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48화 (544/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일단 나는 민 실장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저 민영석입니다.

“압니다. 근데 무슨 일로?”

민 실장의 일은 박 비서와 둘이 상의해서 처리하면 됐다. 굳이 그가 내게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박 비서가 내게 전화를 걸어 왔을 거고.

-좀 전에 서진그룹 측과 실무 진 회의를 막 마쳐서, 그 결과 보고 차 전화 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내가 알기로 오늘 서진그룹 측과 접촉은 그저 요식 행위일 뿐이었다. 진짜 협상을 위해서 사전에 서로 눈치를 살피는 자리 말이다. 그런 자리에서 무슨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리 없었다.

-저쪽 요구 사항으로....

민 실장은 진심으로 내게 오늘 있은 실무 진 회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려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길게 통화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해서 통화 중 민 실장의 말을 끊었다.

-....의 주식 시장에 대한 개입을...

“민 실장님!”

-네?

“보고는 됐습니다. 수고 하셨고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월요일부터 진짜 바빠 질 테니까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그 정도 눈치 못 챌 사람이라면, 나도 애당초 민 실장을 거두지 않았다.

-아아....네.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민 실장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그에게 여태 보여 준 건 말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란 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손바닥 뒤집는 거처럼 쉬운 것이기도 했다.

김명진 회장의 최측근으로 서진그룹 2인자로 살아 온 그 역시, 그런 짓을 여러 번 해왔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민 실장은 내가 그럴까봐 내 눈치를 보며 이러는 거다. 자신이 이 일을 진심으로 열심히 한다는 걸, 나름 내게 어필도 하고 말이다.

“걱정 마세요. 민 실장이 서진그룹 회장 자리에 앉는 건 확실하니까.”

굳이 이럴 거 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불안 해 하는 민 실장을 다독여 주는 셈 치고, 내가 다시 한 번 그에게 확답을 주자, 그제야 민 실장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궁상스럽게 굴었군요. 그럼 저는 백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말은 믿어도 됩니다. 뭐 그건 민 실장님도 잘 아시는 바 일 테지만 말입니다.”

김명진 회장과 백준열이 같이 어울려 다녔을 때, 적어도 백준열은 자기 말에 책임을 졌다.

반면 김명진 회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백준열에게 거짓말을 하고 또 거하게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고 말이다.

당연히 김 회장의 지시를 받고, 그 짓을 직접 수행한 민 실장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김 회장 지시라 어쩔 수 없이....

“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민 실장님은 이제 김 회장이 아닌 제 사람 아닙니까?”

-네. 저는 백 대표님 사람 맞습니다. 앞으로도 이 마음 변치 않고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을 절대 저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쭉 함께 갑시다.”

민 실장은 내 말에 감격한 듯 다시 한 번 충성을 다하겠다고 했고, 그런 그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그 사이 우리를 태운 차가 약속 장소인 크리스탈 호텔에 다다랐다.

그때까지 내 품에서 잘 자고 있던 장혜원. 나는 그런 그녀를 깨웠다.

“혜원아. 일어나 봐.”

“으으음....여기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차창을 두리번거리는 장혜원.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나 저기 크리스탈 호텔에서 약속이 있거든. 그러니 내가 호텔 입구에서 내리거든, 넌 계속 이 차타고 집에 가.”

“뭐? 하지만....”

“괜찮아. 그리고 너 거기서 빼내 줄 계획도 다 세웠어. 그러니까 넌 나만 믿고 기다려. 며칠 안 걸릴 거야.”

“어? 어어....”

장혜원은 내 말에 어리둥절해 하며 대답은 했지만, 한 동안 멍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사이 우리를 태운 차가 크리스탈 호텔 입구 쪽에 다다랐고, 차가 멈춰 서자 호텔 직원이 달려와서, 차 밖에서 차문을 열어주었다.

“이따 연락할게.”

