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29화 (52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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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는 시간을 확인한 후 R드래곤을 보며 말했다.

“10분 줄 테니까. 내게 할 말있으면 빨리 해.”

-10분? 그, 그건 너무 짧은 데....

“싫어? 싫으면 말고.”

내가 R드래곤과의 대화를 끝낼 기세 자, 그가 다급히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 아냐. 말 할게. 말한다고.

녀석이 귀신이든 말든, 아쉬운 건 녀석이다. 나는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턱을 까딱거렸다. 어서 말해 보라고. 그런 나에게 녀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가족 좀 돌 봐줘.

“뭐?”

당연히 내가 왜 R드래곤의 가족들을 돌봐 줘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진 녀석의 말에, 나는 바로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대신 내가 10년 동안 써 먹을 수 있는, 내가 작곡한 히트 곡들을 네게 넘기도록 할게.

R드래곤의 곡들이라면 야, 뭐 더 묻고 따질 것도 없었다. 녀석이야 말로 진정한 히트 곡 메이커였으니까.

“10년 동안 한 곡씩 해서 10곡이란 거냐?”

-아니. 2-3곡씩 해서 모두 25곡이다.

25개의 히트곡이면 R드래곤의 가족들의 뒤를 봐 주기 충분했다. 내 생각에 거래가 성사 된 거다. 해서 나는 흔쾌히 그의 제의를 수락했다.

“좋아. 그러지.”

내 입에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릿속에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원혼 이계용의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이를 받아드리게 된다면, 히트 곡 메이커 이계용의 재능인 ‘작곡 천재’를 당신은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받아드리겠습니까?[Y/N]

뭔 뒤북 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입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굳이 이런 식으로 나를 귀찮게 해야 하나? 확 짜증이 치밀었지만 나는 그걸 억누르며 속으로 대답했다.

‘예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속으로 견신 시스템에게 말했다.

‘’나나미와....추가 보상 말인데....그건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건데?‘

그러자 견신 시스템이 슬그머니 뒤늦게 나나미와 3번을 넘어 추가로 치러진 빠구리에 대한 보상을 지급했다. 그러면서 여태하지 않았던 축하 말을 뜬금없이 건네는 게 아닌가?

-레벨 업 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러더니 재빨리 내 눈앞에 바뀐 상태 창을 띄웠다. 그러니까 녀석도 이제 어지간히 내가 뭐라는 게 듣기 싫은 거 같았다. 평소 하지 않던 짓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이름: 백준열(Lv12)]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4Up), 「개좆」(4Up)], 「개목걸이」(4Up), 「개코」(4Up), 「개방울」(4Up), 「개 알약」(역 4Up-1일 15회, 외상과 일부 내상(체내 2기 종양, 선천질환, 1일 2회) 한정), 「개불알」(4UP), 「개똥」아이템(역 1Up)

[보유 스킬(중 하나 역 스킬 화 가능): 「말하는 개」(일,4Up), 「충견」(일,4Up), 「개 끗발」(역,4Up), 「개호구」(역,4Up), 「만능 오프너」(일,4Up-모든 문(보이는 문에 한정)), 「개멋져」(일,4Up), 「개 짖는 소리」(일,역, 5Up)

[인벤토리: 개톤백(In), 역 아이템 1회 이용권(3장), 역 스킬 1회 이용권(4장), 「1회용 개 물약-종양치료제」(3개)

[특성: 개(5차UP완료)]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개지수: 00]

일단 레벨이 11에서 12로 올랐다. 그러면서 기존 3UP이었던 아이템들, 「개눈깔」, 「개목걸이」, 「개방울」, 「개 알약」이 전부 4UP이 됐다. 그리고 획득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개똥」아이템은 1UP이 됐고 말이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3UP이었던 「말하는 개」, 「개 끗발」, 「개호구」, 「만능 오프너」, 「개멋져」 보유 스킬들이, 이번에 전부 4Up이 됐으며, 개 특성의 5차 업그레이드가 완료 되었다. 특이한 건 보유 스킬에서 「개 짖는 소리」가 5UP이 됐다는 건데, 거기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걸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내 눈앞에 원귀가 된 R드래곤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러니까 내 가족들을 어떻게 돌봐 줄 거냐고?

“아아. 그거야 돈을 주면 되잖아? 한 곡당 1억씩 쳐서 25억을 네 가족들에게 줄게.”

내 말에 잠깐 생각이 잠기는 거 같았던 R드래곤. 녀석이 원귀답지 않게 내게 딜을 제안했다.

-그냥 30억 줘. 그럼 우리 회사 대표 비리 정보 알려 줄게.

