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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동훈은 백준열의 전화를 받고 즉시 미전실의 정보부서에 연락을 넣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거 올 스톱하고....”
살롯그룹과 백준경, 그리고 백준호의 주변을 샅샅이 캐게 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살롯그룹과 백준경의 연결 고리나 마찬가지인 백준경의 처, 신미나의 주변도 같이. 그랬더니....
“이거 봐라?”
살롯그룹도 그렇고 백준경, 백준호가 깜찍한 짓을 획책하고 있었지 뭔가. 이동훈은 그 즉시 그 사실을 백승렬 회장에게 알렸다. 그랬더니 백 회장이 그랬다.
-두 녀석은 내가 알아서 하지. 그래도 내 핏줄이지 않나. 나머지는....이 실장이 알아서....해.
평소의 백 회장의 목소리에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하지만 좀 전 이동훈에게 얘기하는 백 회장의 목소리에서 그 카리스마 실종 되고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원래 알아서 하는 게 더 무서운 법. 백 회장은 두 아들을 빼고 나서 나머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나머지 것들은 이동훈에게 알아서 확실히 처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 회장의 의도를 알았으니, 이제 이동훈은 이번 일에 대한 대응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됐다. 응징은 그 다음 일이었고. 먼저 그들이 획책한 일에 대해 그 피해를 최소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가급적이면 아예 피해가 없게 만드는 게 최선이겠으나, 그럴 경우 자칫 응징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피해는....감수 할 수밖에....”
이동훈은 이번 기회에 아예 삼명그룹의 후계 구도를 확실하게 매듭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백준열 위에 두 형은, 필연적으로 쳐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알아서 목을 내 미는 데, 그 목을 자르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닐 터.
“먼저 살롯그룹부터....”
이동훈은 금융감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위원장님. 저 이 실장입니다. 네. 하하하하. 제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드리는 건 또 아니잖습니까? 물론 오늘은 예외지만....”
이동훈은 금감원장과 통화 후, 국내 메이저 은행장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행장님. 삼명에 이동훈입니다. 네. 잘 지내시고 계시죠? 네. 저야 뭐....”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세청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확히 한 시간 뒤였다. 국세청 조사국 조사관들이 살롯그룹 산하 살롯아트센터를 우르르 기습 방문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국세청 조사국에서 나왔습니다. 다들 하던 일 멈추시고....이거 보이시죠? 다들 사무실 밖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일로 살롯그룹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럴 것이 살롯그룹의 비자금 중 상당 부분이 살롯아트센터를 통해 세금 탈루가 이뤄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정황들은 고스란히 아트센터 직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남아 있었다.
보통 이런 조사가 이뤄지면 국세청에서 알아서 언질을 줘왔다.
그게 바로 대기업의 특권 아니겠는가? 그래서 조사관들이 조사를 나와도 그 전에 싹 정리가 되어 있었고.
근데 이런 식의 묻지마 식 기습적인 조사가 이뤄졌다는건, 이건 국세청 보다 더 큰 권력이 움직인 거라 봐야 했다. 그리고 살롯그룹 정도면 그 권력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데, 그리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 * *
와장창창!
얼마나 화가 났던지 신동우 부 회장이 아끼던 크리스탈 재떨이를, 이태리 최고의 장인이 만든 화려한 조각이 멋스런 장식장에 집어 던졌다. 그 두 개만 해도 십 수억은 하는 것들인데 말이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국세청장 바꿔.”
“그, 그게 지금 국세청장이 자리에 없습니다.”
“어딜 가도 핸드폰은 들고 다닐 거 아냐.”
“그게....아무리 전화해도 받지를 않습니다.”
“이 개새끼....내가 주는 거 넙죽넙죽 받아 처먹긴 잘하더니....그래서 누구야? 누가 국세청 움직였어?”
“알아보니....삼명 이 실장이....”
“뭐? 지금 삼명그룹에서 그랬단 거야?”
삼명그룹의 이동훈 비서실장이 칼을 휘둘렀다면, 그 뒤에는 무조건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있다고 봐야 했다.
순간 잔뜩 화나 있던 신동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왜냐하면 현 대한민국에서 살롯그룹이 건드려선 안 될 곳이 딱 두 군데 있는데, 한곳은 청와대고, 다른 한곳이 바로 삼명그룹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이!
비서가 인터폰을 요란하게 누르고 다급히 말했다.
-부 회장님. 살롯생명보험 박 대표님께서 급한 전화라고 하십니다.
“알았어. 바꿔.”
신동우는 바로 책상의 유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뭐, 뭐라고요? 금감원에서 지금 뭘 해 와요?”
생명보험 뿐 만 아니었다.
“은행들은 왜 또?”
살롯그룹의 모든 계열사들이 여태 우호적이었던, 시중 은행들이 합심해서 태클을 걸어오자, 당혹해 하며 줄줄이 살롯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신동우에게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금감원과 은행이 같이 움직이면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버티기 어렵다.
