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54화 (5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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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원상벽에게 대뜸 물어오는 기조실장. 기조실장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원상벽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였다.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 즉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아무런 필터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내 뱉을 원상벽이 아니었다.

“강 실장의 생각은 어떻소?”

슬쩍 기조실장의 의도를 묻는 원상벽. 도로 묻는 질문, 이건 그가 기조실장의 상관이었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기조실장이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수고는 했는데....계속 안고 있기에는 좀 거북한 게 사실입니다. 또 녀석이 입을 계속 다물고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기조실장의 말에 원상벽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기조실장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으음....하긴 사람 입이란 게 말 하라도 뚫려 있는 거라....”

그러면서 끝에 가서 말꼬리를 흐리는 원상벽. 하지만 원상벽은 이미 표현을 했다. 자신도 기조실장과 같은 생각이란 걸 말이다. 이 정도 뉘앙스도 눈치 못 챌 기조실장이 아니었다.

-역시 최고의 침묵은....죽음이죠. 그렇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딱 봐도 기조실장은 벌써 김종훈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에게 연락한 거였다.

이렇게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은, 혹시 원상벽이 김종훈을 죽이지 말아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하지만 원상벽에게도 김종훈이라는 사냥개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로인해 자신이 한 짓이 세상에 알려질지 몰랐으니까, 그걸 감추기 위해서라도 기조실장의 생각처럼, 김종훈의 입에 영원한 침묵의 자물쇠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그게 죽음이라면 더 없이 훌륭한 결정이었고.

“그렇게 해요.”

원상벽의 입에서 김종훈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최종 허락이 떨어졌다.

-결과는 문자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뭐 좋도록.”

원상벽은 그렇게 기조실장과 통화를 끝냈다. 그리곤 슬쩍 차창 밖을 쳐다봤다. 그러자 처음 김종훈을 봤을 때가 생각났다. 영특하고 자신감 넘치며 행동이 빠릿빠릿한 것이, 마치 자신이 처음 국정원에 들어왔을 때를 떠오르게 만든 직원이었다. 하지만....

“아깝긴 하지만....”

충분히 유용하게 써 먹었다. 이제 그만 끓는 솥단지에 넣고 삶아도 될 만큼 말이다.

그 생각 후 원상벽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김종훈이란 인물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앞으로 그와 함께 할 수족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미 그의 머릿속은 충분히 복잡했다.

특히 차기 국정원장 자리에 누굴 앉힐 지를 두고 원상벽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좀 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독대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누굴 자기 대신 국정원장 자리에 앉힐지 결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대통령에게도 대답을 할 수 있었고. 그런데 막상 청와대를 나와서 국정원으로 돌아가는 지금, 그의 그런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원래 원상벽은 다음 국정원장 자리에 3차장을 앉힐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충복, 오른팔이었으니까. 그런데....

“기조실장이라....”

가만 생각해 보니 자기 입안에 혀처럼 구는 3차장보다,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협력 관계에 있는 기조실장을, 국정원장 자리에 앉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적을 가까이 두라고 하지 않았나?”

원상벽이 좋아하는 영화. 그래서 여태 50번도 더 본 ‘대부’에서 마이클 꼴레오네로 분한 알파치노가 이렇게 말한다.

'친구는 가까이 두어라. 그런데 적은 더욱 가까이 두어라. (Keep your friends close, but your enemies closer.)라고....'

3차장이 자신의 결정을 알면 아마 크게 실망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는 자신의 곁을 떠날 수 없다. 떠나겠다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오른팔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지금 그의 주위에 넘쳐났으니까.

* * *

통통통통....

김만규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방, 그러니까 MK엔터의 널따란 대표실에 있었으니까.

그것도 자신이 특별히 아끼는 이태리산 르코르뷔지 가죽 소파에 앉아서, 쿠바 산 시거를 피우면서 말이다. 시거의 텁텁한 맛은 아라비카 원두커피로 지워내면서 말이다.

그때 그의 맞은편에는 MK엔터의 매니저 실장인 안동재 실장이 앉아있었고. 그런 그에게 김만규는 MK엔터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실장급 인재를 납치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그게 바로 김효석이었고. 김만규가 김효석에 대해 알게 된 건 연예계의 지인 덕분이었다.

