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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런데 내가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 집사는 꼭 내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역대 왕들을 보면, 그 왕들의 입안 혀처럼 굴었던 내시들이, 그 왕이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면 차기 왕이 될 자와 손을 잡는 걸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렇게 내시들과 손을 잡은 차기 왕이 왕좌에 올랐다.
그만큼 왕의 수족 노릇을 하는 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은, 차기 왕이 될 자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안전적으로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나도 김 집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건, 현재 삼명그룹 후계자로 확정 된 나로서는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런 시류의 흐름이라 볼 수 있었다.
“뭐 모레 아침에 본가 가면 얘기 해 봐야겠군.”
그의 의도를 이미 간파 했는데 굳이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와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김 집사는 못 이기는 척 내 손을 잡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김 집사와 괜한 자존심 싸움을 내 쪽에서 건너뛰겠다는 거다.
이미 김 집사를 통해 월요일 아침에 본가에 들르라는 얘기를 들은 상황. 백승렬 회장이 나를 부른 의도야 뻔했다.
“그만 삼명그룹 본사로 들어오란 거겠지. 후계자 수업을 위해서....”
자리야 백승렬 회장이 어련히 알아서 만들어 놨을 거고. 나는 그룹 본사에 들어가서 내 후계구도의 기틀을 이미 잘 닦고 있는 이동훈 비서실장과 같이, 삼명그룹을 먹어치우기만 하면 됐다.
백 회장은 2년 뒤에 내게 삼명그룹을 넘길 생각인 듯 했지만 그거야 내가 하기 나름이고. 나는 생각 난 김에 「개 짖는 소리」스킬의 대상을 김 집사에서 백승렬 회장 쪽으로 돌렸다.
“쯧쯧....백 회장 보기보다 여린 면도 있군.”
나는 「개 짖는 소리」스킬의 감청, 도청 능력으로 백 회장이 넋두리를 듣고 서는, 그가 막상 두 아들을 쳐 내고 나서 가슴 아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지 만큼은 확고했다. 그리고 가급적 빨리 내게 회사를 물려주고, 자신은 전 세계 유람이나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내가 삼명그룹을 물려받아 삼명그룹 회장이 되는 게, 생각보다 훨씬 빨라 질수도 있을 거 같았다. 안 그래도 삼명그룹을 내가 먹기로 결심한 상태였기에, 나도 더는 뒤로 물러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잘 됐네.”
나는 백 회장에 이어서 그 다음으로 누구를 살펴볼까 생각했다.
「개 짖는 소리」스킬을 한 번 써 보니 여기에 재미를 들였달 까?
하긴 남의 말을 엿들어서 그 사람의 생각이나 의중을 간파 할 수 있으니 이보다 흥미진지한 일도 없었다.
그때였다. 이동훈 실장으로부터 급하게 보고를 받은 백 회장이 발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청와대가?”
나는 어처구니 없어하며 즉시 「개 짖는 소리」스킬의 대상을 백승렬 회장에게서 청와대의 제일 높으신 양반 쪽으로 또 돌렸다. 그랬더니....
“허어. 이것들이 기어코....”
청와대 제일 높으신 분이 자기 사위를 건드린 나를 기어코 가만 안 두겠단다.
가만 안 두면 어떻게 할 건지, 나는 그쪽의 대응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청취했다.
그러니까 사위 사랑이 장모라고, 영부인이 내 빌딩을 강탈하려고 든 자신의 사위 최지훈을 끝까지 편을 들면서 대통령도 생각이 변한 모양이었다.
불과 엊그제 내가 이동훈 실장에게 듣기로, 대통령은 삼명그룹에서 가지고 있는 그의 비리들에 대한 정보 때문에, 바짝 엎드리며 삼명 쪽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생각을 바꿔 먹었다는 건....
나는 다시 대통령에게서 백승렬 회장 쪽으로, 「개 짖는 소리」스킬을 바꿨다. 그랬더니....
“허어....”
내 생각대로 삼명그룹 비서실에 청와대에서 심은 자가, 대통령 비리에 대한 정보만 쏘옥 빼내갔단다. 그것도 싹 다.
그러니까 삼명그룹에서 현 대통령에게 채웠던 개목줄이 풀려 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백 회장이 이동훈 실장을 강하게 질책했다.
