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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최근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잦았다. 근데 진짜 총뿐 아니라 장난감 총 또한 적잖은 말썽을 일으켰다. 겉으로 봐서 진짜와 가짜 구분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의 대응 총격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해 진 것.
이에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된 경찰이 장난감 제조업체에 소송을 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최철기는 총기 규제가 없는 미국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한데 지금 눈앞에 중년 남자가 나름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자신에게 내 보인 권총이 바로 그 진짜 같은 가짜 권총이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중년 남자가 무안해하면서 살짝 목소리 톤을 낮춰 최철기에게 물었다. 웃을 만큼 실컷 웃은 최철기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당신도 군대를 나왔으면 총기에는 고유 번호가 있다는 거 정도는 알거 아니오?”
“....”
“허얼. 뭐야? 당신 신의 아들이었어?”
보기에는 사람 여럿 잡았을 거 같이 생겨 놓고, 정작 상대가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최철기가 어이없어 할 때였다. 중년 남자가 뻔뻔한 얼굴을 치켜뜨고 말했다.
“그래. 나 군대 안 갔다. 그게 뭐?”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중년 남자의 그런 반응에 최철기는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왜? 너도 군대 안 간 게 죄냐고 하려고?”
얼마 전 병역 기피하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연예인이 한 말이었는데 그걸 상대 중년 남자에게 하자, 그가 안 그래로 화난 얼굴이 더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러던 말던 최철기가 먼산을 보며 말했다.
“빨리 용건이나 밝혀. 지금 기분 더러우니까.”
“뭐?”
전혀 기분 나빠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상대 중년 남자가 어이없어하며 그를 쳐다 볼 때였다. 최철기가 갑자기 돌변해서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 중년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C발 새끼야. 너 같으면 내 집 근처에서 총 차고 온 놈이 반갑겠냐? 물론 그 총이 가짜라서 지금 참고 있는 거지만.”
“아아....”
그제야 상대 중년 남자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원래 이런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건 바로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것.
한데 자신은 지금 최철기의 집 근처에서 그와 만남으로 해서, 최철기로 하여금 괜한 오해를 사게 만든 것이다.
“미, 미안하다. 여기가 당신 집 근처인 줄 몰랐다.”
“하아....그래. 좋아. 당신 사과는 받아주지. 그러니까 빨리 말해. 왜 나를 보러 왔는지.”
“그, 그게 실은....”
중년 남자는 자신이 왜 최철기를 만나러 왔는지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듣고 난 최철기가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아....내가 흥신소 때려 치고 취직 한 거 당신들도 알잖아?”
최철기는 상대가 자신의 최근 근황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 말했다.
“그, 그거야 이쪽의 이목을 속이려고....”
“속이긴 뭘 속여? 내가 뭐 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그럼 왜 흥신소 폐업 신고를 안 한 건데?”
“그거야 곧 할 생각....하아....그래. 다 내 잘못이다. 마누라가 폐업 신고하라고 할 때 했었어야 했는데....좋아. 내일 당장, 아니다. 내일 주말이지. 월요일에 흥신소 폐업신고 할게. 됐지?”
“....”
그러자 상대 중년 남자가 잠시 물끄러미 최철기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좋아. 당신 말을 믿지. 하지만 객쩍은 짓을 꾸미다 들키면 그때는 지금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상대 중년 남자가 제대로 최철기를 겁박했다. 그러자 최철기가 피식거리며 말했다.
“저기, 저기, 그리고 저 안에 둘. 네 명이 단가?”
최철기가 손짓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근데 그런 최철기를 보고 상대 중년 남자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어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 상대 중년 남자에게 최철기가 이어서 말했다.
“다음에 올 때는 열 두 명 정도는 더 데리고 와.”
그 말 후 야외 테이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최철기가 남은 맥주를 다 마시고는 빈 캔을 옆 쓰레기 통에 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자기 집으로 향했다. 그때 상대 중년 남자의 호주머니 속에서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치익! 잡을까요?
그러자 상대 중년 남자가 정장 자킷 호주머니 속에서 소형 무전기를 꺼내서 그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아니. 그냥 내 버려 둬.”
