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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46화 (54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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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예약이 안 걸렸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싶으면 해

대화에 굶주렸다고나 할까? 내가 중학교 시절 얘기를 살짝 꺼내자, 장혜원은 신이 나서는 거의 혼자서 30분을 혼자 떠들었다. 사실 나야 그녀 말이 대부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준열이 자신의 중학교 시절 기억을, 자신의 기억의 저 너머 장막 속에 감추고, 내게 일체 공유하고 있지 않다보니 말이다.

아마도 그 당시의 기억 중에 내가 알면 안 되는 기억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숨기고 싶은 과거라도 있기라도 했던지.

아무튼 그래서 나는 대충 장혜원의 말에 장단만 맞춰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혜원의 입이 쉴 생각이 없는 걸 보면, 그 동안 그녀가 얼마나 주변에 얘기할 사람이 없었는지 알 거 같았다.

“그림 식품이라고 했지?”

“어?”

“네 시댁 말이야.”“어. 뭐....”

그림 식품은 식품 산업과 외식 산업 쪽에서는 방귀 깨나 뀌는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진짜 대기업들이 요즘 외식 산업 쪽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많이 뛰어들고 있어서, 요즘 많이 힘들다는 얘기가 돌았다.

사업이란 게 그렇다. 수성만 해서는 사업체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림 식품의 경우 식품 산업을 주축으로 외식 산업 쪽으로 방만하게 사업체를 유지해 왔는데, 그런 외식 산업에 진짜배기 대기업들이 밀고 들어오자, 속수무책 당하면서 어영부영 대응하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금난에 직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식 산업에서 발을 뺄 수 없는 것이, 아마도 지금 그림 식품의 딜레마 일터.

그림 식품 박정명 회장은 사재까지 처분해서 외식 산업을 살려보려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그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도와 줄 자금력을 갖춘 동업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주식을 동업자에 넘겨 투자를 유치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 식품이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그다지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박정명 회장의 생각과 달리 그림 식품에 투자하겠다는 제대로 된 투자자는 없었다. 간혹 투자하겠다고 찾아 오는 자들은 다들 사기꾼들이었고 말이다.

나는 이런 얘기를 박 비서를 통해 전해 들었다. 아까 골프 칠 때 박 비서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와 통화 후에 그림 식품에 대해 물었는데, 박 비서가 다행히 그림 식품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 오너인 박정명 회장에 대해서도 꽤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거기 요즘 어렵다던데?”

“어? 그, 그래? 나는 회사 일은 잘 몰라.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림살기도 벅차거든.”

내 말에 자신의 지금 신세에 대해 한탄하며 장혜원이 처연하게 대답했다. 근데 장혜원에게서 꽤 좋은 냄새가 났다. 당연히 내가 지금 말하는 냄새는 그녀의 샴푸나 향수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그녀의 능력과 관련 된 냄새였다. 그녀에게서 나는 백지연, 아니 지금은 서지연이 된 삼명호텔 CEO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니까 장혜원은 서지연처럼 여자로서 충분히 한 회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대표의 깜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지연이 보자고 했었는데....’

나는 며칠 전에 서지연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나. 그게 지극히 사업적인 거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다는 그녀 말에 나는 시간 나면 연락 주겠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었다. 근데 지금 장혜원 때문에 그 서지연이 생각났다.

‘오늘 저녁에 만나봐야겠군.’

아무래도 장혜원 때문이라도 서지연과는 빨리 만나 봐야겠다. 왜냐하면 서지연을 만나보면 어째 장혜원의 쓰임새를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장혜원을 이대로 두기 아까워서다. 그러니까 나는 장혜원을 지금 남편과 헤어지게 만들고, 내가 뒤에서 그녀가 독립할 수 있게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 여자로도 만들고.’

물론 장혜원은 아이가 둘이나 있는 유부녀다. 하지만 그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내가 내 여자들을 평생 다 같이 끼고 살 것도 아니었고. 또 장혜원 같이 가끔 밖에서 만나서 즐기는 여자도 필요했으니까.

“아아....”

그러고 보니 대정기업 손경미 대표가 있었다. 그녀와는 호텔에서 눈이 마주쳐서 한 빠구리 한 게 다였는데 생각해 보니, 그녀의 몸에서도 지금 장혜원에게서 나는 좋은 냄새가 났었다.

나는 조만간 손 대표에게도 연락을 해서 한 번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장혜원에게 말했다.

“네가 원하면 네 남편과 이혼하게 해줄게.”

“뭐?”

