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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67화 (56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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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최일호를 태운 차량이 조용히 삼명호텔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20여분 쯤 차가 쭉 달렸고, 서울 굴바위산 아래 위치한 도심 속 한 화장터에 도착했다.

그곳은 좋은 말로야 추모공원 간판을 내 걸고 있었지만, 여기서 무슨 극악무도한 일이 벌어지는지 최일호가 모를 리 없었다.

바로 흔적 없이 시체를 치우는 일이, 공공연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 안 돼. 살, 살려 줘.”

국정원 요원들이 그를 왜 여기로 데리고 왔는지 뻔했다. 그를 죽이고 바로 시체를 없애버리겠다는 것.

그게 맞다는 걸 증명 하듯 그들이 타고 온 차 뒤에, 바로 따라 온 승합차 안에서 나온 시체주머니가, 실제 그보다 먼저 추모공원 건물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먼저 여기 도착한 최일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버티는 동안에 말이다.

그 3개의 시체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시체들이 누군지는, 누구보다 최일호가 잘 알았다. 그들의 죽음을 불과 30분 전쯤에, 그의 직접 자기 두 눈으로 지켜봤으니까.

보아하니 그 보다 먼저 저들을 화장할 모양이었다. 그 다음은....

“아, 아니야. 난 여기서 죽을 수 없어.”

그때였다. 그를 제압하고 있던 국정원 요원 중 하나가 권총을 꺼내서 그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고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순순히 움직일래? 아니면 저것들처럼 시체주머니에 실려 안으로 들어갈래?”

뭐 하나마나한 질문이었다. 대답이야 정해져 있었으니까.

“갈게. 가. 쏘지 마라.”

최일호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움직였고, 그런 그를 양쪽에서 제압해서 끌고 국정원 요원들이 추모공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최일호는 곧바로 화장장 쪽으로 가진 않았다. 그가 간 곳은 추모공원 안에 나름 화려하게 치장 된 장례식장.

내부 크기가 100평은 됨직한 그 안에는, 먼저 여기 와 있던 젊은 남자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젊은 남자가 누군지 최일호는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젊은 남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면서, 최일호는 그 젊은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종, 종훈아?”

“외삼촌. 어서 오세요.”

김종훈이 웃으며 그를 반겼다. 하지만 최일호의 눈에 그의 웃음은, 뭐랄까 너무 사악해 보인 달까? 여태 살아오면서 김종훈이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보니, 최일호에게 지금 지어 보이는 그의 웃음은 당연히 이상해 보일만 했다. 그리고....

퍽!

“으윽!”

최일호를 제압해서 여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 온 두 명의 국정원 요원들.

그들 중 최일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던 자가, 최일호와 거리가 세 걸음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를 멈춰 세우더니, 그의 뒷무릎을 걷어찼다. 그러자 신음소리와 함께 최일호가 조카인 김종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최일호가 김종훈을 올려다보는 꼴이 되었고, 그런 최일호를 김종훈이 무덤덤하게 내려다 봤다. 이때 최일호는 봤다. 그를 보는 김종훈의 눈이 죽어 있는 걸 말이다.

위험을 직감한 최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 종훈아. 너 왜 이러니? 나 네 삼촌이야.”

“네. 외삼촌.”

김종훈은 최일호를 부를 때 외삼촌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꼬박꼬박 삼촌으로 불렀다.

그만큼 김종훈은 최일호를 친삼촌처럼 여기며 좋아했고 또 존경했다.

그걸 알기에 여기 들어 왔을 때부터 자신을 꼬박꼬박 외삼촌으로 부르는 김종훈이, 지금 화가 상당히 많이 나 있음을 최일호도 눈치 챘다. 그리고 지금 이 화를 김종훈이 풀지 않는다면 자신은 죽는다는 것도 더불어서.

“삼, 삼촌이 잘못 했다. 살려다오. 네 엄마를 봐서....”

엄마라는 말에 웃음끼를 싹 지운 김종훈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리곤 버럭 소리쳤다.

“그걸 아는 분이 엄마 아들인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둬요?”

“그, 그건....나도 어쩔 수 없는....조직의 지시라....”

김종훈은 최일호의 하나마나한 개소리를 한 귀로 듣고 바로 다른 귀로 흘렸다.

자신의 구차한 변명이 김종훈에게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최일호가 다급히 대상을 바꿨다.

“네 사촌들, 네 숙모가 그 동안 너를 얼마나 예뻐했느냐?”

