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04화 (5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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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원래 옆구리에 총알을 맞았을 때, 그 충격이 상당했다. 이어지는 총알 세례를 피하느라 아파도 아픈 내색을 전혀 랄 수 없어서 그렇지. 진짜 아팠다. 그래서....

‘「개 알약」아이템을 썼지.’

그랬더니 그것도 외상이라고 바로 통증이 사라지고,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김훈 대표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 해서 김훈 대표에게는 총에 맞은 옆구리가 좀 결린다고 했다.

“이따가 파스라도 하나 붙이고 병원도 다녀오십시오. 아니면 내일 결려서 못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쪽으로는 자신이 전문이라며, 자기가 시킨 대로 하라는 김훈 대표. 딴엔 나에게 신경 써 주고 있는데 싫다고 할 순 없는 노릇.

“그러죠.”

당연히 병원 갈 일은 없겠지만, 뭐 그래도 사람 성의가 있는데 간다고 해야지. 뭐 어쩌겠나.

그렇게 김훈 대표와 나는 도심의 습격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계속 남아 있었고, 신비 에이전트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금방 시간이 흘렀다.

“....라 검찰조사가 끝나는 대로 영장 치면 바로 구속 영장 나오게끔, 내가 법원 쪽에도 다 얘기 해 놨으니 걱정할 거 없어요.”

“안 그래도 중앙지검에서 3장로들에게 소환장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내일 셋 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게 될 겁니다.”

아니 검찰에서 강제로 그렇게 만들거다. 내가 다 손 써 뒀으니까. 그렇게 김훈 대표와 한창 얘기를 나눌 때였다. 무슨 냄새가 났다.

“킁킁....”

내가 얘기 도중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냄새를 맡자 김훈이 말했다.

“왜요? 무슨 냄새라도 납니까?”

그러면서 그의 시선도 왼쪽으로 돌아갔는데, 그때 나와 김훈의 눈에 교통 통제를 받으며, 교차로 주변 도로에서 움직이던 승용차 중 한 대에서 중년의 여성이 내리는 게 보였다.

딱 봐도 명품으로 도배를 한 그 중년 여성은, 우리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바로 근처 경찰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그러자 김훈의 시선이 다시 내 쪽으로 넘어왔다. 그러니까 그 중년 여성이 경찰과 얘기하는 그 순간, 김훈의 관심도 바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계속 그 중년 여성을 뚫어져라 빤히 쳐다보고 있자 김훈이 말했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누가 봐도 내가 보고 있는 저 중년 여성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잘 사는 집 사모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코에 저 중년 여성에게서 수상쩍은 냄새가 났고, 나는 이미 저 아줌마에게 「개눈깔」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아줌마 주위에 핏빛 아우라가 아주 그냥....

“저 아줌마 이상하지 않아요?”

“네?”

내 그 말에 김훈 대표가 다시금 중년 여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그 아줌마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 * *

지방대에서 일어과를 나온 정지훈. 그도 졸업과 동시에 나름 취업을 하려했는데, 100군데 넘게 원서를 넣어도 그를 부르는 회사가 없었다.

그러던 그가 희한한 얘기를 들었다. 체고, 체대를 나와서 경호회사에서 인턴 중인, 동아리방 친구 녀석이 한 말이었는데, 일본어만 좀 할 줄 알면 정규직 경호원으로 취직이 된다나?

그것도 대기업의 정규직 경호원으로 말이다.

“말도 안 돼. 경호원이 되려면 적어도 특수부대 출신은 돼야....”

그런데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면접 때 일본어 실력만 본다고 했다. 당연히 믿기지 않은 얘기지만, 속는 셈 치고 거기 면접을 보러 갔다. 어째든 정지훈은 일본어 하나는 그래도 꽤 잘했으니까.

“그러니까 군대에서 태권도 초급단증 딴 게 다란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합격!”

“네?”

정지훈은 면접 본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도, 혹시 무슨 몰래 카메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면접장 주위를 샅샅이 살피기까지 했다. 혹시 숨겨진 카메라가 있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살펴도 카메라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지훈씨. 내일 사진과 주민등록등본 가지고 살롯그룹 본사 경호팀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럼 거기서 인사처로 보내서 직원 등록 해줄 거고....출근은 모레부터 가능하죠?”

“잠, 잠깐만....진짜 제가 합격이라고요? 제가 살롯그룹 경호원이 됐다고요?”

“네. 무슨 문제라도?”

“아니. 군대에서 태권도 3장까지 배운 게 다인 제가 어떻게 경호원으로 채용이 돼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정지훈이 면접관에게 물었다. 그러자 면접관이 말하기를....