내 말에 장혜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빤히 쳐다봤다.

“왜? 이혼하기 싫어?”

그 말을 하면서 내가 그녀와 눈을 맞추자 그녀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 * *

오늘 오전 나는 박 비서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을 때, 그림 식품 박정명 회장이 회사 뿐 아니라 가족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박 비서는 서진그룹 민영석 실장과 만나기 전에, 내게 전화 해서 혹시 더 지시할 게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딱히 그쪽으로 더 내릴 지시가 없었던 나는, 그에게 그림 식품과 거기 박 회장에 대해 물었고, 박 비서는 자기가 아는 선에서 내게 대답을 해 주었다.

평소였다면 그 정도만 듣고 넘어갔을 텐데, 그때 나는 박정명 회장의 며느리와 골프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장혜원 때문에 궁금해서 박 비서에게 바로 물었다.

“가족이 왜?”

거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말이다. 그러자 눈치 빠른 박 비서가 내 말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그 집 둘째가 알아주는 개망나니거든요. 근데 그 둘째 며느리가 이혼하겠다고....

박 회장의 둘째 며느리는 바로 장혜원이었다. 해서 그때 나는 장혜원이 얼마나 이혼하기를 원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잖아?”

중학교 다닐 때 장혜원은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막내아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 사실을 주위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잘 알지. 그 대단한....삼명그룹 막내잖아. 너에 대해 많이 들었어.”

“개새끼라고?”

“어? 어어....”

내가 내 입으로 나를 개새끼라고 말하니, 정작 그 말을 들은 장혜원이 나보다 더 무안해 했다.

“괜찮아. 세간의 소문 따윈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래서 어때? 네가 볼 때도 내가 개새끼 같아 보여?”

나는 사실 이때 가볍게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혜원은 아니었다.

“아니. 네가 개새끼면 대한민국 남자들 다 개새끼이게.”

“뭐? 허어....허허허허....”

나는 또 한 번 장혜원의 솔직한 담백한 매력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럼 내 남편은? 그 개새끼만도 못한 인간은 뭐라 불러야 할까? 쥐새끼?”

“뭐? 쥐새끼?....크큭....푸하하하하!”

“....호호호호호!”

내가 배를 잡고 웃자 그걸 보고 뭐가 웃긴지 장혜원도 덩달아 따라서 웃었다. 그렇게 같이 크게 웃고 나서 내가 장혜원을 보고 말했다.

“이혼 할 거지?”

“진짜 도와 줄 거야?”

“어. 그러려고 꺼낸 말이니까.”

“어떻게?”

“며칠 안에 네 시아버지가 너보고 이혼하라고 할 거야.”

“뭐?”

좀 전까지 나와 같이 깔깔거리며 웃던 장혜원의 얼굴이, 나의 시아버지라는 말에 삽시간에 진지하게 변했다.

“그, 그게 가능하다고?”

“그럼. 아이들도 네가 키울 수 있게 해줄게.”

“....”

내가 자기 아이들까지 신경쓰자 장혜원의 놀란 얼굴이 또 금방 울 거 같은 얼굴로 변했다.

“고맙지? 그러면 앞으로 나한테 잘해.”

“응. 그렇게만 된다면....앞으로 너한테 진짜 잘할게. 아니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그렇게 말하며 장혜원이 내 품에 폭 안겨왔다. 나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고 다독여 주면서, 어떻게 그림 식품 박정명 회장에게서 장혜원을 빼낼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 *

주말임에도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서, 일찌감치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나와서 차를 몰고 어딘가로 향하는 블랙머니 백준열 대표의 비서인 박기준. 그는 어제 백 대표의 지시를 받고 지금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러 살롯호텔 커피숍으로 가고 있었다.

호텔 입구에서 차키를 호텔 직원에게 건네 발레파킹 시키고 곧장 안으로 들어간 그는, 약속 장소인 커피숍이 있는 입구의 건너편으로 쭉 걸어갔다. 그렇게 호텔 1층 라운지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 관통해 커피숍 안으로 들어간 그는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한산한 커피숍 안에서 창가에 홀로 앉아 있는 중년 남자를 발견한 그는 곧장 그쪽으로 걸어갔다.

“민 실장님?”

“아아. 네. 백 대표님께서 보내신....”

“네. 백준열 대표님의 비서이자, 블랙머니 총무과장을 맡고 있는....”

박 비서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명함을 꺼냈다. 그러자 그걸 보고 민영석 실장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명함케이스를 꺼냈다. 그렇게 선 채 명함을 교환한 후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았다.

