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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살짝 경계하던 대통령의 눈빛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변한 걸 직감한 국정원장.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통령에게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한 몸 다 바쳐서 대통령님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그런 국정원장을 아주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 나라를 위해,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이다.
물론 좋은 말이다.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고,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자보다는 이렇게 자신을 위해 충성하겠다는 자가 더 좋았다. 자신의 입 안 혀처럼 구는 자가 말이다.
‘좋아.’
대통령은 이미 정했다. 눈앞의 저 자를 청와대로 불러들이기로 말이다.
그러려면 약간의 사전 정리 작업이 필요했다. 뭐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혁신이라는 말과 자신의 눈물 연기 한 번이면 해결 될 일이었다.
“그보다 국정원장?”
“네.”
“당신이 거기 나오면 국정원은 누가 맡아야겠소?”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너를 대신할 자가 있냐는 대통령의 물음이었다. 그러자 국정원장이 반짝 눈을 빛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보다 더 대통령님의 말을 잘 따를 자를 거기 추천 할 테니 말입니다.”
국정원장은 자신이 추천하는 자를, 대통령이 자기 다음 국정원장 자리에 앉혀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통령 입장에서야 지금 국정원장이라는 개보다 더 충견이 그 자리에 앉을 거라니, 국정원장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해야 했다.
“뭐 그렇다면야....”
대통령은 못 이기는 척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국정원장에게 무언의 긍정을 보냈다.
그가 추천하는 자가 누가 됐던 국정원장 자리에 앉히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대통령과 무려 1시간 넘게 독대를 하고 청와대를 나서는 국정원장의 입이 완전 귀에 걸렸다.
“국정원장이 막 청와대 정문을 나갔다는 보곱니다.”
그때까지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던 대통령은 경호실장의 그 얘기를 듣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냥개가 사냥을 잘했으니 두툼한 고깃덩이 정도는 던져 줘야지. 그보다 삼명그룹....거기를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는 말이 나올까나?”
대통령은 두 손 깍지를 낀 채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난 듯 근처에 있던 경호실장에게 물었다.
“장 실장. 정책실장 오늘 출근했나?”
“아닙니다. 오늘 쉬는 날인 걸로 압니다만. 부를까요?”
“아냐. 놔 둬. 그럼 정무수석은 있겠군.”
“네.”
“정무수석 오라고 해.”
“네.”
경호실장이 정무 수석을 부르러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 대통령이 눈빛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정책실장을 날리고 정무수석을 그 자리에 앉혀야 하겠어.”
현 정책실장은 청와대에 들어오고 나서, 그 동안 시시콜콜 대통령이 하려는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걸 그 동안 김순철 비서실장이 잘 다독여서 끌어왔는데, 그런 비서실장이 사라진 이상 눈엣가시 같은 정책실장을, 그 자리에 계속 둘 순 없었다.
대통령은 월요일에 새로운 비서실장을 임명하면서 동시에 정책실장을 자르고, 그 자리에 자신의 말이라면 콩으로 팥을 쑨다고 해도 믿는, 정무수석을 앉히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대통령은 청와대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런 청와대 힘을 이용해서 기필코 삼명그룹을 자기 앞에 무릎 꿇릴 생각이었다.
* * *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절대적이었다. 그랬기에 국정원의 힘까지 동원할 수 있었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력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은 가지고 있었다. 백 회장의 그런 막강한 힘의 원천은 바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에도 백 회장의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국정원장이 기조실장과 무슨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국정원의 2인자인 1차장 배동석은, 삼명그룹 이동훈 실장의 연락을 받고 잔뜩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원래 지금 국정원장 자리는 그의 것이었다. 삼명그룹에서 그를 밀어주고 있었으니까. 한데 대통령이 잘려도 벌써 잘려야 할, 전 정권에서 붙어먹던 국정원장을 그대로 두면서, 배동석의 심기는 계속 불편했다. 한데 그 국정원장이 감히 겁도 없이 삼명그룹에 국정원 요원을 침투 시켜서 주요 정보를 빼내다니. 이건 배동석을 제대로 엿 먹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삼명그룹의 힘이 계속 필요한 그에게, 이건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낸 꼴이었다. 하지만 또한 이건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가 이번 위기만 잘 넘긴다면 국정원장 자리를 바로 꿰찰 수 있는....그때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배동석은 바로 문을 향해 외쳤다.
