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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하종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 하는 생각을 상대도 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밑에 수하들을 너무 믿었다.
정작 두목으로서 그가 챙겨 준 건 쥐꼬리만큼도 없으면서. 그런 수하들이 뭐 하러 하종균에게 충성하고 의리를 다하겠나? 당연히 다 불었지.
쿠쾅쾅쾅!
아지트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던 하종균이 버럭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사무실 입구에 제일 가까이 서 있던 수하가,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크아아악!”
바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리고 곧바로 ‘벌컥’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다양한 연장 챙겨 든 처음 보는 조폭들이 우르르 사무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뭐, 뭐야?”
그들과 사무실 안에 있던 하종균의 수하들이 바로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원래라면 기습해 들어 온 쪽이, 상대가 정신 차리기 전에 먼저 공격해 들어와야 하는데, 그들은 사전에 무슨 지시를 받은 듯 싸우지는 않고, 하종균과 그 수하들을 사무실 안으로 몰아넣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야아. 여기가 사무실 좋네.”
딱 봐도 촌에서 올라 온 티가 팍팍 나는, 조폭 두목 녀석이 양쪽에 조폭 둘을 달고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바로 하종균이 있는 쪽으로 걸어와서는, 담배부터 먼저 한 대 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옆에 조폭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우....그 짝이 하종균인가 뭔가 하는 여기 오야붕이지?”
그 조폭 두목이 담배 든 손으로 정확히 하종균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너희들 뭐야?”
사무실에 쳐들어 온 흉기 든 조폭들의 수가, 하종균과 수하들을 합친 거 보다 얼추 배는 많았다. 그러니 하종균도 긴장이 된 모양이었다. 살짝 말을 더듬거리며 자기 말을 씹어버리는 하종균. 그런 그를 보고 촌스런 조폭두목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아이 씨바....내가 먼저 물었는데....뭐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쳐!”
이럴 거면 뭐 하러 여태 시간 끌고, 또 자기에게 말을 걸었나 싶게 촌스런 조폭두목은 그 말을 지껄이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다 죽여!”
“와아아아!”
“막, 막아!”
이내 사무실 안에 유혈참극이 벌어졌다. 당연히 싸움은 준비가 더 철저히 된 쪽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근데 거기다 쪽수도 상대가 배나 많았다. 그러니 그 결과는 뻔했고.
“형님. 어서 가십시오.”
천만대행으로 사무실 구석에 만약을 위해 준비해 탈출로가 있었다.
금고를 치우면 뻥 뚫려 있는 구멍, 그 구멍 아래로 사다리가 걸려 있었다. 하종균은 그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그의 수하들이 침입자들을 막았다.
하종균은 아래층에 비어 있는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가서 곧장 계단 쪽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근데 밑에도 놈들이 있었다. 하지만 하종균도 엄연히 조폭이다. 그것도 두목!
퍽! 퍼퍽! 퍽!
똘마니 두세 명쯤은 혼자 상대 할 수 있었다. 그들을 쓰러트리고 곧바로 밑으로 내려간 하종균은 냅다 달렸고, 도로가로 가자 마침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그 택시로 달려갔고, 그 택시가 떠나기 전에 거기 타는데 성공했다.
“빨리 출발....”
다급해 보이는 하종균의 모습에 막 택시비 계산을 끝낸 택시 기사가, 그가 말한 대로 차를 출발 시켰다. 그때 하종균의 뒤를 쫓아온 듯 보이는 흉기를 든 조폭들. 그들이 택시 쪽으로 맹렬히 달려왔다. 하지만 사람이 뛰어서 택시를 따라 잡는 건 불가능한 얘기.
부우우우웅!
택시가 그대로 질주했고 순식간에 그들과 거리가 벌어졌다. 그걸 뒤돌아보던 하종균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자세를 앞으로 고쳐 앉았다.
“휴우우....”
그런 그를 운전석의 택시 기사가 힐끗거리며 쳐다보다 말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찰이라는 말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던 하종균. 하지만 이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진짜 112를 누르더니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 * *
강원도에서 백준열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상경한 박칠석과 그 밑에 수하들. 그들은 백준열이 준 빌딩 관리를 시작으로, 발 빠르게 주위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그분이 뒤를 봐 주시는데, 뭐가 문제야? 밀어 붙여.”
그렇게 삽시간에 활동 반경을 넓히며, 자신의 나와바리 영역을 키워 나가던 박칠석. 그런 그에게 제일 먼저 태클이 들어 온 게 그곳 토착 조폭들이었다. 하지만....
“조져 버려!”
