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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09화 (50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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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민영석 실장의 간절한 염원을 신이 듣기라도 한 것일까?

김명진 회장의 재수술을 집도한 서진병원 신경외과과장 안재규. 그는 30분 전에 수술을 끝냈지만, 아직 수술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도의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가 그런 이유는 수술실 밖에서 그가 나오기를 목 빼고 기다리고 있을, 병원장과 김 회장 가족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애를 더 태워야 그가 얻을 수 있는 걸 더 쉽사리 얻을 수 있다는 걸, 안재규 과장은 그의 경험상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이제 나가볼까?”

그래도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하면 상대를 화나게 만들 수 있었기에, 안재규는 이쯤에서 수술실 밖으로 나가서 그들과 만나, 재수술이라 어려웠고 경과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부정적인 대답을 내 놓을 예정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대답일 것이고, 또 실제로 안재규는 수술실에서 김 회장을 테이블 데스만 시키지 않으면 됐기에, 그냥 대충 수술을 했다. 그러니 오늘 중 김 회장은 뇌사 상태에 빠지거나 응급조치가 미흡할 때, 재수 없으면 병실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 가족들이 수술에 동의했고, 또 그의 죽음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터라, 김 회장이 죽어도 안재규에게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그때였다.

지이이이잉!

막 수술실 안 대기실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안재규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진동했다.

“누구지?”

확인하니 현 서진그룹 2인자라고 볼 수 있는 민영석 비서실장의 전화였다.

저번에 윤 원장 소개로 만났을 때 서로 명함을 교환했었는데, 그때 안재규가 민 실장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해 둔 것이다.

“이 사람이 왜?”

의아해 하면서 안재규는 민 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로서는 현재 민 실장의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네. 여보세요?”

-안 과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저는 지금 수술입니다만?

그래도 먼저 전화를 걸었으면 인사 정도는 해야 예의가 아닌가?

하지만 민 실장은 그 인사를 건너뛰고 바로 자기 용건부터 말했다. 그런 점이 안재규에게는 당연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수술실이란 말이군요?

“그렇죠.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기분 상한 터라 안재규의 목소리 톤이 확 올라가면서, 확연히 기분 나쁜 티가 났다.

-저희 회장님 수술 잘 됐습니까?

그러던 말든 민 실장은 계속 자기 용건만 말했다.

“그건....내가 왜 민 실장님에게 그걸 얘기해야 합니까? 보호자도 아니신데 말이죠.”

-그야 그럴 만하니까 그러지. 회장님 수술 잘 됐어? 아니야? 빨리 말해.

마치 자신을 밑에 사람 부리듯, 아니 취조하듯 그를 막 대하는 민 실장. 당연히 그런 그에게 안재규는 화가 치밀었다.

“아니. 왜 나한테 반말을 지껄이는 거지? 막말로 당신이 뭐라고? 그리고 회장님 수술이 잘 됐든 못 됐든 보호자도 아닌 당신이 왈가왈부할 일 아니니까 그만 끊자고.”

오는 말이 곱지 않은 데 가는 말이 고울 수 있나? 특히 민 실장은 김명진 회장의 오른팔. 근데 그 김 회장은 좀 전에 끝장나지 않았던가?

-지금 전화 끊으면 너 크게 후회한다?

“푸하하하하. 후회? 김 회장이 살아 있었으니 네가 서진그룹에 2인자지, 김 회장 죽고 나면 너 끈 떨어진 연 인거 내가 모를까봐?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보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가소롭다는 듯, 막 민 실장의 전화를 끊으려던 안재규.

하지만 그는 그 전화를 끊지 못했다. 그럴 것이 그의 핸드폰에 들려 온 민 실장의 말 때문에.

-네 가족들....

“뭐?”

-네 마누라랑 딸내미 말이야. 우리가 데리고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왜? 네 마누라랑 딸내미 지금 안산 처가댁에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시끄러!”

버럭 소리치고 전화를 끊은 안재규. 그는 곧장 자신의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여보세요?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진 안재규.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하, 하은지씨 핸드폰 아닙니까?”

-맞는데. 아아. 댁이 이 여자 남편인 의사 양반인 모양이네.

그때였다. 핸드폰 너머로 자신의 와이프와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이 사람들 누구야?

-아빠. 무서워. 으아아앙!

뭐 더 듣고 알아보고말고. 자실 것도 없었다. 틀림없는 그의 아내와 딸이었으니까.

안재규는 자신의 아내와 딸이 민 실장 밑에 사람들에게 납치당했음을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안재규는 수술실 밖으로 나가는 대신 집도의 대기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민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확인했나?

