을 끌어 들여서 그 일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윤현수는 강재경 말고 다른 쪽에 그 일을 맡길 생각을 굳히고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 되어 있는, 이런 일을 특히 잘하는 자들의 인명부를 쭉 살폈다. 그쪽은 하는 일의 특성 상 전화번호를 자주 바꿨다. 그래서 지금 강재경이 가지고 있는 연락처 중 열에 아홉은 없는 번호 일 공산이 컸다. 그러다가 최근 알게 된 곳이 마침 윤현수의 눈에 띠었다.
“아아. 맞다. 여기....”
그렇게 뒤처리를 잘한다고 저번 주 골프 회동 때, 금봉산업 박 대표가 침을 튀겨가며 말한 곳이었는데, 윤현수가 골프 내기에서 이겨 받기로 한 5백만 원 대신 획득한 전화번호였다.
그곳이 비록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 있었지만 그거야 비행기타고 날아가면 될 일이고. 윤현수는 힘들게 찾아 낸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생각보다 훨씬 중후한 목소리. 전화 받는 사람의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일 처리만 잘해 주면 그만이지.
“반갑소. 나는 JG투자운영 대표 윤현수라고 하오. 일 좀 맡길까 해서 전화 드렸소만?”
-으음. 일이라....무슨 일인지 들어봅시다.
차분한 상대의 말에 윤현수는 제주도에 있는 늙은이 하나 제거해 달라고 했다. 의뢰비로 10억을 제시하며 말이다. 그러자 상대가 생각보다 신중하게 나왔다. 제거할 사람의 기본적인 인적사항부터 보내보라며. 이에 윤현수는 부친에 대한 인적사항을 저쪽이 말한 메일 주소로 보냈다.
* * *
배준섭은 서울에 있는 신비 에이전시 소속의 처리자 였었다. 한데 그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이르자 눈도 침침해지고 행동도 둔해지면서, 조직에서 알아서 그에게 은퇴를 권고했다.
배준섭은 그 권고를 받아드려서 10억에 달하는 은퇴 자금, 그러니까 처리자라는 직업을 손 털며 받은 퇴직금을 들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데....
세상은 무서웠다. 배준섭도 보통은 아닌데 사기꾼들은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퇴직금이었던 10억이 불과 5년 사이 10만원으로 변했다.
“젠장....”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배준섭은 그때부터 처리자 일을 시작했다. 당연히 그가 속했던 신비 에이전시 몰래 은밀하게 말이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처리자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끌어 모아서 퇴역 군인들이 모임인 재향군인회 같은 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임이 하는 일은 주로 돈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그들이 잘 하는 게 그것이다 보니 그들은 금방 유명해졌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서울의 3대 처리자 에이전시 중 한 곳이었던 신비 에이전시를 집어 삼키며, 조직의 규모를 더 키우는 데 성공한 김훈 에이전시의 대표 김훈.
“그러니까 신비 에이전시 출신 늙은이들이 모여서 앙큼한 짓을 저지르고 있단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신비 에이전시 출신 선배가 주축이 되어서, 이미 은퇴한 처리자 선배들을 모아서, 돈 받고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요.”
“그게 그 소리지.”
“아니죠.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대표석의 김훈 앞에서 답답하다는 듯, 이번에 새롭게 김훈 에이전시의 지도부의 임원 중 한 명이 된 금명훈 팀장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