“삼명....이 C....."
바로 이런 삼명그룹이 무서워서 그 동안 살롯그룹도 숙이고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의 딸인 신미나가 그 삼명그룹을 먹어 치우려 해서, 그 애를 좀 도와주려 했는데 그걸 삼명의 이동훈이 귀신 같이 눈치 차린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살롯그룹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삼명에 숙이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무엇보다 살롯아트센터쪽의 문제가 생각보다 더 컸다. 거기 자료들만으로도 신동우는 세금 탈루로, 검찰에 수시로 불러 다녀야 할 판이었다.
“하필 이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신경호 회장은 치매 끼가 있어서, 곧 회장 자리에서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롯그룹 회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신동우가 지금 공을 들이고 있었고. 그런데 그런 그가 검찰을 상대로 시달리다가, 자칫 살롯그룹 회장 자리를, 딴 형제에게 내줘야 할지 몰랐다.
“그럴 수는 없지.”
신동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삼명 이 실장 연결 해.”
아무래도 여기서 확실히 숙이고 들어가야 할 거 같았다. 잘못 버텼다가 삼명에서 다른 형제 편을 들기라도 한다면....신동우가 회장 자리에 앉더라도 많은 피를 봐야 할지 몰랐다.
-여보세요?
“하하하하. 이 실장. 나야. 살롯에 신동우.”
-아아. 부회장님. 바쁘실 텐데 저한테 어쩐 일로....
이동훈이 바쁘다고 한 건, 신동우가 살롯그룹 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지금 전 방위적으로 바쁘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삼명 쪽에서 이미 살롯그룹 현 상태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
‘C발....’
신동우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이동훈에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거 같아서.”
-오해라....뭐가 오해인지 들어 볼까요?
역시 칼자루는 삼명이 쥐고 있었다. 신동우는 속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그걸 티내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딸 미나가 하도 도와 달라고 하기에....사위도 그렇고....”
신동우는 자신의 딸 신미나와 사위인 삼명그룹 장남이자 삼명물산 대표 백준경을 걸고 넘어졌다. 사실 이 두 패 말고 신동우가 삼명 측에 내 세울 수 있는 명분은 지금 당장 없었다. 그리고 그건 삼명의 아킬레스건이었기에, 이동훈도 함부로 예단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장님과 막내 도련님을 해치려 하다니....살롯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 아니면 거기 선장이 미쳤거나.
“....”
한마디로 신동우가 미쳤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신동우는 이동훈의 말에 끽 소리도 못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살롯그룹은 정말 끝장날 테니까. 물론 삼명그룹도 타격은 받을 거다.
하지만 자신을 해치려 한 살롯을 상대로 백승렬 회장은 그 정도 피해쯤은 감수하고 남을 사람이었다.
-선장이 미쳤으면....바꿔야겠죠.
결정타였다. 그러니까 삼명에서 신동우 말고, 그의 다른 형제를 차기 살롯그룹 후계자로 밀겠다는 소리.
“원, 원하는 게 뭔가?”
-뭘 거 같습니까?
신동우도 각오는 했다. 그랬기에 신미나를 도우려 했고.
반역이 실패하면 역도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마련. 그리고 그 역도들을 도운 부역자들은 감당하기 힘든 업고의 시간을 겪어야 했고.
“미나는....알아서 하게. 살롯유통 지분 5%와 백화점 지분 5%, 그리고 경기도 이천의 유통 단지 부지를 그쪽에 넘기지.”
신미나를 어떡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의 피와 살 같은 유통, 백화점 지분을 내 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삼명 측이 물류 센터 부지로 점찍고 있었던 이천의 땅까지 더 해서. 하지만 삼명그룹은 신동우 자신 만큼이나 괴물이었다.
-받고. 거기에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더 얹어 주시죠?
“그, 그건....하아....알겠네.”
신동우는 어차피 저쪽이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감히 아니라든지, 안 된다는 말을 쓸 수 없었다.
지금이야 말로 그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비참하면서, 비굴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 *
“허허허허....”
삼명그룹 이동훈 비서실장과 통화 후, 신동우는 자포자기한 듯 허탈하게 웃었다.
이거야 말로 혹 떼려다가 혹을 붙인 격이 아닌가?
다행이라면 신동우가 통화 후, 살롯그룹을 조여 오던 압박이 거짓말처럼 다 풀리고 해결이 되었단 점이었다. 근데 이런 게 더 무서웠다.
삼명그룹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오늘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달 까?
삐이이이이!
그때 마침 비서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들려왔다.
-회장님. 따님께 전화 왔습니다.
“딸 누구?”