이미 어제 통화를 충분히 한 상태라, 두 사람은 서론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시겠지만 오늘 서진그룹 실무 진 측과 사전 접촉이 있잖습니까?”

“네. 미팅 시간이 오후 2시니까, 앞으로 5시간 정도 남았군요. 뭐 점심시간 빼면 4시간 남은 건가?”

“시간은 충분해요. 단지 우리 쪽 실무진의 인적 구성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는데....”

“그거라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하긴 어차피 그 실무진 대표가 실장님이시니....으음.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민영석은 박 비서가 자신의 요구를 너무도 순순히 받아드리자 김이 샌 달까? 좀 허탈하달까? 하여튼 맥이 빠지는 거 같아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허. 이거 그 대표님에 그 비서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민영석을 보고 박 비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얘기 많이 듵습니다. 하지만 회의 길게 한다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 아니잖습니까? 각자 잘하는 걸 알아서 하는 거. 백준열 대표님과 저는 그런 효율적인 걸 중시하는 편이라서요.”

“효율적이라....좋군요.”

딱히 더 할 말이 없어지자 박 비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면 오늘 실무진 접촉 잘하시고 그 결과만 이따가 제게 연락해 주십시오. 뭐 결과야 뻔 하겠지만요.”

“알겠습니다. 이따 연락 드리죠.”

그렇게 가볍게 눈인사 후 먼저 커피숍을 나가는 박 비서. 그런데 민영석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치 따로 여기서 더 만날 사람이라도 있는 거처럼 말이다. 그렇게 민영석이 그 자리에서 커피를 리필해서 마시고, 20분 정도 더 죽치고 있자 착착 그가 앉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10분 간격으로 그렇게 민영석이 앉은 자리의 빈자리를 세 명의 사람들이 와서 차지했고, 그런 그들과 민영석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박 대리.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합니다. 지하철이 연착하면서....”

그렇게 마지막으로 온 사람이, 연신 민영석의 맞은 편에 앉은 두 사람에게 굽실대며 민영석 옆에 앉자, 그가 그 사람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박 대리. 와 줘서 고마워.”

“아뇨.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저를 잊지 않고 이렇게 챙겨 주시니 말입니다.”

“자아. 그럼 우리 비서실의 핵심 인재들이 다 보인 건가?”

그랬다. 지금 민영석은 자신 밑에 있던 비서실 직원들을 이 자리에 불러 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정확히, 어제 잘린 자신 때문에 끈 떨어진 연이 된 자기 라인의 직원들이었다.

민영석이 이들을 여기 불러 모은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권토중래(捲土重來),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온다는 말인데, 실패하고 떠난 후 실력을 키워서, 다시 예전의 자기 것을 되찾기 위해 도전한다는 얘기다. 지금 민영석이 다시 서진그룹으로 돌아가서, 2인자였던 자기 자리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말씀은 들었지만....그게 가능합니까?”

“회장님께서 그렇게 되셨는데....무슨 수로....”

민영석은 자신의 좌우 팔과 같았던 두 명의 비서실 과장들의 우려 섞인 말에 먼저 껄껄껄 웃었다. 그리곤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김 회장 필요 없네. 그분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신 분이 내 뒤에 계시니까.”

“네에?”

민영석은 모든 걸 풀어 놓았고, 그의 얘기를 다 듣고 난 그의 측근들이 다들 흥분해서 말했다.

“그, 그러니까 실장님께서 서진그룹의 회장님이 되신다는....”

“그, 그러면 비서실장 자리는?”

“자네 둘 중 한 사람이 되겠지. 물론 다른 사람은 계열사 대표로 보내 줄 거고.”

“그럼 저는요?”

“박 대리. 자네는 아직 배울 게 많아. 그러니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해서 비서실의 실무를 맡는 게 좋겠지.”

민영석은 자신의 부른 측근 세 사람에게 먹음직스럽고 맛 좋은 당근을 제시했다.

당연히 그의 측근들은 그가 내민 그 당근은 덥석 베어 물었다.

“실장님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유 과장. 실장님이 뭐야? 회장님이시지. 회장님.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저, 저도요. 회장님.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민영석을 이렇게 자신의 측근들부터 완전히 자기편으로 만든 다음, 그들에게 진짜 용건을 꺼냈다.

“오늘 내가 말이야. 서진그룹에 가서 그쪽 실무진과 당장 접촉을....”

민영석은 오늘 자신이 서진그룹에서 가서 해야 일을 얘기하며 그때 곁에서 자신을 보좌해 줄 사람들을,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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