“들어 와.”
그러자 정장차림에 포마드 기름으로 정확히 2대 8 가르마를 탄 중년 남자가 1차장 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응접 소파 상석에 앉아 있는 배동석을 보고 꾸벅 인사를 한 뒤, 곧장 그의 옆 소파로 다가와서 앉았다. 그런 그에게 배동석이 바로 물었다.
“누군지 알아냈나?”
그러자 2차장 밑에 대공수사팀장인 공형석이 대답했다.
“네. 3차장 밑에 심리전단 쪽 팀원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3명으로 압축 된 상탠데 제가 볼 때 김종훈이 아닐까 싶습니다.”“김종훈?”
“네. 왜 저번 산업스파이 색출 때 공을 세워서 대리에서 과장으로 특진한 친구 있잖습니까?”
“아아. 그 당돌한 친구! 그런데 그 친구가 왜 3차장 밑이야? 당연히 2차장이나 내 밑에 있어야지?”
“그, 그게....그 친구 외삼촌이 심리전단장이라서....”
“크음....그렇군.”
아까운 인재지만 그의 피붙이가 적이라면, 함부로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기 어려웠다. 공형석의 말을 바로 이해한 배동석이 곧장 이어 말했다.
“그래서 김종훈이 지금 어디 있는데?”
“3차장이 숨기고 있긴 한데....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강원도 쪽 안가에 있는 걸로....”
“그래? 그럼 사람들 보내서 김종훈이 잡아 와.”
“네. 안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저희 팀원들 먼저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알겠지만 이 일이 청와대쪽에 알려져선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압니다.”
“오늘 중 자네 계좌로 1억이 들어갈 거야.”
배동석의 1억이란 말에 공형석의 눈빛이 번뜩였다. 공형석이 청와대와 척을 지면서도 배동석을 따르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청와대의 말을 들으면 물론 직급이 오르고, 더 출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국정원장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자리는 이미 잘 난 자들이 줄을 서 있을 테니까. 그도 자기 주제는 알았다. 자신이 그들과 견주어 밀릴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럴 바에야 돈이라도 많이 받는 게 나았고, 삼명그룹에서는 그 돈을 충족시켜 주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물론 윗선과 그 돈을 나눠가져야 하지만 자기 월급의 10배도 넘는 돈을 이렇게 챙길 수 있으니, 공형석으로서는 전혀 불만은 없었다. 거기다가....
“자네 밑에 애들에게도 3천씩 보내 줄 테니까, 명단과 계좌번호 내게 보내고.”
“네.”
삼명그룹에서는 공형석 말고, 그 밑에 직원들까지 살뜰히 챙겨 주었다. 이러니 사람들이 대통령 보다 삼명그룹을 따르는 거겠지.
공형석은 1차장실을 나와서 곧장 대공수사팀으로 갔고, 거기 자기 자리에서 지금 김종훈을 잡으러 강릉으로 간, 자기 밑에 팀원들의 명단과 그들 계좌번호를 간단히 워드로 작성해서 프린터로 뽑았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을 결재 판에 꽂아서 들고 1차장실로 다시 향했다.
* * *
백승렬 회장으로부터 한 소리 듣고 나서, 곧바로 대책 강구에 나선 이동훈 비서실장.
“늙은 너구리에게 제대로 뒤통수 맞았군.”
이동훈은 실제 뒤통수가 얼얼한지, 한 손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더듬었다. 그러다 경호실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같은 실장이고 자기보다 선배인 경호실장에게 이동훈은 깍듯이 존대를 했다. 반면 경호실장은 그에게 편히 말을 놨고.
-새끼. 증발했어. 뭐 국정원에서 손썼으면, 우리 힘으로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해외로 튀었을까요?”
-아니. 아직은 아냐. 그리고 그쪽에서 그렇게까지 해 줄 거 같지 않고.
“그게 무슨?”
-그쪽이 필요한 건, 그 놈 손에 들린 정보지, 그 놈 목숨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정보만 받고 그 놈은 제거할 거란 말이로군요?”
