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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02화 (9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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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런 그녀의 의심 병이 그 동안 많은 사용인들을 스스로 그만두게 하던지, 아니면 쫓겨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그 병을 고칠 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녀를 위해 일 해줄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오히려 그녀가 내 건 조건에 그녀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그렇게 아무리 길어도 6개월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 한데 신기하게도 김희수는 벌써 2년이나 신미나 곁에 머물고 있었지만, 아직 잘리지 않고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영리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고인 물은 언젠가 썩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신미나.

“뭔가 있어. 근데 나오는 게 없단 말이지.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평소의 그녀라면 찜찜한 걸 못 참았다. 해서 잘라도 벌써 잘랐을 김희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자르고 싶어도 자를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긴박하고 중요한 상황에 그녀 손발이나 마찬가지인 수행 비서를 자르는 건 그녀 스스로 손발을 묶는 거나 진배없었으니까.

“그래. 내일까지야.”

오늘이 지나고 백준열이 죽고 나면 모든 건, 예정된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었다. 해서 신미나는 내일 시원하게 김희수를 자를 생각이었다.

더 이상 그녀를 의심해서 괜한 자기 심력을 낭비할 필요 없이 말이다. 그냥 내 보내면 끝인걸 뭐 하러 고민 같은 걸 한단 말인가? 얼굴 주름 늘게 말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아이들이나 더 챙기지. 안 그래도 아이들이 부쩍 크면서 요구사항이 점점 늘고 다양해지고 있었다.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게 요즘 신미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인 백준경이 삼명그룹 회장이라도 된다면....그때는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

뭐 곧 그렇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신미나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어째든 형식은 중요한 법이니까. 삼명그룹 차기 회장 사모님으로서 말이다. 그때까지도 신미나는 몰랐다.

그녀의 수행비서 김수희가 백준열이 심은 첩자란 걸 말이다. 그리고 더불어서 그녀와 경호팀장이 나눈 대화가 녹음이 되고 있단 것도. 바로 김수희가 자신의 수첩 사이에 끼어 놓은 만년필. 그 만년필에 녹음 기능이 탑재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리 수행비서 뽑아나요. 내일 김 비서 그만 둘 테니까.”

“네. 사모님.”

잠시 후 신미나가 원하는 별 다방 커피를 건네고 나서 자신의 수첩을 챙긴 김수희는, 그녀가 없는 사이 신미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자신의 만년필을 통해 엿듣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C발. 드디어 잘리나 보네.”

그 동안 버텨 온 게 사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김수희는 곧 콜택시를 부른 뒤, 택시가 오자 신미나에게는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 택시를 타고 휑하니 JYB엔터 본사로 향했다.

* * *

백준호는 2시 30분부터 하던 일은 모두 멈추고, 초조하게 응접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놓아 둔, 자기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금쯤 시작했겠네. 아아! 맞다.”

그때 뭔가 생각이 난 듯 응접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백준호가, 책상의 유선 전화로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경찰에 얘기해 두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네. 종로경찰서와 성동경찰서에 얘기가 됐고, 혹시 몰라 좀 전에 동대문경찰서장에게도 슬쩍 귀띔을 해뒀습니다.

“잘했어. 역시 장실장이야. 하하하하.”

백준호는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방경찰청장 출신으로 뽑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경찰 쪽으로 꽉 잡고 있는 그의 비서실장이, 일본 경호원들이 백준열을 습격할 예정인, 서울 도심의 경찰서에 몇 곳에 전화를 넣어서, 습격 어쩌고저쩌고 하는 신고 전화가 오면 10분정도 늦장 대처를 하라는 얘기를 미리 해 놓은 것이다.

사고가 났는데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었다고, 그걸로 경찰이 늦장 대응 했네 마네 하긴 좀 애매한 노릇이었다.

그러니 그 정도 부탁은 경찰서에서도 충분히 들어 줄 수 있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흐흐흐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준열이 녀석은 아니지. 아마도 그 10분이, 녀석에게는 10년보다도 더 길게 느껴 질 거야. 잘 가렴. 내 동생. 백준열.”

백준호는 이번에 하는 대담한 습격이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 누가 벌건 대낮에 도심에서 칼부림을 벌일 거라 생각이나 하겠나? 그리고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이,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거지. 그럼 누가 백준열을 죽였는지 알 수 없을 거고. 경찰이 수사는 하겠지만 유야무야....며칠 후에 그 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 질 것이고....그가 나서서 경찰에 넌지시 얘기해서 수사 종결 시켜 버리면, 백준열만 개죽음 당한 거다.

