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35화 (53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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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R드래곤의 집은 강남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동광단지 고급빌라였다. 하지만 그 집은 R드래곤의 소유는 아니었다. 월세로 소속사에서 매달 3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꼬박꼬박 지급하고 있었다.

때문에 R드래곤이 죽은 지금, 소속사 사람이 거기 좀 들어간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실제 R드래곤의 시중을 드느라, YH엔터 직원들이 거길 수시로 들락날락거리기도 했었고.

“지금 즉시 녀석의 집에 가 봐. 혹시 짐 챙기겠다며 녀석의 가족들이라도 거기 오면 골치 아파질 수 있으니까.”

-네. 바로 거기로 가 보라고 할게요.

“아니. 네가 직접 가.”

-네? 내가요?

“그래. 직원들 보냈다가, 그중에 딴 마음 먹는 녀석이라도 있으면....”

이영현은 자기 직원들을 믿지 못했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닌 R드래곤의 곡이다.

그 곡 하나의 가치는 수억, 아니 수십억도 값어치가 있었고, 그걸 YH엔터 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그걸 빼돌리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해서 이영현은 동생인 이영명이 거기 직접 가서 R드래곤이 남긴 곡들을 챙기길 바랐다.

-으음....그렇긴 하네요. 알았어요. 내가 갈게요.

“그래. 수고 좀 해라. 가서 녀석의 곡이 있거든 내게 바로 연락하고.”

-그럴게요.

그렇게 동생인 이영명과 통화를 끝낸 이영현. 그때 장례식장 안에서 상심에 잠긴 얼굴의 중년 남자가 나왔다. 그를 본 이영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불과 한 시간도 전에 저 남자가 그의 멱살을 잡았기 때문에.

뭐 멱살잡이를 당할 만은 했다. 그를 믿고 맡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막상 멱살을 잡혀보니 기분이 더러웠다.

무엇보다 별거도 아닌 인간에게 말이다. 아들 하나 잘 둬서 그 동안 ‘아버님’이라며 이영현이 극존칭을 써 가며 환대했었지만, 이제 그 잘난 아들도 죽고 없으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아들 때문에 이영현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생각 같아서는 이영현이 지금 저 중년 남자의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좀 미쳐서....”

그런데 R드래곤의 아버지가 이영현에게 머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앞서 그의 멱살을 잡은 거 때문에, 그에 대한 사과를 하는 모양인데....

“괜찮습니다. 그 보다 지금은 계용이 녀석....하늘나라로 잘 보내 주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일단 이영현은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그대로 유지하며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해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말씀대로 지금은 아들 녀석 장례 치르는 데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R드래곤의 가족들 중에서 그 부친이 제일 이성적이었다. 지금도 아까 결례를 사과하러 일부러 이렇게 이영현에게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상주인 R드래곤의 부친은 이내 식장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R드래곤의 소속사 대표인 이영현은 그 길로 곧장 장례식장 주차장 쪽으로 움직였다.

조의는 할 만큼 충분히 표했고, 더는 답답한 장례식장 안에 있기 싫었던 것이다.

그는 주차장에 세워 둔 자신의 벤츠 차를 끌고, 자신의 소속사인 YH엔터 사옥으로 향했다.

* * *

R드래곤이 살았던 집은 프라이버시가 가장 잘 보장 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거기 들어가는 게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R드래곤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거기 보안이 더 강화가 되었다.

때문에 이영명과 직원들이 R드래곤의 집에 들어가기까지는, 평소보다 더 많이 시간과 노력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휴우....”

그래도 어째든 R드래곤의 집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이영명과 직원들. 특히 이영명은 진땀을 뺀 듯 손으로 이마와 머리 훑으며 길게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곤 바로 여기까지 데려 온 직원들에게 말했다.

“빨리 뒤져요. 최우선적으로 외장하드와 USB 찾고, 찾는 즉시 내게 말해요.”

“네.”

직원들이 R드래곤의 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영명은 컴퓨터에 빠삭한 직원 한명을 데리고, R드래곤이 집에서 작곡하던 방으로 들어갔다.

“찾아.”

“네.”

