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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휘리리릭! 콰쾅!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간 대통령. 그가 뭔가 열심히 보고하는 비서관의 말을 듣다가, 도저히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 대통령 명패를 집어던졌다.
그것이 집무실 문짝을 강타하면서 집무실 안에 요란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문짝에 맞고 튕겨 나온 그의 명패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하필 두 동강이 나버렸다.
마치 앞으로 대통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암시해 주듯 말이다.
“이 씨....”
대통령은 차마 비서관이 있는 앞이라 욕설을 내 뱉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시뻘겋고 씩씩거리는 것이 화가 정말 많이 난 것 같았다.
“국정원장은?”
“아직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이 상황에 대체 뭘 하고 있기에....”
그때였다. 비서관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바로 확인한 비서관이 말했다.
“국정원장입니다.”
“이리 줘.”
대통령은 비서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듯 해서는, 국정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원장. 나요.”
-네? 아아. 대통령님....
국정원장은 비서관의 전화를 대통령이 바로 받을 줄 몰랐는지 당황한 티를 냈다.
그러던 말든 지금 당장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통령이 다급히 말했다.
“누구요? 어떤 자가 감히 청와대를 도청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요! 여기가 청와대인데!”
대통령의 격앙 된 목소리에는 분노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다. 뭐 이미 청와대 보안 팀에는, 그 책임을 물어서 팀장을 비롯한 간부급 직원들의 경우 사직 처리한 대통령이었다. 그 만큼 대통령은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그, 그것이....아직 파악 된 게 없어서....일단 TVM뉴스데스크 쪽으로 요원들을 보냈으니, 그쪽에서 무슨 정보든 나올 겁니다.
“그 녹취록 빨리 찾아내서 없애고, 빠드득....퍼지는 거 막으시오. 그리고....빠드득....누군지 빨리 알아내시오. 빠득!”
그 말을 하면서 대통령이 수시로 이를 갈았다. 하긴 지금 대통령 입장에서 그 녹취록을 퍼트린 자를 갈아 마시고 싶겠지.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국정원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통화 후, 핸드폰을 원래 주인인 비서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늘 경호실 당직이 누구지?”
“경호본부장님으로 압니다.”
“경호본부장 지금 즉시 여기로 오라고 해.”
“네.”
대답 후 쪼르르 대통령이 집어 던진 두 동강 난 명패 쪽으로 뛰어간 비서관. 그는 그 명패를 챙겨 들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아아....”
비서관이 나가자 머리가 많이 아픈 듯 대통령은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집무실 책상으로 가서 그 책상 서랍 속에 두통약을 꺼내서 두 알, 아니 세 알을 입 속에 틀어넣었다. 그리곤 힘없이 책상 뒤쪽에 딱 봐도 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바로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고개마저 뒤로 젖힌 대통령. 그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동안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쥐죽은 듯 가만 있던 대통령. 그가 갑자기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혹시....”
녹취록을 퍼트리는 데 방송국을 이용했다. 그건 결코 보통 사람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모여서 흉계를 짜고 저지른 짓이 분명했다.
잠시 뒤 대통령이 눈을 번들거리며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이게 삼명그룹 쪽 짓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쪽이 아니고선 감히 이런 식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 칠 곳이 없었다.
“....역시 녹록치 않은 곳이야.”
대통령은 자신의 약점이라 볼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비리 증거를 없애기만 하면, 삼명그룹도 더는 자신을 우습게보지 않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비리 증거가 없더라도, 이런 식으로 그의 목줄을 바로 그어 버릴 수 있는 정보망과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C발....”
대통령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삼명그룹을 밟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하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삼명그룹에 무릎을 꿇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어떡하든 지금 그의 힘으로 이번 사태를 무마시켜 볼 생각이었다. 그 다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삼명그룹에 머리를 숙이더라도, 대통령은 최대한 버텨 보기로 했다. 그런 그의 인내심이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앉게 만들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자신의 그 뚝심을 이번에도 믿고 묵묵히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상대에 대해 너무 몰랐다. 백준열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특히나 자신의 적에게 그는 자비가 없었다. 당연히 정치적인 협상이고 나발이고 없었고, 무조건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니 지금의 대통령처럼 우직하게 버티는 자에게 있어, 백준열은 극도로 그 상성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백준열에게 있어서 대통령만큼 처리하기 쉬운 상대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대통령은, 그만큼 지금 제대로 된 오판을 한 채 헛물켜고 있었던 것이다.