전화 받자마자 바로 그 말부터 하는 민영석 실장. 안재규는 열 받아 머리 뚜껑이 열리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가까스로 그 화를 참으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

-잘 알 텐데? 지금 즉시 수술실로 다시 들어가서. 제대로 회장님 수술해서 살려내라.

“하지만 이미 수술은 끝난 상태고....”

-회장님 돌아가시면....너도 네 아내와 딸내미....영영 못 보는 수밖에.

“이이....꼭 이래야 하나?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우리 회장님은 무슨 죄가 있어서 죽어야 하지? 걱정마라. 회장님께 문제가 생기면 너도 반드시 네 가족들 뒤따라 보내 줄 테니까. 그리고 지금 이럴 시간 있나? 빨리 수술실가서 회장님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하아....좋다. 대신 내가 회장님 살려내면....아니지. 지금 내 가족들 이리로 데려와라. 회장님 살려내면 그 즉시 내 가족들을 내게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당연하지. 네가 수술 잘 해서 회장님 살려내면, 네가 원하는 대로 네 가족들을, 바로 너한테 넘겨주도록 하마.

그렇게 얘기가 끝나자 안재규는 다시 수술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앞서 그와 같이 수술을 했던 스태프들을 다시 불렀다.

“안 과장. 수술 끝난 거 아니었어?”

마취과 과장이 투덜거리며 돌아오고, 그 사이 재재수술 준비를 끝내 놓고 기다리고 있던 안재규가 말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니 수술에 문제가 좀 있는 거 같아서요.”

“그, 그래?”

대개 집도의는 자신의 수술이 잘못 되어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수술 실력을 폄훼 받기 때문에. 하지만 안재규는 그런 걸 개의치 않고 다시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집도의로서 용기 있는 결정이었고, 또 환자를 살리려 최선을 다하는, 참된 의사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에게 마취과 과장이 무슨 말을 더 건네기 영 껄끄러워 진 것이다. 그래서 마취과 과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집도의 안재규가 하는 재재수술에 집중했다.

“마취는 오케이!”

“자. 그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보비....”

한 사람을 수술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수술 보다는 두 번째 수술이, 두 번째 수술보다는 세 번째 수술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안재규는 원래 처음 잘 했으면 별 탈 없이 살려 냈을 김명진 회장을, 몇 배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려내기 위해, 초집중해서 수술에 임해야만 했다.

“휴우....”

그래도 다행히 두 시간 수술로 김명진 회장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회복에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김명진 회장은 말하고 움직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제대로 뇌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안재규는 김 회장을 수술방에 한 시간 정도 그대로 내버려 두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먼저 수술방을 나와서,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민영석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나?

“살렸다. 그러니 내 가족들 내 놔.”

-지금 수술실 앞이다. 네 가족들은 지금 병원에 와 있으니까 일단 나와라.

“알았다.”

안재규는 수술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근데 거기에는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겼던 이곳 병원장과 김 회장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민영석 실장과 딱 봐도 젊은 시절 미인이었을 거 같은, 40대 중후반의 중년여성과 새파랗게 젊은 남자가, 수술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민영석은 이미숙과 김학민을 설득했다.

“안재규 과장이 회장님을 살려내면, 그때부터가 중요합니다. 어차피 그들에게 회장님이 넘어가면 회장님이 살아나셔도, 말짱 도루묵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자고요?”

“법원에 사모님과 두 아드님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내겠습니다.”

서진그룹 2인자인 민 실장에게 법원 명령서 하나 받아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저쪽에서도 그럴 힘과 인맥은 갖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쪽이 먼저 명령서를 받아내면, 그 명령을 취소시키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중에 그들이 아무리 날 뛰어도 그 명령서를 취소시키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막말로 법원이 24시간 일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즉 그 동안 민 실장과 이미숙, 김학민이 백 회장을 안전한 곳으로 빼돌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려면 백 회장의 또 다른 가족, 이미숙과 김학민이 필요했다. 특히 김학민은 김명진 회장의 호적과 가족 관게 증명서에 올라 있었다. 따라서 차미진 사모님과 김학수, 김학진 말고도, 김학민은 명백한 김명진 회장의 가족 일원이었다.

그런 김학민이 부친인 김명진 회장을 데리고 이 병원을 나가겠다는 데 누가 그걸 막는단 말인가? 물론 다른 가족들이 여기 있다면, 김학민을 막겠지만 그들을 이 병원 밖으로 내 보내는 건 민영석에게 있어 일도 아니었다.