“뭐?”

녀석의 말에 내가 어이없어하면서 빤히 쳐다보자, R드래곤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흐. 나 이렇게 죽어 없어지는 데 그 새끼가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싸고 살 거 생각하니까 영 배알이 틀려서 말이야.

R드래곤과 소속사 대표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좋아. 그러지. 네 가족들 누구 계좌로 보내 줄까?”

-뭐? 지, 지금 30억을 바로 주겠다고?

30억이 보통 사람에게나 큰돈이지 내게는 푼돈일 뿐이었다. 그리고 R드래곤의 원귀를 지금 여기서 말고 더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R드래곤의 아버지 계좌로 30억을 바로 이체 시켰다. 그러자....

-원혼 이계용의 의뢰를 완수하시면서, 히트곡 메이커 이계용의 재능인 ‘작곡 천재’를 획득하셨습니다.

-원귀 이계용의 염원이 풀리며 원귀가 한이 전부 사라집니다. 원귀 이계용이 일반 영혼이 되어 승천을 합니다.

실제 R드래곤의 모습이 반투명해졌다. 그런 녀석이 날 보고 웃으며 말했다.

-형. 진짜 화끈하네. 고마워. 이제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다. 아아. 그리고 우리 대표의 비리는....

R드래곤은 끝까지 나와 한 약속을 지키고 떠났다. 그의 소속사 대표에 대한 비리 정보를 확실하게 내게 알려주고서 말이다. 그리고 덤으로 자기 멤버들에 대한 약점도 챙겨줬다. 아주 기특하게도. 그러면서 녀석이 한 말이 가관이었다.

-새끼들. 나 때문에 유명해졌으면서 술 한 잔 산 적이 없어요. 그런 놈들 진짜 정체를 팬들도 아셔야지. 안 그래요?

“그 참....아아! 이런....”

그 사이 시간이 10분 더 흘러버렸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었는데, 그때 문대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 *

분명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는데 그게 R드래곤이라는 원귀 때문에 전부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 시간만큼 얻은 건 확실히 많았다. 그러니 그로 인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단지 이제부터 내가 시간에 쫓기게 됐다는 것 뿐.

“왜?”

-어디 가십니까?

문대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아마도 내가 여기 호텔에서 골프복을 요구한 걸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다.

“어.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골프장에 가야 돼.”

-몇 시까지요?

“9시.”

-네? 이런....시간 없네요.

“그렇지. 밑에 차대기 중이지?”

-네.

“지금 바로 내려갈게.”

나머지야 내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야 지금 내려가서 차에 타기만 하면 됐다. 그럼 오늘 나를 경호할 경호팀원들이, 나를 9시가 되기 전에 어떡하든 경기도 화성시의 골프장에 데려다 줄 거다.

나는 그 길로 1층으로 내려갔고 로비를 가로 질러 호텔 밖으로 나가자, 내 경호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탈 차에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대기 중이던 차에 타서, 내가 탄 타 뒤를 따라왔다.

주말조의 경우 내가 탈 차 말고 한 대의 경호차량이 더 움직였다. 문대식은 내 경호 인원으로 최소 4명은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내가 움직일 때는 꼭 두 대 이상의 차량이 동원됐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나를 태운 차가 막 힐튼 호텔을 빠져 나와 도로에 접어들 때였다.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김 비서였다. 오늘은 주말이라 쉬는 그녀가 내게 왜 전화를 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해서 바로 그녀 전화를 받았다.

“어.”

-쉬실 텐데 이렇게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어제 깜빡 잊고 알려드리지 못한 스케줄이 있었어요.

“스케줄?”

-네. 왜 저번에 대표님이 횡단보도에서 사람 목숨을 구하신 일 있으시잖아요.

“어.”

-그 때문에 인터뷰 들어 온 건 알고 계시죠?

인터뷰라는 김 비서의 말에 나도 속으로 ‘아차’ 싶었다. 나와 백승렬 회장을 해치려는 음모 때문에, 그 인터뷰가 뒤로 연기 되었는데....

“맞다. 그게 오늘이었어?

-네. 저도 방금 그쪽 연락 받고 생각이 났어요.

아마도 그쪽에서 주말에도 괜찮으니까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내가 허락한 걸로 기억이 났다. 그때 김 비서가 그쪽과 따로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로 했을 거다.

“약속 시간과 장소가 어딘데?”

-오후 3시에 크리스탈 호텔 라운지요.

“3시라....”

오전 골프 치고, 민혜주와 같이 점심 먹고 나서, 바로 서울로 넘어오면 얼추 약속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았다.

“알았어. 그쪽에 그때 보자고 해.”