직원은 R드래곤이 앉아 곡 작업했던 자리에 앉아서 바로 컴퓨터부터 켰다. 그리고 그 컴퓨터 안에서 R드래곤이 작곡한 곡 파일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없는데요?”

“뭐? 아니. 한곡도 없다고?”

“네.”

“그게 무슨....R드래곤 여기서 곡 작업한건 맞잖아?”

“맞는데. 곡 작업 후에 싹 다 지웠습니다.”

“복원은?”

“안 됩니다.”

직원이 이영명의 말에 생각하고 자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가차 없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R드래곤이 곡 작업을 한 컴퓨터에서는 건질 곡이 하나도 없단 얘기였다.

이렇게 되면 R드래곤이 곡 작업 후에, 그 곡을 따로 저장해 파일이 들어 있는 외장하드나 USB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없습니다.”

“다섯 번도 더 뒤졌습니다. 없어요.”

R드래곤의 집 안을 구석구석 뒤진 다른 직원들의 입에서도 희망적인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틀린 건가?”

이영명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을 때였다.

“찾았다.”

“뭐?”

R드래곤이 곡작업을 하던 방에서 드디어 직원 하나가 외장 하드를 찾아냈다.

컴퓨터 관련 서적 속에 교묘히 파여 있는 틈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외장 하드는, 누가 봐도 R드래곤이 거기 자기가 작곡한 곡 파일을 저장해 둔 것으로 보였다.

“어, 어서 확인해.”

이영명이 바로 컴퓨터에 외장하드를 연결시키게 하고 거기들어 있는 파일을 확인하게 했다.

“꼴깍....”

“드디어....”

외장 하드에 들어 있는 파일은 모두 다섯 개. 그 중 맨 앞의 종달새 파일을 클릭하는 직원.

“....아하아앙....기모찌....혼또니 기모찌....”

근데 컴퓨터 화면에 열린 것은....일본 유명 AV여배우가 나오는 동영상이었다.

낯 뜨거운 그 장면에 직원들이 황급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고, 한껏 기대에 차 있었던 이영명의 얼굴은 곧바로 똥 씹은 얼굴로 변했다.

“다, 다른 파일도 열어 봐.”

그래도 이영명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도, 그 다음도....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파일 역시....

“....오또상....아흐흐흑.....모또쯔유끄구다사이(もっと強く吸ってください, 좀 더 세게 빨아주세요)....”

일본 AV동영상이었다. 그것도 근친 쪽을 주제로 하는....그러니까 지금 찾은 외장 하드는 R드래곤이 몰래 딸딸이 칠 때 이용한 것이었다.

그 뒤로 한 시간을 더 찾았지만 결국 R드래곤의 곡을 찾는데 실패한 이영명은, 직원들을 데리고 R드래곤의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옆집에서 그들이 R드래곤의 집을 뒤지는 걸 눈치 채고,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러자 관리사무실에서 R드래곤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 얘기를 들은 유족이 발끈하면서 경찰에 신고까지 해버렸다.

이에 이영명과 YH엔터 직원들은 경찰이 오기 전에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형님. 아무리 찾아도....그 집에는 없습니다.”

-젠장....

소식을 들은 이영현은 크게 실망했고, 그 뒤 R드래곤에 대한 미련도 전부 버렸다.

* * *

백준열이 탄 차가 막 경기도 화성시의 시내를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응?”

그의 고개가 갑자기 옆으로 살짝 돌아갔다. 그가 그런 이유는 바로 그의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 때문이었다. 앞서 그는 경황중이라 바뀐 상태창을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개지수의 포인트와 업그레이드, 레벨업 상황은 확실히 챙겼지만. 그때 상태창의 아이템과 스킬들을 다 합쳐서 유일하게 5UP이 된 「개 짖는 소리」스킬. 백준열은 그 「개 짖는 소리」스킬의 정보가 궁금했고. 견신 시스템은 그 궁금증을 바로 해소시켜 주었다. 그의 머릿속에 다량의 정보를 쑤셔 넣어 주면서 말이다. 그로 인해 살짝 두통에다가 멀미까지 생겨난 백준열.

