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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R드래곤의 본명은 이계용이었다. 계용은 기억에 없는 조부,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었다. 건강하고 오래 살라고 지어 준 이름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래퍼Rapper 동아리에서 친구들이, 그의 이름에 들어가는 ‘계’가 계란에 그 ‘계’라며, 계란이 닭 알이니 알용으로 불렀다. 그 알용이 그가 아이돌로 데뷔하고, 유명해지면서 R드래곤이 된 것이고.
“루루랄라라라....”
R드래곤은 오늘도 작곡에 열중이었다. R드래곤은 자신의 인기가 길어야 앞으로 10년으로 봤다. 그래서 그 10년 동안 그가 매년 어떤 음악을 할지를 정하고, 그 해에 그가 낼 히트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마침내 10년 어치가....그 노래 작업의 끝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됐다.”
피곤에 쩔어 있는 R드래곤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그는 방금 완성한 자신의 따끈따끈한 신곡을 따로 외장하드에 저장을 한 뒤, 자신의 컴퓨터에 그 흔적을 깨끗하게 지웠다. 그리고 그 외장하드를 자신의 작업실 안에 자신만 아는 비밀 공간에 숨겼다.
꼬르르르! 꼬르륵!
그러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의 배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어서 먹을 걸 여기 처넣으라고 말이다. 해서 R드래곤은 매니저를 불렀다. 그러자 매니저가 알아서 피자며 햄버거를 사 들고 왔다. 매니저는 R드래곤이 어제부터 지금까지 한 끼도 먹지 않고, 작업실에 쳐 박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녀석이 그를 부를 때 뭘 제일 먼저 시킬지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먹어.”
“생큐!”
평소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R드래곤. 그는 허겁지겁 고픈 배를 피자와 햄버거로 채웠다.
그렇게 배가 불러오자....
“....음음....”
그의 가운데 다리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여자 냄새도 못 맡았다.
지금 한창 때인 R드래곤의 몸은 일주일에 세 네 번은 정액을 빼줘야 했다. 아니면 욕구 불만으로 그 화가 전부 매니저에게로 향하는지라, 매니저도 R드래곤의 난잡한 성생활에 나름 일조를 하고 있었다.
“여자 좀 알아 봐. 급해.”
R드래곤의 그 말에 매니저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자신이 무슨 포주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R드래곤의 요구는 무조건 들어줘야 했다. 그러라고 소속사에서 그에게 다른 매니저 보다 2배나 많은 월급을 지급하고 있으니까.
“알았어.”
바로 R드래곤의 욕정을 풀어 줄 여자 섭외에 나선 매니저. 한데 운이 좋았다.
“채시연이 시간 괜찮다는 데?”
“채시연?”
“어어. 왜 그 청바지 CF의....”
“아아. 그 몸매 죽이는 년. 좋지. 바로 만나자고 해.”
그렇게 매니저는 채시연을 힐튼 호텔로 불렀다. 당연히 그 전에 힐튼 호텔에 방을 잡았고.
“가자.”
그리곤 R드래곤과 먼저 힐튼 호텔로 가서, 일부러 지하 주차장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바로 객실로 올라갔다.
“애가 왜 이리 늦어? 아아. 저기 오네.”
다행히 채시연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지만 왔고, 매니저는 그녀를 R드래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휴우....”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둘이 떡칠 동안 매니저는 1층 로비의자에 기대어 쪽잠을 잘 생각이었다.
“쳇....”
하지만 소속사에서는 그가 잠깐이라도 쉬는 꼴을 못 봤다. 근처 여배우 하나를 픽업해서 K본부로 데려다 주라나? 해서 매니저는 급하게 움직였고, 다시 돌아 왔을 때, R드래곤의 볼일도 끝나 있었다.
* * *
주색잡기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술과 색과 잡기는 서로 부추기면서 행하여지는데,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며, 종내 사회의 윤리도덕을 타락케 하는 지름길이 된다.
이렇듯 여자 맛을 본 R드래곤이 그 다음으로 술을 찾을 건 자명한 일이었고, 매니저는 녀석이 술을 마실 특별한 장소를 이미 섭외해 두었다. 그리고 거기서 얼큰하게 술에 취한 R드래곤은 잡기로 눈을 돌렸다.
“계용아. 운전은 절대 안 돼. 알았지?”
“아이 참. 나도 알아. 술 마시고 운전대 잡으면 안 된다는 거.”
“그래. 알면 됐다.”
근데 그때 또 전화가 왔다. 아까 K본부로 데려다 줬던, 그 여배우가 지금 여의도에 있는데 집까지 좀 데려다 주라나 뭐라나?