그렇게 무전에 대한 답을 한 뒤 상대 중년 남자는, 무전기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팔짱을 낀 체 최철기가 그의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그러다 최철기가 막 코너를 돌아서 그의 눈에서 사라지자, 한 손으로 자기 턱을 쓸며 말했다.
“역시 보통은 아니로군.”
하지만 그 말 후 몸을 일으킨 중년 남자. 그는 테이블 위에 무전기를 챙겨서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무전기를 끄기 전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철수한다.”
그렇게 무전기를 끈 뒤 그 무전기를 원래 넣어 두었던 정장 자킷 호주머니 속에 넣은 중년 남자. 그가 왔던 길을 돌아갈 때, 그 뒤로 건장한 남자 넷이 조용히 따라 붙었다. 잠시 후 그들 앞으로 차 두 대가 왔고 이내 그들을 싣고 조용히 사라졌다.
* * *
사채시장의 큰손에, 주식 투자의 대부로 불렸던 전前 JG자산투자운영의 윤재구 회장.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전前 회장이라는 거다. 한국 주식시장에 그가 굴리고 있는 자본이 거의 2조에 달하면 뭐하랴? 이제 곧 죽을 늙은인데 말이다.
“하아. C발. 이것들이....내가 진짜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윤재구 회장의 장남이자 현 JG투자운영의 대표인 윤현수. 그는 아버지인 윤 회장이 회사를 구재경 전무에게 맡기고 제주도로 떠났을 때도 꾹 참았다. 그리고 지금껏 바지사장 노릇을 하며 대표 자리만 지키고 있었지만 그래도 인내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윤 회장이 당연히 자신이 물려 받아야 할 재산인 주식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증여 한 사실을 알게 되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들을 당장....”
윤재구 회장은 자신의 자식들을 너무 얕봤다. 세 아들 모두 개망나니들이었지만, 망나니들도 인맥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장남인 윤현수의 경우 아주 위험천만한 놈이었다. 한 마디로 살모사 같은 놈이랄까? 살모사(殺母蛇), 말 그대로 ‘어미를 잡아먹는 뱀’이란 뜻이다.
윤재구의 장남 윤현수는 그 정도로 속이 시커멓고, 또 비정한 놈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주위 눈을 속이고, 성남시와 광명시의 최대 조폭조직의 뒷배 노릇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윤재구 회장도, 현 JG투자운영의 실세인 구재경 전무도 그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단 점이었다.
“태수야. 나다. 구재경이 잡아 와. 그리고 재경이 한테 얘기해서 제주도에 있는 중국 애들 하고 접촉해서....”
윤현수는 자신이 뒤를 봐 주고 있는 성남의 조폭 조직 두목과 제법 길게 통화를 하고 나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휑한 대표실의 대표 자리. 이태리제 마호가니 책상 위에 보이는 건 앞쪽에 놓인 명패뿐이었다.
보통 회사 대표의 책상이라면 결재 서류가 잔뜩 쌓여 있어야 정상인데, 그의 책상 위는 아무 것도 없었다.
JG투자운영의 주요 결재서류들은 죄다 구재경 전무에게로 보내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내가 여기 진짜 대표다.”
그 말을 혼자 중얼 거린 뒤 윤현수는 대표실을 나갔다.
“앗! 대표님!”
윤현수는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비서실을 지나쳐서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그걸 본 비서가 다급히 그를 쫓았지만 하이힐의 여비서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윤현수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갈 것이지....”
짜증 섞인 말과 함께 여비서가 핸드폰을 꺼내 윤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어디 가는 지 물어 보려고 말이다. 하지만 윤현수는 그녀 전화를 씹고 받지 않았다.
“아이. 진짜....”
몇 차례 더 윤현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가 기어코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비서는 씩씩 거리며 구재경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전무님. 대표님 어디 간다는 말씀도 없이 지금 막 나가셨어요.”
-그래? 뭐 또 어디 당구장에나 갔겠지. 임 비서도 눈치껏 빨리 퇴근 해.