“와아아아!”
박칠석은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을 무릎 꿇렸다. 그리고 이제 막 사무실을 열고 ‘세븐스톤(주)’이라는 무역회사 간판을 막 내걸었다. 그런데....
“물류창고?”
“네. 거기 먹어야 유통망이 확보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 관리하는 애들이 태석파 소속이라는데 어쩔까요?”
“태석파라....”
박칠석도 서울 조폭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 서울의 최대 조폭 조직이었던 태천파가 무너지고, 대신 태석파가 그 자리를 꿰찼다.
어떻게 보면 서울 조폭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난 건데, 이게 또 따지고 들어가 보면 별거 아닌 일이었다.
왜냐하면 태천파의 조직이, 그대로 태석파로 넘어간 거나 진배없었으니까.
더 쉽게 말하자면 태천파가 태석파로 그 이름만 바뀐 거다. 즉 양태천이 총 보스였다가, 지금은 그 동생인 양태석이 그 자리를 꿰찬 것이다. 근데 그 양태석과 박칠석은 잘 아는 사이였다.
“일단 기다려 봐.”
박칠석은 양태석에게 연락을 해 볼 생각이었다. 양태석이라면 그에게 흔쾌히 그 물류창고를 넘겨 줄 거였다. 한데....
“뭐? 놈들이 먼저 우리 애들을 건드려?”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박칠석의 눈이 번득였다.
“애들 다 소집시켜.”
박칠석은 한 번 움직일 때 수하들을 다 데리고 움직였다. 그래서 움직이면 반드시 끝장을 봤다. 곧바로 양재동의 물류 창고로 달려간 박칠석과 그 밑에 수하들.
“저기다.”
“쳐!”
“와아아아아!”
압도적인 수의 박칠석과 그 수하들 앞에, 양재동 물류 창고에 모여 있던 하종균의 수하들은 제대로 반격도 못해보고 죄다 무릎 꿇렸다. 그 자리에서 박칠석이 그들을 심문했다. 그랬더니....
“와아아....양태석이 보는 눈은 여전하네.”
하종균의 수하들을 통해서 녀석이 무슨 꿍꿍이인지 쉽게 간파해 낸 박칠석. 그는 양태석이 예전에도 밑에 녀석을 너무 믿어서 좆된 걸 봤었는데, 요즘도 그런 걸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박칠석이 봐도 양태석은 서울 최대 조폭 조직의 총 보스 자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뒤에 백준열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옆으로 내젓고 있던 고개가 앞뒤로 끄덕거려졌다.
백준열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양태석도 충분히 서울 최대 조폭 조직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라 본 거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낀 자신은, 지금으로서는 그저 양쪽에서 주는 맛있는 단물만 쪽쪽 빨아먹으면 되었고.
박칠석은 원래는 양태석에게 걸려던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박칠석은 자신들을 치려고 준비 중인 하종균의 아지트를 급습했다. 그 결과 하종균을 뺀 나머지 똘마니들은 다 제압했다. 그 말인즉 하종균은 놓쳤다는 얘기다.
“죄, 죄송합니다. 내빼는 게 하도 빨라서....”
“괜찮아. 어차피 녀석을 처리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니까.”
하종균은 배신을 꿈꾸고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태석파 총 보스인 양태석이었고. 아마 이 사실을 아면 양태석이 놈을 그냥 둘리 없었다. 그런데....
삐용삐용삐용~
“형님. 경찰 옵니다.”
“뭐?”
누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누가....
“설마....”
박칠석은 설마하며 수하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다들 흩어져서 달아나.”
그들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바로 백준열이 그들에게 관리를 맡긴 빌딩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뿔뿔이 흩어져도 거기로 모이면 될 일이었다.
그만큼 서울에서 기반이 잡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박칠석도 이내 그곳을 빠져 나갔고, 잠시 후 들이닥친 경찰들은 쓰러져 있거나 무릎 꿇고 있는, 하종균의 수하들을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들은 케이블 타이에 사지가 묶여 있는, 하종균의 수하들을 되레 풀어주어야 했다. 물론 그 다음, 그 즉시 그들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채웠지만.
그렇게 하종균의 수하들이 줄줄이 체포 되어 경찰서로 연행 되어가고 있을 때, 도망친 하종균은 자신이 조직 몰래 빼돌린 돈으로 장만한, 서울 시내의 한 오피스텔에서 득의만만해 하며 웃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지금쯤 경찰들보고 질겁해서 내 빼느라 정신없겠지?”