* * *
TVM 본사 빌딩 앞으로 등장한 십 여대의 차량들, 그 차들이 건물 입구 앞을 사실상 틀어막았다.
“뭐, 뭐야!”
“당신들 뭔데....”
당연히 그 소식에 TVM의 경비를 맞고 있는 업체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국, 국정원?”
국정원이라는 그 말은 방송국 측 경비원들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귀에 인이어를 꽂은, 딱 봐도 국정원 요원 같은 자들이 우르르 TVM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보도국이 어디야?”
그리곤 TVM의 저녁뉴스를 방송한 보도국이 있는 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는....
보도국과 뉴스데스크, 뉴스 부조실을 장악했다. 그리곤 거기 있는 사람들을 격리해서 한 사람씩 취조하기 시작했다.
“박인호 대표는?”
“퇴근했답니다.”
“경비실 지하주차장 CCTV를 통해 보내 40분 전에 회사를 빠져 나간 걸로....”
“당장 경찰에 협조요청하고 박인호 대표 신병 확보 해.”
“네.”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그 밑에 요원들은 다 데리고 TVM으로 달려 온 강성혁은, 곧 대형 핵폭탄 급 뉴스를 중계한 이곳 실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박인호 대표가 일절 입 다물고 있다가, 뉴스가 시작 되고나자....그런 식으로 녹취록을 터트렸다는 거로군?”
“네. 실로 치밀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박인호에 대한 정보는?”
“여기....”
국정원 기조실장 강성혁은 수하가 건네는 현 TVM대표 박인호에 대한 신상 정보를 쭉 살폈다. 그러다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삼명그룹 계열사 임원으로 있다가....JYB엔터? 거기 부대표에서 TVM대표로 와?”
강성혁은 JYB엔터 대표가 백준열이고, 그가 최근 TVM을 인수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TVM 대표 자리에 앉힌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써 먹을 수 있도록.
“젠장....”
그렇다면 박인호 대표의 배후야 뻔했다. 바로 백준열. 그리고 백준열은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즉 이번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삼명그룹이 개입이 됐다는 소리였다.
안 그래도 요즘 삼명그룹과 껄끄러워진 국정원이었다. 그렇다보니 삼명그룹 쪽 사람이라고 봐도 될 1차장이 국정원장과 자신을 보는 눈이 영 살벌했다.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수장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국정원의 실권은 1차장이 쥐고 있었다.
그럴 것이 국정원 요원들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게 1차장이었으니까. 즉 1차장이 미쳐 날 뛰면 국정원장이고 기조실장이고 다 필요 없었다. 자칫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지이이잉!
그때였다. 강성혁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하니 아까 국정원에서 이쪽으로 올 때 따로 임무를 맡겼던 요원들 중 한 명의 전화였다.
“어. 차 과장. 어떻게 됐어? 뭐? 30명? 하아....알았으니 철수 해.”
강성혁은 TVM 박인호 대표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을 요량으로, 자신이 특히 신임하는 특수 요원들을 박인호 대표 본가로 은밀히 보냈었다.
그랬는데 그 특수요원들이 한 걸음 늦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자들이 이미 그곳에서 박인호 대표 가족들을 보호하고 있었단다. 근데 그 자들의 정체가 삼명그룹 경호원들이라고 했다. 그것도 몇 명도 아닌 30명이 넘을 거 같다나?
그런 상황에서 비록 국정원의 특수 요원들이라지만, 달랑 3명으로는 거기 간 강성혁이 보낸 요원들로는, 삼명그룹 경호원들을 제압하기 불가능했다. 그래서 강성혁은 그 요원들에게 철수를 명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렇게 되면 박인호 대표를 통해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기는 틀린 상황. 하지만 지금껏 드러난 정황 증거 만으로도 강성혁은 이번 일을 누가 꾸몄는지, 그 배후를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전화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듯 통화 연결 음이 들리기 무섭게 국정원장이 바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배후가 누구야?
