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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삼명그룹 비서실의 김창규 과장은, 사실대로 김종훈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거 같았지만.
불과 30분 전이었다. 갑자기 경호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당장 경기도 양평군 가평면에 진봉 주유소로 가라고 말이다.
이때 김창규는 자신이 속한 경호 2팀과 경호 1팀 경호원들과 같이, 경기도 가평면에 가평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비번이거나 근무를 끝낸 경호원들끼리, 친목 도모와 단합을 위해 축구를 하고나서, 같이 저녁 회식을 즐길 계획이었다.
그들이 서울이 아닌 이곳까지 와서 이러는 이유는, 바로 이곳 근처에 삼명그룹 연수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진급을 위해 연수원에서 내일부터 교육을 받기로 되어 있던 경호 인원들이었던 것이다.
즉 오늘 저녁에 연수원에 입소해서 내일 오전부터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그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그들이, 축구와 회식까지 하고 느직하니 연수원에 들어가서 바로 잠을 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근데 하필 그들이 축구하는 곳 인근에, 어제 비서실의 정보를 빼내 달아난 스파이가 있다는 것이다.
“출동이다.”
김창규의 외침에 막 축구를 끝내고 쉬고 있던 경호원들이 후다닥 움직여서, 채 5분도 되지 않아 경호원 복장으로 환복하고 차에 탔다.
그 스파이가 있다는 중국집은 가평초등학교에서 차로 10분 거리. 곧바로 그쪽으로 달려간 삼명그룹 경호원들은 스파이가 있는 중국집을 포위했고, 김창규가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창규가 확인을 하고나서 신호를 보내자, 경호원들이 중국집 안으로 들이닥쳤고, 이내 스파이를 제압할 수 있었다.
김창규는 주도면밀하게 스파이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보고, 잡자마자 곧바로 강력한 수면, 진정제를 투입시켜서 그 스파이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었다.
“다들 늦지 않게 연수원 들어가. 나와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하는 관리급 인원만 본사로 간다.”
굳이 지금 있는 인원을 다 데리고 본사에 갈 필요가 없다고 본 김창규는, 오늘 처음 진급교육을 받을 예정인 평직원에서 대리로 진급 할 경호팀원들을 먼저 연수원에 입소 시키고, 자신을 비롯한 대리 이상의 직급, 그러니까 고참 경호원들만을 데리고 삼명그룹 본사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이 삼명그룹 본사에 도착하고, 스파이를 본사 소회의실 중 한 곳으로 옮기는 동안에도 그 스파이는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잠시 후 삼명그룹 비서실장인 이동훈이 소회의실에 나타났다. 그는 의식을 잃은 체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는 스파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깨워.”
그러자 경호원 중 하나가 흔들어 잠들어 있던 스파이를 깨웠다.
“으으음....여, 여기는....헉!”
그러자 스파이는 잠에서 깨어 잠시 비몽사몽 헤매다가, 눈앞에 이동훈 실장을 알아보고는 경악했다.
“김혁수 사원. 오랜 만이야?”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비서실 직원으로, 이동훈 실장의 지시를 받고 일하던 유능한 직원 김혁수.
“본명은 김종훈이고 29세, 국정원 심리전단 팀의 과장이라....대단해. 그 나이에 벌써 과장이라니.”
김종훈은 이동훈 실장이 자신을 다 파악하고 있자,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웃기만 할 뿐 그는 한마디 말도 입 밖으로 내 뱉지 않았다. 그런 김종훈을 보고 이동훈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국정원에서 팽 당했다며? 그냥 있을 거야? 남자라면 복수는 해야지?”
이동훈의 복수란 말에 웃고 있던 김종훈의 얼굴이 삽시간에 심각하게 변했다. 그리고 잘 열리지 않을 거 같았던 그의 입이 열렸다.
“뭘 어떻게?”
그 말에 이동훈이 싱긋 웃으며 한 시간 전쯤 방송 된 TVM의 저녁뉴스를 김종훈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10분여 쯤 뒤였다. 김종훈이 기가 차다는 듯 이동훈을 보고 말했다.
“정말 방송으로 이게 나갔다고?”
믿기지 않아하는 김종훈. 그를 보고 이동훈이 말했다.
“김종훈 과장 핸드폰 돌려 줘.”
그러자 김종훈 바로 뒤에 있던 김창규가 김종훈으로부터 뺏은 그의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김종훈이 핸드폰을 받자 그걸 보고 이동훈이 말했다.
“인터넷에 확인 해 봐.”
