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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울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차 안.
백승렬 회장은 일부러 김영도 경호실장과,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소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자네 아들이 벌써 군대 들어갔다니. 정말 세월이 빠르긴 하군.”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변했는데요. 뭘.”
“앞에 경호원, 자네 조카라고?”
“네. 김현석이라고 제 큰형 둘째 아들입니다. 체대를 나와서 빌빌거리며 놀고 있기에, 제가 불러서 경호팀에 넣었습니다. 물론 실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잘했어. 자네 정도 헌신했으면 그 만큼은 해도 돼.”
“송구스럽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았지?”
“3년 남았는데....60살 되면 그만 둬야죠.”
“계열사에 감사 자리 하나 마련해 두라고 할 테니, 노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
그리고 찾아 온 침묵. 백승렬도 더는 할 말이 없었던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백 회장이 상념에 잠긴 걸 보고 경호실장 역시 꾹 입을 다 문 체, 방해 되지 않게 침묵의 시간을 이어나갔다.
지이이이잉!
그때 핸드폰 진동음이 차 안의 적막을 깨트렸다. 바로 백 회장 개인 폰으로 전화가 걸려 온 것. 백승렬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품속에 손을 넣어서, 계속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누구 전환지 확인한 다음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음.”
-회장님. 좀 전 창원 터널에서 테러가 있었고, 경찰특공대가 그들을 강경 진압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안 비서도 경찰에서 확보했답니다.
안 비서란 말에 백승렬의 두 눈에 살광이 번뜩였다.
“그 놈 당장 서울로 데려 와.”
-네. 경남경찰청장에게 안 비서 헬기 태워 서울로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큰 아가 말인데....”
-네.
“벌써 손을 썼나?”
-손을 쓰긴 했는데 아직 신병만 확보한 상탭니다.
“으음. 그렇다면 큰 아가도 내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 건드리지 말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깔끔하게 처리 해. 시끄러운 소리 나오지 않게끔.”
-네.
백 회장은 이동훈 비서실장의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
그런 그를 옆에서 보고 뭐라 말을 하려던 김영도 경호실장. 하지만 그는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질끈 감는 백승렬 회장을 보고, 벌린 입을 도로 꾹 다물었다.
“....”
그 뒤로 차 안의 적막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 만큼 팔짱 끼고 눈 감은 백승렬 회장의 장고가 계속 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차가 서울로 들어서고 나서야 백승렬 회장이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을 뜨고는, 바로 옆에 김영도 경호실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출출한데 순대국밥이나 먹고 본가로 가지?”
“그럴까요?”
“음. 거기로 가.”
“네. 현석아. 아, 아니다. 내가 내비에 주소 찍을 테니 거기로 가면 된다.”
김영도 경호실장이 백승렬 회장의 50년 단골 순대국밥 집의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는 동안, 백승렬 회장은 자기 개인 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백승렬 회장의 두 아들인 백준경과 백준호를 제외한, 이번 백 회장과 백준열을 동시에 노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들에 대한 처분권이, 오롯이 이동훈 비서실장의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이동훈은 자신이 휘두를 그 서슬 퍼런 칼날에, 언제고 자신의 목도 날아 갈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함부로 그 칼을 휘두를 수 없었다.
“일단....”
해서 이동훈은 백준경과 백준호의 권한부터 박탈해 버렸다. 회장님 지시로 삼명물산 대표 백준경과 삼명생명 대표 백준호의, 대표 권한을 정지 시켜 버린 것. 동시에 그들이 삼명이라는 이름하에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도, 더는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분을 각자 집으로 모시고....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 해.”
이동훈의 지시에 대한민국의 공권력과 함께 삼명그룹 경호팀이 움직였다.
그러니까 경찰과 국정원, 군부대가 삼명그룹 경호팀과 공조해서, 정확히는 경호팀의 지시를 받아서, 백준경과 백준호의 비호 세력들의 응징에 나선 것이다.
이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 되었고, 국가 기밀이었기에 언론에서도 취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물론 열혈 기자 몇몇이 특종 냄새를 맡고 나서기도 했지만, 바로 연행 되어 모처에 감금당했다. 그들은 삼명그룹에서 진행 중인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즉시 풀려 날 예정이었다.
삼명그룹 경호팀이 공권력을 동원해서 진행하는 일에 예외는 없었다.