당연히 술 취한 R드래곤을 두고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그걸 말하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이 새끼 어디 갔어?”
R드래곤이 술자리에서 사라졌다. 호텔에서 끼고 놀았던 그 채시연을 데리고 말이다.
다행이라면 채시연은 그리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단 점. 그리고 그녀는 여자 치고 운전을 썩 잘했다. 아까 호텔에서 여기까지도 그녀가 R드래곤의 페라리를 운전해 왔을 정도로 말이다.
“계용아. 제발 전화 좀 받아라.”
하지만 R드래곤은 매니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채시연 쪽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부터 매니저의 R드래곤 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 됐다.
“어?”
그런 그의 눈에 채시연이 보였다. 분명 R드래곤과 같이 있어야 할 그녀가 왜....
“시연씨. 우리 계용이는요?”
매니저가 R드래곤에 대해 묻자, 채시연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몰라요. 내가 차에서 내리자 혼자 운전해 갔는데....”
“뭐, 뭐라고!”
거의 꽐라 직전 상태까지 취한 녀석이 운전을 해? 매니저는 등골에 식은땀이 찼다. 그리고 잠시 후....어디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어디라고요? 광, 광진 경찰서요? 네. 네.....아아....”
그렇게 취해 운전을 했는데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 하지만 매니저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바로 소속 연예인의 죽음....
뭐부터 어떻게 챙겨야 할지 이미 머릿속에 온통 하얘서 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연락 온 경찰서부터 달려갔다. R드래곤의 죽음을 자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혹시 모르잖은가? 그 차에 타고 있다 죽은 사람이 R드래곤이 아닐 지도....
“이럴 수가....”
하지만 기적은 없었고, 시체 보관소에 시체는 R드래곤이 맞았다.
비틀거리며 그곳을 나온 매니저는 그의 소속사 대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악을 쓰는 소속사 대표의 말에 그저 기계적으로 대답만 했다.
“네. 네. 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매니저는 R드래곤의 가족들에게 연락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냈다.
“개새끼....”
R드래곤의 죽음을 두고 온갖 욕은 자기에게 다 퍼부어 대더니, 정작 대표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려 드는 소속사 대표에게, 실컷 욕설을 내 뱉은 매니저. 결국 유족에게 R드래곤의 죽음을 알리는 일을 자신이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R드래곤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렇게 망설이기를 30여분, 매니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R드래곤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나마 그가 여태 보아 온 R드래곤의 가족들 중에서 부친이 제일 이성적으로 보였기 때문에....또 R드래곤의 가족들 중 유일한 남자이기도 했고.
그러나 아니었다. 연락을 받은 R드래곤의 부친은 그대로 혼절해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때문에 부친에게 연락한 매니저만 입장이 더 곤란해져 버렸다.
“하아....”
어제 오늘 어째 되는 일이 하나 없는 매니저였다. 매니저는 이 일을 때려치우는 것에 대해서 신중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 * *
매니저가 안 된다고 했지만,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바로 젊을 때의 특권, 반항심 아니겠나?
R드래곤은 매니저가 잠깐 한눈 팔 때, 옆에 앉아 있던 채시연에게 말했다.
“우리 답답한데 찬바람 좀 쐬자?”
“그럴까?”
채시연도 이 안이 갑갑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채시연을 데리고 술집을 나온 R드래곤.
그는 채시연을 데리고 바로 주차장으로 가서 자신의 빨간 페라리에 탔다. 그걸 보고 채시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차 운전하려고?”
“어. 뭐해? 빨리 타지 않고.”
채시연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R드래곤의 재촉에 자기도 모르게 그의 옆에 탔다.
그렇게 채시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떨결에 R드래곤이 모는 차에 동승하게 된 그녀.
부아아아앙!“이야호! 신난다!”
R드래곤의 광란 질주에 사실 그녀도 조금은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 남자....’
오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그 예의 없던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채시연.
‘뭐지?’
처음 보는 그 남자가 왜 자꾸 생각이 난단 말인가? 그것도 현재 애인인 R드래곤이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다.
“아아....”
그때 채시연의 머릿속에 그 남자가 페라리 운전 중일 때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게 생각났다.
그는 분명히 그녀를 보고 슬픈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마치 그러지 말라는 거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과 묘하게 매치가 되면서....마치 지금 R드래곤과 같이 있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 같이 느껴졌다.
“....자, 잠깐만....차 세워 봐.”
“....우헤헤헤헤....”
하지만 채시연의 차 세우란 말을 R드래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바로 생 까 버리고 자기 기분만 만끽했다. 그런 그를 쏘아보며 채시연이 다시 외쳤다.