나는 굳이 그 소리까지 듣고 싶지 않아서, 다시 대통령 쪽으로 「개 짖는 소리」스킬을 바꿨다. 그리고 들었더니....
“쩝....”
대통령이 자신의 비리 정보를 완전히 없애버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니까 이제 현 대통령의 목에 채울 개 목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셈이었다.
대통령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위인 최지훈에 대한 증거들도 없애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지훈의 성상납 비리를, 내가 전부 조작해서 보도케 해서 무고한 최지훈을 음해한 걸로 몰아가려는 모양이었다. 근데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내리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국가정보원장, 즉 국정원장이었다.
“C발....”
국가정보원의 요원들을 이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비리를 빼오게 만들고, 또 가족의 비리를 없애는데 쓰다니. 대통령이 가도 너무 가고 있었다.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네.”
나는 이런 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잘 알았다. 그리고 한시라도 그 자리에 더 둘 수 없었다. 한 나라의 수장 자리를 그런 또라이가 맡는 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니 말이다.
해서 나는 일단 TVM의 새로운 대표가 된 박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박 대표님. 오늘 TVM 저녁 뉴스에 특종 하나 내보냅시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의아해 하는 박인호. 그런 그에게 나는 따로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뉴스 시작 도입부에서 10분 정도 시간 빼놔요. 그때 아주 재미있는 녹취록을 공개할 생각이니까.”
나의 녹취록이란 말에 눈치 빠른 박인호가 말했다.
-이 나라를 심하게 뒤흔들 수 있는, 그런 특종이겠로군요?
“네. 아마 이거 나가면 세상이 바로 발칵 뒤집어 질 겁니다.”
내가 말한 녹취록이란, 바로 좀 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국정원장 사이에 주고받은 얘기들을 말했다. 거기에는 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모 그룹에서 쥐고 있는 자신의 비리 정보를 국정원 요원들을 시켜서 빼내게 했고, 또 폐기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물론, 자신의 사위를 구하기 위해서 국정원에 증거은폐를 지시하는 게 고스란히 다 녹음이 되어 있었다.
바로 나의 「개 짖는 소리」스킬의 녹음 기능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그 녹음파일을 TVM에서 뉴스를 시작하기 5분 전에 박인호 대표의 메일로 전송해 줄 생각이었다.
박인호 대표야 믿지만 ,그 밑에 TVM 소속 직원들까지 믿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박 대표가 직접 뉴스데스크로 가서 챙겨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 정도 특종이라면 대표인 제가 나서는 게 맞죠.
박인호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 주었다. 그렇게 박인호와 통화를 끝낸 뒤, 나는 「개 짖는 소리」스킬을 사용해서, 앞서 내가 감청, 도청으로 들었던 대통령과 국정원장 사이의 대화 내용을, 내 핸드폰의 녹음기에 고스란히 옮겨 담는 작업을, 살짝 귀찮은 그 일을 바로 시작했다.
* * *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 되었을 때, 은밀히 국정원장을 불러서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국정원장 자리에 계속 앉혀 두는 조건으로, 국정원의 힘을 대통령의 자리에 취임하기 전부터 끌어다 썼다.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데 물심양면, 가장 큰 역할을 한 삼명그룹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물론 그걸 겉으로 전혀 티내지 않았기에, 그쪽의 도움을 받아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대통령 당선자일 때부터 국정원을 움직여서 삼명그룹에 대해 은밀하게 그 뒤를 캐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놈들. 내 이럴 줄 알았다.”
삼명그룹에서 몰래 대통령의 개인 비리들을 모아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겠나? 자신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우겠다는, 아니 이미 채운 상태였다.
그것도 모르고 국정 초반 대기업 길들이기를 할 때 삼명그룹도 손 봐주려했던 대통령.
그는 그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대기업은 몰라도 삼명그룹의 눈치는 보고 있었는데, 최근 자신의 사위의 성상납 비리 문제로, 삼명그룹과 충돌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자 삼명그룹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대통령은 납작 엎드렸다. 사위고 처자식이고 간에 자신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그랬는데 바로 오늘 국정원에서 엄청난 쾌거를 거둔 게 아닌가?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삼명그룹에 잠입 시킨 요원이 그 정보를 다 찾아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하아....하하....크하하하하하....”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이 떠나가라 파안대소를 했다. 그는 완전 흥분해서 국정원장의 손을 잡고 말했다.