이번 일과 관련 된 자들은 죄다 체포 되었고, 신속히 모처에 구금 되었다. 한데....
“뭐? 신미나 쪽에서 사상자가 나와?”
신미나를 경호하던 자들과 경찰과 군부대 특수부대원간의 교전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특수부대원 2명이 죽고 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는 보고에, 이동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일에 국가 공권력이 동원되었는데도 사상자가 나왔다는 거 자체가, 그로서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그 소문이 진짜였던 모양이군.”
백승렬 회장의 장남 백준경의 처인 신미나의 경호원들이, 일본 야쿠자들이란 소문은 이미 재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니까 그 야쿠자들이 신미나를 보호하겠답시고, 대한민국 특수부대원을 향해 총질을 해 댄 것이다.
“그래서 그 새끼들은 어떻게 됐어? 뭐? 10명이나 사살....하아....”
야쿠자들이 독종이라더니 그 말이 맞은 거 같았다. 이동훈은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과 외교적인 문제가 없을지 걱정이 됐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 죽은 야쿠자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전과자들이며, 지명 수배 받고 있던 자들이었다. 일본 측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계속 실종 상태로 두고 싶어 한다나.
그러니까 여기서 그들 시신만 잘 처리 해 버리면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는 얘기였다.
해서 그자들의 시신처리를 삼명그룹에서 맡기로 하면서, 야쿠자들의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문제는 야쿠자들이 그렇게 악을 쓰며 지키려 한 신미나였다. 그녀 처분을 두고 이동훈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백승렬 회장은 그녀 처분을 그에게 맡겼지만, 이동훈이 신미나를 처리하는 건 여러모로 무리수가 따랐다.
신미나는 누가 뭐래도 백승렬 회장의 장남인 백준경의 아내였고, 백 회장의 손자를 둘이나 낳은 여자였다. 백준경이야 그렇다 쳐도 백준경의 아들들에게, 신미나는 자신들을 낳아 준 엄마였다.
그들이 장성했을 때 과연 자신을 낳아 준 모친을 죽인 자들을 가만 둘까? 아마 알고서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
해서 여러모로 머리 복잡해진 이동훈은, 일단 신미나의 처리는 뒤로 미뤘다. 그랬는데....
“네. 회장님. 네. 알겠습니다.”
마침 백승렬 회장이 서울에 다다라서 이동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이동훈이 고민하던 난제를 해결해 주었다. 신미나에 대한 처분을 백승렬 회장이 직접 하기로 한 것. 아마 뒤늦게 자신의 손자들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이동훈은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책상에 잔뜩 쌓여 있는 서류를 보고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우....”
저 서류에는 구금 된 자들 신상명세와 그들이 어떤 식으로 백준경과 백준호와 같이 백 회장과 백준열을 해치려 했는지 자세한 정보가 사실그대로 적시 되어 있었다.
이동훈은 그 서류를 보고, 그들 중 그냥 풀어줘도 될 자, 포섭, 회유해야 할 자, 그리고 끝끝내 처리할 자를 구분 지어야 했다.
그 다음 처리해야 할 자들에 대해서는....냉정한 처분이 이뤄지게 될 것이고.
피를 보는 일인 만큼 이동훈으로서도 허투루 처리해선 안 될 일이었다. 해서 그는 오늘 밤을 꼬박 새야 할지 몰랐다.
* * *
창원 터널에서 연변흑사파 녀석들이, 백승렬 회장을 처리하는 데 실패했단 소식을 전해들은 백준호.
“C발....진짜 되는 일 하나 없네.”
동생에 이어서, 아버지를 죽이는 데도 실패한 백준호는 생각보다 더 태평했다.
“뭐 곧 알게 되겠지만....그렇다고 자기 아들과 형을 죽이기라도 할까?”
백승렬 회장과 백준열의 분노쯤이야, 욕 좀 처 얻어먹고 계열사 대표 자리에서 쫓겨나면 그만이었다.
아마 꼴 보기 싫을 테니 한 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운이 좋으면 몇 년 안에 돌아 올 거고, 아니면 평생 외국에서 살아야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누구던가? 삼명그룹의 후계자로 거론 되던 순혈 삼명家 직계 혈손이 아니던가?