덕분에 나는 장혜원과 더 길게 얘기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 안의 장혜원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런 날 보고 장혜원도 살짝 억지스런 미소와 함께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걸 보고 더 내릴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차문을 닫았고, 장혜원을 실은 차는 내 지시에 따라 바로 호텔 입구에서 돌아서 출구 방향으로 쭉 달려갔다.

나는 장혜원을 태운 차가 호텔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그대로 몸을 돌려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 * *

약속 시간은 5시인데 내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5시 15분이었다.

거기다 약속 장소인 호텔 라운지의 커피숍까지 가는 데 5분이 더 걸려서, 나는 20분이나 늦게 나와 인터뷰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유영규 앞에 설 수 있었다.

“유 기자님?”

“아아. 네. 백 대표님.”

유영규는 내가 그 앞에 나타날 때까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사를 쓰는 거 같았는데, 나를 보자 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죠?”

내 말에 유 기자가 자기 손목시계를 보더니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20분 늦으셨네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입니다.”

그리곤 먼저 호주머니 속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내서 거기 명함을 내게 건넸다.

“대한국일보 유영규 기잡니다.”

“네. 백준열입니다. 명함 드릴까요?”

“주시면 좋죠.”

유 기자는 기자답게 넉살이 좋았고, 나는 그가 원한 내 명함을 기꺼이 그에게 주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이건 개인적으로....저희 형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유 기자가 내 말을 녹음기에 녹취하기 전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중히 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진짜 자기 형을 살려 준 데 대한 고마운 심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 상황에서 유 기자의 형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미친 인간이 자기 차 부서질 걸 알면서, 다른 사람 목숨 구하자고 그런 짓을 하겠나?

그랬기에 유 기자의 인사에 나는 내가 아니더라도, 주위에 누군가가 너의 형을 구했을 거라는 겸양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참....”

그래서 내가 겸연쩍어 하자, 유 기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도로 앉더니 말했다.

“흐하하하. 이거 완전 빼박이죠?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한다거나 비행기, 차안에서 사람 구하는 얘기는 있어도, 달리는 차를 멈춰 세우고, 그 차 안에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사람을 구한 사람은, 아마 백 대표님께서 처음, 세계최초 일겁니다.”

그 말을 하며 내게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던 유 기자. 그가 녹음기를 켜면서 본격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제일 궁금한 건 맞은편에서 차를 타고 오던 사람이, 어떻게 심장마비란 걸 아셨냐는 겁니다.”

“그건....”

나는 당시를 떠올리며 유 기자에게, 내가 눈이 상당히 좋은데 당시 정말 우연히 맞은편 차 안 운전자를 보게 됐고, 고개 푹 숙이고 운전 중인 운전자를 보고, 저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나도 몰래 저대로 두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까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고, 그 즉시 내 차의 운전기사로 하여금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를 들이받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멈춰 세운 맞은편 차의 운전석에 사람이 이미 의식이 없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말이다.

내 얘기를 쭉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유 기자가 감동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백 대표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시며, 제가 아는 재벌 3세들 중 유일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 중인 분이십니다.”

나는 유 기자의 극찬에 아니라면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유 기자를 보니 아무래도 나에 대해서 아주 유익한 기사를 써 줄 거 같아 보였다. 그렇게 유 기자와의 인터뷰가 30분 정도 진행 되었고, 충분한 기사거리를 확보한 듯, 유 기자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는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내가 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6시가 다 됐다. 나는 으레 유 기자에게 말했다.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아닙니다. 마감이 촉박해서 바로 신문사 들어가 봐야 합니다.”

“아쉽군요. 그럼 또 기회가 되면 보도록 하죠.”

“하하하하. 대표님께 기자 보는 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실 텐데요?”

“그런가요? 그럼 언제고 기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대포 한잔 합시다.”

“대포라....나이가 많으시지 않은 걸로 아는데....혹시 대포가 뭔지 아시고 쓰시는 지?”

