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10화 (50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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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열의 부름을 받고 달려 왔다가, 뜻밖의 성과를 거두고 돌아가는 차안.

운전하는 철수나 그 옆 조수석에 앉은 세르게이 모두 기분이 좋았다. 그때였다.

디링!

세르게이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고, 그걸 확인한 세르게이가 기뻐하며 외쳤다.

“브라보(Браво)!”

철수는 세르게이가 러시아어로 말하는 브라보를 외치는 걸 처음 들었다. 그 만큼 기쁜 소식인 거 같은 데, 그게 뭔지 철수는 대충 짐작이 됐다. 그래서 운전 중이라 시선은 정면에 두면서 옆에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얼마나 들어왔는데?”

그러자 세르게이가 입이 귀에 걸린 채 즉답을 해주었다.

“1억 5천!”

“와아....역시 VVIP고객이네.”

“그렇지? 이래서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VVIP고객을 잡으려고 그렇게 혈안인 거지.”

그때 운전 중인 철수의 호주머니 속에서도 핸드폰이 울렸다. 철수는 운전 중이라 핸드폰을 꺼내긴 했지만, 자기가 확인하지 못하고 그걸 옆에 세르게이에게 넘겼다. 그러자 세르게이가 문자를 확인하고 말했다.

“이야. 우리 VVIP고객 인성 갑인데. 5천만 원 더 들어왔어.”

수고비로 백준열이 따로 철수에게 5천만 원을 더 입금해 준 거다. 앞서 세르게이에게 기분이 좋아 수표로 5천만 원을 선뜻 준 거처럼 말이다.

이러니 백준열이 맡기는 일에 철수가 열성적일 수밖에.

“근데 철수,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지금 철수가 차를 몰아가는 방향이 집으로 가는 방향과 다르자, 세르게이가 물었다.

“왜 아까 하던 일 있잖아? 서진병원. 거기 다시 가는 중이야.”

“거긴 다 끝난 거 아니었어?”

“김 회장이 죽었다거나, 뇌사 판정 난 건 아니잖아? 끝까지 확인해야지.”

“오오. 그런 프로정신 좋아. 칭찬해. 우리 철수.”

“뭘....다 너한테 배운 거지.”

철수의 말처럼 세르게이는 의뢰를 맡으면 사람이 달라졌다. 뭐 하나 허투루 다루는 게 없었고, 꼼꼼하게 다 챙겼다. 그리고 의뢰가 완전히 끝나야만 긴장의 끈을 놓았다.

그 전까지 세르게이는 날카로운 면도날 같았다.

“....으윽!”

그런데 철수의 핸드폰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세르게이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까 곤도와 싸울 때 왼쪽 옆구리에 충격이 좀 컸던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철수. 그가 차를 도로가에 세우고는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세르게이. 너 먼저 집으로 가.”

“뭐? 하지만....”

“병원 일은 나 혼자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넌 먼저 집에 가서 쉬어. 오늘 고생 많았잖아?”

세르게이는 철수의 배려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이미 차 까지 멈춰 세운 상황.

옆구리 치료야 철수보다 이런 쪽에 경험이 많은 세르게이 자신이 더 잘 알았다. 그래서 철수가 세르게이보고 여기서 내려 집으로 가라고 한 거고.

병원에 가서 치료 받아야 할 정도면, 세르게이가 자신이 잘 가는 병원으로 갈 거고, 그렇지 않다면 따로 그만의 치료법이 있을 테니, 그 약재를 구해 집에 가서 스스로 잘 정양을 할 것이었다.

“알았어. 대신 조심하고.”

“걱정 마. 너처럼 험하게 몸 쓰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세르게이가 차에서 내리자, 철수는 바로 왼쪽 깜빡이를 켜고 다시 도로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서진병원으로 쭉 달려갔다. 그런 철수가 모는 SUV를 잠시 쳐다보던 세르게이. 그가 곧장 빈 택시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헤이. 택시!”

그 소리를 들은 듯 빈 택시가 세르게이 앞으로 왔고, 그는 그 택시를 타고 자신이 한국에 와서 쭉 치료 받아 온, 용산의 한 정형외과 의원으로 향했다.

* * *

서진병원에 도착한 철수. 그는 병원 직원처럼 꾸미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정장차림에 그의 목에 걸린 병원 직원 증은, 누가 봐도 그가 서진병원 직원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김명진 회장에 대한 정보를 캐내던 철수. 그런 그가 수술실 앞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거 봐라?”

철수는 서진그룹 민영석 실장이, 김명진 회장의 가족들을 수술실 앞에서 쫓아내고, 대신 김 회장의 첩인 이미숙과 그 이미숙이 낳은 막내아들 김학민을, 불러 온 걸 보고 그가 뭔가를 획책 중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잠시 뒤, 수술실에서 김 회 장을 집도한 의사가 나와서, 민영석 실장과 얘기를 나눴다.

