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42화 (53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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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주말 아침에 남편의 손에 이끌려서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피닉스 골프장에 오게 된 장혜원.

그래도 어제 급하게 장만한 최신 골프복과 각종 골프용품들이 장혜원으로 하여금, 5년 가까이 집구석에 쳐 박혀 육아와 살림만 하고 살아온 전업주부처럼 보이게 만들진 않았다.

“크음. 보기 좋군.”

자신을 더 이상 여자로 안 본다던 남편도, 지금 그녀의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매끈한 다리를 흘깃거리며 쳐다봤다. 하지만 그 끈적끈적한 시선은 이내 사라졌다. 왜냐하면 오늘 그들 부부를 여기로 초대한 사람들, 그러니까 그림 식품의 하도급 납품 업체인, 구성 식품 대표 범효석과 그의 아내인 윤희정 부부가 그들 앞에 나타났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박 전무님.”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범 대표님.”

먼저 남편들인 범효석과 박성철이 악수를 나눴고, 뒤이어 대학 동창인 그들 아내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바로 시작 된 골프 라운딩.

이곳 피닉스 골프장의 VIP고객인 범효석이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 둔 탓에, 그들은 불편한 없이 즐겁게 골프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운딩 시작하고 2번 홀에서 갑자기 자기 골프채에 불만을 토로하는 박성철.

“C발. 이거 왜 이렇게 안 맞아? 아무래도 채가 틀어졌나?”

꼭 뭘 못하는 놈이 연장을 탓하는 법이거늘. 자신이 못 쳐서 그렇다고는 죽어도 인정하지 못하는 박성철. 해서 그들은 라운딩 중임에도 잠시 클럽 하우스로 돌아왔고, 박성철이 범효석의 도움을 받아서 클럽 하우스 안 골프용품점에서 새로운 골프채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어? 저 사람은....”

훤칠하게 잘 생긴 젊은 남자. 남자들이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듯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남을 보면 결혼한 여자도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한데 그 미남자에게서 장혜원은 중학교 다닐 때, 자신이 좋다며 수줍게 고백했던 남학생 한 명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그 젊은 남자를 불러 세웠다.

‘어머. 미쳤어. 내가 왜....’

뒤늦게 경솔한 자신의 말과 행동이 후회 되는 장혜원. 하지만 이미 엎질러 진 물이었다.

그 미남자가 그녀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녀를 빤히 쳐다봤으니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장혜원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 미남자에게 다가가서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썰미가 맞았다.

눈앞에 젊고 잘 생긴 남자는 그녀의 중학교 동창인 백준열이 맞았고, 그 역시 자신을 알아봤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여기까지는 그녀가 옛일을 끄집어내서 어떻게 대화를 이어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왜 그녀가 백준열에게 아는 척을 했는지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그에 대해 막상 생각나는 게 없었던 것. 그때 천만다행으로 뒤에서 그녀의 대학 동창인 윤희정이 그녀를 불렀다.

‘희정아. 고맙다.’

장혜원을 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며, 백준열에게 또 보자고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뒤돌아서 윤희정에게로 걸어갔다.

“누구?”

“어?”

“저 꽃미남 누구냐고.”

“아아. 내 중학교 동창.”

“뭐?”

“그게 말이야. 저애가 사실은....”

고작 중학교 동창 만났다고 장혜원이 온갖 호들갑 다 떨고 있는 걸 본 윤희정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대학 다닐 때도 여신으로 유명했던 장혜원이었다. 그래서 윤희정은 이번에도 보나마나 저 남자가 먼저 장혜원에게 아는 척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넌 여전 하네.”

“뭐?”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거 말이야. 저 남자가 널 먼저 알아보고 접근해 온 거지?”

“어?”

사실은 그 반대였는데 장혜원은 윤희정의 말에 놀라 그만 그렇게 말할 기회를 놓쳤다.

그 사이 자신이 한 말이 맞다고 확신한 윤희정이, 힐끗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 장혜원의 중학교 동창을 보며 말했다.

“허우대는 멀쩡한데....쯧쯧....뭐 꼴에 보는 눈은 있어서....”

윤희정은 장혜원의 중학교 동창을 제비 정도로 여기는 듯 했다. 하긴 저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보나마나 부잣집 사모님을 꼬셔 여기 온 제비겠지.

“여보!”

그때 골프용품점에서 나온 범효석이 윤희정을 찾았다.

“네. 가요. 혜원아. 가자.”

장혜원은 그렇게 윤희정의 손에 이끌려서 골프용품점으로 갔고, 거기서 새로 골프채를 장만한 박성철과 함께 다시 라운딩에 나섰다.