“일본어가 되시잖아요. 지금 우리가 대화 하듯이....”

그러니까 면접관과 정지훈은, 여태 일본어로 쭉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발군의 일어 실력을 가진 정지훈이었기에, 면접관은 흔쾌히 면접장에서 그에게 합격 통보를 내려 준 것이었다.

“진, 진짜였어. 일본어만 하면 경호원으로 채용 된다는 게....”

그렇게 해서 정지훈은 살롯그룹 소속 경호원으로 채용이 됐다.

중요한 건 그가 취직을 했단 거고, 그것도 대기업인 살롯그룹에 정규직원으로 말이다.

물론 하는 일은 그가 여태 배우고 익혀 온 것과는 완전 다른 경호 일이었지만, 일본인 경호 팀장이 시키는 대로 자리만 지키고 서 있기만 하면 됐기에, 다리는 좀 아파도 그것 말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일체 없고, 연봉도 빵빵해서 정지훈은 지금 직장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손 한 번 잘못 들었다가, 황당한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고바야시 팀장이 시키는 대로, 경호차량이 아닌 처음 보는 승용차를 몰고, 특정 장소로 누굴 태워다 주고 또 태워 오면 된다고 했다.

그 누구가 곤도라는 자임은 정지훈도 익히 알았다. 그래서 그가 차에 타자 정지훈은 나름 친절하게 웃으며 먼저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곤도상.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정지훈이라고 합니다.”

“....”

하지만 곤도는 그는 본 척도 하지 않고, 차에 탈 때 같이 들고 탄 가방 두 개를 열더니, 그 안에서 분장도구와 옷, 가발 등을 꺼냈다. 그리고 실제 분장을 시작했고, 정지훈이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을 때, 곤도는 원래 중년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에서, 흔해 빠진 얼굴의 중년 여성으로 변해 있었다.

“허어....”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를 통해 힐끗 거리며 곤도의 변신을 쭉 지켜 본 정지훈. 그는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 있는지, 자기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 정도로 곤도의 변장 실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저기에서 차를 대라.”

그때 정지훈이 운전하는 승용차 뒷좌석의 중년 여인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정지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하이!”

그렇게 정지훈이 갓길에 차를 대자 뒷좌석의 중년여자, 곤도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교차로 우측 첫 번째 횡단보도 갓길에 차 대고 있어.”

“....”

정지훈이 그 말을 듣고 대답을 하려 할 때, 곤도는 이미 인도 쪽에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서 그 경찰에게 말을 걸었다.

그걸 힐끗 쳐다본 정지훈은 좌측 깜빡이 켜고, 차를 다시 도로 쪽으로 몰아서 차선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교차로 신호가 바뀌면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해서 교차로를 통과했다. 그리고 100여 미터 정도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보고서, 차선을 우측 끝으로 옮기고는 그대로 직진해서 횡단보도 갓길에 차를 정차 시켰다. 그리곤 비상깜빡이를 켜고 곤도가 오기를 기다렸다.

* * *

한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부류가 바로 중년의 부잣집 사모님이다.

각종 갑질 논란의 중심에 개념을 말아먹은 그녀들이 있다 보니, 사람들은 그런 사모님만 봐도 시선을 돌리고, 피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곤도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최근 신동우 부회장의 지시를 완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곤도는 그 중년 여성으로 변신해서 타깃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도와 드릴 게 있으면 말씀 만 하십시오.”

고바야시의 말에 곤도가 바로 말했다.

“차가 필요해. 당연히 대포차여야 할 거고 가급적 중형차로 가져 와. 아아. 그리고 운전해 줄 기사도 필요해. 이왕이면 서울 지리 잘 아는 녀석으로 부탁하지.”

“그러죠. 그것 말고 다른....지원 같은 건 필요 없으십니까?”

고바야시의 지원이란 말에 곤도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여태 일 해오면서 누구 손을 빌린 적이 한 번도 없는 곤도였다. 모든 건 그가 계획하고, 그걸 직접 실행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였으니까.

“없네.”

단호하게 딱 끊어 말하는 곤도를 보고 고바야시는 알았다며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뒤, 뒤돌아서 나갔고, 10분도 안 걸려 곤도가 요구한 승용차와 한국인 운전기사를 곤도 앞에 대령했다.

곤도는 그 차에 탔고 운전석의 기사가 뭐라 떠들어도 무시하고 변장에 들어갔다.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라 갈 무렵, 곤도는 한국 중년 여성으로 변신을 했고, 차에서 내리며 운전석의 기사에게 어디서 차를 대기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을지 얘기했다.

물론 곤도가 꼭 거기로 간다는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늘상 일어나는 게 변수고, 그런 변수가 생기면 곤도가 미리 준비해 둔 퇴로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야 허다했으니까.