아무리 이들이 삼명그룹이라도 인터넷까지 조작할 수는 없었다. 그걸 알기에 이동훈이 김종훈에게 핸드폰을 넘긴 것이고. 이동훈은 즉시 자신의 핸드폰에 걸어 둔 비밀번호를 누르고, 배경화면에 뜬 아이콘 중 인터넷 익스플로어 브라우저를 클릭해 들어가서, 좀 전에 자신이 본 뉴스가 진짜인지 확인했다.
“....맞군.”
인터넷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김종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쪽 서버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까지 확인했고, 좀 전 그가 본 뉴스가 사실대로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로 중계된 것을 알게 됐다.
“....끝났네.”
김종훈의 입에서 절로 그 말이 터져 나왔다. 누가, 뭐가 끝났다는 건지는 이동훈 실장도 아는 듯 했다.
“그렇다면....복수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겠네?”
삼명그룹이다. 대통령이 무기력 화 된 상태에서 대한민국에서 누가 있어 감히 삼명그룹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나? 임무 때문에 삼명그룹 비서실에서 일하면서 김종훈이 깨달은 것은, 대한민국에서 삼명그룹이 못할 일은 없다는 거였다. 그런 삼명그룹에서 지금 김종훈의 복수를 돕겠다고 한다. 뭘 더 망설이겠나?
“내가 뭘 하면 됩니까?”
눈빛부터가 협조적으로 바뀐 김종훈. 그런 그의 말을 듣고 이동훈이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살짝 입맛을 다셨다. 마치 앞으로 김종훈이 해줘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거란 듯 말이다.
* * *
이동훈은 백준열의 정보력에 또 한 번 경악했다. 아까 백준열이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나오게 만들 핵폭탄 급 대형 사고를 치겠다고 알려왔을 때였다. 이동훈은 청와대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국정원에서 빼내간 대통령의 비리 정보 얘기를 그에게 했었다. 그러며 그 정보를 빼내간 스파이를 잡으려 백방으로 노력 중에 있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때 백준열이 대뜸 그랬다.
-경호실장님이 아직 말 안 했나 보네. 그 김종훈이라는 자, 경호원들이 벌써 잡았을 텐데?
“네? 그게 무슨?”
-아까 내가 경호실장님에게 알려줬거든요. 그 김종훈이 경기도 가평군의 한 주유소에 있다고.
“네에?”
화들짝 놀란 이동훈. 그는 백준열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경호실장 왈....
-막내 도련님이 그러시긴 했지. 근데 마침 가평군에 우리 경호원들이 있지 뭐야. 그래서 그 녀석들을 거기로 보냈더니....진짜 거기 김종훈이 있더라고. 그래서 잡아서 본사로 데려 오라고 했지.
“근데 그 얘기를 왜 제게 안 하신 겁니까?”
-잡고 나서 하려고 했지. 그런데 우리 애가 하필 그때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만....미안 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그룹 비상 체제에 돌입합니다.”
-뭐?
백준열이 곧 터트린 그 핵폭탄 때문에 말이다. 다행히 경호실장의 아이는 크게 다치진 않았단다. 바로 회사로 복귀하겠다며 경호실장이 말했다.
-얼추 본사 다 와 갈 시간이네. 곧 자네에게 보고가 들어갈 거야.
경호실장과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서 역시나 보고가 왔다. 삼명그룹 경호원들이 회사 기밀을 빼낸 스파이를 잡아왔다고 말이다.
“대체 도련님은 어떻게 그 사실을....”
이동훈은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들이 더 많았다. 해서 이동훈은 그 중요한 일들부터 처리하러 움직였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게 바로 백승렬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거였다.
이동훈은 선참후계(先斬後啓, 군율을 어긴 자를 먼저 베고, 나중에 상주함), 그러니까 먼저 그룹을 비상 체제로 돌려놓고, 그걸 지금 백승렬 회장에게 보고 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동훈이 그룹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백 회장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이동훈의 전화를 받자마자 백 회장이 말했다.
“네. 회장님. 좀 전에 막내 도련님으로부터....”
이동훈은 백준열이 곧 칠 대형사고에 대해 얘기했고, 그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던 백 회장이 끝에 가서 말했다.
-알았다.
그렇게 백 회장에게 보고까지 끝마친 이동훈 실장. 그가 길게 한 숨을 내 쉬며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9시가 다 됐다. 이동훈은 TV를 틀었고 채널을 TVM으로 돌렸다. 그러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삼명그룹에 걸린 비상 체제가 풀리고 나면 백준열에게 꼭 물어 보리라고.
도대체 어떻게 스파이 김종훈이 가평군의 한 한적한 주유소에 있는 걸 알아냈느냐고 말이다.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대통령이 자기 사위 살리자고, 백준열을 사회적으로 매장 시키려 한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말이다.
