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52화 (54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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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 내용이 뭔지 간략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동훈 실장은 역시나 영민한 사람이었다. 뭐가 핵심인지 바로 파악해서 그걸 콕 집어서 물어왔다.

“네. 그래야죠. 그걸 알려드리려고 이렇게 전화 한 건데. 청와대에서 그 두 사람이 오늘 만나서....”

나는 내가 녹취하고 그걸 10분 정도로 편집한 내용을 이동훈 실장에게 간략히, 그 핵심만 짚어서 얘기해주었다.

-허어. 이거....대통령 하야 시키겠다는 의도시군요.

방송에서 보면 악의적인 편집 얘기를 많이 한다. 방송사에서는 그걸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 편집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녹취하고 편집한 10분 분량의 녹취록은, 그런 편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대 측에서 그런 악마의 편집 얘기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자기 입으로 정확히 그들이 뭔 짓을 했는지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 녹취 편집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정도를 못 알아 볼 뉴스 시청자는 요즘 없었다. 설혹 있다고 해도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거나, 현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들일 터. 그들이 목소리를 내 봐야 대중의 화만 키울 뿐이었다.

영리한 이동훈 실장은 그런 내 의도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바로 대통령 하야 얘기를 꺼낸 거고.

“너무 설치잖아요. 거기다가 내가 좀 알아보니 자기 사위 살리겠다고, 나를 망칠 계획을 짜고 있기도 하고요.”

내 그 말에 이동훈 실장이 즉시 동의하며 말했다.

-저희가 가지고 있던 대통령에 대한 비리 정보를 대통령이 찾아내서 없앴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기고만장해진 모양인데....정작 대통령이 조심해야 할 곳은, 이제보니 저희가 아닌 도련님이셨군요. 이렇게 치명타를 날리시려니 말입니다.

이동훈 실장도 이게 현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거라 여기는 듯 했다.

“제가 왜 이 실장님께 이 얘기를 하는지는 아시죠?”

-물론입니다. 터트리고 난 뒤에 벌어질 후폭풍 때문 아닙니까?

“잘 막아줘요.”

-네. 다른 분도 아니시고, 삼명그룹 후계자이신데 당연하죠.

그러니까 내가 삼명그룹 후계자이기 때문에, 삼명그룹에서 그룹 차원으로 청와대의 반응에 대응하겠다는 얘기였다. 삼명그룹이 작정하고 그렇게 나오면 청와대도 별 수 없었다.

거기 수장이 국민적인 지지라도 확실히 받고 있다면 또 모를까. 그가 자기 입으로 얘기한 파렴치 한 일이 세상에 알려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말에 힘이 실릴 리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이 난리를 피우면, 탄핵의 시기만 재촉 할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이동훈 실장에게 충분히 양해를 구했고, 그걸 이 실장이 받아드리는 선에서 얘기가 잘 끝났다.

나는 이 실장과 통화를 끝낸 뒤, 곧바로 TVM의 박인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어딥니까?”

-TVM보도본부에 와 있습니다.

“뉴스 시작까지....15분 정도 남았군요?”

-안 그래도 뉴스 진행 될 보도국 내 뉴스 데스크로 가려는 중이었습니다.

“얘기는 해 뒀지요?”

-네. 담당 PD와 앵커에게도 얘기를 해뒀습니다. 근데 보내 주신다는 녹취록은....

“뉴스 시작 5분 전에 박 대표님 메일로 보낼 테니, 카피할 USB나 준비해 두세요.”

-안 그래도 지금 호주머니 속에 챙겨 뒀습니다.

“제가 편집 다 한 거니, 확인 같은 거 하실 거 없습니다. 메일 받으시면 바로 카피하셔서, 그걸 들고 뉴스부조실로 가 뉴스 시작과 동시에 내 보내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 박 대표님은 그렇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박인호 대표의 확답을 듣고 나서 흡족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통화를 끝마쳤다.

그리고는 삼명호텔 VVIP룸인 로얄 스위트룸의 고객을 위한 서비스로, 각 방마다 놓여 있는 최신 노트북 중 하나를 챙겨, 창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 * *

채시연은 이번 주말에 별 다른 스케줄이 없었다. 그래서 늘어지게 늦잠을 즐기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매니저가 그녀를 찾아왔다.

“뭔데?”

-문 열어. 빨리.

인터폰 비디오 화면에 보이는 매니저의 얼굴 표정이 다소 어색했지만, 채시연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파트 문을 열어주었다.