철수는 두 사람이 얘기 나누던 곳 근처에 설치해 둔 도청기를 통해서, 그들 얘기를 전부 엿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안 과장을 협박해서 재재수술 시킨 김명진 회장을, 지금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시겠다? 누구 마음대로....”

그런데 민영석 실장의 음모를 막기에는, 자기 혼자 힘으로는 힘들었다. 민영석 실장 주위로 경호원들이 8명은 붙어 다녔고, 그들은 김명진 회장을 트랜스퍼 할 때, 김 회장을 지키는 방패 막 역할을 할게 자명했으니까.

그런 경호원들을 뚫기에는 철수 혼자로서는 무리였다. 해서 철수는 머리를 굴렸다.

“좋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

철수는 웃으면서 병동 쪽으로 올라갔다. 신경외과 환자들이 주로 입원한 병동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뇌압을 올려주는 주사액과 주사를 손쉽게 챙긴 철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병원장실이죠? 지금 안재규 과장이 김명진 회장을 다른 병원으로 트랜스퍼 시키는 중입니다.”

-네?

뚜뚜뚜뚜뚜뚜뚜....

철수는 병원장의 비서에게 일방적으로 김명진 회장의 트랜스퍼 사실을 알리고는 바로 통화를 끝내버렸다.

비서가 그 사실을 윤 병원장에게 알릴지 말지 모르지만, 철수는 알릴 거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 눈치도 없는 비서라면, 윤 병원장 밑에서 5년 넘게 일하고 있진 못할 테니까.

병원을 돌면서 주워 들은 애기 중에는 윤 병원장의 비서가 그의 여자라는 얘기도 있었다.

물론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윤 병원장의 비서 노릇을 5년 넘게 한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뒤 철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목에 걸고 있던 병원 직원증도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리고 말이다. 그리곤 차를 몰아서 병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병원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그렇게 5분 쯤 기다렸을까?

웨옹~ 웨옹~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서진병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119구급차가 아니라 세브란스 병원의 구급차였다. 그걸 확인한 순간 철수는 차를 몰아서, 그 구급차 앞을 가로 막았다.

끼이이익!

구급차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사이 먼저 차에서 내린 철수가, 구급차 쪽으로 다가갔고, 구급차의 운전기사가 차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서 철수에게 대고 소리쳤다.

“이봐! 당신 미쳤어? 거기서 기어들어오면 어떡해!”

그런 그에게 철수가 더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 차에 결합이 좀 생긴 모양입니다.”

철수가 자기 차에 문제가 있다고 하자, 구급차 운전기사도 살짝 화를 누그러트렸다. 그리곤 철수에게 말했다.

“빨리 차 빼요. 급한 환자 실어가려고 온 구급차니까.”

“아네. 저 그런데....”

철수는 할 말이 있는 거처럼 굴며, 구급차 운전기사와 한 걸음 거리까지 접근했고, 그런 그를 구급차 운전기사가 빤히 쳐다 볼 때였다. 철수가 밑에 숨기고 있던 스프레이를 운전기사에게 뿌렸다.

치이익!

“으윽....이게 무슨....”

한 모금이라도 흡입하면 의식을 잃는 강력한 수면 스프레이였다. 해서 철수는 뿌리는 즉시 구급차에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고 그 스프레이의 냄새를 맡은 운전기사는....바로 의식을 잃고 몸을 운전석에 축 늘어트렸다.

그걸 보고 철수는 바로 자기 차부터 한쪽에 빼놓고, 세브란스 병원 구급차로 와서, 운전석에 의식을 잃고 늘어져 있는 운전기사를 조수석으로 옮기고는, 자신이 운전석에 타서 그대로 그 구급차를 몰고, 서진병원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김명진 회장의 트랜스퍼 계획은 빠르게 이뤄졌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구급차가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좋았어. 안 과장. 어서....”

“네.”

안재규는 주치의와 간호사를 시켜서 김명진 회장을, 1층 응급실 앞에 대기 중인 세브란스 병원 구급차로 옮기게 했다.

민영석 실장과 약속한 대로 그 트랜스퍼 할, 세브란스 병원 구급차에 자신이 타기로 하고 말이다.

원래 트랜스퍼 할 때 서진병원 구급차를 이용해야 맞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자신들이 김명진 회장을 세브란스병원으로 빼돌리려 하는 걸, 이곳 윤 병원장에게 들킬 공산이 컸다.

해서 민영석 실장이 트랜스퍼 할, 세브란스 병원 측에 구급차를 보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서진그룹 2인자의 부탁을 감히 거절 할 수 없었고.

“보호자로 제가 따라 갈게요.”

그래도 자기 아버지라고 막내 김학민이 나섰고, 민 실장을 그렇게 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견한 얼굴로 김학민을 쳐다봤다.

