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18화 (51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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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기억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얘기 들었습니다. 김 회장님....그렇게 끝나기 아까운 분이신데....”

-그분 운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전화 주신 건, 저에게 민 실장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라고 보면 될까요?”

-네?

“저는 민 실장님 같으신 분이 서진그룹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주주로서 그룹을 이끌어 나간다는 건 아닙니다. 대신 전문경영인으로서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 아닐까요?”

-그, 그러니까 지금 저에게 서진그룹 회, 회장자리를....

“네. 아시겠지만 이미 싸움은 시작 됐고, 우리는 벌써 서진그룹의 지주사인 서진제약의 주식을 빠르게 선점한 상탭니다. 아마 주식시장에서 서진제약 주식은 씨가 말라 있을 겁니다. 거기에 삼명그룹이 고맙게도, 제 편을 들어 준다고 하네요. 그럼 국민연금과 투자사들도 전부 제 편에 설 거고....”

-죄, 죄송하지만 지금까지 서진제약 주식을 얼마나 확보하셨는지 알 수 있을 까요?

“아까 점심 먹기 전에 듣기로, 25%를 넘겼다고 들었습니다만.”

-25, 25%라고요?

민영석이 어지간히도 놀라하자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어떻게 제 제안이 실현 가능한 제안이란 건 인정하시는 겁니까?”

-네. 하지만 안정적으로 서진그룹 경영권을 가져 오려면 30%는 넘어야....

“그 나머지 5%야 민 실장님이 챙기면 되죠.”

-네?

“나한테 실탄은 많으니까 민 실장님이 서진그룹 내부를 흔들어만 주면, 그깟 5% 못 챙길까요? 그 정도도 못해낸다면....이거 내가 민 실장님께 많이 실망할 거 같은데?”

-아, 아닙니다. 실탄만 있다면....서진그룹 내부 주식 5%는 얼마든지 사들일 수 있습니다.

역시 민 실장은 똑똑했다. 그리고 딱 봐도 내부 주식 5%정도는 사들일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 그 방법까지 내가 굳이 묻거나, 알 필요는 없었고.

‘확실히 유능해.’

뭐 이러니 김명진 회장도 민 실장을 곁에 둔 거겠지. 거기다 의리도 있고.

하지만 의리도 결국 살아있고, 멀쩡해야 지킬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김명진 회장이 코마 상태에 빠진 이상, 민 실장의 의리도 거기서 쫑 난 거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서진그룹 회장 자리를 선뜻 제안 하는, 한마디로 그를 알아보는 나를 위해서, 그는 새로운 충성과 의리를 다 바치게 될 것이고.

-제 신명을 다 바쳐서, 앞으로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역시다. 이 정도면 눈치도 적당히 빠르고. 내게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을 또 한 명, 내 밑으로 거둘 수 있게 되어서 말이다. 뭐 확인이야 해보나 마나지만 어차피 민 실장은 나와 만날 테고 그때 그의 본심을 알아보는 건 내게 일도 아니었다.

“자세한 건 내일 만나서 얘기합시다.”

-네. 내일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나는 기분 좋게 민영석과 통화를 끝냈다. 그때 특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김 비서가 정신을 차린 거 같았다. 옷 입는 소리가 내 예민한 귀에 다 들렸다. 아마 곧 특실에서 나올 테지.

“쩝쩝....”

근데 제대로 된 한 빠구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가 잠깐 생각해 보니 내 머릿속에 떠 오른 게 바로 러브 체어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김 비서와 러브 체어에서 한 빠구리를 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김 비서가 어디 갈 것도 아니고 말이다. 러브 체어에서 김 비서와 즐기는 건, 당장 내일도 가능했다. 물론 김 비서가 꺼려하니 시간은 좀 두고 거기 데리고 들어가야겠지만.

“뭐가 날이 아니란 건가요?”

그때 김 비서가 특실을 나오며 내게 물었다.

‘우리 김 비서,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귀도 엄청 밝으셔....’

“하하하하. 아냐. 전화 받고 그냥 나온 소리였어. 그보다....괜찮아?”

“네. 뭐....”

자신이 세 번이나 떡 실신한 게 생각났는지, 김 비서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 * *

처음 백준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관할인 서초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졌다.

“아이고. 귀하신 분이....이렇게 누추한 곳에 다 오시고....”

서초경찰서장이 자신의 방으로 백준호를 모시고 온갖 편의를 다 제공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백준호는 서장실에서 대 놓고 담배를 피웠다.

