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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서지연은 삼명호텔로 가면서, 앞서 그녀가 휘트니스 센터를 나올 때, 사람들이 TV앞에 모여서 웅성거린 것이 뭔지, 그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지만 운전 중이라 핸드폰으로 무슨 일인지 바로 검색해 볼 수 없었다.
“아아. 라디오.”
서지연은 그 정도 이슈라면 분명 라디오 뉴스에 나오고 있을 거로 봤다.
핸드폰과 달리 라디오야 켜기만 하면 됐고. 그렇게 앞 차가 신호를 받고 멈추는 걸 보고, 서지연은 브레이크를 밝으면서 라디오를 켜려고 했다. 그때였다.
벨레레레레~
그녀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고, 확인하니 먼저 미국에 가 있는 모친 서 여사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그녀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그 때문에 서 여사는 지금쯤 화가 많이 나 있을 터였다. 이대로 계속 뒀다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모친이었기에, 서지연은 귀찮지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너 왜 내 전화 안 받아?
역시나 날 선 모친의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로 쩌렁쩌렁하게 울려왔다.
“휘트니스 센터라서 그랬어요. 지금 막 나왔고.”
모친은 서지연이 일하는 것 보다 자신을 가꾸는 것에 대해 훨씬 더 관대했다.
휘트니스 센터의 경우 서지연의 몸매를 더 아름답게 가꿔 주는 곳이니, 거기 있었다면 이렇게 바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 그래?
“어. 지금 집에 가는 길이야. 더 할 말 없으면 끊어. 나 운전 중이야.”
서지연은 모친이 할 소리야 뻔했기에, 운전을 핑계로 서둘러 통화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잠, 잠깐만....
“왜요?”
-너 거기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지만....어려운 일 있으면 외삼촌 찾아 가 봐.
“외삼촌을요?”
-어. 오늘 외삼촌과 풀었다. 그리 기대할 만한 지원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그래도 비빌 언덕이 있는 게 어디니.
“알았어요.”
모친 말대로 서지연의 외가는 서재국 전 대통령 사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 일례로 외삼촌의 여당 공천이 물 건너갔고, 서재국 대통령의 측근들로 알려진 인사들도 여당 내에서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됐다.
그러니 서지연이 하려는 일에 외가의 도움은 사실 기대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외가에 돈이 많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부자가 망해대 3대는 간다는 데 먹고 사는 걸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지연이 하려는 호텔 사업은 적게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의 자본이 필요했다.
하지만 외가가 그 정도 재력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걸 모를 모친이 아니었는데, 외삼촌과 화해를 한 것은 그래도 서지연 혼자보다 그게 더 나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을 터.
그만큼 모친의 서지연에 대한 사랑은, 그녀가 비록 미국으로 쫓겨 갔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서지연은 그런 모친의 씀씀이, 그러니까 사랑에 가슴이 훈훈해졌다.
“몸 조심하시구요. 네. 네. 또 연락해요.”
그렇게 모친과 통화를 끝낸 서지연. 그녀는 앞차가 다시 신호를 받고 멈춰 서자, 생각 난 김에 라디오를 켰다. 그러자 뉴스 채널에 맞춰져 있던 라디오에서 충격적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뭐, 뭐라고?”
라디오 뉴스를 듣고 서지연은 기겁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천지개벽, 자칫 나라가 휘청거릴 수 있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대사건이었다.
* * *
TVM의 대표 박인호는 9시 뉴스 시작 10분 전에 보도국, 뉴스데스크를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사, 사장님?”
“수고 많아요. 보도국장.”
“네. 근데 어쩐 일로....”
“사장이 여기 오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다들 하던 거 하세요.”
말이야 그렇지. 사장이 떡하니 보도국에 나타났는데 그곳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박인호는 정말 그들에게 방해 되지 않겠다는 듯, 한쪽으로 물러나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러면서 힐끗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한 박인호. 그는 뉴스 방송까지 7분 쯤 남자 곧장 뉴스 부조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거기 있는 담당 PD에게 말했다.
“노트북 있으면 줘 봐.”
“네.”
담당 PD는 TVM스티커가 붙어 있는 회사 노트북을 박인호에게 건넸고, 박인호는 그 노트북을 켜고 전용 포털 사이트의 자기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서 방송 시작까지 5분이 남았을 때였다.