-그게 최상의 시나리오니까. 자살이 좋겠지. 그 다음 국정원에서 오리발 내밀면 끝이니까. 김종훈이 독단적으로 한 짓이다. 국정원과는 상관없다. 뭐 그런....
“하긴 우리도 김종훈 때문에 놈을 찾는 건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이동훈은 경호실장의 힘으로 이번 일을 해결 하기 어렵다는 걸 알자 바로 그와 통화를 끝냈다. 그리곤 곧장 국정원에 있는 친 삼명그룹 쪽 최고위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인사가 바로 국정원 2인자인 1차장 배동석이었고.
“....니 배 차장님께서 저 좀 도와주십시오. 네. 금전적인 부분은 저희 쪽에 말씀만 하시면 바로 해결해 드리죠. 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네. 잘만 된다면 제가 배 차장님의 공은 직접 회장님께 상주하겠습니다. 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배동석과 통화 후 이동훈은 비서실에, 향후 배동석에게 연락이 오면 그가 원하는 돈을 그 즉시 지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걸로 저쪽의 이목은 김종훈 쪽으로 돌렸고....”
이동훈은 다음 청와대 정책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는 김순철 비서실장에게 걸어야 했는데, 김 실장이 어제부로 잘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책 실장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네. 박 실장님. 삼명에 이동훈입니다. 네. 하하하하. 저야 좋죠. 그래서 말인데. 내일 시간 어떠십니까? 아뇨. 서울에도 좋은 골프장 많습니다. 예약이요? 농담도 참....저희 회사 소유 골프장에 골프치러 가는 데 예약은 무슨....하하하하. 네. 그러시죠. 장소는....”
이동훈은 정책 실장과 내일 골프 회동 약속을 잡은 다음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무슨 꿍꿍인지 몇 군데 더 전화를 하고 나서 한 동안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그렇게 대책을 수립한 이동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백승렬 회장이 있는 삼명가 본가를 향했다. 그쪽으로 가면서 이동훈은 본가의 김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 실장님.
“지금 회장님 뵈러 가는 중입니다.”
-회장님. 지금 뒤뜰 산책 중이십니다. 언제 도착할 거 같습니까?
“30분 뒤에요.”
-그렇게 회장님께 말씀 드리죠.
“고맙습니다.”
김 집사와 통화 후 그제야 자기 등을 등받이에 기대며, 이동훈이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우....”
그런 그의 시선이 잠시 차창을 향했다가 이내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더 밝은 빛과 함께 그의 눈에 뭉게뭉게 양떼구름이 보였고, 거기에 잠깐 넋이 나가 있었던 이동훈. 동심의 세계 까지는 아니고, 어릴 적 소풍 갔을 때 소풍 가방을 베고 누워서 쳐다보았던, 그때의 그 양떼구름과 지금의 양떼구름의 모습이 비슷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이동훈이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네? 국정원장이 한 시간도 넘게 그 양반과 독대를요?”
이동훈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 동안 보면 대통령이 국정원장과 만난 뒤에 꼭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보니 그들이 접촉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동훈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 * *
꼬르르르~
내 배에서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댔다. 그래서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7시가 다 됐다.
크리스탈 호텔 라운지 커피숍에서 대한국일보 유영규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한 시간 가까이 혼자 죽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간 동안 견신 시스템이 「개 짖는 소리」스킬을 사용해서, 지금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꽤나 중요한 정보들을 많이 획득했다.
“쩝쩝쩝....뭐 먹을까?”
나는 까칠까칠한 입안에 입맛을 다시며, 지금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했다.
오늘밤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지만, 그걸 실행하려면 아직 2시간 가까이 시간이 남았다. TVM의 저녁 뉴스는 9시에 시작 되니까 말이다.
그 동안 고픈 배를 채우고 내 스스로가 컨트롤 타워가 되어 그 일을 진두지휘해야 했다.
점심 때 밥을 먹었기에 저녁은 면이 당겼다. 거기에 얼큰한 국물이 생각났고. 그렇게 정리 되어 내 머릿속에 최종적으로 떠 오른 것은....
“짬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