* * *

원래부터 골프 못치던 인간이 골프채를 새 걸로 바꿨다고 잘 쳐 질리 있겠나?

“C발....”

자신이 친 티샷이 헤저드로 사라지는 걸 보고 대 놓고 욕을 해 대는 박성철. 그런 그에게 범효석이 다가와서 말했다.

“오늘 좀 안 맞는 날인가 봅니다.”

“그러게요. 쩝....”

범효석은 그런 박성철의 눈치를 보다가 알아서 박성철이 친 방향으로 냅다 공을 쳤다.

“아이쿠. 이상하게 공이 자꾸 그쪽으로 가네?”

“하하하하. 그 보세요. 여기 좀 이상하다니까.”

눈치 더럽게 없는 박성철은 범효석이 일부러 그렇게 공을 친 것도 몰라보고, 여기 골프장이 이상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여기 단골인 범효석은 자기 입으로 이곳 골프장 탓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뒷바람이 좀 강하더니 친 공이 옆으로 많이 휘어가네요.”

바람 탓을 했고 그 뒤로도 박성철은 계속 실수를 하면서, 거듭 더블보기 행진을 이어나갔다.

반면 남자들과 달리 그들의 아내들은 제법 팽팽하게 대치하며, 1타차 승부를 계속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11번 홀까지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박성철이 또 심술을 부렸다.

“배고파서 안 되겠어. 허기지니 영 공 칠 때 힘도 안 들어가고. 식사하고 칩시다.”

“네? 아아. 그러시죠.”

원청인 그림 식품의 회장 아들인 박성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구성 식품 대표 범효석.

그는 라운딩을 즉시 중단하고 점심을 먹으러, 다시 클럽 하우스로 일행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 박성철이 좀 쉬겠다며 먼저 식당을 나섰고, 잠시 후 범효석의 아내 윤희정이 화장실 간다며 자리를 떠났을 때였다.

“사모님. 옆에 근사한 커피숍 있는데 같이 커피 마시는 거 어떠세요?”

“커피요?”

이때 장혜원은 범효석의 제의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편이야 원래부터 제멋대로인 사람이었고, 범효석과 같이 커피숍을 가도 그의 아내인 윤희정이 화장실 갔다가 곧 그 커피숍으로 올거라 여겼기 때문에.

하지만 두 사람이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윤희정은 남편 범효석이 있는 이곳 커피숍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희정이가 늦네요.”

그래서 장혜원이 범효석을 보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범효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후. 그러게요.”

그때였다. 장혜원과 범효석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기 기가 찰 소식을 전해 들었다.

“뭐, 뭐라고요?”

“헉! 그, 그게 무슨....”

두 사람은 서로의 황당한 얼굴을 보고서 이내 시선을 피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전화대로라면, 두 사람이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마주보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됐으니 말이다.

* * *

경기도 화성시의 남부 소방서. 거기 119구급대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네?”

근데 신고 내용이 기가 찼다. 이곳 119구급대에 배치 된지 채 1년이 안 된 아직은 신입인 구급대원.

“....그러니까 성교 중에 남자의 성기가 안 빠진단 말이죠?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거기 위치가? 네. 네. 피닉스 골프장 직원 휴게실. 알겠습니다.”

신고접수 후 신입대원이 그 사실을 다른 고참 대원들에게 말하자, 그 중 최고참 대원이 말했다.

“원래 이런 일이 3년에 한 번씩 나와. 서울 같은 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은 나오고.”

“그, 그렇습니까?”

“어. 그래도 사람 목숨이 위중한 건 아니잖아. 뭐 못 볼꼴을 좀 봐야하지만....”

“흐흐흐흐. 그래도 여자 쪽이 한 몸매하면 구경거리는 되잖습니까?”

“지랄. 헛소리 작작해라. 그러니 네놈 별명이 음란 변태지. 너 그러다가 대머리 된다?”

“뭔 변태요? 대, 대머리라뇨!”

“시끄러. 빨리 출동 안하고 뭐해!”

사무실 안에서 호통이 울리자 119구급대가 서둘러 출동을 했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곧장 피닉스 골프장 직원 휴게실로 향했고, 거기 뒤엉켜 있는 남녀를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 C발....신고 한 지가 언젠데 이제 와? 빨리 이거 좀 빼.”

남녀 중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마치 구급대원들이 자기 밑에 직원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허얼. 저거 뭐야?”

“그러게.”

“자자. 빨리 가자.”