“왔다.”
박인호는 백준열 대표가 말한 대로 그에게 음성 파일로 보내진 메일을 확인하고, 그것 바로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꺼낸 USB에 담았다.
그 일을 다 끝내자 방송 시작까지 3분이 채 안 남았고, 박인호는 노트북에서 USB를 빼내서 곧장 담당 PD 옆으로 갔다.
“김 피디. 시킨 대로 10분 빼났지?”
“네. 지시대로 빼 놓기는 했는데....”
“앵커한테 멘트 이렇게 시작하라고 해. 아니다. 송 차장 연결 해.”
방송 준비를 거의 다 끝내고, 데스크에서 주요 뉴스를 눈에 담고 있던 TVM의 간판 앵커 송지훈 차장. 그가 귀에 끼고 있던 인이어로 담담P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 차장님. 대표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그 말에 송지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뉴스 진행을 16년째 하고 있는 그로서도, 대표가 방송 시작 1분 전에 이렇게 불쑥 앵커에게 할 말이 있다고, 뉴스 부조실에서 말을 해 오는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송 차장. 수고 많아요.
“네. 대표님.”
-방송 시작하면 내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멘트를 하세요.
“네?”
이게 무슨 황당한 지시란 말인가? 방송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사장이었다.
-김 PD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오늘 뉴스 시작과 동시에 10분간 특종뉴스가 나갈 겁니다. 앵커로 송 차장의 역할은, 내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옮겨서 특종뉴스가 방송 되게 자리만 펴 주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네. 뭐....”
그러니까 특종뉴스에 대한 전권, 그 시작과 끝을 대표인 박인호 사장이 쥐고 진행해 나가겠다는 얘기였다.
-시간 다 됐군요. 먼저 인사하고....
TVM의 9시 뉴스 앵커 송지훈. 그는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자 프로답게 뉴스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속 정확한 뉴스. 발로 뛰는 뉴스. TVM 9시 뉴스 송지훈입니다.”
박인호는 송지훈이 인사를 끝내자, 바로 그가 해야 할 멘트를 읊조렸다.
“....라는 길목에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의 보장이 최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저희 TVM은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을 알려 드리는 것이 언론의 의무라고 여겨서....이 같이 녹취록을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그 내용을 들어 보시고, 모든 판단은 국민 여러분들께서 내려주십시오.”
송지훈은 인이어로 박인호가 말하는 대로 장황한 멘트를 늘어놨다. 그리고 녹취록이란 말을 자기 입으로 내 뱉을 때 깨달았다. 이건 그냥 특종뉴스가 아니란 걸 말이다.
* * *
박인호는 송지훈 앵커에게 뉴스 시작 멘트를 읊어주면서,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USB를 담당 PD에게 건넸다.
담당 PD는 송지훈 앵커의 입을 통해서 녹취록이란 말을 들었기에, 지금 박인호 대표에게서 받은 USB에 그 녹취록의 음성 파일이 들어 있음을 눈치 차리고, 그 USB를 부조실 음향기사에게 넘겼다. 그리고 박인호의 국민 운운하는 소리를 끝으로, 송지훈 앵커의 뉴스 시작 멘트가 끝났다.
동시에 담당 PD가 부조실 음향기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음향기사가 USB에 담긴 음성 파일, 그러니까 녹취록을 틀었다.
잠시 후 녹취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 되면서, 뉴스 부조실은 경악에 휩싸였다.
“맙소사! 이거 대통령과 국정원장....”
녹취록의 두 사람이 누군지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뉴스 부조실 안에서 담당 PD 옆에 서 있던 박인호는 녹취록의 내용을 들으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백준열 대표가 세상이 뒤집어 질거라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다. 그럴게 지금 TVM 뉴스에서 대통령의 비리와 그걸 은폐하려는 짓을, 그대로 녹취록으로 방송에 내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벨레레레레~
보도국 안으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건 뉴스 부조실 안이라고 해서 예외 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받지 마! 아니, 전화선 다 뽑고 핸드폰 전원 다 꺼.”
