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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01화 (49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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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열의 품안에서 신미나의 달뜬 신음소리와 체취, 그리고 그녀가 수시로 속삭였던 그에 대한 사랑한다는 말들이, 내 기억 속 동영상에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으니 이제 그만 좀 하지?’

그게 하도 심해서 내가 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백준열의 배신감은 이해가 됐다.

신미나는 몰라도 백준열 진심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을 다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미련까지 가는 건 아니라고 봤다.

막말로 신미나와 김 비서를 비교하면, 그녀는 김 비서 발꿈치에도 못 미쳤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말이다. 물론 여자가 좋은 게 꼭 외모만이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랬고, 그 내가 지금의 백준열이지 않은가?

녀석도 주제 파악이 됐는지 더는 신미나에 대한 자기 주관적인 정보를,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진 않았다. 대신 그녀의 가문....

“살롯그룹....”

이미 김희수라는 신미나 곁에 심어 둔 첩자를 통해서, 그쪽 동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동훈 비서실장에게 경고까지 한 상황. 때문에 지금 살롯그룹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벌써 이동훈 실장이 손을 썼을 테니 말이다.

“믿었던 살롯그룹이 움직이지 않는다면....초조해지겠군. 신미나.”

백준열이 아는 신미나는 배포가 두둑하고 결단력도 있었다. 백준경처럼 망설이다가 호기를 놓칠 그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승부를 걸겠지. 더 확실한 카드로....”

여기서 더 확실한 카드라 함은, 바로 나를 확실하게 제거할 카드일 것이다.

“으음....”

내가 그 확실한 카드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대표님!”

누가 날 불러서 그쪽을 쳐다보니, 김훈 대표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당연히 나를 겹겹이 에워 싸고 경호 중이던 경찰이 그를 막아섰다.

“아는 사람입니다. 놔두세요.”

내가 괜찮다고 했지만, 경찰은 김훈 대표의 신원 확인을 하고 나서 그를 내 쪽으로 보냈다.

“괜찮아 보이시네요?”

“덕분입니다.”

“근데 근심이 있어 보이시는데, 뭔가 찜찜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역시 눈치 9단 김훈 대표였다. 나는 내 고민을 간략히 김훈 대표에게 얘기했다.

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퀴즈. 고민은 나누면 뭐가 될까? 바로 고민꺼리가 되고, 그로인해 힘든 사람이 2명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김훈 대표에게 그 고민을 떠넘겨서, 그로 하여금 기발한 해결책을 내게 만드려는 게 내 의도였다. 그리고 그 의도는 정확히 먹혀들었다.

“왜도 든 일본 야쿠자들보다 더 확실한 카드라....”

김훈 대표는 나를 노린 자들이 일본 야쿠자라 확신하고 있었다. 뭐 김훈 대표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그런 말을 한 걸 테니까. 그들은 아마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야쿠자가 맞을 거다.

“그렇다면....히트맨 밖에 없는데....일본인 히트맨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자들은, 현재 한국에 없습니다. 아아....한명 있긴 있는데 그 자는....몇 년 째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그자가 누군데요?”

김훈 대표의 입에서 히트맨이란 말이 나온 순간부터, 나는 호기심이 크게 일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인 히트맨이 버젓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더 증폭시켰다.

“곤도라는 자인데....제가 알기로 한국의 모 대기업에서 그를 커버 쳐 주고 있는 걸로....”

“그 대기업이 어딘데요?”

“저는 그곳이 살롯그룹이라 확신합니다만....”

“살롯이요?”

“네. 뭐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거기 신 회장님은 재일교포시고....소문에 그의 사돈이 일본 야쿠자 총보스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사실입니다. 킬러 곤도는 그 야쿠자 총 보스와 연관이 있는 인물로, 신 회장의 아들과 야쿠자 총 보스의 딸이 결혼할 때, 야쿠자 총 보스가 결혼 예물로 곤도를 신 회장에게 선물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신경호 회장이 곤도 같은 위험한 자를 데리고 있지는 않을 거 같고, 아마도 그 아들인 신동우가 곤도의 뒤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그 신동우 부회장이....내 큰형의 아내, 즉 내 큰 형수거든요.”

