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492화 (4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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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신미나는 자신이 백준열에 대한 환상에 빠져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 환상을 굳이 없애려 드는 시도 따윈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녀는 그런 환상을 쫓을 자격이 충분한 여자였다. 왜 세상에 널린 게 남자 아니겠나?

그런 남자들 중에 백준열보다 더 뛰어난 남자도 있을 테고, 그런 남자를 발견하면 그녀는 언제든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막말로 자신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어디 가서 미모가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신미나는 자신을 가꾸는데 있어서 철저했다. 매일 4시간 이상을 뷰티와 몸매 가꾸는데 투자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30대 중후반의 나이임에도, 다들 그녀를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봤다.

지금 그녀와 빠구리 중인 젊은 남자도 그녀가 27살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젊은 남자와 동갑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젊은 남자가 더 자연스럽게 그녀 이름을 불러 대고 있는 거고.

한데 오늘 신미나는 백준열과 많이 닮은 젊은 남자와 최종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그는 백준열과 많은 부분 닮아 있었다. 특히 자지의 경우는 오히려 백준열보다 더 실했다. 하지만 그는 배려심과 자상함이 백준열에 비해 현격히 부족했다.

‘백준열이었다면....’

이렇게 자기 욕심만 채우고 사정하지 않았을 테니까. 오로지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끝까지 참고 참았다가 사정을 했겠지. 그리곤 쑥스러워하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수줍게 사과를 했을 거고.

한데 눈앞의 백준열을 닮은 이놈은....

“어때? 나 잘했지?”

오히려 신미나보고 자기 칭찬을 해 달란다.

‘허얼. 기가 차서....’

이런 놈에게 더 이상 자신의 아까운 시간과 몸을 내 줄 이유가 더는 그녀에게 없었다.

“민철씨. 우리 헤어져.”

“뭐?”

“전에 내가 말했지? 우리 헤어질 때 서로 구차하게 굴지 말자고.”

“그, 그랬지. 하지만 왜 헤어져야 하는지는 알아야....”

“질렸어.”

“....”

신미나는 구질구질한 변명 따윈 늘어놓지 않고 자신의 본심을 그대로 자신의 젊은 애인에게 말했다.

아니, 이제는 애인도 아니지. 이민철이라는 강남 클럽의 DJ겸 무명 가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 그러자 기분이 상한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이민철.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살짝 돌아버리는 녀석의 성격을 잘 아는 신미나는, 자신의 목걸이에 장착 되어 있는 경보 스위치를 이민철 몰래 눌렀다.

“C발 좆같네.”

그것도 모르고 이민철이 폭발했다. 사실 이민철은 여자나 때리는 아주 지질한 놈이었다.

전에 사귀었던 여자의 경우 그녀 집까지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다가, 데이트 폭력으로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었고. 법원으로부터 접근 금지 처분을 받는 건 예사였다.

그런 놈이 자기 눈앞에서 실컷 빠구리를 해 놓고, 버젓이 이별을 통보하는 신미나를 그냥 둘리 없었다.

“질려? 하아....내가 질린다고? 왜? 내 어디가 질리는데?”

이민철이 점점 더 광기에 물들어가며 신미나를 압박해 왔다. 하지만 신미나는 그런 이민철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벗어 놓은 자기 옷을 챙겨 입었다.

* * *

그런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신미나의 행태가 결국 이민철의 꼭지를 확 돌게 만들었다.

“야! 신미나. 너 내가 우스워?”

그게 자격지심에서 분노로 돌변하면서 이민철을 폭력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아니. 저년이....”

그러던 말든, 어느 새 속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침대를 빠져 나와서, 자신의 벗어 놓은 실크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던 신미나.

이대로 겉옷까지 다 챙겨 입으면, 그대로 호텔 방 밖으로 나가버릴 거 같아서일까?

이민철이 화난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키며 침대에서 뛰쳐나와서, 신미나의 팔을 막 잡아채려 했다.

휙!

하지만 신미나는 순순히 이민철에게 자신의 팔을 잡혀 주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면서, 이민철이 내 뻗은 손을 가볍게 피해 버리는 신미나.

“어?”

신미나가 여태 그가 만나 온 다른 여자와는, 완전 다른 반응을 보이자 이민철이 좀 놀라 할 때였다. 신미나가 짜증 섞인 얼굴로 이민철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멸어린 어조로 말했다.

“하여튼....못 배우고 없는 것들은 꼭 티를 내요.”

“뭐, 뭐라고?”

여태 이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신미나였다. 그러니까 신미나가 지금까지 연기를 잘해 온 거다.

이민철이 아는 신미나는 그와 동갑내기로, 모 대기업에 다니는 임원 비서였다.