반면 그런 자신의 아들을 불안,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던 이미숙. 그녀가 민 실장과 같이 1층으로 내려가면서 그에게 말했다.

“민 실장님. 우리 학민이 잘 좀 지켜주세요.”

“이 여사님. 걱정 마십시오. 세브란스 병원 가서 회장님 깨어나시면 모든 게 정리 될 겁니다. 그럼 학민이가 사실상 저희 서진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거고요.”

성격이 소탈한 편인 이미숙도, 막상 민영석이 자기 아들 학민을 후계자 운운하자 눈빛이 싹 변했다.

“후계자라....학민이가 정말 서진그룹을 물려받게 된다면....민 실장의 은혜는 잊지 않을 거예요.”

이미숙의 그 말에 민영석도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걸 두고 일석이조, 님도보고 뽕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라고 하는 걸 테지. 김명진 회장을 구하면서, 동시에 후계자가 될 게 유력한 김학민에게 큰 빚을 지우는 게 됐으니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영석은 모든 게, 그가 계획한 대로 다 이뤄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비켜!”

“못 비킨다.”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모르지만, 윤 병원장이 1층 응급실에 나타나서 세브란스 구급차 앞을 막아 선 것이다.

“뭐해? 빨리 저 자를 끌어 내.”

이럴 때 쓰려고 데려온 서진그룹 경호원들이었다. 하지만 서진병원에도 보안요원들은 있었고, 윤 병원장도 여기로 올 때 그들을 데리고 왔다.

서진그룹 경호원들이 나서자, 윤 병원장도 즉시 서진병원 보안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들을 막아!”

그렇게 서진그룹 경호원들과 서진병원 보안요원들이 뒤엉켜서 힘 싸움을 벌일 때였다.

“어서 옮겨.”

안재규가 김 회장 주치의인 레지던트와 같이 김명진 회장을 구급차에 옮겨 실었다.

그런 그들을 돕는 세브란스 구급차 운전기사. 그 운전기사가 구급차 안에서 김 회장의 구급 베드를 당겨주면서, 김 회장의 구급 베드가 구급차 안에 자리를 막 잡았을 때였다.

“안 과장. 너 이 자식....강정호. 너 잘리고 싶어? 빨리 김 회장 원상복귀 시키지 못해?”

“네에?”

역시 노련한 윤 병원장이었다. 윤 병원장이 안재규 말고 그를 돕고 있던 레지던트를 겁박했고, 그 겁박이 바로 먹혀든 것이다.

왜냐하면 안재규가 김 회장 주치의 레지던트 2년차 강정호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던 것. 가령 그가 이 병원에서 잘리지 않게 자신이 책임진다던지 말이다.

그러다 보니 김 회장의 주치의인 레지던트 강정호는, 안재규 과장보다 윤 병원장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정호가 좀 전에 구급차에 실은, 김 회장의 구급 베드를 다시 차 밖으로 끌 내려 하자, 그걸 안재규가 막았다.

“야! 가만 못 있어?”

“하지만 병원장님이....”

그렇게 안재규와 강정호가 서로 티격태격 거릴 때였다. 구급차 안에 있던 세브란스 병원 운전 기사가 호주머니 속에서 주사약병과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주사약병에 주사기를 꽂아서 주사액을 주사기에 담은 다음, 약병에서 빼낸 주사기를 김명진 회장이 주렁주렁 달고 있던 링거 수액 중 하나에, 그 주사기를 꽂고 약액을 주입했다.

그 뒤 세브란스 병원 운전기사는 구급차에서 내려서 싸우느라 혼란스런 틈을 타서, 유유히 그곳을 빠져 나갔다.

만약 이때 김명진 회장과 같이 그 보호자 격인 김학민이 구급차에 탔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세브란스 병원 운전기사가 김 회장의 링거 수액에 수작질을 부리는 걸 막았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김학민이 구급차에 타려 할 때, 그 어미인 이미숙이 그걸 말렸다.

“학민아. 가지마.”

“엄마. 하지만....”

“사태가 해결 되면 그때가도 가. 지금은 위험해.”

이미숙이 보기에 응급실 앞에서의 싸움이 확실하게 민영석 실장 쪽이 확실하게 유리하다 보기 어려웠다.

만약 윤 병원장이 이 싸움에서 이겨 김명진 회장을 도로 확보한다면, 이미숙은 그 즉시 아들 김학민을 데리고 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늘 자신과 아들의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이미숙이었고, 미국과 캐나다에 이미 자신과 아들의 명의로 살 집을 마련 해 두었다.

또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도 스위스 비밀 계좌에 넣어 놓았고, 미국과 캐나다 집의 금고에는 그들이 10년은 먹고 살 돈이 들어 있었다. 따라서 여차하면 아들인 학민을 데리고, 한국을 뜨면 그만인 이미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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