내 그 말에 김훈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백프로로 곤도가 나서겠군요.”

그때였다. 내 코에 새로운 냄새가 났다. 수산 시장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생선 비린내에 고악한 악취가 더해졌다. 그 냄새만으로 구토가 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위 보는 눈도 많은 데 여기서 토악질을 할 순 없는 노릇. 내가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가까스로 참고 있을 때였다.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왔다.

-디링! 당신은 지금 ‘죽음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는 생명이 지극히 위험한 지경에 처했음을 나타내며,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실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견신 시스템이 내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대 놓고 너 죽을지 모른다는 아주 살벌한 소리를....

‘죽음의 냄새?’

내가 궁금해 하자 견신 시스템이 음모의 냄새에 이어서, 죽음의 냄새에 대한 정보를 내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었다.

* * *

죽음의 냄새는 한마디로 한 시간 안에 내가 죽을 확률이 50%가 넘을 때 맡을 수 있는 냄새란다. 원래는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맡을 수 있는 냄새인데, 딱 한 번 「개코」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유저에 한해서 제공되는 특별 서비스라나?

아무튼 죽음의 냄새까지 맡은 나는, 내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깨달았다.

“곤도라는 자가 그렇게 대단한 킬러입니까?”

나는 곧 나를 죽이러 올 사신이나 마찬가지인, 그 히트맨에 대해 김훈 대표에게 물었다.

“대단하죠. 저와도 동유럽에서 두 번 정도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칼을 잘 쓰고 특히 위장과 변장에 능한 잡니다.”

“김 대표님과 같이 일을 했었다고요?”

김훈 대표의 말에 내가 놀라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도 알고보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대표님만 저를 막 대하시지....”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다. 내가 언제 김훈 대표를 막 대했다고....

“그럼 그 자에 대해 잘 아시겠군요?”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냥 좀 알지요. 그 놈의 타깃이 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도.”

“근데 어쩌죠? 김 대표님은 저를 무조건 살리셔야 하는데?”

내가 싱긋 웃으면서 말하자, 김훈 대표가 따라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사쿠라 킬러 곤도와, 졸지에 붙게 생겼네요.”

하지만 김훈 대표의 어디에도 긴장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걸 자신감의 발로로 봤다. 그러니까 김훈 대표가 나를 지켜 줄 자신이 있다는 거다. 그걸 눈치 챈 듯 김훈 대표가 살짝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저 혼자는 힘듭니다. 세르게이를 빨리 불러 주십시오.”

“세르게이?”

“네. 철수와 같이 있는 러시아인 말입니다.”

“아아. 맞다. 철수씨 동료 이름이 세르게이라고 했었지. 참.”

근데 나는 처리자 철수에게 딴 일을 맡겨 놨는데....하지만 지금은 그 일보다 내 목숨이 더 중요하다. 나는 곧장 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네. 마침 잘 전화하셨습니다. 여기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내게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철수의 말을 끊었다.

“그 얘기는 여기 와서 듣기로 하죠. 지금 즉시 당신의 동료 세르게이와 같이 여기로 달려와 주세요.”

-급한 일이군요?

“네. 아주 급한 일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데 거기가 어딘지?

“여기는....”

내가 현 내 위치를 얘기하자 철수가 바로 말했다.

-다행히 가깝네요. 20분 안에 갈 수 있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철수가 통화를 끝내자 김훈 대표가 또 말했다.

“대표님 경호팀원 중에 정민지 요원, 아니 경호팀원도 필요합니다.”

“정민지도요?”

“네. 가급적 빨리요.”

이제 내 여자인 정민지. 나는 당연히 그녀를 위험한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고, JYB엔터 본사에 두었다. 그런데 김훈 대표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정민지를 당장 여기로 부르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필요한지 김훈 대표에게 물었다.

“정민지는....특급 사수입니다. 저와 세르게이가 움직일 때, 그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곤도를 잡는 것도 그만큼 수월해지겠지요?”

정민지가 그렇게 총을 잘 쏘는 줄 내가 알았겠나. 나는 그저 그녀가 내 여자니 보호하려고 한 건데, 아무래도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 같았다. 괜히 나 혼자 그녀를 과잉보호해 온 거다.