그러니까 자신의 아지트를 급습한 강원도 촌놈 양아치들을, 하종균이 직접 신고를 한 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자기 스스로 자신의 팔 다리를 자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하들만 죄다 경찰에 잡혀 갔으니까.
그 사무실 안에서 마약과 함께 몇 구의 시체가 발견 됐다. 딱 봐도 그들은 조폭들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경찰들이 현장에 있는 조폭들을 전부 체포할 밖에.
* * *
괜히 백준열이 강원도 촌구석에서 박칠석을 서울로 불러 온 게 아니었다.
박칠석은 보기에는 허술해 보여도, 상당히 꼼꼼한 성격에 머리 쓰는 게 빨랐다.
그런 그가 하종균의 아지트를 칠 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오진 않았다. 만약을 위한 대비를 해 왔는데, 그게 바로 인근에 위치한 하종균의 비밀 아지트. 그곳을 먼저 턴 것이다. 당연히 저항은 있었지만, 무식하게 때려대는 박칠석과 수하들 앞에서 얼마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박칠석은 하종균이 중국 조직과 거래하며 챙겨 놓은 마약과 함께, 그 마약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생겨 난 시체들을 찾아냈다.
“어라? 이 사람 경찰인데요?”
근데 그 중에는 경찰도 끼어 있었다. 죽은 시체에서 나온 지갑 속 신분증이 그걸 증명했다. 아마 마약 조직을 뒤쫓던 경찰을 하종균의 조직원들이 잡아서 죽인 모양이었다.
“잘 됐네. 마약과 시신들 다 챙겨.”
그렇게 준비 해 온 것들을 박칠석은 하종균의 아지트에 대충 숨겨뒀다. 그리고 막 경찰에 신고하고 여길 뜨려 했는데, 누가 그보다 먼저 경찰에 신고를 해 버렸다. 때문에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 나와야 했지만, 타이밍 상 더 잘 된 일이 되어버렸다.
“아마 빠져 나오기 쉽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시체 중에 경찰이 끼어 있었으니까. 어느 조직이나 그 조직원이 죽으면 분위기 살벌해진다. 그럴 경우 빽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들도 사람이니 감정이 상하면, 돈이고 뭐고 보이는 게 없어지는 거다.
근데 철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실수가 있었다. 만약 경찰에서 그걸 꼬투리 잡고 늘어지면 박칠석도 곤란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박칠석이 그분께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그분이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왜?
“대표님. 그간 일체무탈 강녕 하셨습니까?”
-하아....사고무탈이나 무병무탈이겠지. 암튼 시답잖은 소리 말고 빨리 용건이나 말해.
“아네. 그게 실은....”
박칠석은 어제 오늘 자신이 한 짓을 간략이 백준열에게 설명했다. 그 얘기를 다 듣고 난 백준열. 그가 쿨하게 말했다.
-관할서가 어딘데?
“서초경찰섭니다.”
-알았어. 그쪽에 조치 취해 둘 테니까 더는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내가 시킨 일은 잘 하고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좀 놓이네.
“그 믿음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뚜뚜뚜뚜뚜뚜....
뭐가 그리 바쁜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정작 박칠석의 말은 다 듣지도 않고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는 백준열.
“쩝쩝....”
안 그래도 말을 못해 입이 근질거렸던 박칠석은, 괜히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다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그러면서 피식 거리고 웃었다.
“이래서 빽이 있어야 하는 겨.”
백준열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니, 더는 그쪽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이제 아지트로 돌아가서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일만 남았다. 물론 그 전에 한 잔 꺾고 내친김에 여자 둘 정도, 떡치고 나서 말이다.
“근데 뭐 하나 빼 먹은 거 같은데....”
뭔가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 하나를 빼 먹은 거 같은 박칠석은 기분이 좀 께름칙했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그게 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에이. 몰라.”
더 생각했다가는 머리가 깨질 거 같았던 박칠석. 그는 그 생각을 접었다. 그 사이 그는 자신의 아지트에 도착했고 먼저 와 있던 수하들과 같이, 그 아지트 지하에 있는 룸살롱으로 향했다.
“자자. 마시자.”
오늘은 기쁜 날이었다. 어쩌다보니 양재동을 차지하고 있던 기존 조직을 내 쫓고 거기를 자신과 수하들이 장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까 강원도 촌놈 양아치들이, 드디어 서울에 둥지를 튼 것이다. 이런 날 마시지 않을 수 있나?
“벌컥벌컥....”
박칠석은 마시고 죽자며 술을 계속 들이부었고, 얼마 안 가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고주망태가 되어버렸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렇다보니 그에게 걸려 온 양태석의 전화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