능력 없고 미래가 불분명한 자신을 위해, 데이트 비용은 물론 호텔비까지 자기가 기꺼이 다 알아서 계산해 주는 착하고 순진한, 오로지 그만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자 말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앞으로 나 봐도 못 본 척 해. 이게 무슨 말인지는 곧 알게 될 거야.”

그 말 후 충격에 빠져 잠시 넋이 나간 이민철 앞에서, 자신의 핸드백과 핸드폰을 챙겨 든 신미나가 하이힐을 때깍거리며 호텔방을 나섰다. 그 모습에 진짜 꼭지가 확 돌아버린 이민철.

“야이. C발년아. 가긴 어딜 가!”

이민철이 곧장 신미나를 쫓아 뛰었고, 그녀 머리끄덩이를 막 잡아채려 할 때였다.

턱!

누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억센 손길에 이어서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파왔다.

“어어?”

그리고 그의 몸이 홱 돌아갔다. 이어서 등과 허리에 충격이 왔고, 그 억센 손길이 그녀가 아닌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때 이민철은 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호텔 방을 나가는 신미나를 말이다. 그리고....

퍽! 퍼퍽! 퍽!

언제 들어왔는지 호텔방에 난입해 들어 온 검은 정장남들. 그들의 일방적인 묻지 마 구타가 시작 됐다. 이민철은 신미나가 곧 알게 될 거라고 한 게 뭔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크으으으....제발 그만....미나....앞으로 봐도 모른 척 할 테니까....그만 때려....컥!”

하지만 구타는 계속 되었고, 이러다 처 맞아 죽는 구사 싶을 때, 그의 귀에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미나라는 이름도 머릿속에서 완전 지워. 무슨 소린지 알겠지?”

끄덕끄덕!

이민철은 살고 싶어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더는 구타가 자행되지 않았다.

“가자.”

우르르.

그리고 이민철을 구타했던 자들이 일제히 호텔 방을 빠져 나갔다.

“으으으으....”

이민철은 살기 위해서 119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그럴 힘이 그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내 의식을 잃은 이민철은 이틀 뒤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런 그에게 경찰이 찾아와서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

이민철은 그런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 * *

자신에게 있어서 중차대한 일이 일어날 때, 신미나는 이상하게 성욕이 일었다.

문제는 그 성욕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없단 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색녀가 돼야만 했다. 이 남자 저 남자 다 건드리고 다니는....

그것도 처음에나 눈치를 봤지, 주위에서 쉬쉬하다보니 이제는 남편이 아닌 남자와 그 짓을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꼭 지켜야 할 원칙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외간 남자와 빠구리는 해도 절대 같이 자지는 않았다. 하긴 결혼 후 외박이라곤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신미나였다.

바로 그 원칙이 그녀로 하여금 삼명그룹 장남의 아내 자리를, 지금까지도 굳건히 지키게 해주고 있었다.

“고바야시상. 삼명물산으로 가요.”

이민철과 한 빠구리 후, 그와의 관계까지 다 정리해 버린 신미나. 그녀가 호텔 입구에 대기 중이던 그녀 차에 탑승하면서, 그녀를 위해 차문을 열어 준 그녀의 경호팀장인 고바야시에게 말했다.

“하이.”

깍듯이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을 한 고바야시는, 신미나가 차량 뒷좌석에 탑승하자 조심스럽게 차문을 닫고는, 바로 앞쪽 조수석에 타면서 운전석의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삼명물산으로 가자.”

그런데 신미나도 그렇고 고바야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사용했다. 마치 여기가 일본인 거처럼 말이다.

신미나는 삼명물산으로 가는 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를 힐끗 백미러를 통해 확인한 고바야시. 그는 최대한 조용히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핸드폰까지 꺼버리면서 말이다.

그가 그렇게 한 건 신미나가 저렇게 눈을 감고 있을 때는,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거란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미나는 차가 목적지인 삼명물산 본사 건물에 다다랐을 때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앞쪽 고바야시를 향해 말했다.

“차 세워.”

“네.”

대답과 함께 고바야시가 운전기사에게 지시를 해서, 그들이 탄 차를 삼명물산 본사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옆으로 빼서 정차를 시켰다. 그렇게 차가 멈춰 서자 살짝 긴장한 얼굴의 신미나가 호흡을 고르면서, 자신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딱 봐도 어딘가 전화를 하려는 거 같은데....

“....”

막상 전화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신미나. 그녀가 앞쪽을 향해 말했다.

“다들 나가.”

그러자 차 안의 고바야시와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신미나는 그 차에 혼자 남았는데도 바로 전화를 걸지 못하고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결심을 한 듯 입술을 질근 깨물면서, 결국 핸드폰에 저장 된 번호 중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 * *

신미나는 초조하게 자신이 전화를 건 상대가, 그녀의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으음....”

초조한 나머지 자기 입으로 침음 성이 흘러나왔는데 그것조차 그녀는 인지하지 못했다.