“....빨리 세워....나 토 올라온다고.”
“뭐?”
토하겠다는 채시연의 말에 R드래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하긴 자신이 아끼는 차에다가 다른 사람이 오바이트 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차주가 어디 있겠나?
“C발....”
대 놓고 욕설을 내 뱉으며 R드래곤이 차 속도를 줄이고, 근처 도로가에 차를 세웠다. 그러자 바로 채시연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내린 차문을 ‘쾅’ 닫아버리며, 지붕 열린 오픈카 운전석의 R드래곤에게 말했다.
“나 이 차 못 타겠어.”
“하아....”
그러자 어처구니 없어하면 R드래곤이 채시연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녀를 욕함과 동시에 그녀와 자신의 관계도 이걸로 다 끝났다는 의미의 제스처였다. 당연히 채시연도 그 의미를 알아먹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채시연은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웃어? 저 C발년이....”
채시연이 웃는 걸 보고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 R드래곤. 그는 차에서 내리려다가 반대편 차선으로 경찰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 참았다.
그 사이 채시연은 R드래곤이 차를 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고,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앞으로 차를 출발 시켰다.
“C발....그래. 혼자 타지 뭐. 달려라. 달려.”
부우웅! 부우우우웅!
점점 더 차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R드래곤. 그는 다시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고....
“어어....”
분명히 코너에서 방향을 틀었건만, 그의 차가 차선을 벗어나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곤 전봇대를 그래도 처박았다. 온 몸에 격통이 확 일고 어느 순간 의식이 흐릿해지더니 정신의 끈을 놓아버린 R드래곤. 그리고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C발....이게 뭐야?
그의 몸이 공중을 막 날아다녔다. 그리고 무엇도 만져지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 지금....귀신 된 거야?
R드래곤은 그제야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 * *
간밤에 소진한 정력을 회복할 생각으로, 아침 메뉴로는 좀 과한 삼계탕과 갈비탕을 같이 시켰다. 두 그릇 다 먹겠다는 게 아니라, 둘을 반반씩 먹을 생각이었다.
“후루룹....으음....”
먼저 깔끔한 국물의 갈비탕을 맛 봤다. 일부러 다진 양념을 섞지 않은 채 말이다.
적절이 국물 간이 되어 있었기에, 갈비탕 국물 맛은 내가 생각한 대로 깔끔하면서 시원했다. 하지만 역시 대한민국 남자 입맛에는 매운 맛이 들어가야 제 맛이 아니겠나?
나는 다진 양념을 절반 정도 넣고 갈비탕을 휘저었다. 그러자 금새 빨개지는 갈비탕 국물.
거기에 밥을 반만 말아서 갈비탕에 같이 들어 있는 당면과 같이 한 숟가락 떠먹었다.
“후루루룩....쩝쩝쩝....”
갈비탕에 인삼과 대추 등이 같이 들어 있어서, 쌉싸래한 맛도 살짝 느껴졌다.
하지만 그 맛은 금방 내 입안에서 사라졌다. 젓가락에 집힌 깍두기가 내 입안에서 씹히면서 말이다.
와그작....와그작....
적당히 잘 익은 깍두기는 그리 짜지도 않고 맛있었다. 그렇게 깍두기의 맛을 음미하며 내 숟가락이 다시 갈비탕으로 들어갈 때였다. 갑자기 뒤통수와 함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이런 느낌을 한두 번 느껴 본 게 아닌지라, 이제 나도 이골이 났다고나 할까?
“아아. C....아침 댓바람부터 뭔 잡귀야?”
나는 살짝 짜증을 내면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갈비탕 그릇에 일단 넣어놓고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내 예상대로 원혼이 하나 내 앞에 보였다. 그런데 그 원혼이....
“R드래곤?”
-뭐, 뭐야? 당신 내가 보여?
히필 내 앞에 나타난 원귀가 R드래곤일 건 또 뭐란 말인가?
“아이C...."
내가 골치 아파 할 때 R드래곤은 내 눈앞을 왔다갔다하면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런 녀석에게 내가 버럭 소리쳤다.
“가만 좀 있어라. 다 보이니까.”
-오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제게 마지막 그 일을 하고 떠날 수 있게 해 주셔서....
나는 내 눈앞에 신경 거슬리는 R드래곤의 원혼을, 「개눈깔」아이템이 4UP되면서 생겨난 퇴마 능력으로 없애 버리려다가 참았다. 녀석이 말한 ‘그 일’이 뭔지 궁금해서 말이다.
하긴 R드래곤도 이렇게 죽은 뒤에 살아생전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으니, 이런 원혼이 되어 내 앞에 나타 난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