평소 안면은 있었지만 속 깊게 얘기까지 나누지 못했던 그 지인은, 바로 MBS방송국 관계자였고 그 사람이 그랬다. 김효석이라는 기획력 뛰어난 사람이 다니던 회사에서 나왔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김효석이 이미 재취업을 했고, 그곳이 JYB엔터라는 사실까지 그 지인이 알지 못한 듯, 그것까지 김만규에게 알려주진 않았다.

그래서 김만규는 그걸 모른 채, 주말임에도 채시연 문제로 자신을 찾아 온 안동재에게, 이왕 온 김에 김효석을 납치해서라도, 월요일에 자기 앞에 데려 오라는 다소 무리한 지시를 내렸다. 그게 불만인 듯 안동재가 투덜거렸다.

“나참....대표님. 제가 무슨 흥신소나 조폭도 아니고....”

안동재의 그 말에 김만규는 ‘너 조폭 맞잖아?’라는 말이 튀어 나올 뻔 했는데 가까스로 도로 입안으로 집어 삼켰다.

왜 도둑놈 보고 너 도둑이라고 하면 기분 좋겠나? 그건 안동재도 마찬가질 테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걸 그랬다 싶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신의 신세가 이 모양 이 꼴이 될지 몰랐으니 말이다.

‘천규야....’

그때 안동재의 보스이자 자신의 동생인 김천규가 생각났다. 자신을 이 통통배에 태운 작자의 말에 따르면, 동생 김천규는 이미 죽었을 공산이 컸다. 아마도 그의 시신은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이 통통배 아래 차가운 바닷 속에서 있겠지. 그 생각이 들자 김만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안 돼.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진짜 이렇게 죽는 건 너무너무 억울했다. 그가 어떻게 키운 MK엔터인데. 또 그가 가진 게 얼만데, 그 모든 걸 버리고 이런 식으로 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통통통통....

그를 태운 통통배는 너무도 무정하니, 어둠이 내려앉은 밤바다 저 멀리로 계속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뚝 멈춰 선 통통배....

“우우우웁....”

입에 채워진 재갈 때문에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김만규는 처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 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잠시 뒤 안동재가 먼저 바다에 버려졌다.

첨벙!

그는 놈들에게 하도 두들겨 맞아서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서 순순히 바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김만규는 아니었다. 그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우악스런 손길에 들린 그의 몸은 이내 밤바다로 버려졌고, 뒤따라 들어 온 커다란 돌덩이 몇 개가 그의 몸을 저 심해 속으로 끌어 당겼다. 얼마 후....

‘아아....천규야!’

그의 동생 김천규가 갑자기 눈앞에 보였고, 김만규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 * *

삼명그룹 비서실에서 드디어 목적했던 바를 이루고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김종훈은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강릉이요?”

“그래. 거기 안가(安家)에서 며칠 숨어 있어. 그러면 며칠 안에 캐나다나 호주로 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해 줄 테니까.”

“아니. 제가 왜 캐나다나 호주로 가야 합니까?”

황당한 얼굴로 김종훈이 자신의 직속상관 인 심리전단팀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짜증섞인 얼굴로 말했다.

“야! 그걸 내가 꼭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들어? 삼명그룹이다. 넌 거길 발칵 뒤집어 놨고. 그들이 널 가만 둘 거 같아?”

“그러니까 그걸 내가 왜 고민해야 하냐고요? 불법적인 짓을 저지른 건 그쪽이고, 나는 그 증거를 빼내 왔을 뿐인데 말입니다.”

김종훈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분명 국정원에서 시키는 대로, 삼명그룹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증거 자료를 빼내왔다. 그렇다면 그 증거자료로 삼명그룹을 단죄하면 될 일이었다. 한데 국정원에서는 어떻게 된 게 그를 숨기기 급급했다.

“그래서? 지금 강릉 못가겠다는 거야?”

“네. 제가 거길 왜 갑니까?”

“하아. 좋아.”

그렇게 심리전단팀장이 나가고 나서 10여분 쯤 지났을까? 한 중년인이 김종훈 앞에 나타났다.

“외삼촌!”

“그래. 종훈아.”

심리전단장인 김종훈의 외삼촌 최성진이 등장했고, 김종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니까 넌 위에서 시킨 대로 강릉에 있는 안가로 가 있어. 너 이 삼촌 못 믿냐?”