“국정원장. 국정원에서 정말 큰일을 해 냈소이다. 내 이 일은 절데 잊지 않을 것이요.”
“아,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저희를 그만큼 믿어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걸로 나를 옭죄고 있던 삼명그룹의 사슬은 전부 풀렸소이다.”
“그, 그러면....”
“조져야지. 삼명그룹을....”
“하지만 상대는 삼명그룹입니다.”
“흥. 그래봐야 대한민국 아래 있는 일개 기업이 아니오? ‘주주 자본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치는 대기업의 경영 행태를, 내 이번 기회에 바로 잡고야 말 것이오.”
단호한 대통령의 의지에 국정원장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대통령이 말하는 걸로 미뤄서 대기업에 대한 비강제적인 권유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모양이었다.
하긴 연기금을 동원한 주주권한 강화라는 명분의 강력한 압박수단이 있는 대통령이었기에, 그의 엄포가 국정원장에게도 충분히 타당한 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말인데, 내 사위가 요즘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있잖소?”
“네.”
“그거도 국정원에서 좀 나서 주시오.”
“네?”
“어차피 증거가 없으면 검찰도 기소 못하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대통령 사위의 범죄 사실을 싹 없애버리라는 얘기였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면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상대가 대통령이었다. 자신의 목줄을 꽉 움켜쥐고 있는. 해서 국정원정은 감히 안 된다는 말을 대통령에게 할 수 없었다.
“그, 그렇지요.”
“국정원에서 증거만 싹 없애주면 검찰 쪽이야, 우리 쪽 민정수석이 나서서 손 좀 쓰면 알아서 묵살해 줄 거고....”
대통령은 이미 어떤 식으로 그 일을 무마 시킬지 다 염두에 두고 있었다. 때문에 국정원장으로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네.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좋아요. 좋아.”
국정원장의 대답에 아주 흡족해 하는 대통령. 국정원장은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자기 한 말에 토를 달거나 반대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 특히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려도 좋은, 청와대의 2인자인 비서실장 김순철이 말이다. 그는 너무 대통령의 말에 제동을 많이 걸었다. 저번 보니 대통령이 싫은 티를 팍팍 내는데 그걸 몰랐다. 진짜 어지간히 눈치 없는 양반이었다.
‘그러니 잘린 거겠지.’
아직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어제 오후에 김순철을 불러서 그에게서 전격적으로 사직서를 받아냈다. 그러니까 어제부로 김순철을 잘라 버린 거다.
그 만큼 대통령으로서는 김순철이 꼴도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오늘 청와대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비서실장에게 사직서는 받은 대통령이, 정작 비서실장 인선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랬던 대통령이 오후에 국정원장을 불러서 한 시간 넘게 독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봐. 혹시 국정원장을 비서실장 자리에 앉히시려는 거 아냐?”
“미쳤어? 청와대에도 비서실장 노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가?”
“그래. 알다시피 국정원장은 전 대통령이 임명한 양반이잖아. 그 양반 뭘 믿고 대통령께서 비서실장 자리를 맡겨?”
“그러네. 그럼 비서실장은....”
“아마 정책실장님이거나 아니면 당에서 올 가능성이 높지.”
이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앉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청와대 내에서 아무도 없었다. 사실은 대통령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국정원장이 직접 자기 입으로 얘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통령님. 제가 가까이서 모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뭐라고요?”
좀 전까지 국정원장에게 자신의 간과 쓸개까지 내 줄 거처럼 굴었던 대통령. 하지만 국정원장이 한 말을 듣고 얼굴빛이 싹 돌변했다.
“비서실장 자리가 공석이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 보다 대통령님께 헌신적이고 충직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 오만....”
“그렇다면 저 한번 믿고 비서실장 맡겨 보십시오. 절대 대통령님 실망 시켜드리는 일 없을 테니까요.”
무슨 똥배짱인지 대통령 앞에서 대 놓고 큰 소리 치는 국정원장. 그런 국정원장의 두둑한 배포가 대통령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미 생각해 두고 있었던 비서실장 자리에, 국정원장도 슬쩍 후보에 올리는 대통령. 그런 그가 말했다.
“으음....그러면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