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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487화 (48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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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강 집사와 통화 직후 민영석은 곧장 서진 병원으로 향했다. 김명진 회장의 주치의이자, 서진 병원장인 윤태섭. 한데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에 대해 여태 민영석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허어....이거 참....”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그가 위기가 찾아왔을 때보면 알 수 있다고, 김 회장의 경우 이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들 그를 배신하고 있었다.

그 만큼 김 회장이 주위에 인덕이 없었다. 서진 그룹을 위해 그 동안 물불 안 가리고 일해 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정작 가까운 그 주위 사람들이 그의 등에 칼을 꽂기 바쁘니 말이다.

서진 병원에 보낸 비서실 직원을 통해서, 김 회장의 수술이 잘 됐으며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터라, 민영석은 그리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김 회장이 깨어나고 원래 자리로 복귀하기까지만, 어차피 시간이 필요할 뿐인 상황이니까.

물론 이미 개전 된 JYB엔터 백준열과의 싸움이 당장 문제이긴 한데, 그것도 그쪽에 양해를 구하면 되지 싶었다. 김명진 회장이 이 꼴인데 백준열도 사람이라면, 이럴 때 계속 싸우겠다고 나서진 않겠지.

물론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 대비는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위험한 건 내부의 적들이었다.

특히 김 회장의 부인인 차미진과 그녀가 낳은 두 장성한 두 아들들. 그들은 호시탐탐 서진 그룹을 자기들 손에 넣기 위해서 준비 중이었고,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무슨 수작을 준비 중일지 뻔했다.

“골치 아프군.”

김 회장이 건재했을 때는 그의 눈치 보기 급급했던 인간들. 또한 외부에 적들 역시 준동할 것이 뻔하니, 여러모로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민영석이었다.

하지만 일단 김 회장이 신병부터 확실하게 확보해 놓아야 했다.

지금 그는 수술 후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누군가 그를 해치려 한다면....

그런 최악의 사태부터 막은 연후, 김 회장이 의식이 돌아오면 그때부터 골치 아픈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됐다.

“병원에 도착하면 깨워.”

“네.”

민영석은 생각할 게 끝나자 바로 잠을 청했다. 지금 그마저 쓰러지면 서진그룹은 진짜 끝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도 기계는 아닌지라, 이런 식으로 시간 날 때 재충전을 시켜줘야 했다. 비록 20-30분 쯤 자는 잠이지만 그래도 자는 것과 안 자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그 차이가 컸다. 일단 머리 돌아가는 게 달랐으니까.

지이이이잉!

하지만 그의 그 잠깐 자는 잠 역시 마음대로 잘 수 없었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살짝 눈을 떠서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민영석.

“하아....”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고, 이내 감고 있던 눈을 뜬 민영석은 그 전화를 받았다. 이건 받지 않으면 안 될 전화라서....

* * *

서진그룹 전략기획실장 유성국. 그는 현 서진그룹 체제에서 3인자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다.

서진그룹에서 전략기획실은 인체로 따진다면 뇌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서였다.

그런 곳의 수장인 만큼 유성국은 아주 유능한 인물이었다. 하긴 그러지 않았으면 애초 김명진 회장이 그를 그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유성국이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던 중에 받은 한 통의 전화.

“뭐? 회장님이 쓰러져? 확실해? 어. 알았어.”

통화를 끝낸 유성국. 그는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결정을 한 듯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저 유 실장입니다. 네. 제가 이 시간에 전화 드린 이유는....회장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네. 좀 전에 본가 강 집사로부터....네....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유성국이 전화 건 사람은 바로 김명진 회장의 장남이자, 서진그룹 본사 총괄본부장인 김학수였다. 이미 김학수와 유성국은 접촉이 있었다. 하지만 유성국이 간을 보며 김학수가 내민 손을 아직 잡고 있지 않은 상황.

한데 김명진 회장이 쓰러지자, 유성국이 전격적으로 김학수의 손을 잡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학수는 유성국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정작 쓰러진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묻지도 않고. 이제 김학수의 충견이 되어야 할 유성국 실장. 그는 김학수의 부름에 곧바로 집으로 가서, 아침도 먹지 않고 김학수의 저택이 있는 삼성동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김학수와 같이 아침 식사를 하면서, 향후 대책을 논의 한 유성국.

“민영석 비서실장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본부장님이 서진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유성국은 김학수에게 어떤 식으로 민영석을 포섭해야 할지 얘기했다.