신호음이 다섯 번을 넘어가고 막 여섯 번째 울릴 때, 드디어 상대가 그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묵직하니 낮은 톤의 남자 목소리가 그녀 귀에 들리자, 안 그래도 초조해 하던 그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신미나의 입에서는 그런 얼굴과는 달리, 밝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예요. 그 동안 잘 사셨죠?”

안부 인사 치고는 마치 상대의 근황에 대해 잘 아는 듯 말하는 신미나.

-그래. 잘 살고 있다. 너는?

“저도 잘 살아요.”

-다행이구나. 잘 산다니. 그래. 10년도 넘게 연락 한 번 없던 네가 어쩐 일이냐?

“제가 왜 전화 했겠어요? 당연히 아빠 도움이 필요하니 전화 한 거죠.”

신미나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와 통화 중인 남자는....

-그 도움을 주면....우리 살롯그룹이 얻을 수 있는 게 뭐니?

“역시 아빠는 여전하시네요. 하긴 처자식보다 그룹이 우선인 분이시니....백 서방이 회장 자리에 앉으면 장인과 그 회사에 어련히 알아서 챙겨 줄까 봐요.”

-애야. 너도 알 텐데. 나는 그런 추상적인, 뜬구름 잡는 말 따윈 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뭘 줄지를 정한 다음에 다시 전화하렴.

살롯그룹 부회장인 신동우가 그 말 후 전화를 끊으려 하자, 신미나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동서양제과 주식 15%....어때요?”

-20%

“말도 안 되는....삼명에서 보유 중인 동서양제과 주식은 18%밖에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2% 더 채워서, 딱 20% 맞추면 되겠네.

“....”

늘 이런 식이었다. 협상에서 우위에 있으면 기어코 상대로 하여금, 상대가 가진 거 이상을 요구하는 버릇 말이다. 그러니까 쥐어 짜내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빚까지 내게 만드는 거다.

그 빚은 상대의 또 다른 약점이 되는 거고. 그 약점을 끝까지 후벼 파서 기어코 상대를 몰락시키는 거. 그게 살롯그룹 오너가의 진짜 경영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짚었다. 그깟 2%, 얼마든지 맞춰 줄 수 있었다.

약점? 그딴 게 삼명그룹에 있을 리 있나?

남편인 백준경이 삼명그룹 회장만 되면, 살롯그룹을 찍어 눌러 버리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그래. 맞춰 준다. 대신....’

그 이상의 대가를 살롯그룹은 치르게 될 거다. 삼명그룹 회장 부인이 된 신미나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테니까.

“좋아요. 맞춰드리죠.”

-요시. 거래가 성사 됐군. 내가 뭘 하면 되느냐?

“아빠 밑에 곤도상 그대로 있죠?”

-곤도를....원하느냐?

곤도라는 자가 대체 뭐길래, 말하는 살롯그룹 부회장 신동우의 목소리가 싹 돌변했다.

“그렇게 정색하실 거 없어요. 곤도를 달라는 건 아니니까. 곤도는 쓰고 바로 돌려 드릴게요.”

-그 말은 곤도와 그 밑에 사람들까지 다 넘기란 얘기가 아니냐?

“만약을 위해 필요한데, 혹시 문제가 생길 경우 곤도와 그 밑에 사람들....일본으로 밀입국 시켜야 할지 몰라요. 그래도 괜찮죠?”

신미나는 알고 있었다. 곤도라는 이름도 원래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란 걸.

-밀입국? 너 설마....

눈치 9단인 신동우 부회장. 그는 신미나가 곤도라는 칼을 어디에 쓸지 벌써 간파를 한 거 같았다.

“이건 삼명가의 일이에요. 아빠가 상관 할 바가 아니죠. 관여해서도 안 되고요.”

지금 신미나가 신동우에게 말하고 있는 건, 한국 재벌가의 일종의 묵계였다. 하지만 신동우도 그리 녹록한 위인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안다. 하지만 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우리 살롯그룹에 미치게 될 여파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뭐 어쩌자고요?”

-곤도를 보내마. 네 말처럼 그 자야 일본으로 밀입국시켰다가, 이름만 싹 바꾸고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면 되니까. 대신....삼명전자 주식 1%를 다오.

“뭐, 뭐라고요?”

두 부녀간의 대화는 무슨 정전 협상 테이블처럼 심각하고 치열했다. 근데 두 부녀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곤도라는 인물.

그 자에게 일을 시켰을 때 실패할 거란 생각 따윈 둘 다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곤도라는 자와 그 자 밑에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기에, 두 부녀가 이렇게 그들을 믿고 신뢰하는지, 그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미나가 곤도라는 자를 부친인 신동우에게서 넘겨받았고, 보아하니 곧 쓸 거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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