“전에는 어물쩍 넘어갔지만....”
이 번 만큼은 이동훈도 확실하게 백준열의 정보 책에 대해 알아 낼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삼명그룹의 지휘체계가 잡힐 테니까. 이쪽에서 이 얘기를 하는 데, 딴 쪽에서 저 얘기가 나오면 혼란만 가중 될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로 통일 된 정보망 체제가 구축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동훈은 백준열이 가진 정보 책을 자신이 흡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정보 책이라는 게 바로 백준열이 가진, 오로지 그 만이 쓸 수 있는 능력이었으니까.
* * *
「개 짖는 소리」 스킬은 백준열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을 만큼, 엄청 쓸 만한 능력이었다.
“이게 된다고?”
아니 글쎄, 백준열이 삼명그룹 비서실에서 대통령의 비리 정보를 빼내간 스파이. 그 스파이에 대해 생각하자 그놈이 있는 곳에 도청, 감청 능력이 발휘가 되지 뭔가?
그 덕분에 백준열은 녀석이 국정원 소속에 김종훈이라는 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역시.
김종훈은 국정원의 추격을 피해서 요리조리 잘 도망치고 있었다. 괜히 그가 삼명그룹 비서실에서 대통령의 비리 정보를 빼낸 게 아니었다. 김종훈은 스파이로서는 아주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다가 그가 가평군의 한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중국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려 한다는 걸 알아낸 백준열은, 그 즉시 삼명그룹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비서실 정보를 빼내간 스파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줬다.
그랬더니 마침 운 좋게 그 근처에 삼명그룹 경호원들이 있단다. 물론 스파이인 김종훈에게는 정말 불운한 소식이었겠지만. 그렇게 출동한 삼명그룹 경호원들이 김종훈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백준열은 이미 경호실장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런데 비서실장인 이동훈은 백준열과 통화할 때까지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게 딱히 숨길 얘기는 아니라고 본 백준열은, 이미 경호원들이 김종훈을 잡았음을 알려주었다.
그 뒤 백준열이 기획하고 사주한 핵폭탄 급 뉴스가 TVM 저녁 뉴스를 통해서 전국을 강타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뉴스가 나가고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현재 백준열이 묵고 있는 삼명호텔로 쳐들어왔다. 이런 쪽 정보는 또 귀신 같이 알아내는 청와대와 국정원이었다.
물론 삼명그룹에서 보낸 경호원들이 그들을 바로 제지했지만.
뒤늦게 검경도 떴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정원도 뚫지 못한 삼명그룹의 경호원들의 벽을 그들이 무슨 수로 뚫겠나?
“영장이 없는 한 아무도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삼명그룹 경호실장의 그 말에 나를 잡으러 온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 모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삼명그룹 경호원들이 백준열이 묵고 있는 호텔방의 복도를 꽉 채운 채 꿈쩍도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C발....영장 어떻게 됐어?”
그런 가운데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여기로 득달같이 달려 온 대통령 경호본부장이 버럭 소리쳤다.
“그, 그게....”
청와대에서 하는 일이다. 법원에서 겨우 체포영장 하나 못 받아 낼 리 없었다. 하지만 세상 일은 경호본부장의 생각과 달리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 받아 올 수 있으면 받아 와 봐라.”
삼명그룹 경호실장은 확신에 차 있었다. 법원의 판사 중 누구도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을 것을 말이다. 하긴 삼명그룹에서 한 부탁이다. 거기다가 대통령은 누가 봐도 곧 탄핵 당해 옷 벗을 처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제정신 아닌 판사가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나?
설혹 발부한다고 해도 그 진위를 두고서, 시간을 끄는 건 삼명그룹 경호원들로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여길 뚫어 봐야....”
지금 백준열이 묵고 있다고 알려진 삼명그룹 로얄 스위트룸에는 백준열이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면....
백준열은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예상하고, 삼명호텔 내 다른 방을 하나 더 잡고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방은 백준열 이름으로 잡은 방이 아니라, 그가 거기 있다는 걸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에서도 결코 알 수가 없었다. 한데 기가 막힐 얘기를 좀 전에 경호실장이 전해 들었다.
“뭐? 하아....”
백준열이 겁도 없이 지금 있는 방을 나와서 라운지로 올라가고 있단다. 거기서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나?
물론 등잔 밑이 어두울 수는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이 그를 잡지 못해 이 난리인데, 이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누굴 만나겠다고 움직이는, 백준열의 그 대범함과 배포에 경호실장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러면서 백승렬 회장이 괜히 막내인 백준열을,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내정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