“알았어. 민 실장은 내가 구워 삶을 테니까, 유 실장은 빨리 본사로 가서 대주주들과 임원들 동태부터 파악해.”

“네. 그럼 저는 이만....”

김학수가 하도 자신 있게 말하기에 유성국은 민 실장 포섭을 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서진그룹 본사로 바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본사 전략기획실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그가 받은 보고는....

“뭐? 이, 이게 사실이야?”

“네. 맞습니다. 삼명그룹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한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허어. 말도 안 돼. 삼명에 백 회장 노망이라도 든 건가?”

삼명그룹 후계자로 전혀 거론 되지 않았던 막내 백준열. 백승렬 회장이 글쎄 그 막내아들에게 삼명전자 주식 10%를 양도했다는 거 아닌가?

“증권거래소에 다시 확인해 봐. 이게 사실이면....”

문제가 좀 심각해졌다. 왜냐하면 오늘 새벽에 쓰러진 김명진 회장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피터지게 싸울 거라고 선언한 상대가 JYB엔터 백준열에서, 삼명그룹 후계자 백준열로 바뀌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게 맞는지 확인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성국이 정장 상의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책상에 앉자마자, 그에게 보고했던 전략기획실 김 대리가 다시 그 앞에 나타났다.

“실장님. 증권거래소에서 확실하답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서진그룹 회장 자리를 두고 내부에서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무려 삼명그룹이었다. 거기 후계자를 김명진 회장이 건드려 놓은 거고....

“민 실장에게 전화 넣어.”

지금은 내부의 적과 손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내부의 싸움을 시작해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서진그룹은....끝장이다.’

그걸 모를 민영석 실장이 아니었다. 해서 유성국은 민영석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민영석이 그 전화를 받았다.

* * *

민영석은 유성국이 왜 자신에게 전화를 했는지, 의아해 하며 일단 그와 통화를 했다.

“뭐, 뭐라고요?”

그리고 경악할 소리를 유성국을 통해서 들었다.

‘하필 이럴 때....’

백준열이, 그 개새끼 백준열이 삼명그룹 후계자라니. 이건 제대로 똥 밟은 게 아닌가? 근데 그 똥 밟은 상황이 문제였다. 하필 김 회장이 뇌출혈을 일으켰을 때, 그 똥을 밟아 놨으니....

“그러니까 그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잠깐 휴전을 하자?”

-휴전도 휴전이지만, 외부의 대적을 상대하려면 우리가 서로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하지만 모든 결정은 회장님께서 내리실 것이요.”

-그래야죠. 물론. 근데 회장님께서 언제 의식이 돌아오실 줄 알고요. 만약 그쪽에서 오늘 당장이라도 공격을 해 온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누군가 회장님을 대신해야 하는데....

“그걸 김학수 본부장이 맡아야 한다는 거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김 본부장님이야 회장님 장남이시고....

“장남이면 뭐합니까? 회장님이 평소 신임하지 않으셨는데.”

-뭐, 뭐라고요?

“됐고.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에 호들갑 떨 거 없습니다. 그쪽에서 움직이면 바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유 실장은 신경 끄셔도 좋습니다. 저는 그럼 바빠서 이만.”

민영석은 자기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대 놓고 유성국을 욕했다.

“C발 새끼.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 뻔한 수작에 내가 넘어갈 줄 알고....”

하지만 민영석의 얼굴은 유성국의 전화를 받기 전보다 더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설상가상이라는 걸까?

김명진 회장이 쓰러진 걸로도 죽겠는데, 거기에 외우내란이 더 심화되고 있었다.

“하필 이럴 때....”

백준열이 삼명그룹의 후계자란 걸 알았다면, 김명진 회장도 이 싸움은 시작도 안 했다.

어차피 싸워봐야 질게 뻔한 싸움이니까. 그런 미친 짓을 할 김 회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쏟은 물이었다. 그걸 수습해야 하는데, 그 수습을 해야 할 김 회장이 저렇게 누워 있으니....

어째야 할지 그 생각에 빠진 민영석은, 결국 이동 중 차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서진 병원에 도착했다.

“회장님은?”

“수술 끝내시고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가자.”

김명진 회장을 직접 보러 중환자실로 향한 민영석. 그런 그의 앞에 서진 병원장인 윤태섭이 나타났다. 그러자 민영석이 윤태섭에게 매섭게 말했다.