빨리 퇴근하란 말에 그제야 화난 얼굴을 푸는 윤현수의 비서. 그녀는 구재경 전무와 통화 후 거울을 꺼내서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장이 끝나자 바로 퇴근 준비를 시작했고, 평소 퇴근 시간 보다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 * *
투자운영사의 경우 책상 밖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꽤 됐다. 그래서 구재경 전무는 H은행장과 점심 식사 후 잠깐 회사에 들러서 급히 처리해야 할 결재서류를 살핀 뒤 다시 회사를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서울의 한 골프장. 평일이지만 CEO들이나 재벌가 사람들에게는 주말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투자 유치를 해야 하는 구재경으로서는, 골프를 치면서 열심히 입을 털어야 했고.
“아아. 목이야.”
하도 말을 많이 한 탓에 목이 칼칼해진 구재경은 시원하게 이온음료를 마시며 그래도 웃었다.
왜냐하면 여기 온 목적만큼은 달성 했으니 말이다.
“자아. 이제 그만 회사로 가 볼까?”
이번 투자 유치로 JG투자운영은 드디어 적자운영의 늪에서 벗어 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런 호기를 놓칠 구재경이 아니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면 그때는....”
구재경은 그 동안 숨겨 온 발톱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이미 윤재구 회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윤 회장이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아들들이 회사를 물려받을 재목이 아니라면 그보고 JG투자운영을 맡으라고 말이다.
윤 회장의 개망나니 아들들이 JG투자운영에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 능력도 안 됐고, 애당초 구재경이 그들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구재경이 윤 회장 뒤를 이어서 JG투자운영의 다음 회장이 되는 거뿐이었다.
사실상 접대 골프를 마친 뒤 구재경이 골프 클럽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대표실이었다. 보아하니 그가 대표실에 심어 놓은 임 비서의 전화였다. 그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고 간단히 통화 후 혀를 찼다.
“쯧쯧. 그 새를 못 참고....”
장남이라고 윤재구 회장은 투자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윤현수를 떡하니 JG투자운영 대표 자리에 앉혔다. 처음엔 대표랍시고 의욕적으로 설치던 윤현수. 그런 그를 구재경은 그냥 내버려 뒀다. 그랬더니....몇 번의 대형 사고를 쳤고, 그 결과 윤현수는 바지 사장으로 전락했다.
임 비서의 말에 따르면 또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날랐다. 보나마나 어디 당구장이나 술집에 가서 당구를 치든, 술집 여자 젖가슴이나 만지며 술이나 마시고 있겠지.
구재경으로서는 윤 회장의 자식들이 이렇게 엇나가 주면 좋았다. 구재경은 골프 후 몸이 무거웠는데 임 비서의 전화를 받고 나서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회사로 가지.”
이대로 퇴근해도 됐지만 회사의 실질적인 대표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회사에 남아 있었다. 그걸 처리하고 퇴근해야 했기에 구재경은 다시 JG투자운영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를 태운 차량이 서울의 한 골프장을 서울 도심으로 들어가는 우회 도로 앞 사거리에서 막 신호를 받고 멈춰 섰을 때였다.
우와아아앙!
“어어....”
콰앙!
좌측에서 우측으로 직진해서 가던 트럭이 갑자기 차체를 틀어서 구재경을 태운 차량을 들이 받았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지만 그 충격이 워낙 커서, 구재경을 태운 차가 도로 옆을 몇 바퀴 굴렀다. 그 과정에서 뒷머리를 강하게 시트에 부딪치면서 그만 의식을 잃은 구재경.
“으으으으....”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낸 채, 그를 보고 웃고 있는 그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역겹게 생긴 남자였다.
“허억!”
놀란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는데 그의 팔다리가 그의 뜻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순간 구재경은 자신의 팔다리 쪽으로 시선을 줬고, 자신이 걸상에 결박당한 채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이게 무슨....”
당연히 구재경은 놀랐다. 분명 트럭이 자신이 탄 차를 치었고 그때 차체가 도로 위를 나뒹굴면서 갑자기 뒷머리에 강한 충격이....
“으으윽....”
뒷머리 생각하니 갑자기 뒤통수에 묵직한 느낌과 함께 머리가 깨질 거 같은 두통이 그의 얼굴을 와락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그런 그의 귀에 좀 전 그에게 금니를 드러내고 웃었던 남자의 말이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거 같으니까....회장님께 전화 드려.”
‘회장님?’
금니의 남자가 말한 회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구재경은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