유독 자신을 잘 따른 외사촌 여동생들과 아들이 없어 자신을 아들 같이 여기며, 그 동안 잘해 줘 온 외숙모를 생각하니, 김종훈도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럼 제가 죽으면 우리 가족들은요? 친 동생처럼 당신을 아껴 준 우리 아버지, 외삼촌이라면 꾸뻑 죽는 내 동생들은요?”

최일호는 김종훈을 죽게 내 버려뒀을 때, 김종훈의 가족들의 아픔이 어떨지 생각했었어야 했다. 자기가 죽었을 때 슬퍼할 자신의 가족들처럼 말이다.

“그, 그게....”

김종훈의 반문에 당장 할 말이 없어져 버린 최일호. 그런 그에게 김종훈이 싸늘하게 선언했다.

“잘 가세요.”

“종훈아. 미안하다. 이 삼촌이 잘못했어. 그러니 목숨만....”

하지만 어느 새 권총을 꺼낸 국정원 요원이 최일호의 뒷머리에 총구를 겨눴고, 김종훈은 외삼촌 최일호에게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텅 비어 있는 장례식장 안에 울렸다.

털썩!

생기가 빠져 나가 한 구의 시체로 전락한 최일호의 몸이 썩은 짚단처럼 장례식장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때 총소리를 듣고 장례식장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국정원 요원들. 그들 중 한 명의 손에 시체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식장 밖에 대기 중이다가 총소리가 들리자, 바로 시체를 치우러 식장 안으로 뛰어 들어 온 것이다.

* * *

국정원 요원들이 외삼촌의 시체를 치우는 동안, 김종훈은 딱딱한 얼굴로 계속 뒤돌아서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종훈은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누구 전화인지 살폈다. 그리곤 그의 입에서 굵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아....”

그럴 것이 하필 모친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김종훈은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어디니?

“어디긴요. 일하고 있지. 안 주무시고 왜 전화하셨어요?”

-그게....꿈자리가 하도 뒤숭숭해서. 혹시 너한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내일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잘 됐다.

내일 집에 간다니 무조건 좋아하시는 어머니. 그런 그녀가 이내 미안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네 삼촌이 요즘 바쁜가 보더라. 아까 올케랑 통화 했는데, 위에서 언제 그만 둘지 물었다지 뭐니. 그러니 삼촌이 너 신경 못 써줘도 네가 좀 이해해라.

최일호의 나이는 정년에 가까웠다. 그 나이에 사실 현직에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최일호는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욕심이 화를 불렀다. 정년까지, 아니 정년 연장을 꿈꾸던 최일호.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던, 조카 김종훈을 희생시키려 했다.

현장에서 뛰는 국정원 요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면서 불문율. 바로 상대의 목숨을 노리면, 이쪽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거.

최일호는 그걸 망각했고 김종훈이 죽지 않았으니, 반대로 그가 죽어야 그 불문율이 맞아 떨어지게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상식이 좀 전에 실현이 되었다.

“네. 그럴 테니 염려 마세요. 친구 도움으로 그 문제는 벌써 해결 됐고요.”

-오오 그래? 다행이구나. 이제 마음 놓고 편히 잘 수 있겠다.

“네. 그러니 저랑 삼촌 걱정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

-그러마. 그럼 내일 보자.

“네.”

김종훈은 모친과 통화를 끝낼 때까지 밝은 목소리 톤을 계속 유지했다. 그렇게 모친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널찍한 장례식장에 덩그러니 그 혼자 남아 있었다.

그 사이 국정원 요원들이 외삼촌 최일호의 시신을 처리해서 여기를 다 빠져 나간 모양이었다.

“하아....”

김종훈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김종훈은 털레털레 발걸음을 내디뎌 장례식장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좀 전 거기서 나온 시체주머니가 옮겨져 간 화장장 쪽이었다.

그래도 그가 제일 존경했었던 외삼촌의 마지막 가는 것은 보고 가려고 말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이 외삼촌이라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도리였으니까.

* * *

나는 룸서비스로 시킨 음식들이 오기 전에 욕실로 들어갔다. 핸드폰을 챙겨 들고서.

“허얼....”

신기한 것이 내가 경호실장에게 이 핸드폰을 넘긴 뒤부터, 지금까지 한 통의 전화도, 한 통의 문자도 오지 않았단 점이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기 전 핸드폰을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훌훌 옷을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으으....좋다.”

처음에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다 끝에 가서 찬물로 몸을 식힐 때, 그 온몸에 세포가 새록새록 살아나는 거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막 샤워를 끝냈을 때 세면대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대충 머리를 닦고는 샤워실을 나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어제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피닉스 골프장에 남겨 두고 온 나나미의 전화였다.