그 만큼 그녀의 매니저에 대한 믿음은 컸다. 그럴게 연예인 생활 시작하고, 지금껏 그녀와 함께 해 준 매니저였으니, 그녀로서도 지금의 매니저는 자신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을 열어줬더니 들어와야 할 매니저는 들어오지 않고, 대신 우르르 안으로 들어오는 인상 더럽고 덩치 좋은 남자들.

“당, 당신들 뭐야?”

그래도 나름 용기를 내서 말을 했건만, 그녀 말에 딱 봐도 조폭스러워 보이는 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잠시 틈을 뒀다가 그녀의 매니저와 같이, 그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소속사인 MK엔터의 매니저 실장인 안동재.

그를 보자 채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매니저를 쏘아봤다. 그러자 그녀의 매니저가 슬쩍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미, 미안. 나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어.”

“괜찮아. 이해해.”

말은 이해한다고 했지만 채시연은 눈앞에 보이는 자기 매니저에게서 만정이 다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이러면 저 매니저와 함께 하는 건 더 이상 힘들었다.

그 동안 함께 해 온 세월이 얼마든가? 채시연의 매니저는 그녀의 표정만 봐도 눈치를 차렸다. 더 이상 자신이 채시연의 매니저 노릇을 할 일이 없을 거란 걸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MK엔터 소속 직원이었고, 채시연 아니더라도 그녀가 맡을 연예인은 많았다. 그래서 채시연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나는 것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매니저를 보고 채시연 역시도 눈치 챘다. 저 매니저와 인연은 여기서 끝났다고.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매니저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안동재를 보고 말했다.

“안 실장님이 저희 집에는 무슨 일이시죠?”

그러자 안동재가 피식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 왜 왔겠냐?”

“재계약 때문이라면....저는 이미 다른 곳과 계약하기로 했어요. 이따가 거기와 만나기로 했고요.”

“그래? 으음....그런데 누구 마음대로?”

“네?”

자신이 어떤 회사랑 배우 전속 계약을 하건 말건 안동재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채시연이 안동재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야. 저년 홍재동 빌라로 데리고 가.”

“네. 형님.”

조폭들이 곧장 채시연에게 다가왔고, 그들 중 하나가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조용히 따라갈래? 아니면 입 막고 꽁꽁 묶어서, 자루에 넣어 들고 갈까?”

채시연은 밀실 공포증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루에 넣어져 잡혀가는 건 피해야 했다.

“....따라갈게요.”

그렇게 채시연은 조폭들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아파트를 나섰고, 잠시 후 아파트 입구에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탑승했다. 그 뒤 그녀는 홍제동 인왕산 자락 아래 있는, 지은 지 꽤 오래 되어 보이는 빌라 1층에 갇혔다.

쿵쾅!

“쳐!”

“와아아아!”

하지만 그녀가 거기 갇힌 지 채 3시간도 되지 않아서, 다른 조폭들이 등장했고 그들에게 그녀를 여기로 데려온 조폭들이 순식간에 제압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 조폭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JYB엔터와 계약하기로 한 장소가 어딥니까?”

“거, 거기는....”

채시연은 얼떨떨한 가운데 순순히 그곳이 어디인지 얘기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를 자기들이 타고 온 차에 태워서 거기로 갔다. 그리고 그녀와 배우 전속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JYB엔터에서 나온 직원들에게 그녀를 넘긴 뒤 홀연히 사라졌다.

덕분에 채시연은 JYB엔터와 무사히 배우 전속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고, 거기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채시연은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부터 바꿨다. 지금 비밀번호는 매니저도 아는 번호였으니까.

* * *

오늘도 태석파의 2인자 자리 굳히기에 여념 없었던 정준호. 그런 그에게 양태석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형님. 네. 아아. 네. 김만규도요? 네. 알겠습니다.”

김천규 처리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 형인 김만규도 없애란다. 거기다가 김만규 밑에 매니저 실장을 하고 있는, 김천규 똘마니들도 같이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그 똘마니들이 납치한 여자 배우를 구해서, 그녀가 JYB엔터와 계약하기로 한 장소에 무사히 데려다주고 말이다.

“귀찮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준호는 양태석을 추종하던 조폭조직 중간 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폭조직의 총 보스 자리를 노리는 그에게 있어서 이제 양태석은, 가급적 빨리 치워야 할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바로 양태석 뒤에 있는 배경, 즉 백준열이었다. 백준열의 허락 없이 양태석을 재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지.”