백승렬 회장이 죽고 나면, 법적으로 그의 몫만 챙겨도 평생, 아니 그의 자식들까지 펑펑 쓰고 살아도, 죽을 때까지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설마하니 백승렬 회장이 죽을 때, 그에게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죽을 리는 없을 테고 말이다. 막말로 그는 미워도 백준호에게는 자식이 5명이나 있지 않은가? 그 중 혼외자식이 넷이나 됐지만, 어째든 백 회장에게는 손자들이었고, 자기 핏줄이라면 끔찍히도 아끼는 양반이니, 그 손자들 봐서라도 자신에게 유산은 물려 줄 터였다.
똑똑똑!
그때 노크와 함께 대표실 문이 열리고, 그의 비서실장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백준호는 자신이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대표실로 막 들어 온 비서실장이 짜증이 났지만, 오늘은 날도 날이니 만큼 일단 참았다. 그런데....
“대, 대표님. 본사 비서실장님께 연락이 왔는데....”
“그래서 뭐?”
“대표님의 권한이 정지 되었으니....그만 자리를 빼시라고....”
한마디로 본사에서 백준호를 대 놓고 삼명생명 대표에서 자른 것이다. 계열사 대표를 물러나게 하려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이사회의 동의나 주주총회의 해임 안 가결 등등의.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시 되는 게 바로 삼명그룹 회장 백승렬의 지시였다.
그 지시를 대신 하달하는 게 삼명그룹 비서실이었고. 그 비서실의 수장인 이동훈 실장이 자리 빼라면 백준호라도 빼야 했다.
“이동훈....그 개자식이....”
백준호는 박박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삼명 생명 대표실을 나가며 소리쳤다.
“차대기 시켜. 본사 갈 테니까.”
아직 백승렬 회장은 지방에 있었다. 그러니 지금 그가 본사 가서 분탕질을 쳐도, 그걸 말릴 사람은 없었다. 백준호는 감히 자신에게 모욕감을 선사한 이동훈 비서실장의 멱살을, 당장 잡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본사로 가려는데....
“차는?”
근데 그가 타고 갈 차가 없다. 분명 비서실장에게 차 대기 시키라고 했는데 말이다. 백준호는 바로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대표님이 아니신지라 대표 차를 제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뭐, 뭐라고? 너 이 새끼....”
-저 바빠서 이만....
뚜뚜뚜뚜뚜뚜뚜....
“야이. 개새끼야. 어디 감히 먼저 전화를 끊어!”
삼명생명 건물 앞에서 길길이 날 뛰는 백준호. 그때였다. 좀 전까지 백준호를 경호하던 경호원들도 우르르 삼명생명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뭐, 뭐야?”
졸지에 덜렁 혼자 남게 된 백준호. 길바닥에 달랑 혼자 남게 되자, 천하의 백준호도 주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이....”
그의 주위에 경호원들이 지켜주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치고 잘난 척 할 수 있었지, 그들이 없으면 백준호는 별거 아닌 소심한 놈에 불과했다.
“이것들...내가 다시 돌아오면 두보고자.”
백준호는 주위를 살피다가 마침 택시 승강장이 보이자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순서도 무시하고 맨 앞 택시를 잡아타고는 삼명그룹 본사로 향했다. 하지만 삼명그룹 본사에 도착하고, 막 택시비를 계산하려던 그에게 택시 기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정지 된 카든데요?”
“뭐? 그럴 리가....”
백준호는 자기 지갑에 있는 카드는 다 꺼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모든 카드가 정지 되어 있었고, 결국 택시비를 내지 못한 백준호는 택시에서 내려 냅다 튀다가....
“어딜....”
“아악! 이거 좀 놔 봐. 저기 들어가면 바로 택시비 준다니까.”
삼명그룹 본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택시 기사에게 잡혀서....
“웃기지 마. 택시비 내 놓기 전까지는 어디도 못가.”
결국 백준호는 가장 가까운 근처 경찰서로 멱살 잡혀 끌려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삼명그룹 본사 앞에서 그런 소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의 그 누구도 나서서 백준호를 옹호해 주거나, 그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삼명그룹 본사에 사람들도 이때 다 알았던 것이다. 백준호가 백승렬 회장을 해치려 한 걸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 한 패륜아를 위해, 나서 줄 직원이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괜히 나섰다가 똥물이라도 튀면....그 감당은 오롯이 자기들 몫이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