저런 진상 신고자를 여럿 경험해 본 최고참 구급대원. 그가 자기 밑에 젊은 구급대원들을 떠밀며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남녀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런데 남녀 중 남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전히 신경질적으로 뻔뻔하게 구는 반면, 여자는 부끄러워서 구급대원들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속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과 비소를 계속 가렸다. 그러자 되레 남자 쪽에서 버럭 화를 냈다.

“손 치워. 거길 보여줘야 이 사람들이 빼도 뺄 거 아냐.”

그런 남자의 몰염치함에 최고참 구급대원까지 황당해 할 때였다. 여자가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고 드디어 보인 거기의 모습. 거길 똑바로 쏘아보던 최고참 구급대원이 탄식하며 말했다.

“하아. 이거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빼는 게 쉽지 않을 거 같군.”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뭐? 못 빼? C발, 그럼 어쩌자고?”

“아니 왜 아까부터 반말을....”

“욕은 왜 하는 건데....”

흥분한 그 남자의 반응에 다른 구급대원들이 발끈하자, 최고참 구급대원이 자신의 동료 구급대원들을 말리며 말했다.

“자자. 그만해. 환자분도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흥분하면 더 안 빠지니까.”

최고참 구급대원의 안 빠진다는 말에, 남자가 다른 구급대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막 하려던 욕을 멈췄다. 그래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은 파악이 된 모양이었다. 그런 그에게 최고참 구급대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여기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응급조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병원에 가셔서 조치를 받으시는 게 최선입니다. 어떻게 병원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있으시다 저절로 빠질 때까지 기다리시던지. 참고로 빠지는 데 딱 몇 시간이 걸린다고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구급대원이지 의사는 아니니까요.”

“에이....”

고참 구급대원의 차분한 설명에 혼자 구시렁거리던 남자. 그가 자신과 뒤엉켜 있는 여자를 보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C발. 여자 하나 잘못 만나 이게 뭐야?”

결국 이 일을 전적으로 여자 탓으로 돌리는 못난 남자. 그는 구급대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찌질 함의 끝판 왕 다운 면모를 계속 선보였다. 잠시 후 나타난 환자들의 남편과 아내. 그러니까 알몸으로 뒤엉킨 남녀의 보호자들의 등장에 주위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하지만....

“빨리....병원으로 보내주세요.”

“어디 병원으로 후송할 건지 알려주시고.”

알몸으로 뒤엉킨 두 사람의 두 보호자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시니컬해서 구급대원들은 또 한 번 놀랐다. 특히 여자 쪽 남편의 경우는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 너무 차분하고 냉철하게 반응해서, 주위 사람들도 그가 진짜 저 여자의 남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구급대원들은 이들 부부들이 스와핑 부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몸으로 뒤엉킨 남녀와 달리, 그들의 배우자들은 서로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고 항시 거리감을 뒀다. 그 모습이 절대 연기 같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남은 라운딩 돌아야죠?”

“그, 그럴까요?”

자신들의 배우자를 구급차 태워 보내면서, 뒤에 남은 둘이 하는 말을 듣고 구급대원들은 확신했다. 저들이 스와핑, 즉 부부 교환 섹스를 즐기러 여기 온 게 아니란 걸 말이다.

원래는 환자와 보호자 한 명이 같이 구급차에 타는데, 보호자들이 그 동승을 거부했다.

하긴 쪽팔린 일이니 거기에 보호자까지 따라 병원에 갈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신원이 너무도 확실했고. 특히 계속 뻔뻔하고 신경질적으로 굴고 있는 남자는 무려 재벌 3세였다.

그가 식품업계의 재벌로 통하는 그림 식품의 박정명 회장의 아들이란 게 밝혀지자, 화성시 소방서장이 직접 구급대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네. 서장님.”

-그분 잘 모셔. 무슨 말인지 잘 알지? 정 소방장?

“네. 압니다.”

최고참 구급대원 정필상은 배알이 뒤틀렸지만, 소방서장이 원하는 대답을 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 대학 들어가는 아들 녀석 생각하면, 여기서 함부로 자기 할 말 다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정필상도 익히 알았다. 지금 소방서장도 소방본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자신에게 이러는 거라는 걸 말이다.

서울의 중앙 관청의 고위 공무원들도 재벌 앞에서 벌벌 긴다. 하물며 소방직공무원, 그것도 서울본청 소속도 아닌 지방의 소방공무원들이, 재벌 3세의 등장에 이렇게 쩔쩔 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C발. 여기 왜 이리 추워?”

그 말에 정필상이 말하지 않아도 그 밑에 구급대원들이 서둘러 모포를 꺼내더니, 재빨리 재벌 3세의 몸에 덮어주었다. 여자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서.

“허어....”

그걸 보고 정필상이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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