“자아. 이제 10분이면....”

아마 지금쯤 백준열이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중일지 몰랐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전화 올 때가 됐는데?”

성공하면 부산으로 튀기 전에 자기에게 무조건 성공여부를 전화주기로 한 나까무라였다.

한데 10분이 지나고....거기에 또 10분이 지나도 나까무라에게서 걸려 와야 할 전화가 걸려오지 않고 있었다.

“C발....뭐야 이거?”

안 되겠다 싶은 백준호. 그가 다시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장실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여태 아무 소식도 없어?”

-그, 그게....안 그래도 제가 좀 전에 경찰 쪽과 통화를 해 봤는데....

“해 봤는데. 뭐?”

-경찰들이 백준열 대표가 습격 받자마자, 10분도 안 돼서 현장으로 달려 간 것으로....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이 경찰 쪽에 얘기 했다며? 다들 늦장 대응하기로....”

-네. 전화 했죠. 그런데 경찰청장이 다이렉트로 그쪽에 전화를 해온 통에, 3곳 경찰서장들이 절차 무시하고 바로 경찰들을 습격 현장으로 보내는 바람에....

“허어. 그러니까 지금 백준열이가 그 상황에서, 경찰청장을 움직였다는 거야?”

-네. 그리고....습격도 실패로 돌아갔다고....

“뭐? 습격이....아니 습격이 대체 왜 실패 해?”

백준호의 판단에 이번 습격은 실패하려해도 실패할 수 없었다.

-일본 경호원들이 백준열 대표 경호원들과 붙어서 다들 잡혔다고....

“말도 안 돼. 그 일본 경호원들, 일본 야쿠자들이야. 사람 잡는데 이골 난 놈들을, 겨우 연예기획사 대표를 지키는 경호원들이 싸워 이겨?”

-경찰 쪽 말에 따르면 중간에 싸움에 개입한 자들이 더 있다는 데, 그들이 누군지는 알 수가 없다고....

“C발....그러니까 지금 준열이 못 죽였다는 거 아냐?”

-네.

“으아아아!”

콰직!

백준호는 먼저 손에 들린 전화 수화기부터 박살을 내 버렸다. 그 다음 삼명 생명 대표실 안의 집기와 화병, 화분을 다 집어 던지며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헉헉헉....”

그래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백준호. 그는 여전히 조용한 테이블 위에 자기 핸드폰을 챙겨서 창원에 내려가 있는, 조선족 연변 흑사파 두목 양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거긴 어떻게 되어가?”

-회장님 차들이 곧 창원 터널로 들어옵니다. 그때 계획대로 시행할 예정입니다.

“좋아. 영감 확실히 보네.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제가 직접 숨통을 끊어 놓겠습니다.

“좋았어.”

비록 백준호는 실패했지만 백승렬 회장은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제야 굳었던 백준호의 얼굴이 풀렸다. 그리고....

“대체 쪽발이 새끼들 뭐가 강하단 거야? 준열이 경호원들한테도 못 이기는데....”

자기 앞에서 자신의 일본 경호원을 그렇게 침 튀겨 가며 칭찬했던 백준경. 그런 백준경에게 따지러 백준호가 전화를 걸었다.

* * *

3시가 다 되어 가는데 백준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백준경 역시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새끼. 왜 전화를 안해?”

백준경이 동생인 백준호를 욕하며 투덜거릴 때, 마침 백준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야! 너 이 새끼. 뭐하다가 이제 전화하는 거야?”

전화를 받으면서 버럭 화부터 낸 백준경. 그런 그에게 돌아온 백준호의 대답은 백준경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백준경은 당연히 늦게 전화한 백준호가 많이 굽히고 들어올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C발 좆도. 전화를 빨리하게 해줘야지 빨리 하지. 개 좆 같은 새끼들 보내 놓고 더럽게 조으네.

“뭐, 뭐라고?”

-형네 그 잘난 일본 경호원들 말이야. 그것들 진짜 강한 거 맞아? 아니 어떻게 된 게 준열이 경호원들도 제압 못하고, 도로 제압 당하냔 말이야.