유 기자가 살짝 장난 끼 어린 얼굴로 내게 대포라는 말을 걸고 넘어졌다. 하지만 백준열, 이 인간이 어디 보통 인간인가?

“에이. 설마 내가 뻥뻥 쏘는 대포를 얘기했을까요? 대포는 큰 술잔, 혹은 큰 술잔으로 마시는 술, 술을 별 안주 없이 큰 그릇에 따라 마시는 일을 의미하는 거잖습니까?”

“오오. 잘 아시는군요.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네요.”

“소문? 아아. 내가 멍멍이라는 거 말이로군요?”

“크하하하. 아시고 계시는 군요?”

“원래 좋은 소문 보다 안 좋은 소문이 더 빨리 귀에 들어오는 법이죠.”

“내일 나가는 기사로 백 대표님에 대한 그 안 좋은 소문은, 이제 이 바닥에서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될 겁니다.”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유 기자. 대체 나에 대해 얼마나 좋은 기사를 써주려고 저러나 싶으면서, 나는 그가 말한 내일 그의 기사가 벌써 궁금해졌다.

* * *

유 기자를 보내고 나는 잠시 더 호텔 라운지 커피숍에 머물렀다. 왜냐하면 「개 짖는 소리」스킬을 사용해서 몇 사람의 동태와 그 사람들 주변 상황을 엿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 중 내가 제일 먼저 「개 짖는 소리」스킬을 사용한 사람은 바로 MK엔터 김만규였다.

“으음....아직까지 양 전무가 손을 쓰진 않았군.”

김만규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나, 나는 팔짱을 낀 체 「개 짖는 소리」스킬의 도청, 감청을 했다. 그랬더니....

“뭐? 누굴 납치 해?”

김만규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누군가에게 하고 있었다. 근데 그 누군가가 알고 보니 채시연을 납치해서 데리고 있는 작자였다. 이름이....

“안 실장?”

김만규가 그 자를 안 실장이라는 직급으로 꼬박꼬박 부르는 걸로 봐서, MK엔터 소속 직원인 듯 했다. 김만규는 그 안 실장이라는 자에게 채시연의 재계약 문제 뿐 아니라 우리 회사에 잘 다니고 있는 김효석 실장의 납치까지 좀 전에 지시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나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지금 김만규가 있는 곳이 MK엔터의 대표실임을 알아내고는, 곧바로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양태석이 아까 그랬다. 김만규가 있는 데로 이미 애들을 보냈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오!”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개 짖는 소리」스킬을 사용해서 도청, 감청하고 있는 곳에 한 바탕 난리가 났으니까. 그리고 그 난리를 일으킨 게 아무래도 양태석 쪽 사람들 같아서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를 유심히 듣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김만규와 함께 안 실장이라는 자도 잡았단다. 그래서 안 실장이라는 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자는 말을 했고, 나는 딱 거기까지 듣고서 「개 짖는 소리」스킬의 사용을 중지했다. 양태석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해 낸 걸 확인 했으니, 여기서 그쪽은 더 알아 볼 필요도 없었다.

“그쯤이면 됐고....”

해서 나는 다음으로 궁금한 사람을 「개 짖는 소리」스킬의 도청, 감청으로 살폈다. 원래는 백 회장을 생각했다가, 방금 그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삼명가의 김 집사로 말이다. 백승렬 회장이 있는 본가에서 그야말로 단연코 실세 중 실세였으니까.

“뭐?”

그랬더니 김 집사가 상당히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거 봐라?”

김 집사는 지금 삼명그룹의 공식적인 후계자인 나와 손을 잡고 싶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먼저 그 말을 꺼낼 경우, 자신의 값어치가 그만큼 떨어져 보인달 까?

또 내게 한 번 숙이고 들어가면, 계속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때 나를 도우면서 슬쩍 내게 손을 내밀자는 게 김 집사의 생각 같았다.

“허어.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드링킹 하고 계시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