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490화 (48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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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 다 아는 바지만 한국 10대 대기업 중에선 유일하게, 일본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 바로 살롯그룹이다. 한국 살롯의 핵심 지배구조인 호텔 살롯을 지배하는 기업이 바로 일본 살롯인 살롯홀딩스이기 때문.

재일교포 출신 신경호 회장이 껌 사업을 시작으로 한국에 진출해서 꾸준히 사세를 확장, 외환위기 때에도, 위기 없이 신사업 런칭과 사세확장을 지속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신경호 회장이 무차입 원칙을 철칙으로 삼고 경영했기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차입금을 기업의 경영 상태를 악화시키는 병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당시 기업들이 사세 확장을 위한 무리한 차입금 남발이 부도의 원인이었던 걸 감안했을 때, 그야말로 현명하게 경영했던 셈이었다.

이는 IMF 이후 무너져 내린 타 재벌과 달리 살롯그룹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재계서열 50위 밖에서 일약 10위 안의 재벌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살롯그룹이 바로 올해부터 침체기에 들어가게 되는데,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유통사업이 전례 없는 불황을 겪기 때문이었다.

그 책임을 지고 신경호 회장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둘째 신동호가 회장 자리에 앉게 되는데, 아마 지금이 그 과도기 과정에서 얼추 끝자락 쯤 될 것이다. 그러니까 곧 신동호 살롯그룹 부회장이 회장 자리에 오를 거란 얘기다.

내가 왜 갑자기 살롯그룹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냐고? 그건 오전 업무 중 갑자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대표님. 저예요. 희수.

‘희수?’

웬 젊은 여자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왔고 다급하게 말했다.

-사모님이 방금 살롯그룹과 접촉 하셨어요.

뚜뚜뚜뚜뚜....

그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는, 자기 이름을 희수라고 밝힌 젊은 여자.

“뭐, 뭐야?”

나는 그 희수라는 여자가 누군지 생각을 했다. 그 말은 백준열이 감추고 있는 기억 너머로 노크를 한 거다.

혹시 희수라는 여자를 아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다행히도 기억의 장막 너머 백준열이 그 희수라는 여자에 대한, 그가 아는 정보를 내게 제공해 주었다.

“뭐? 큰형수에게 심어 놓은 첩자라고?”

그랬더니 놀랍게도 백준열이 희수라는 여자를, 자신의 큰형 백준경의 와이프 신미나의 수행비서로 심어 놓은 게 아닌가?

“우와아. 백준열이 대단한데?”

그러니까 백준열도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자신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신미나가 무슨 돌발적인 행동을 취할지 말이다.

막말로 둘 사이에 그 짓을 할 때, 신미나가 그 정황 증거를 손에 쥐고 있지 않을 거라고는 볼 수 없었다. 아마 신미나는 백퍼센트 그와의 동영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봤다.

해서 백준열은 그 증거도 찾고, 또 그녀의 동태도 감시할 겸 김희수라는 영리한 여자를 개인적으로 뽑아서, 신미나의 수행비서로 심은 것이다.

“미친 새끼. 그러기에 뭐 하러 형수를 건드려서....”

내가 녀석을 욕하자 백준열의 사념이 훅하니, 형수 신미나와 그 사이에 뜨거웠던 순간들의 기억을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오오....”

그런데 생각보다 신미나가 한 몸매 했다. 거기다 여러모로 섹스 스킬들이 대단했고.

하긴 그러니 백준열이 신미나와 그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걸 테지.

하지만 님이 남이 되고, 남이 원수가 되는 건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다. 지금 백준열과 신미나의 사이는 완전 좋지 않았다.

“성욕만큼이나 야망도 대단한 여자니까. 뭐 그 만큼 똑똑한 여자이기 하고.”

백준경의 뒤에 신미나가 있다는 걸 백준열도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백승렬 회장도 그 사실을 알게 됐을 테고. 그래서 더 실망한 나머지 백준열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기기로 결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어제 백승렬 회장이 내게 삼명전자 주식 10%를 넘긴 걸 알게 되었을 때, 형보다 형수가 더 충격을 받았겠군.”

어째든 백준열이 심은 첩자 김희수는 제 몫을 해 냈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그녀에게 그랬으니까. 신미나가 자신의 본가인 살롯가에 연락을 취하면 그 즉시 자신에게 알리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신미나는 살롯가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곳은 그녀에게 아무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부친인 신동우가 조부의 지시에, 일본에서 대학을 잘 다니고 있던 그녀를 덜컥 한국으로 데려가서, 삼명그룹 장남인 백준경과 결혼을 시켜 버렸다. 그녀의 생각이나 의사 따윈 하나도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다.