“그, 그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C발.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형이 알아보면 되잖아? 경찰 쪽에 아는 인맥 쫙 깔아 놨으면서 그 인맥 좀 써 보라고. 맨날 나만 이용해 쳐 먹지 말고.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한 실패 책임은 순전히 형에게 있어. 나중에 지분 가를 때 딴 소리 하기만 해 봐.

뚜뚜뚜뚜뚜뚜뚜....

거기까지 말하고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는 백준호.

“여, 여보세요? 야! 뭔 소린지 알아들어먹게 얘기를 하고 끊어도 끊어야지.”

백준경은 분통 터져 하며 백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띠띠띠띠띠....

하지만 백준호는 어디 전화를 거는지, 아니면 어디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 건지, 통화 중이었다.

“경찰에 물어 보라고?”

답답한 백준경. 그는 백준호의 말처럼 평소 깔아 놓은 경찰 고위 간부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뭐라고요?”

그리고는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 들었다. 벌건 대낮에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벌어진 도로 위에서의 난투극. 그 싸움의 결과 습격을 가한 일본 야쿠자들이 전부, 백준열 대표의 경호팀원들과 경찰에 의해 일망타진 되었다는 것이다.

“말,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데. 사람들은 특수부대 운운하지만 그들 중 실제 사람을 죽여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백준경의 일본 경호원들은 다들 손에 피를 묻힌, 그러니까 사람을 죽여 본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무려 16명이나 나섰다. 그 중에 그들을 이끄는 나까무라 조장은 이런 습격에 이골이 난 자였다.

그런 자들이 고작 한국의 연예기획사 대표의 경호원 따위들에게 제압당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건지....

백준경은 놀라 혼자 지껄인 말을 상대가 듣고 의아해 하자 바로 핑계를 댔다.

“하하하하. 별 말 아닙니다. 백주대낮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죠. 아무튼 그들이 전부 일본인들이고, 몸에 특이한 문신으로 미뤄,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찌 구미의 한 계파 조폭들로 보고 있는데, 자세한 건 더 조사해 보면 알겠지요.

“네. 어디 놈들인지 꼭 좀 알아내주십시오. 하필 제 동생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염려 마십시오. 안 그래도 청장님이 난리도 아니십니다. 아마 오늘 중에 수사상황실 설치해서 본격적으로 배후를 파내면, 며칠 안에 이번 일을 시킨 자의 배후 윤곽이 나올 겁니다.

그 배후가 자신인데 그게 드러나서 될 일인가? 아무래도 이건 삼명그룹에서 그룹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경찰 고위 간부와 전화 직후 백준경은 본사 비서실장인 이동훈에게 전화를 걸려했다.

“아차....”

하지만 지금 거기 전화를 걸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오늘 백준호와 손잡고 제거하려한 두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삼명그룹 회장인 백승렬이었으니까. 지금쯤 백준열의 일을 전해들은 이동훈 실장이 뭔가 낌새를 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

아마 지금쯤이면 백준호가 창원에 파 놓은 함정에 백승렬 회장이 걸려들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이미 백 회장은 죽었을지 몰랐다. 아니면 지금 죽어가고 있거나, 죽기 직전에 있을 수도 있었다.

이동훈 실장에게 전화는, 백승렬 회장이 죽었다는 확실한 소식을 전해 듣고 해도 늦지 않았다.

해서 백준경은 이동훈 실장 말고, 그의 아내인 신미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신미나도 처음 백준경의 전화를 받고 그의 말이 당최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가 아는 나까무라상과 그 밑에 경호원들은 다들 한 싸움 하는 자들이었다.

돌아가신 선친도 인정한 최고의 야쿠자들인데, 그들이 백준열의 경호원들에게 전부 제압당했다니?

이게 말인지 방군지 잘 모르지경이었다. 누가 봐도 방구처럼 보이는 백준경의 말인데,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거짓말을 할리 없지 않은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쓸 거 없어요.”

-아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준호 녀석이 나를 뭐로 보겠냐고.

“달라질 건 없어요. 백준열은 명년 오늘이, 그의 제삿날이 될 테니까.”

-....

뭘 해도 똑 부러지는 신미나였다. 그런 그녀가 오늘 백준열이 죽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백준경도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신미나가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

“삼명그룹 회장 자리는 원래부터 당신 꺼 였고, 이제 그 자리에 앉는 것도 당신이어야 만 해요. 그러니 당신은 빨리 본사로 가서 아버님 빈자리부터 채우세요.”

-그, 그러지.

신미나는 백준경과 통화 직후, 곧바로 곤도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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