대표인 박인호의 그 말에 자칫 혼란에 휩싸일 수 있었던 보도국과 뉴스데스크 현장은 곧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10분의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앵커. 원래대로 뉴스 진행 해. 김PD도 수고하고.”
박인호는 딱 10분간, 특종 뉴스를 진행시키고 그대로 뉴스 부조실을 나와서 보도국을 빠져 나갔다. 당연히 그 뒤로 TVM 방송국으로 전화가 푹주했고, 뉴스 게시판의 서버가 다운 되어 버렸다.
정작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 박인호는,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대기 중인 대표 차를 타고 TVM 방송국을 빠져 나갔다. 그러면서 차 안에서 박인호가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그 전화를 백준열이 바로 받았다. 그러자 박인호가 긴 한숨과 함께, 백준열에게 넋두리 하듯 말했다.
“하아아....그 대상이 대통령이라니....”
-내가 그랬잖습니까? 세상이 바로 발칵 뒤집어 질 거라고.
“이제 어쩌실 겁니까? 청와대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박인호가 진심으로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백준열은 담담했다.
-제가 누군지 잊었습니까?
“그야 알지만....아아....”
박인호는 백준열의 뒤에 삼명그룹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삼명그룹에서 나서준다면야....”
-그래도 외압은 들어 올 겁니다.
“뭐 어쩔 수 없죠.”
-박 대표님 가족들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아아. 맞다. 가족들. 고맙습니다.”
나라를 뒤흔들 폭탄을 터트리고 나서 정신이 없었다. 가족들 생각을 못했는데, 그걸 백준열이 챙겨주니 박인호로서도 고마울 밖에.
-길어야 일주일입니다.
백준열은 일주일 안에 청와대의 주인이 그곳을 제 발로 걸어서 나올 걸로 봤다. 하지만 박인호는 그와는 생각이 달랐다.
‘일주일은 무슨....사흘 안에 끝난다.’
그러면서 박인호의 머릿속에 이번에 치를,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이 자칫 대선과 겹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대통령과 독대 후 청와대를 나서는 국정원장 원상벽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국정원장답게 그의 얼굴에는 어떤 변화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포커페이스.
그런 원상벽이 자신의 차에 오르고 청와대 정문을 빠져 나오자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크하하하하!”
그의 웃음은 금세 커다란 파안대소가 되어 차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해냈다. 해 냈어. 드디어 이 원상벽이....”
작년 까지만 해도 그는 국정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공직 생활 30년. 그 동안 나름 줄타기도 잘하고 윗선에 아부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국정원장이 되었는데, 그를 임명한 전 대통령의 여당이 야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야당의 대선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다.
그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원상벽이 국정원장 자리를 내놔야했다.
그걸 알아선지 당시 그를 따랐던 국정원의 고위 간부들도 대 놓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한데....
“당선자께서? 나를?”
대통령 당선자가 은밀히 그를 찾았고, 그를 만난 그 순간 원상벽을 깨달았다.
자신의 공직 생활이 여기서 끝난 게 아니란 걸 말이다. 그리고 오늘, 그는 드디어 청와대의 2인자인 비서실장의 자리를 대통령으로부터 확답 받았다.
“이제 이번 총선만 잘 치르고 나면....”
원상벽은 본격적으로 당에 입지를 다질 생각이었다. 비서실장의 힘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야만 그가 비서실장의 자리에서 내려와도, 여당의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당 내 기반을 점점 더 키워 나간다면....
“나라고 대통령 되지 말란 법은 없지.”
그렇게 원상벽이 미래에 금배지를 가슴에 단 자신을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원상벽은 자신의 기분 좋은 상념을 깨운 인간이 누군지 떨떠름한 얼굴로 살폈다.
“으음?”
그런데 전혀 뜻밖의 인물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걸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조실장이 왜?”
자신에게 협조적인 편이긴 하지만 라인이 다른 기조실장이었다. 그래서 매일 출근하면 보는 사이긴 하지만 속 깊은 얘기는 한 번도 나눠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대통령의 지시에 한해서 기조실장도 군말 없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지만.
“여보세요?”
기조실장이 자신에게 왜 전화를 걸었는지 그게 궁금해서라도, 원상벽은 그의 전화를 일단 받았다. 그랬더니....
-원장님. 김종훈이를 어쩌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