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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맵고 얼큰하니, 면 빨 탱탱 존득존득한 짬뽕이 생각났다. 그것도 삼선 짬뽕으로 말이다.
중식에서 말하는 삼선이란 바다, 하늘, 땅을 뜻하는 세 가지의 재료를 말하는데, 여기서 삼선 짬뽕은 바다의 해삼, 하늘의 꿩, 땅의 송이버섯을 넣는 걸 말했다.
하지만 보통 중식집에서 시켜먹을 때는, 해삼이 있냐 없냐의 유무로 따지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중적으로는 해물이 많이 들어간 걸 삼선 짬뽕으로 알았다. 예전 나도 그랬었고. 지금은 백준열의 지식을 통해서, 이렇게 잘난 척을 하지만 말이다. 그러다 아까 오는 길에 봤던 백짬뽕이란 간판을 본 게 생각났다.
“좋았어. 거기로 정했다.”
가는데 10여분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백짬뽕, 그러니까 하얀 국물의 짬뽕을 먹으러 가기 위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으으....죽이네.”
내 입에서 걸쭉하니 아저씨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만큼 백짬뽕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했다.
“이거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더했군.”
나뿐 아니라 내 주위를 빙 두른 채, 나와 같은 백짬뽕을 먹고 있는 내 경호팀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들 이마에 삐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백짬뽕의 국물은 몸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의 몸에서 절로 땀이 나게 만들었다. 그건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나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재차 국물 한 숟가락을 더 떠먹었다. 그리곤 숟가락을 놓고 젓가락을 집었다.
“어디....”
이번에는 면 빨을 느껴 볼 시간이었다.
“후루루룩....후룩....후룩...”
짬뽕으로 면치기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콧구멍의 평수를 평소보다 두 배는 넓혀가면서, 젓가락으로 집은 면들이 중간이 끊기지 않게 입 속으로 다 빨아 넣었다.
“쩝쩝쩝....”
그리곤 쫀득하면서 찰진 맛이 장난 아닌 면 빨을 입 안 가득 넣고 씹으면서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와 같은 반응은 내 뒤를 따라서 면을 흡입한 경호팀원들에게서도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하지만 이럴 때 꼭 초를 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
“....크륵....큭큭....”
면치기를 잘못한 듯 경호팀원 하나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중식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보통 면치기 실패를 해도 기침 몇 번하고 물 좀 마시면 진정이 되는 데, 하필 그 면이 매운 짬뽕 면이었다. 그것도 청양고추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
그렇다보니 경호팀원은 기침하는 걸로는 감당이 안 됐던 모양이었다. 중식집 밖에서 그 경호팀원이 뭘 할지까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재차 젓가락을 뻗어 짬뽕 면을 집어 올렸다.
그렇게 백짬뽕을 완뽕하고 나서 매운 입을, 차가운 물로 살짝 입가심하고 나서 몸을 일으킨 나는, 경호팀원들과 같이 중식집을 나섰다. 그리고 근처 테이크아웃 되는 커피 전문점으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제대로 입 안을 식혔다.
그 뒤 시간을 보니 이제 8시가 좀 넘은 시간. 나는 이 근처에 특급 호텔로 가자고 했고, 경호팀원들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그레이스 호텔로 나를 모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는데, 차가 출발하고 몇 분 되지 않아서 삼명호텔이 내 눈에 보였다.
“이봐요. 삼명 호텔도 특급 호텔 아닌가요?”
내 그 말에 운전석 옆 조수석에 타고 있던 경호팀원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대표님께서 거기는 꺼려하시는 줄로 알고 배제를....”
“그냥 저기로 가요.”
안 그래도 오늘 밤에 나는 삼명호텔 CEO인 서지연을 만날 생각이었다.
내가 아는 서지연은 일벌레로 토요일이라고 해도 출근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녀는 일단 출근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그런 습성이 쉽게 고쳐 질 리 없었다.
“어디....”
나는 나를 태운 차가 U턴 하는 걸 보면서, 천천히 바지 호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서 서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백준열의 생각 대로였다. 서지연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예외없이 출근을 했다.