“아, 아뇨. 하지만....”

“그래. 그래. 네 말 맞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게 어디 원리 원칙대로만 굴러 가느냐? 딱 사흘이다. 사흘만 거기 가 있어. 내가 너 국내에 남을 수 있게 손 써 볼 테니까.”

김종훈은 외삼촌인 최성진이 자기가 무슨 수를 쓰던지 국외로 나가는 건 막아보겠다는 말에, 그 말만 믿고 그렇게 국정원의 비밀 아지트를 나와서 강릉으로 향했다. 당연히 그런 김종훈의 주위로 국정원 요원들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당연히 이때까지만 해도 안면 있는 국정원 요원들과 김종훈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강릉 안가에 들어가고 나서,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그들의 안색이 돌변하는 걸 김종훈은 잽싸게 눈치 챘다.

하긴 동료를 보는 눈빛과 임무 대상 즉 타깃을 대하는 눈빛은 천양지차니 말이다.

특히 국정원 요원 중에서도 요즘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김종훈이었다. 그런 그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집에 전화 좀 걸게요. 오늘 내일 집에 간다고 연락드렸는데, 못 가면 부모님 걱정 하실 겁니다.”

“집에요?”

국정원 요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 중 한 명이 잠깐 안가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자아. 거세요.”

그리곤 자신의 핸드폰을 순순히 김종훈에게 건넸다. 아마도 국정원 윗선에서 김종훈이 집에 전화 정도 하는 건 허락한 모양이었다. 김종훈은 그 국정원 요원 핸드폰을 받아서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어머니가 집에 계셨고, 김종훈은 평소처럼 통화를 했다.

하지만 통화 중 김종훈은 모친으로 하여금 외삼촌인 최성진에게 전화를 걸어 보게끔 유도를 했다.

김종훈이 그런 이유는 간단했다. 최성진이 자신을 배신했을 경우, 그래도 자기 누나인 모친의 전화를 평소처럼 받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알았다. 네 외삼촌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바로 연락 주마.

김종훈의 그런 의도를 알 리 없는 그의 모친은 김종훈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자신의 남동생인 최성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최성진이 그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종훈의 모친은 시간을 두고 몇 차례 더 자신의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동생인 최성진은 그녀 전화를 끝끝내 받지 않았다. 마치 피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해서 김종훈의 모친은 그 사실을 김종훈에게 알렸다. 김종훈에게서 걸려 온 핸드폰을 통해서 말이다.

“네. 엄마. 네. 아아. 그렇군요. 뭐 어쩔 수 없죠. 직장 동료 중에 그쪽으로 잘 아는 친구가 있으니까 거기 물어 볼게요. 네. 죄송해요. 대신 다음 주에는 꼭 집 들를게요.”

김종훈은 모친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국정원 요원의 핸드폰을 통해 받아서, 잘 통화를 한 후 그 핸드폰을 국정원 요원에게 돌려주었다.

“잘 썼습니다.”

“....”

김종훈은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웃으며 건넨 핸드폰이건만 그걸 받는 국정원 요원은 무표정하니, 가급적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핸드폰만 재빨리 받아서 안가 밖으로 나갔다. 그런 국정원 요원을 보면서 김종훈은 확신했다.

“날 처리할 생각이구나!”

국정원에 대한 배신감도 컸지만, 그보다 외삼촌인 최성진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다.

사실 외삼촌인 최성진이 김종훈의 인생 롤 모델이었다. 그래서 국정원에 들어갔고. 외삼촌처럼 멋진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요원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외삼촌도 결국....그 나물에 그 밥이었어.”

국정원에 들어오고 알게 됐다. 이곳도 체계적인 조직이었고 나라와 국민 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자들의 작은 정치판이란 걸 말이다. 당연히 음모와 배신이 판을쳤다.

김종훈은 국정원에서 자신을 어떻게 처리하려 하는 지 이미 촉이 왔다.

“보나마나지.”

여기서 유서 쓰고 자살한 걸로 위장해서 그를 정리, 아니 처리하려 하겠지. 그걸 김종훈이 어떻게 아냐고?

실제로 그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을 배신한 요원을 처리, 아니 죽인 적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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