해서 지금 정준호에게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이 바로 백준열이었다. 근데 그 백준열이 대표로 있는 JYB엔터를 좀 전 통화에서 양태석이 언급했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야! 애들 준비 시켜. 그리고 안동재와 그 밑에 애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봐.”

양태석에게 말은 안했지만, 정준호는 개인적으로 안동재를 잘 알았다.

왜냐하면 녀석은 바로 정준호가 고등학교 다닐 때, 자기 밑에 똘마니 노릇을 했었던 일진 중 한 명이었으니까. 녀석이 조폭계에 몸담았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녀석이 김천규 밑에 있은 줄은 몰랐다.

뭐 안다고 해도 그런 놈을 자기 밑으로 불러서 쓰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정준호는 자신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신대를 보면서 흡족하니 웃었다. 하긴 저렇게 빠릿빠릿하고 조직에 충성하는 녀석들을 두고 그런 쭉정이 녀석을 왜 부르겠나?

조폭들은 한 세 네 다리쯤 건너면 어디서 뭘 하는 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홍제동 명성 빌라?”

정준호는 안동재와 그 밑에 놈들이 현재 있는 곳을 알아내고는, 곧장 사신대를 이끌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거기 안동재는 없었다. 밑에 녀석들은 있었지만 사신대 앞에 맥없이 무릎 꿇렸다. 다행인 건 놈들이 납치한 걸로 보이는 여자 배우가 거기 있었다는 점.

정준호는 사신대 조장에게 조직원 4명을 붙여서, 그 여자 배우를 데리고 JYB엔터 직원이 계약하려고 기다리는 약속 장소로 먼저 보냈다. 그 사이 밑에 조폭들이 안동재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수소문을 했고....

“한강대로에 있는 MK엔터 본사? 거기 대표인 김만규가 불러서 거기 가 있단 말이지?”

“네. 형님.”

“좋았어. 거기로 간다.”

안 그래도 김만규도 잡아 처리해야 하는 정준호의 입장에서, 안동재와 김만규가 한 장소에 같이 있다니 이 보다 반가울 순 없었다. 그렇게 홍제동 빌라에서 출발한 정준호는 사신대를 이끌고 한강대로에 위치한 MK엔터 본사에 도착했다.

“못 도망치게 퇴로 다 차단 해.”

그리고 사신대를 투입 시켰고, 그를 실망시키지 않고 사신대는 안동재와 김만규를 사로잡아서, 그 둘을 그 앞에 무릎 꿇렸다.

“수고했어.”

먼저 사신대를 칭찬한 후 정준호가 안동재를 보고 물었다.

“너 나 기억 안나?”

“네?”

그래도 제법 반항을 한 듯 얼굴이 퉁퉁 부어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안동재. 그가 힘겹게 눈을 떠서 정준호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를 보고 정준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놈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정준호는 그걸로 만족해하며, 시선의 그 옆에 김만규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너는 그렇게 동생이 좋냐?”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자신을 쳐다보는 김만규. 그는 안동재처럼 저항을 하지 않아선지 비교적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정준호가 마저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동생 따라서 저승도 같이 가려니 한 말이지. 참 형제간에 우애가 보기 좋아.”

“저, 저승....허억! 살, 살려 주십시오.”

그제야 정준호의 말을 이해한 김만규. 그가 기겁하며 두 손을 모아서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고 해도 그가 살 길은 없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그랬으니까. 정준호로서는 그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만 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고 그가 지금 조직의 총 보스가 되는 날이면....

“흐흐흐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정준호가 음흉하게 웃다가 고개를 돌려 지시를 내렸다.

“둘 다 인천으로 데려 가.”

“네.”

아무래도 오늘 인천 바다에 통통배가 여러 척 떠야 할 거 같았다. 김만규는 몰랐지만 조직 생활을 한 안동재는 정준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리곤 너무 절망한 탓인지 몰라도 넋이 나간 얼굴로 그 자리에서 실금을 했다.

“에이 씨. 냄새. 빨리 치워.”

정준호는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안동재가, 오줌까지 지리자 짜증을 버럭 냈다. 그러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새끼를 고등학교 후배라고 내 밑에 뒀었다면....’

아마 두고두고 골치깨나 썩였겠지. 정준호는 앞으로도 아는 놈이라고 절대 편애해서 곁에 두지 말고, 철저히 능력 위주로 뛰어난 놈들만 자기 옆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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