물론 주말이니 평소처럼 일찍 출근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기계는 아니니 휴식은 필요했고, 해서 아침 10시까지 푹 잔 다음, 11시쯤에 느직하니 출근을 했고, 아침 겸 점심으로 챙겨 온 샌드위치와 커피로 식사를 하고는 쭉 일을 했다.
“아아....”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던 그녀가 주위가 어둑해지자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허얼....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어느 새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을 넘어 있었다.
꼬르르륵~
그때 그녀 배에서 아우성을 쳤다. 11시쯤 먹은 샌드위치 빼고 탄수화물이라고는 전혀 먹지 않아선지 허기가 졌다.
“휴우....얼추 일도 마무리 단계고....”
나머지는 내일 집에서 잠깐 틈을 내서 정리를 하면 됐다.
서지연은 그 동안 준비한 자신의 결과물을 정리하고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을 시켰다.
그녀도 토요일에는 일해도 일요일은 가급적이면 쉬는 편이었다. 평소 그녀는 집으로 일을 가져가는 편은 아니었는데, 지금 준비 중인 일은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둬야했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한 투자자가 언제 자신을 보자고 할지 몰랐으니까. 그녀는 그때 지금 준비한 걸 내 놓고, 반드시 그 투자자의 투자를 받아내야 했다.
그 길만이 그녀가 모친을 따라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책상 위 정리를 끝내고 노트북을 챙겨 든 그녀는, 옷걸이로 가서 자신의 겉옷과 핸드백을 챙겨 들고, 삼명호텔 대표실을 나섰다.
오늘 그녀는 자느라 자기 몸 관리를 못 했다. 그래서 그녀는 10시까지 일하는 대신 휘트니스 센터로 향했고, 거기 가기 전에 먼저 고픈 배를 채웠다. 당연히 철저히 관리된 식단으로.
그 후 휘트니스 센터에서 2시간 가까이 강도 높은 운동을 한 후, 그녀가 샤워실로 향할 때였다.
“어?”
그녀가 여태 기다려 온 전화가 하필이면 이때 걸려왔다. 서지연은 그 전화가 혹시 끊어질세라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어어. 준열아. 어. 어. 물론이지. 네가 부르면 바로 가야지. 어디? 삼명호텔? 알았어. 1시간, 아니 30분만 기다려. 뭐? 어어. 그, 그래주면 고맙지. 알았어. 9시 30분까지 삼명호텔 라운지 커피숍으로 갈게.”
그렇게 통화를 끝낸 서지연. 그녀가 손에 쥔 핸드폰을 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됐다!”
그 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휘트니스 센터 라커룸 안에 여자들이 전부 그녀를 쳐다봤다. 서지연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잠시 머리를 숙인 뒤 후다닥 샤워실로 내뺐다.
* * *
샤워를 하면서 연신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 서지연.
“랄라라라라....”
그러다 입에서 허밍에 가까운 노랫소리까지 흘러나왔다. 그 정도로 서지연은 지금 기분이 좋았다. 오늘 출근해서 그녀가 준비한 것은 바로 삼명호텔과 임페리얼 호텔의 인수합병 안이었다.
맞다. 바로 백준열이 고려했었던 건데 귀찮다고 포기한 그걸, 지금 서지연이 추진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다국적 호텔 기업인 임페리얼 호텔이, 해선 안 될 실수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그걸 알아낸 서지연이 임페리얼 호텔 코리아를 삼명호텔이 흡수해서, 그 규모를 키울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아직 한국에 남아 있다는 걸 모르는 백 회장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찾아가서 인수제안서를 내민다? 그 자리에서 잡혀 미국으로 보내질 게 뻔했다.
해서 서지연은 백승렬 회장이 아닌 백준열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했다.
물론 바로 호텔 인수 얘기는 하지 않았고 ,꼭 할 말이 있으니 한 번 시간 내서 만나 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드디어 녀석에게서 오늘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도 CEO니까 알겠지. 이게 절호의 기회란 걸 말이야.”
이 인수합병이 이뤄진다면 삼명 호텔은 단숨에 한국 호텔 계의 원 티어 자리를 꿰 찰 수 있었다. 무엇보다 통화 할 때 백준열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평소 싸가지 없는 놈이, 은근히 그녀를 배려해 주었다.
원래 그녀는 30분이면 지금 녀석이 있는 곳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씻지 않고 바로 옷을 챙겨 입고, 거기로 달려 갈 생각이었다.