“윤 원장. 당신 그 자리에 앉힌 게 누군지 잊었소?”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나한테 여태 한마디도 안합니까?”

“그, 그건 전략기획실에 얘기하면 어련히 실장님께 연락을....”

“또....하아....됐고. 회장님 깨시면 두고 봅시다.”

민영석은 더 이상 윤태섭과 말을 섞기 싫다는 듯, 그의 옆을 스쳐 지나서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런 그를 뒤돌아보며 윤태섭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여태 살면서 두고 보자는 놈 치고 제대로 받아치는 놈 못 봤다. 김 회장? 후후후후. 깨어나도....”

윤태섭은 그 혼잣말의 끝을 두루뭉술하게 뭉갰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얼굴에 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김명진 회장을 수술한 집도의, 서진 병원 신경외과 안 과장을 만나러 말이다.

* * *

중환자실에 들어간 민영석.

“아아. 회장님....”

민영석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에게 있어서 김명진 회장은 거인이었다. 한데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는 초췌한 몰골의 늙은이에 불과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서진그룹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민영석은 아까부터 계속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건 아무래도 백준열이 삼명그룹 후계자가 됐다는 거였다.

“진즉 말렸더라면....”

민영석은 후회가 됐다. 그가 나서서 김명진 회장이 백준열과 싸우는 걸 적극 만류했더라면....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젖는 민영석. 그가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김명진 회장의 성정 상 그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김 회장은 백준열에게 어떤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 라고나 할까? 백준열의 그 천재적인 투자 능력을 김명진 회장은 너무도 부러워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아닌 그런 개새끼에게 그런 능력을 준 건지 하늘을 참 많이 원망했었다.

하지만 김명진 회장은 그런 백준열의 그 천재성을 잘 이용해서 서진그룹을 키워 나가는 데 써 먹었다.

비록 그 능력은 백준열에 못 미치지만, 합리적으로 용인술을 써서 원하던 바를 이룬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백준열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백준열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김명진 회장이 그를 이용해 먹은 걸 모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어디에도 없는 법. 둘 사이는 크게 싸웠고 그게 서로의 감정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해서 그 이후로 둘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게 됐는데, 안 그래도 나쁜 사이에 백준열이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김명진 회장이 아니었던 것.

“으으으으....”

민영석의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의식을 차리는 김명진 회장.

“회, 회장님! 여, 여기....빨리 의사 불러요.”

중환자실 당직의가 의식이 돌아 온 김명진 회장을 보고 놀랍다는 듯 말했다.

“뇌수술 끝나고 이렇게 빨리 정신이 돌아오신 분은 처음입니다.”

잠시 후 김 회장의 뇌수술을 집도한 서진 병원 신경외과 과장이 달려와서, 김 회장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수술이 잘 됐는 데다 회장님의 회복이 참으로 빠르시군요. 이만 일반 병실로 옮기셔도 될 거 같습니다.”

해서 김 회장은 곧장 서진 병원 VIP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드디어 민영석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민영석은 또 김 회장이 놀랄까 싶어, 그가 쓰러지고 나서 주위 반응과 백준열에 대해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다.

“미, 미숙이는?”

그런데 김 회장은 회사는 뒷전이고 자기 애첩부터 찾았다.

“이 여사님은 아직 찾고 있습니다.”

“빨, 빨리 찾아내.”

“네. 그러겠습니다.”

“금, 금고는 무사하지?”

“네? 아네. 무사합니다.”

“어, 어떻게 된 일인지....누구 짓인지 알아내. 그리고 내 컬렉션....으윽....”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그때였다. 바이탈이 정상수치를 훌쩍 넘어가 버리면서 페이션트 모니터(환자의 바이탈 싸인, 즉 맥박, 호흡, 체온, 혈압과 같이 생물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징후를 나타내는 모니터)에 경고등이 켜지고, 동시에 비상 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삐이이이~

그 소리에 VIP실답게 즉시 간호사가 달려왔고, 잠시 후 김명진 회장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젠장 맞을....”

김 회장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금고가 무사하다는 거짓말까지 했는데, 김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들이 불에 타 버린 거 때문에 또 다시 해까닥 정신이 나가버렸다. 그로인해 뇌수술 받은 곳에 또 문제가 생긴 거 같았다. 이렇게 되면 민영석이 여기 온 게 더 화근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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