-시간을 좀 더 뒤로 미루지 않고요?

거기서 미룬다고 있던 약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때 빨리 만나서 인터뷰 끝내버리고, 저녁부터는 속 편하게 나만의 주말을 즐기는 게 더 나았다. 그렇게 나는 주말임에도 오후 스케줄이 따로 잡힌 상태로, 경기도 화성시에 있을 골프여신 민혜주가 나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 * *

나나미는 백준열이 걸려 온 전화를 받을 때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깬 척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면서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보니 골프 얘기가 나왔다.

백준열이 한국말로 통화 중이라 그 통화 내용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내일 아침에 골프 치러 가겠다는 얘기 같았다.

‘골프라....’

사실 나나미는 골프 실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여태 그걸 밝히거나 티 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골프는 그녀에게 있어서 역린과도 같았기 때문에.

교토에 살 때 나나미의 집은 꽤나 부유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골프를 접했고.

나나미는 골프의 매력에 푹 빠졌고, 프로골퍼가 되고 싶었다. 해서 그쪽으로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나나미는 7년이나 골프를 쳤고, 아마추어로서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녀가 프로에 도전하기 직전, 골프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을 하려 했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그녀의 꿈도 같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때 실력이 어디가지는 않았다. 언제든 채만 잡으면 수준급 골프 실력을 발휘할 자신이 있는 나나미는....

“그래. 골프장에서 내 매력을 발산해서, 준열상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야.”

자신의 몸으로 백준열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나나미는, 아침에 백준열이 간다는 골프장을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려면 어서 자 둘 필요가 있었다. 나나미는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텔 측에 얘기해, 골프복을 챙겨 입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그렇게 로비에서 백준열이 내려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나미.

“아아....”

갑자기 배가 아파왔고 나나미는 황급히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때 하필 백준열이 보였다. 그것도 호텔 출구 쪽에서.

“준열상!”

그녀가 큰 소리로 백준열을 부르며 그쪽으로 뛰어갔지만....그대로 호텔 밖으로 나간 백준열. 그런 그를 태운 차가 먼저 출발해 버렸고....

“택시!”

나나미는 급히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아탔다.

“저 차....따라가요.”

다행히 나나미의 한국 말을 알아 들은 택시기사가 백준열이 탄 뒤 차, 경호차량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20분쯤 뒤....

백준열을 태운 차와 그 뒤 경호차량이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피닉스 골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뒤를 쭉 쫓아 온 택시도 거의 동시에 골프장 본관 건물 앞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나나미가 막 피닉스 골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백준열을 향해 소리쳤다.

“준열상!”

다행히 백준열이 나나미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던 백준열.

“나니미?”

그가 나나미를 발견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백준열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 나나미가 생글거리고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나나미도....골프 쳐요.”

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백준열의 얼굴은 자신을 뒤쫓아 온 나나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떨떠름했지만, 차마 그녀를 보고 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 * *

잘 먹고 잘 싸고, 잠까지 푹 잘 잔 백준열과 달리, 그의 부친인 백승렬 회장은 간밤에 거의 한 시간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허어....”

하긴 자기 아들 둘을 하루사이 없애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 마음이 편할래야 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승계가 이뤄질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녀석들....”

그냥 가만있었으면 자기들 몫을 다 받아 챙겨, 떵떵거리며 여생을 자기 하고 싶은 거 다하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선 안 될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그게 인생이니까.

“회장님. 식사 하실 시간입니다.”

김 집사의 말에 백승렬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입안이 껄끄러워서 뭘 먹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뭐라도 드셔야 약을 드실 수 있습니다.”

주치의까지 나서서 식사를 하라니 어쩔 수 없이 먹겠다고 했다.

“상을 차려 올까요?”

“아냐. 그냥 식탁에서 먹지.”

그렇게 안방에서 몸을 일으킨 백승렬. 그가 김 집사의 부축을 받아서, 주방 옆 식탁 쪽으로 움직일 때였다.

“준열이는?”

백준열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불쑥 물었다. 그러자 김 집사가 바로 대답했다.

“지금 힐튼 호텔에 묵고 계십니다. 막내 도련님. 부를까요?”

호텔이란 말에 백승렬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아냐. 내버려둬.”

생각해 보니 죽상에 퀭한 이 몰골을 막내 녀석에게 굳이 보일 필요는 없었다. 또 심적으로 괴로운 건 자기 하나로 충분했고.

백승렬은 곧장 식탁에 가서 앉았고, 비록 밥알이 모래 씹는 거 같았지만, 억지로 밥 반그릇 정도를 비우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7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산사람은....또 살아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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