당시 일을 백준열은 신미나를 통해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녀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을 때, 둘은 한창 뜨거웠었고 신미나도 나름 백준열을 좋아했었다. 당시 백준경이 그녀를 만족시켰을 때, 그녀는 넋두리처럼 자신의 진심을 털어 놓고는 했었다. 아마 신미나는 그런 사실을 잘 기억도 못할 거다.

하지만 백준열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려고 기를 쓰고 신미나를 만족시키려 들었던 것.

그러니 백준열은 신미나가 그때 한 말을 너무도 또렷하게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들이 전부 고스란히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 * *

신미나는 단지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그렇게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다고 말하기에는 살짝 어폐가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일본 여자들이 다 헤퍼 보일 수 있는 노릇이고.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신미나는 머리가 상당히 좋았다. 특히 경영 쪽으로 바싹했다.

그건 그녀가 일본에서도 그 세다는, 와세다대의 경영학과를 중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시, 그러니까 그녀가 정략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그녀에게는 요스케라는, 그녀보다 10살 많은 애인이 있었다. 근데 그 새끼가 그렇게 변태였단다.

신미나의 말에 따르면, 그 새끼와 많이 할 때는 하루 10번도 넘게 그 짓을 했단다.

그러니까 신미나가 나뿐만 아니라, 내 바로 위에 형인 김준호까지 건드릴 정도로,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건 그녀가 태생적으로 색녀이기도 하지만, 그 새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나는 일단 궁금한 게 있어서 김희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 나면 나한테 전화 좀 해 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희수씨. 고생 많아.”

-아니에요. 근데 무슨 일로....

“전화 받기는 괜찮아?”

-네. 좀 전에 사모님 욕실에 들어가셨거든요. 지금 씻고 계세요. 그러니까 30분 정도 여유가 생긴 셈이죠.

김희수가 욕실에 있다고 하니 생각이 났다. 신미나. 그녀는 결벽증이 있었다. 그러니까 섹스 전에 반드시 몸을 씻어야만 하는....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에 그녀가 욕실에 들어가서 씻고 있다는 건, 적어도 한 시간 안에 그녀가 남자와 섹스를 할 거란 소리였다. 그녀의 성적 취향이 그 사이 동성애로 바뀌지 않았다면 말이다.

‘또 어떤 놈이랑....’

저번에 신미나와 나 사이에 섹스 스캔들은, 내 조카인 윤호의 과외 선생과 내가 많이 닮은 관계로 위기를 모면하고,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을 수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나대신 백준호와 신미나의 섹스 동영상을, 백준경에게 보내서 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기도 했었고.

뭐 근데 그게 백준경에게 그다지 강하게 먹혀 든 거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문란한 걸 모르는 백준경도 아니었고. 단지 자기와 같은 배에서 태어난 동생과 그 짓을 했다는 게 열 받긴 했을 테지만.

뭐 어차피 그 둘이야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맺어진 부부관계고, 신미나 만큼이나 백준경 역시 여자관계가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둘이 쌤쌤 친 건가?’

뭐 남녀, 특히 부부간의 속내, 혹은 속사정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나? 어째든 백준경과 신미나 부부는, 외부에서 보기에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하실 말씀이....

내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는 동안 김희수가, 내가 전화 건 용건을 독촉했다.

보아하니 신미나가 씻는 동안, 그녀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해서 나는 김희수에게 전화 달라고 한 용건을 바로 말했다.

“딴 게 아니라 형이랑 형수 사이가 요즘 어떤 가해서.”

-똑 같으세요.

“똑 같아?”

-네.

그 말은 여전히 큰형이 중요한 걸 결정할 때, 형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 사모님이 대표님과 통화 하실 때 도련님이란 말을 몇 번 하셨어요.

여기서 김희수가 말한 대표는 내가 아닌 삼명물산 대표인 백준경을 말했다. 그러니까 신미나 남편 말이다.

“도련님?”

그녀에게 도련님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두 명 뿐이다. 그 중 한 명인 나를, 완전히 남남이 된 나를 그녀가 그녀 입으로 거론할 일은 없었고. 그렇다면....

‘백준호가 백준경과 연락을 주고받은 건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 일 때문에 백준경이 백준호를 개돼지 보 듯 하고 있었지만, 백준경도 신미나와 다를 거 없는 놈이었다. 그러니까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얘기다.

오히려 신미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거라도 있지, 백준경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속이 얼마나 시커먼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백준경이라면 자기 와이프와 붙어먹은 놈과 손잡는 것도....