‘뭐지? 이 찜찜한 느낌은?’

그런데 곤도가 지금껏 일해 오면서 초장부터 이런 불쾌한 느낌이 든 건 처음이었다. 아직 타깃도 찾지 못했는데 말이다.

곤도는 주위 이목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일단 차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인도 위의 경찰에게 다가가서 얘기를 건넸다.

“수고하시네요. 혹시 여기 가까운 편의점이 어디 있을까요?”

놀랍게 곤도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국 중년 여성의 것이었다.

“편의점이요? 으음....저기 건물 보이시죠? 그 건물 돌아가시면 거기 SN편의점 있어요.”

“젊은 경찰분이 참 친절하시네. 고마워요.”

이곳은 불과 한 시간 전에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그 여파로 여기는 지금도 교통이 통제 된 채 경찰들이 교차로 주위로 꽉 차 있었다. 이런 곳에서 타깃을 찾아 제거하는 건 히트맨인 곤도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달랑 타깃 하나 없애고 내 빼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경찰과 얘기 후 편의점으로 가는 척하며 주위를 살피던 곤도. 그의 눈에 타깃이 보였다.

신미나가 보여 준 그녀 핸드폰 카메라에 찍혀 있던 백준열. 그와 똑 빼닮은 남자가 경찰들에 둘러싸인 체,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필 녀석과 곤도의 눈이 마주쳤다. 근데 곤도도 아는 얼굴이 그 백준열 옆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김훈?’

김훈이 곤도를 알 듯이 곤도도 김훈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김훈과 곤도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 순간 김훈이 그를 향해 뛰어오며 자신의 뒤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김훈이 주로 사용하는 콜트 자동권총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는 걸 본 순간 곤도는 신고 있던 굽 높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냅다 인도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타깃인 백준열 옆에 김훈 혼자 있었다면, 곤도는 기꺼이 김훈과 생사 대결을 펼쳤을 거다. 하지만 여기에는 널린 게 한국 경찰들이었다. 그 혼자서 이 많은 경찰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해서 곤도는 일단 여기서 몸을 빼기로 했다. 하지만....

퍽!

갑자기 건물 한쪽에서 뛰쳐나온 자가 곤도를 들이받았다.

“크으으윽!”

체구에서 차이가 큰 탓에, 곤도는 맥없이 인도 옆으로 나동그라지며 차도까지 넘어갔다.

빠아아앙!

그쪽 차선으로 운행 중이던 차가, 갑자기 인도에서 차도로 나뒹구는 곤도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고서 시끄럽게 경적을 울렸다.

“빠가....”

곤도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시커먼 뭔가가 그를 덮쳤고, 곤도는 그걸 받아 메쳤다.

콰앙!

그러자 곤도보다는 확실히 육중한 몸의 남자가, 좀 전 곤도를 칠 뻔한 차 앞 유리에 부딪쳤다가 튕겨 났는데, 놀랍게도 그 남자가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날려 발차기로 곤도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

체구가 크다보니 그 남자의 발차기에 실린 파괴력도 상당한 듯, 얼굴을 맞은 곤도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며 두어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그 사이 곤도 앞에 우뚝 마주 선 남자. 그를 보고 곤도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며 외쳤다.

“세르게이!”

“반가워. Jap. 여기서 만나네.”

일본인을 비하하는 Jap이라는 말도 곤도를 전혀 발끈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 보다 많이 놀란 듯 두 눈이 살짝 더 커진 곤도가 세르게이를 향해 러시아어로 말했다.

“네가 왜 여기에....”

김훈을 봤을 때 보였던 냉철한 곤도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그를 보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튈 생각 말아.”

하지만 곤도의 생각은 세르게이와 달랐다. 여기서 세르게이와 육박전을 벌이면 무조건 자신이 불리했다. 싸우더라도 자신이 유리한 장소로 옮겨가야 했다. 그래서 곤도는 세르게이에게 발차기를 시도하는 척하면서, 인도로 홱 몸을 틀어서 내뺐다. 그때였다.

퍽!

뭔가 날아와서 곤도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순간 다급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한 곤도가 인도에서 다시 차도로 몸을 뺐다.

피슝!

그때 총알 하나가 곤도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조금 더 빨리 몸을 차로도 빼지 않았다면 총알은 곤도의 관자노리에 정확히 박혔을 터였다.

그 순간 천하의 곤도도 등골 사이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더불어 그의 이마 한 가운데를 가르며 주르르 땀방울이 흘렀고, 그 진땀이 그의 왼쪽 눈으로 들어갈 때였다.

파앗!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르게이가 곤도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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