한데 녀석이 그랬다. 천천히 와도 된다고. 그러면서 무려 한 시간 넘게 그녀에게 시간을 주었다. 그녀가 샤워하고 여유 있게 거기 갈 수 있을 시간을 말이다. 근데 거기가 그녀의 일터인 삼명호텔이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백준열이 오늘 밤에 삼명호텔에서 묵을 모양이었다.
그녀 때문인지 몰라도 서울 시내에 있는 특급 호텔들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녀석이, 정작 삼명호텔에는 묵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장난삼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삼명호텔 로얄 스위트 룸도 좋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바로 콧방귀를 날렸었지.
“내가 백지연이 아니라....이제 서지연이라서 그런가?”
그 말을 혼자 주절거리며 씁쓸하게 웃음을 짓던 서지연. 그녀는 샤워 후 머리까지 감았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챙겨 입고 라커룸을 나섰다.
웅성웅성....
뭐 때문인지 몰라도 휘트니스 센터 안이 소란스러웠다.
아마도 TV뉴스에서 크게 이슈가 될 만한 보도라도 한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 서지연에게 그런 뉴스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 머릿속에는 어떻게 백준열을 설득시켜서, 임페리얼 호텔과 인수합병을 진행 시킬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 * *
삼명호텔의 로얄 스위트룸에 들어선 내가 시간을 확인하니 8시 30분이었다.
내가 하려는 그 일을 진행하기까지 이제 30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호텔에 오고 체크인 후 여기 오는 동안 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였다.
“허어. 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끌어 내린다고?”
그것도 하루아침에 말이다. 이게 보통 사람으로 가능한 일이겠나? 물론 상상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자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진짜로 내게 있었다.
그러니까 총선을 앞둔 대한민국은, 이제 대선까지 같이 진행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될 터였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터트리게 될 그 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러게 왜 나를 건드려.”
이로서 현 청와대 주인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되어 청와대에서 쫓겨나는 대통령이 될 공산이 커졌다.
나는 곧장 냉장고로 가서 거기 들어있는 캔 맥주 하나를 꺼냈다.
치익!
그 캔 맥주를 딴 후 한 모금 맥주를 마시며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자 서울의 전망이 한눈에 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서지연이 여기 좋다고 한 게 아니었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군.”
이제 내가 삼명호텔에 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어차피 서지연은 곧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참. 오늘 서지연 보기로 했었지.”
그러려고 여기로 온 참이기도 했었고. 나는 서지연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그보다 먼저 전화 걸어야 할 곳이 생각났다.
“맞다. 이 실장. 그 인간 폭탄 터트리고 나서 연락하면 짜증내겠지?”
앞으로 삼명그룹을 내 걸로 만드려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 이동훈 비서실장이었다.
그의 도움 없이 나는 제대로 삼명그룹을 물려받을 수 없었고, 또 그 공룡기업을 경영해 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니 어째든 그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한데 조금 후 내가 할 일은 그에게 찬물, 아니 똥물을 끼얹는 일일 수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통보 정도는 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손목에 시계를 보고서, 캔 맥주를 왼손으로 옮겼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바지 호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꺼내서, 삼명그룹 이동훈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동훈이 무심코 내 전화를 받았다. 분명 내가 건 전화란 걸 알 텐데 말이다.
“이 실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이동훈은 철저히 사무적으로 굴었다. 그가 이러는 건 그의 기분이 지금 썩 좋지 않다는 얘기다.
‘괜히 전화했나?’
나는 속으로 후회가 됐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조금 뒤 내가 칠 사고에 대해서 미리 이 실장에게 얘기를 해야했다.
“조금 이따가 TVM의 9시 뉴스에서 쇼킹한 보도가 나갈 겁니다.”
-쇼킹한 보도요?
내 말에 이 실장의 목소리가 바로 날카로워졌다. 그도 직감한 모양이었다. 내가 지금 엄청난 사고를 치려 한다는 걸 말이다.
“네.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녹취록이 편집된 상태에서 뉴스에 보도가 될 겁니다.”
-누, 누구랑 누구요?
태연한 내 말과 달리 그 말을 들은 뒤에, 이 실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격앙되다 못해서 떨리기까지 하는 게 나한테 고스란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