“무사히 TVM을 장악했고, 취조 중입니다. 한데 여기 대표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그 보고에 국정원장이 바로 말했다.
-경찰에 협조 요청은 했을 테고. 그 가족들은?
역시 국정원장이었다. 그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단 사실에, 통화 중인 강성혁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지 못하다 보니, 올라갔던 입 꼬리가 바로 축 쳐졌다.
“요원들 보냈는데....삼명그룹에서 먼저 손을 썼더군요.”
-뭐? 삼명그룹!
국정원장은 딱히 뒤이어 말하지 않았지만, 거기서 강성혁의 입에 왜 삼명그룹이 나오는지 묻고 있었다.
“여기 박인호 대표라는 자의 바로 전 직장이 JYB엔터란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뉴스 배후에 백준열이 있는 거 같습니다.”
강성혁은 슬그머니 이번 일을 꾸민 게 백준열 임을 내비쳤다.
-그, 그런가?
자신의 말에 국정원장이 적잖아 당황해 하는 게 느껴지자, 강성혁이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삼명그룹이 나섰으면 어려운 거 아닙니까?”
즉 대통령이 그 자리 지키기 어렵지 않냐는 말이었고, 그걸 못 알아들어 먹을 국정원장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망발인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야. 감히 기업 따위가....
발끈하는 국정원장. 순간 강성혁은 직감했다. 국정원장이 대통령이라는 다 삭아서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줄을 잡고 있다는 걸 말이다. 원래 국정원장 쪽에 슬쩍 한 다리 걸치기만 하고 있었던 강성혁은, 가급적 빨리 국정원장과 손절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그 뒤로 형식적으로만 대답하고, 자신이 뭘 할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눈치 빠른 국정원장이 그걸 모를 리 없었고. 해서 그들끼리 통화는 이내 끝이 났다.
“자자. 다들 하던 거 멈추고....철수 한다.”
강성혁은 더 미련두지 않고 자신이 데려 온 국정원 요원들에게 TVM을 떠날 것을 지시했다. 기조실장의 지시에 국정원 요원들은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빼서 곧장 TVM본사 건물을 나섰고, 입구 앞에 바리케이드 쳐 놓은 자신들이 타고 온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TVM을 빠져 나와서, 아직까지도 그 주소가 비밀로 취급되는 국정원 본원으로 향했다.
* * *
누가 뭐래도 국정원의 수장은 국정원장이었다. 비록 얍삽한 기조실장이 자기에게서 발을 뺐지만, 그래도 국정원장을 따르는 국정원의 고위 간부는 아직 남아 있었다. 특히 그의 지시라면 언제든지 불길 속으로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는 3차장, 국정원장 원상벽은 자신이 3차장이 아닌 기조실장을, 자신을 대신해서 국정원장 자리에 앉히려 한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서 싹 지우고 뻔뻔하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원장님.
“백준열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내. 그리고 빨리 그 새끼 잡아들여!”
국정원의 정보망이면 빠르면 몇 분, 길어도 십여 분이면 현재 백준열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낼 수 있었다. 국정원장의 뜬금없는 그 지시에도, 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3차장은 신속하게 대답했다.
-네. 바로 알아보고 놈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3차장과 통화 후 국정원장 원상벽은 곧장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대통령이 바로 핫 라인으로 원상벽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나?
“누구 짓인지 알아냈습니다.”
-누구야?
“백준열입니다.”
-백준열이면....백승렬 회장 막내아들 말인가? 최 서방을 모함한 그?
사실은 모함한 게 아니라 팩트를 제보한 거지만, 뭐 어째든 대통령이 그렇다니 그냥 넘어간 원상벽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삼명가의 그 막내아들이요.”
-그, 그 개새끼가 진짜....그래서?
“일단 백준열을 잡으라고 국정원 요원들을 풀어 놓기 했습니다만....”
-잘했어. 내 그 새끼를 그냥 죽이지 않을 걸세.
원상벽은 완전 백준열을 죽은 놈 취급하는 대통령의 말에 흠칫 놀랐다. 상대는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아들이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삼명가의 자식을 죽이면, 그쪽과는 철천지원수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