나나미를 생각하니 그녀와 엮여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바로 내 중학교 동창이자, 새롭게 내 여자가 된 장혜원 문제였다.

일단 생각은 거기까지만 하고 나는 계속 울려 대는 나나미의 전화를 받았다.

“어. 나나미.”

-저 지금 서울에 도착했어요.

그러고 보니 어제 내 경호팀에 지시를 내려뒀었다. 오전에 나나미를 서울로 데려 오라고 말이다.

“어 그래? 난 방금 일어나서 지금 막 씻고 밥 먹으려는데....”

-밥이요? 잘 됐네요. 저랑 같이 먹어요. 저 아침도 거의 못 먹어서 지금 배가 많이 고파요. 어디세요?

“나? 지금 삼명호텔....”

-어머. 잘 됐다. 저기 삼명호텔 보이네. 기사님. 삼명호텔로 가 주세요.

보아하니 나나미를 태운 차가 삼명호텔 근처 도로 위에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로얄스위트 룸의 객실 호수를 나나미에게 알려주고 통화를 끝냈다.

딩동! 딩동!

그때 로얄스위트 룸 밖에 룸서비스로 내가 시킨 옷과 액세서리들을 챙겨 든 호텔 직원들이 먼저 왔다.

내가 그걸 받아서 재벌 3세 다운 모습으로 변신을 완료 했을 때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확인하니 내가 룸서비스로 주문한 음식들이었다.

그 음식들을 식탁에 다 차려 놓고 호텔 직원들이 나갈 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나나미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호텔 직원에게 문을 열어 두라고 했다.

“우와. 여기 뭐예요?”

잠시 후 삼명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 들어 온 나나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방 안을 살피며 한 동안 호들갑을 떨었다.

“이리 와. 배고프다며?”

나는 그런 그녀를 내가 벌써 자리 잡고 앉은 식탁으로 불렀고 내가 시켜 놓은 음식들을 보고, 나나미가 다시 하이 톤의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떠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입에 두툼한 양념 잘 벤 장어구이 한 점을 밀어 넣었고, 그제야 수다스런 나나미의 입이 더 떠드는 걸 막을 수 있었다.

* * *

나나미와 내가 한참 식사 중일 때였다. 스테미너 음식들을 먹어선지 몰라도 확실히 몸에 기력이 빨리 회복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나미는 특히 장어구이 꽂혀서 벌써 혼자 절반 넘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내가 장어구이를 더 시켜야 하나 생각할 때였다.

장어구이 말고 다른 음식들이 내 눈에 보였다. 식탁 가득 채운 그 음식들을 보니 지금 장어구이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썰다가 만 스테이크를 다시 먹기 좋게 썰었다. 그리고 썬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는데....

“와우....”

토시살 스테이크 육질이 아주 그냥 죽여줬다. 내가 스테이크를 먹고 황홀해하자, 나나미의 포크가 썰어 놓은 스테이크로 향했다. 그리곤 그 중 제일 작게 썰린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이시!”

그리곤 맛있다고 호들갑이다. 그렇게 나는 장어구이 말고도 다른 음식들도 열심히 먹었고, 그런 나를 보고 있다가 내 얼굴 표정을 보고 나나미도 거들기 시작하면서, 식탁 위 음식들이 빠르게 비워져 나갔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배가 거의 다 차고 이제 그만 젓가락을 놓고 후식으로 뭘 먹을지 생각하고 있을 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나나미가 계속 먹게 두고 식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핸드폰을 올려놓은 소파테이블로 향했다.

“누구지?”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자마자 바로 누구 전화인지 확인을 했다. 그랬더니 블랙머니 박 비서였다.

아마도 어제 내가 시킨 일 때문에 전화를 한 거 같았다. 원래라면 어제 저녁이나 오늘 아침에 전화를 했을 텐데, 아무래도 어제 내가 터트린 그 일 때문에, 내 눈치를 보다가 이제야 전화를 건 거 같았다.

박 비서의 경우 유독 나에 관한한 정보가 빨랐다. 아무래도 투자 쪽으로 내가 워낙 튀다보니 그런 모양인데....

그렇다보니 오늘 있은 대통령 하야와 같은, 천지개벽할 사태의 배후에 내가 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 박 비서.”

-목소리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대표님. 존경합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에게 이렇게 전화 받자마자 뜬금없이 고백 받는 기분은 사실 별로였다.

“어. 뭐....그래. 왜 전화했어?”

그래서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고, 자신이 좀 오버한 걸 박 비서도 인지한 듯, 그 역시 내게 전화한 이유를 빠르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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