“그래요. 갑시다.”

“아버지는 제가 지킬 겁니다.”

결국 이미숙과 김학민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한 민영석.

“제가 먼저 가서 사모님과 두 분 도련님들을 병원 밖으로 내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병원 근처에 계시다가, 제가 연락 하면 그때 두 분 바로 수술실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이미숙과 김학민과 얘기를 끝내 놓고 민영석은 서진병원으로 향했다.

그때 그가 미리 지시를 내려놓은 비서실 직원이, 벌써 서부지법에서 김명진 회장의 부인인 차미진과 두 아들들인 김학수, 김학민의 부친 김명진 회장에 대한 접근 금지 처분 명령서를 받았다는 연락을 해왔다.

“좋아. 그거 지금즉시 서진병원으로 퀵 서비스로 보네.”

민영석은 서진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퀵 서비스로 온 법원의 접근 금지 처분 명령서를 받았다. 그리고 그걸 들고 수술실로 향했고, 거기 김명진 회장의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김 회장 가족들에게, 그 접근 금지 처분 명령서를 내 보였다. 그리고 당장 병원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김 회장의 두 아들들, 김학수와 김학진과 부인인 차미진이 한소리씩 했다.

“민 실장. 당신 완전 미쳤군.”

“이렇게까지 나온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자고.”

“흥! 어디 마음대로 해 보던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나 뭐가 다르다고. 가자. 애들아.”

특히 차미진은 이미 김명진 회장을 죽은 사람 취급했다. 그렇게 수술실 앞에 있던 김명진 회장의 가족들이 떠나고 윤 병원장만 남았다. 그런 윤 병원장에게 민영석이 으르렁 거리며 으름장을 놨다.

“회장님 깨시면 제일 먼저 당신부터 파멸시켜 주지.”

“크음....”

민영석의 그 서슬 퍼런 눈길을 슬그머니 피하며, 윤 병원장도 잽싸게 수술실 앞에서 내뺐다. 그렇게 김 회장 가족들과 윤 병원장을 수술실 앞에서 내쫓는데 성공한 민영석은, 곧바로 이미숙과 김학민을 수술실 앞으로 불렀다.

* * *

민영석의 말대로 서진병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이미숙, 김학민 모자는, 민 실장의 연락을 받자마자 서진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여깁니다.”

그런 둘은 민영석이 반겼고, 잠시 후 수술실 문이 열리고 김명진 회장의 수술을 집도한 서진병원 신경외과 과장인 안재규가 나왔다. 그런 그와 먼저 얘기를 나누는 민영석.

“내 가족 어디 있어?”

자기 가족 문제라 그런지 반쯤 이성을 잃은 안재규가 살벌한 얼굴로, 먼저 민 실장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안재규가 잡은 그 멱살을 민영식이 가볍게 풀어내며 말했다.

“회장님부터 봐야겠다. 회장님 살린 거 확실하지?”

“물론이다. 그러니 내 가족을 당장....”

“세브란스 병원으로 회장님 트랜스퍼 시켜.”

“뭐?”

“빨리!”

“하, 하지만 그건 보호자의 허락이 있어야....”

“도련님?”

“네.”

그때 김학민이 나섰다. 김명진 회장의 막내아들이 말이다.

“문제 있나? 이제 좀 서두르지. 그래야 네 가족들도 그만큼 빨리 널 볼 수가 있겠지.”

“알았다.”

안재규는 서둘러 세브란스 병원으로 김명진 회장을 트랜스퍼 할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가 전원해 야 할 상황에서,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의료진이 동반해서 가야 하는데, 이를 '트랜스퍼'라고 부른다. 왜 의학 드라마에서 보면 새하얗고 빳빳한 가운을 입은 의사가 능숙하게 환자를 데리고 앰뷸런스(구급차)에 타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대부분 트랜스퍼를 가는 의사는 인턴이다. 드물게 주치의(담당전공의나 레지던트)가 따라가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안재규는 당연히 주치의로 하여금 김명진 회장을 세브란스 병원으로 트랜스퍼 시키려 했다. 하지만....

“안 과장님. 당신이 직접 가야지. 트랜스퍼 도중 회장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하아....”

하지만 민영석의 용의주도함은 안재규의 머리 위에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안재규가 직접 트랜스퍼 하는 구급차에 오르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잠깐....멈춰. 너, 너는....안 과장.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김명진 회장의 트랜스퍼 소식을 어디서 전해 들었는지, 윤 병원장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구급차 앞을 가로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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