* * *

백준경과 백준호가 손을 잡고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근데 거기에 신미나가 개입했고, 그녀가 살롯그룹을 그 음모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신미나가 예전에 내게 그랬다. 진짜 급한 일 아니면 자신이 살롯그룹을 끌어들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 만큼 신미나와 그녀의 부친인 신동우 부회장 사이의 관계 골은 깊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결혼 할 때 그룹끼리 주고받은 거 빼고 나면, 삼명그룹이 살롯그룹에 뭔가를 더 해 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곧 살롯그룹의 회장이 될 신동우로서는, 기껏 정략결혼 시킨 딸을 통해 얻은 이익이 그의 예상을 훨씬 못 미치는, 소위 말해 손해 본 장사를 한 셈이었다.

그런데 신미나가 지금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지 않을 신동우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그도 무지 바쁠 테지. 살롯그룹의 회장 자리를 꿰차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동우는 신미나가 원하는 걸 들어 줄 공산이 컸다.

즉 내가 삼명그룹 회장이 되는 데 최대 걸림돌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남 백준경의 뒤에 살롯그룹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생긴 거다.

‘귀찮게....’

김희수와 통화를 통해 대충 사태 파악이 된 나는, 그녀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삼명그룹 이동훈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련님.

내 전화를 재깍 받는 이동훈. 그런 그에게 나는 백준경과 백준호가 접촉했고, 그로인해 백준경의 처가인 살롯그룹까지 움직이게 될 거 같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부 얘기했다.

-으음....살롯이라....거긴 지금 이쪽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텐데....뭐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신경 쓰겠습니다.

삼명그룹에서 살롯그룹을 지켜본다면, 그쪽도 감히 경거망동 못할 거다. 그래서 내가 이동훈 실장에게 이렇게 연락을 취하는 거고.

-저는 또 청와대 일로 전화 하신 줄 알았습니다.

‘아아. 맞다. 청와대....’

대통령 사위 최지훈과 나 사이의 갈등 조정을, 결국 나는 이 실장에게 부탁했었다.

나도 나름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순철을 통해, 그 문제를 잘 풀어보려 했다.

김순철로 하여금 청와대에 있는 영부인을 잘 설득해서 말이다. 하지만 김순철은 영부인 설득은커녕, 멍청하게 대통령의 말만 믿고 그 문제가 다 풀렸다고 여기고 있었다.

한 입으로 두 말, 세 말을 하는 게 현 대통령이었다. 자기 한 말을 뒤집는 게 예사였고. 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인간이 자기 사위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그 개소리를 지금 나보고 곧이곧대로 믿으라니....김 비서실장과의 관계도 서서히 정리를 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쪽은 어떻게 잘 해결이 됐습니까?”

-네. 덕분에요.

‘덕분?’

그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오늘 아침부터 때리기 시작한 문성일보와 TVM의 대통령 사위 성상납 의혹 기사 얘기였다.

내가 안 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두 언론사에서 제기한 그 의혹이, 아마 지금쯤이면 일파만파, 눈덩이처럼 부풀어져서, 한국의 모든 언론사에서 그걸 헤드 뉴스로 다루고 있을 거다.

“청와대에서는 뭐라는데요?”

-제가 알기론 아무 반응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 일로 많이 화가 많이나서 그를 진정 시키느라 제가 진땀을 좀 뺐습니다.

“그 말은....이 실장님이 오늘 대통령과 통화를 했던 거네요?”

-네. 맞습니다. 도련님 문제 때문에 먼저 그쪽에 연락을 했는데 대통령이 하도 지랄을 떨어서, 자기 주제를 알게 해 줬지요.

“네?”

-그런 게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저희 쪽에서 몰래몰래 그의 더러운 이면들을 세탁해 준 게 말입니다. 물론 세탁하기 전에 그것들을 다 정리해서 저희가 가지고 있지만요.

그러니까 현 대통령이 지금껏 저질러 온 갖종 비리들을, 증명할 증거들이 삼명그룹에서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여태 그게 있다는 걸 티 내지 않았던 잠자고 있었던 삼명그룹. 그래서 현 대통령은 멋 모르고 정권 초기 서슬 퍼런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둘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삼명그룹에서 가지고 있는 그의 비리들에 대해 이동훈 비서실장이 조목조목 얘기하자, 그가 바로 꼬리를 말더란다.

어떻게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되어 청와대에서 쫓겨나는 대통령이 될지 묻는 이 실장에게 현 대통령이 그랬단다. 앞으로 삼명그룹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허얼....’

그만큼 현재 청와대에 주인으로 있는 작자는, 잠깐 위기를 모면하려고 입 발린 소리를 언제든지 내 뱉을 수 있는 자였다.

그러다 이쪽이 약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달려들어서 물어뜯을 테고 말이다. 내가 그 점을 꼬집어 말하자, 그걸 듣고서 이 실장의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자가 그렇게 되는 건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 삼명그룹이 그런 약자가 될 일은 없습니다.

단언하듯 말하는 이동훈 실장. 그런 그에게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삼명맨의 강단과 패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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