‘그래. 원래 이래야 정상이지.’

삼명家의 둘째 아들로 그가 평소 누려 온 대접이었다. 그걸 삼명그룹에서는 이제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됐지만,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이런 경찰서에서, 백준호는 여전히 위세 등등할 수 있었다.

“후우우...”“여기 재떨이....”

백준호의 피는 담배 재까지 받아 주는 서초경찰서장. 딱 봐도 싸바싸바 하는 게, 능력보다는 인맥으로 지금 자리까지 올라 온 티가 역력했다.

“그 택시기사 말인데....”

“네. 제가 괘씸죄를 적용해서....적당히 면허 정지 시켜 버리겠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운전 면허증을 정지 시켜 버린다는 건, 먹고 살길을 끊어 버린다는 얘기와 같았다. 가혹한 처사. 하지만 백준호의 입장에서는 그것가지고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감히 천한 것이 내 멱살을 잡아?’

당연히 경찰에서 불법적인 일까지 해 주진 않는다. 해서 여길 나서는 즉시 백준호가 잘 아는 조폭 조직 중 한 곳에 연락해서, 그 택시 기사를 어디다 묻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걸 티낼 수야 있나? 백준호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서초경찰서장에게 말했다.

“하하하하. 이게 다 내가 급하게 움직이느라 지갑도 챙기지 않고, 택시부터 덜컥 타 버린 탓에 생겨난 일이니, 그 기사 분 너무 뭐라고 하진 마세요.”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이렇게 몸소 실천하게 계시다니. 과연 삼명그룹의 자제 분 다우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 5만원만 꿔줘요. 그걸로 못 낸 택시비도 내고, 삼명그룹 본사까지 택시타고 가게.”

“물, 물론입니다. 아니 그 보다 제가 직접 본사까지 모셔다 드리는 건 어떠신지?”

“아유. 그럴 수야 없죠. 서장님처럼 공무로 바쁘신 분한테. 그냥 택시 타고 가게 돈이나 줘요.”

“네. 알겠습니다.”

서초경찰서장은 지갑을 꺼내서 그 안에서 빳빳한 5만원 지폐를 한 장, 아니 네 장 쯤 꺼내서 백준호에게 건넸다. 그 돈을 챙긴 백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가도 돼죠?”

“네. 얼마든지....”

그렇게 백준호는 서초경찰서를 나와서 횡단보도를 통해, 건너편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는 거기서 또 맨 앞 택시를 새치기로 탔다.

그때였다. 서초경찰서 안에서 경찰들이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쳇! 경찰서까지 손을 썼나?”

그걸 보고 혼자 중얼거리던 백준호. 그가 앞쪽 택시 기사에게 버럭 소리쳤다.

“뭐해? 빨리 안가고?”

중년의 택시 기사는 새파란 놈이 자기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게 영 못 마땅했지만 어쩌겠나? 손님이 왕인 걸. 그래서 일단 택시를 출발 시켰다.

* * *

백준호에게 돈 20만원을 건네고, 그에게서 받은 명함을 보고 싱글벙글 웃던 서초경찰서장.

“이게 웬 횡재냐? 이런 식으로 삼명家 사람과 엮이다니. 그것도 백 회장 직계와 말이야.”

서초경찰서장은 이 사실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잘 나가는 서울경찰청의 경찰대 동기 녀석에게 이걸 자랑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어어. 서 경무관. 나야. 어. 그래. 뭐 바쁘지. 바쁜데 글쎄 귀인이 내 앞에 나타났지 뭐야. 그 귀인이 누구냐고? 너 듣고 놀라지 말라고. 바로 삼명그룹 둘째 아들 백준호. 흐흐흐흐. 놀랬지? 내가 그 백준호에게 돈 20만원을 빌려줬다는 거 아니냐.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허억! C발....좇 됐다. 끊어.”

서울경찰청 동기와 통화 중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서초경찰서장. 그가 황급히 동기와 통화를 재빨리 끊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장실을 뛰쳐 나가며 외쳤다.

“백준호! 백준호 빨리 잡아. 어서!”

뒤늦게 삼명그룹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서초경찰서장. 자신이 지금 삼명그룹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던, 그 백준호를 잡고도 버젓이 놔 준 것이다.

하지만 서초경찰서 경찰들이 전부 나서서, 경찰서 주위를 샅샅이 뒤져도 백준호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주변 CCTV를 뒤지는 과정에서, 백준호가 경찰서 맞은 편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사라진 걸 발견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소식을 듣고 삼명그룹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 CCTV화면을 보고서 싸늘한 얼굴로 서초경찰서장을 쏘아보고 떠났다.