그렇지만 5UP이 된 「개 짖는 소리」스킬의 효능은 백준열의 입 꼬리를 절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개 짖는 소리」스킬은 원래 3UP 당시 역 스킬 화에 성공했다. 때문에 그 스킬을 나는 내가 아닌 상대에게도 쓸 수 있었다.

원래 「개 짖는 소리」라는 스킬은 녹음과 재생이 동시에 이뤄지는 능력이 포함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능력이 5UP이 되면서, 이제 내가 아는 누구든 도청과 감청이 가능해졌다. 가령 백승렬 회장이라든지.

백준열이 자신의 부친인 백승렬 회장에 대해 생각하며 「개 짖는 소리」스킬을 사용하자....

=....니까 준열이는 월요일 아침에 본가에 들어오라고 해.

=네. 회장님.

그리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삼명가 본가의 김 집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백준열은 바로 받았다.

-막내도련님. 저 김 집삽니다.

“네. 근데 무슨 일로....”

-회장님께서 모레 월요일 아침에, 본가 들어오셔서 식사하시라고 하십니다.

이미 도청 능력을 통해 알고 있는 바였다.

“네. 그럴게요.”

-그리고....아, 아닙니다.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김 집사는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끝내 그 말은 하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그 통화 후 백준열은 신이 난 얼굴로 여기저기 궁금한 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개 짖는 소리」스킬을 통해 엿들었다. 그러다 목적지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그가 막 「개 짖는 소리」스킬을 끝내고, 피닉스 골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일본 여배우 나나미가 그의 눈에 보였다. 당황한 그가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을 때, 쪼르르 그에게 다가온 나나미가 그를 보고 같이 골프를 치겠다고 했다.

“....”

잠깐 어이없어하며 나나미를 쳐다보던 백준열. 그가 슬그머니 시선을 자신의 경호팀원들에게로 돌렸다.

그러니까 무언의 눈길로 그들을 질타한 것이다. 도대체 나나미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동안, 그것도 눈치 차리지 못하고 뭘 한 거냐며 말이다. 그러자 경호팀원들이 살살 내 눈길을 피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누가 문대식이 밑에 사람들 아니랄까? 다들 능청스럽고 뻔뻔하기 이를 때 없었다.

척!

그때 나나미가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달라붙어서는 팔짱까지 꼈다. 그러면서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그의 팔을 쿡쿡 찔렀다. 그러자 백준열이 입술이 잠깐 실룩거리더니, 그의 입에서 곧장 허락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요. 같이 골프 칩시다.”

백준열이 허락하자 나나미가 신난다며,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다가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백 대표님!”

갑자기 건물 안에서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 소리에 백준열, 나나미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건물 안의 그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 여자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백준열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어왔고, 그 모습에 백준열이 머쓱해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이C....하필....”

* * *

백준열의 그 말자지 맛을 보고 난 뒤, 민혜주는 더 골프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비록 국내지만 최근 열린 골프대회에서, 8강 토너먼트까지 진출을 한 상태였다.

이번 주말을 쉬고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HBS증권배 골프대회의 8강 토너먼트 경기를 위해서, 사실 민혜주는 오늘, 내일 컨디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쉬려니 백준열이 생각이 났다.

뭐랄까? 백준열이 응원해 준다면 이번 대회에서 우승컵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랄까? 해서 그녀는 전날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를 그녀가 연습 중인 화성시의 골프장으로 불러냈다.

그랬는데 아침에 온 백준열이 웬 여시 같은 년을 달고 온 게 아닌가? 근데 그년이 백준열 옆에서 꼬리를 살살 흔드는 게 민혜주의 심기를 확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게 다였으면 다행이었다.

“저, 저게 진짜?”

백준열의 옆에서 팔짱을 끼더니 아주 대 놓고 그를 끌어안는 게 아닌가?

그걸 보는 순간 민혜주의 인내심도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쳤다. 물론 그녀가 프로 골퍼인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곳 골프장에서 대 놓고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그동안 한결같이 후원해 주신, 이곳 골프장 사장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꼴 일 테니 말이다.

건물 밖에서는 모르지만, 이곳 피닉스 골프장 건물 안에서 보면, 곳곳에 그녀의 사진과 입간판들이 붙어 있거나 세워져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미녀 골퍼 민혜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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