그러니까 그녀는 김훈 대표처럼 내가 생각한 거 보다 훨씬 더 위험한 여자 일지도....

* * *

자신이 죽인 자의 근처에 사쿠라 꽃잎을 뿌려서 생긴 별명이 사쿠라 킬러인 곤도.

그는 김훈보다 10살이나 많은, 이제는 히트맨으로서는 황혼기에 접어 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실력까지 녹슨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곤도는 신동우 부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 동안 은밀하게 자기가 해 오던 그 일을 해왔다. 대부분 그가 맡은 일은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이었다.

그 동안 신동우 부회장의 눈밖에 난 자들 중 수십 명이 그렇게 사고로 위장해서 죽였다.

그러면서 이제 더 이상 신동우 부회장 주위에서, 그를 위협할 자들이 사라지면서 곤도도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저번에는 신동우 부회장의 허락하에 울릉도에서 일주일 동안 낚시를 즐기기도 했다.

그랬던 곤도에게 막 점심을 먹고 났을 때 쯤 신동우 부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네. 미나 아가씨께요? 네. 뭐 알겠습니다.”

어차피 자세한 건 신미나에게 물어보면 될 일. 곤도는 신동우 부회장의 지시대로 신미나가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아가씨!”

“곤도상. 어서 와요.”

신미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어째든 곤도를 반겼다. 하지만 곤도는 그녀가 지금 많이 초조해 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 챘다.

“보아하니 제가 나서야 할 일이 있나 보군요.”

“네. 보자마자 이렇게 부탁부터 드려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선친께서 제게 해 주신 게 얼만데....뭐든 시켜주십시오.”

신미나는 늘 한결 같은 모습의 이런 곤도가 좋았다. 그는 무슨 할 말이 있어도 자기 할 일을 끝내놓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한 일 치고 여태 실패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무슨 일을 맡기기에 그보다 더 확실한 사람은, 신미나 주위에 그가 유일했다.

“저의 시동생인 백준열. 그의 죽음을 원해요. 가급적 빨리요.”

“그러죠. 그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십시오.”

곤도의 말에 신미나는 현재 백준열이 있는 곳을 얘기했고, 그녀 말을 듣자마자 곤도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백준열을 죽이러 가는 걸 어디 가까운데 바람 쐬러 가는 듯, 여유 있게 뒤돌아서는 곤도를 보면서 신미나는 방긋 웃었다. 곤도의 널찍한 등짝과 뒷모습이 왜 이리 마음 든든한 건지.

신미나는 그제야 초조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짐을 느끼고는, 자신의 수행비서인 김희수를 불렀다.

“네. 사모님.”

“김 비서.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부탁해.”

그러고 보니 점심 식사 후 여태 커피 한 잔 못 마셨다. 신미나는 놀란 속도 진정 시키고, 또 그녀가 한때 몸과 마음을 다 줘, 뜨겁게 사랑했던 한 남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차원에서, 그가 특히나 좋아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 주기로 했다.

* * *

신미나는 별 다방 커피만 마셨다. 해서 그녀의 수행비서인 김희수는 신미나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나왔다. 하지만 어디서 누가 그녀를 감시하고 있을지 몰라서, 그녀는 신중하게 별 다방에 들어갈 때까지, 수상한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테이크 아웃으로.”

그리고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면서, 그녀는 지갑과 같이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백준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창가 자리에 앉아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길 5분 쯤 지나,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고 그걸 받아 챙겨 든 김희수는, 곧장 별 다방을 나와서 신미나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여기는 갈매기. 참새가 방앗간을 나왔다.”

-치익! 수상한 점은 없었고?

“네. 전혀 없었습니다.”

-치익! 알았다. 수고했어.

김희수의 생각대로였다. 제 3의 눈이 그녀가 신미나의 곁을 떠나는 순간부터 쭉 감시가 붙었던 것.

그 사실은 곧장 신미나에게도 보고가 됐다. 그녀의 경호팀장이 그녀에게 직접 가서 얘기한 것.

“김 비서에게 별 다른 수상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신미나는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못 믿었다. 의심 마귀가 제대로 씌인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처럼 중요한 상황에서, 자기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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