“아아....”

그게 무슨 뜻이겠나? 서초경찰서장이 삼명그룹에 제대로 찍혔다는 얘기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지금까지 그나마 승승장구해 왔던, 그의 출셋길이 꽉 틀어 막히게 생겼다는 소리였다.

“으아아악!”

서초경찰서장이 절망하며 서장실에서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백준호는 자신의 집으로 가려던 생각을 접고 인천으로 향했다. 거기 그의 비밀 아지트가 있었다. 아주 은밀한 곳으로, 거기는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백준호가 혼자서 마약을 즐겼기 때문에.

그러니까 백준호가 약쟁이란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도 우연히 마약을 접하게 됐고, 한번 하니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마약에 손 댄 사실을, 부친인 백승렬 회장이 알게 된다면, 아무리 그가 백 회장의 핏줄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서 철저히 비밀에 숨기며 누구도 알지 못하게, 여태 혼자 몰래 마약을 해 왔다.

그런 곳인 만큼 백준호는 거기 가면 누구도 자기를 찾지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타고 간 택시의 번호가 경찰에 의해 조회가 되고, 즉시 수배가 내려지면서 그의 위치는 곧 밝혀졌다. 그리고 인천에도 경찰서가 있었고 그 경찰서에 교통통제센터에서 긴급 제보가 주어졌다.

“저기다.”

그래서 백준호가 자신의 비밀 아지트에 들어가고, 불과 한 시간 뒤에 인천 중부경찰서 형사들이 그곳을 덮쳤다.

“에헤헤헤헤....”

“뭐야? 이거 순 약쟁이 아냐?”

그리고 그곳에서 마약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백준호가, 마약에 취해 있는 걸 형사들이 발견했다. 하지만....

“잠깐만....”

그때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그곳에 나타났고, 잠시 후 그곳에 출동한 인천 중부경찰서 형사들 중 팀장에게, 인천 중부경찰서정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에게 넘겨.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 협조하고.

“네? 하지만 현장에서 마약이....”

-어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나 옷 벗고 싶지 않다. 그건 너도 마찬 가질 테고.

서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그 말을 못 알아들을 팀장이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결국 인천 중부경찰서 형사들은 백준호를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에게 넘기고, 백준호의 마약 아지트를 떠났다.

경찰들이 떠나고 나자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 그러니까 삼명그룹 경호원들이 어딘가 연락을 취하고 나서, 이내 백준호의 아지트에 휘발유를 뿌리고 그곳을 싹 불태워버렸다.

근데 아이러니하게 불을 질러 놓고 119에 바로 신고를 했다. 그래서 불길이 주변으로 번지기 전에 바로 진화가 됐다. 소방관들은 사전에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불을 끄자 그 길로 바로 거기를 떠났다.

삼명그룹 경호원들은 백준호의 아지트가 완전 불 탄 걸 확인하고, 마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백준호를 데리고, 곧장 삼명그룹 본사로 향했다.

* * *

종로에 위치한 순대국밥 맛집, 큰 할매 국밥 집. 3대째 내려오는 국밥 명가로 그 중에서도 가장 있기가 있는 건,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이었다.

그 국밥 집 제일 안쪽에 위치한 방 한쪽에, 백승렬 회장과 김영도 경호실장이 마주 앉아서, 열심히 순대국밥을 먹고 있었다.

바깥 홀에는 김영도 경호실장의 조카이자,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 경호원인 김현석이 벌써 돼지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가게 점원이 내온 수정과로 입가심을 하고 있었다.

김현석은 식사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럴 것이 지금 여기서 백승렬 회장을 지키는 경호원은 그 혼자니, 한시도 경각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때 방안에서 백승렬 회장이 결국 먹던 순대국밥 상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탁!

김영도는 가급적 백 회장이 먹는 속도에 맞춰서 순대국밥을 먹고 있었지만, 그의 국밥 그릇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낸 데 비해, 백 회장의 국밥은 채 반도 줄지 않았다.

그 만큼 백 회장이 설렁설렁 국밥을 퍼먹었다는 소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여기 순대국밥도 입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지금 기분이, 아니 심기가 편치 못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입맛이 없으십니까?”

“....”

김영도가 겨우 그 말을 꺼내자 백 회장이 대답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에 따라 놓은 물을 마셨다. 이만 식사를 끝내겠다는 제스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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