신동우 부 회장에게는 딸이 모두 4명 있었다. 그 중 셋이 결혼 했고, 남은 막내딸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당연히 그들 중에서 신 부회장이 가장 아끼는 딸은 막내인 신세나였다.
혹시 세나인가 해서 물은 건데 비서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신미나 이사장님이십니다.
미나는 이사장소리를 듣길 좋아했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신동우의 비서도 신미나의 이름 뒤에 꼭 이사장 타이틀을 붙여서 불렀다.
“바꿔.”
어차피 그가 자기 입으로 얘기해야 했다. 자식인 너를 버렸다고 말이다.
아마 지금 듣는 신미나의 목소리가 살아생전 듣는, 그녀의 마지막 육성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신미나는 이미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핏줄이었다.
이제 좀 이용해 먹나 싶었는데, 이렇게 버려야 한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왜 지원해 주기로 하셔 놓고 사람들을 빼는 건데요?
신동우는 비서실장에게 이미 신미나와 관련 된 지원을 전부 끊고, 거기 나가 있는 살롯그룹 사람들을 다 철수 시키라고 했다. 그러니까 신미나와 완전 손절을 한 거다.
“미안하다. 한데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 삼명에서 조치를 취해 왔고 우리는....움직일 수 없게 됐다.”
-조치라뇨?
“이동훈 실장이 움직였다.”
-하아....
이동훈 실장이란 말에 대충 상황을 짐작한 듯 신미나가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여기는 듯 했다. 그러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신동우는 여기서 굳이 자기가 먼저, 신미나와 손절을 선언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꿍꿍이가 뭔지 모르지만, 만약 그게 성공해서 대반전이라도 일어난다면....
그래서 신동우는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고, 신미나와 통화를 끝냈다.
“부디....네가 하려는 게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버린 딸이었다. 하지만 그런 딸이 이 세상에서 영영 없어진다는 건, 아무리 냉철한 그라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 * *
나까무라가 이끌고 간 경호원들이 백준열를 제거하는 데 실패한 데 이어서, 부친의 살롯그룹의 지원마저 받을 수 없게 된 신미나.
이제 그녀가 믿을 사람은....곤도 뿐이었다.
곤도가 백준열만 확실하게 죽인다면....시아버지인 백승렬 회장도 자신을 해치려 한, 백준경과 그녀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백승렬 회장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신미나였다.
그런 그녀가 알기로 백승렬 회장은, 자신의 둘째 아들인 백준호를 신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백준호를 자신의 후계자로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남은 건 장남 백준경 하나뿐인데, 그런 유일한 후계자인 백준경을 자기 손으로 숙청해 버릴 백승렬 회장이 아니었다.
물론 크게 혼쭐이야 나겠지만.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일 거고.
허나 손자를 둘이나 낳아 준 그녀를, 백 회장이 어쩌지 못할 거란 걸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았다. 하지만 반대로 백준열이 오늘 살아남는다면....
“끝이지. 다 끝....”
백승렬 회장은 자신의 장남이든 며느리든, 손자든, 다 처리해 버릴 거였다.
그에게는 삼명그룹을 이끌어 나갈 후계자, 그 한 명이 필요할 뿐 나머지는 필요 없었으니까. 백 회장이 그런 냉혈한이란 걸 알기에, 신미나도 기어코 백준열을 없애기 위해서 곤도라는 카드까지 쓴 거다.
“곤도라면....”
신미나는 곤도가 백준열을 반드시 없애 줄 거라 믿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곤도만큼은 그녀와 한 약속을 꼭 지켜 주었기 때문에.
반면 그녀를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님, 그리고 사랑했던 연인, 그녀와 결혼한 남편까지도 다들, 그녀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래서 생긴 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의심 병이었고.
그런데 지금쯤이면 백준열을 죽이러 간 곤도에게서 무슨 연락이라도 왔어야 하는 데, 그러지 않고 잠잠 하자 초조해지기 시작한 신미나.
“뭐지? 왜 여태 소식이 없는 거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먼저 곤도에게 전화하려는데, 곤도 연락처를 자신의 수행 비서인 김 비서가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서 김 비서를 찾았는데, 당연히 자기 주위에 있어야 할 그녀가 안 보였다. 해서 신미나는 자신의 경호팀장 고바야시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바로 물었다.
“김 비서 어디 갔어?”
“잠깐 화장실 간다고 가서 아직....”
“뭐?”
뭔가 쎄한 느낌이 든 신미나, 그녀가 고바야시에게 소리쳤다.
“김 비서 찾아서 내 앞에 데리고 와. 빨리!”
“하이!”
고바야시가 뒤돌아 뛰어나가고 혼자 남은 신미나. 그녀가 치를 떨며 말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년. 감히 날 배신 해?”
의심 병이 극에 달한 신미나. 이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곤도란 이름은 지워지고 없었다. 대신 자신을 배신하고 달아난 김 비서만 그녀 머릿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