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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 뭐라고? 하, 하지만 거긴 최첨단 시설의 방화 문이....”
-맞아. 들어가는 입구부터 시작해서 여러 개의 방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더군. 한데 그런 게 있으면 뭐하나? 문이 싹 다 열려 있었다는데. 거기다 기름까지 뿌려 놨으니, 불길에 다 타 버릴 수밖에.
“뭐? 기, 기름? 그, 그럼 거기 불난 게 방화란 말이야?”
-당연하지. 방화가 아니면 경비원들이 왜 공터 컨테이너에 갇혀 있었겠어? 이미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어. 그러니 곧 그 방화범이 누군지 알 수 있겠지.
친구의 경찰 얘기는 이미 민영석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민영석은 지하실 안에 있던 게 다 타버렸다는, 친구의 그 말을 듣자마자. 패닉 상태에 빠져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민영석에 뇌리에 퍼뜩 떠오른 것은 지하실에 컬렉션 말고, 김명진 회장의 무기명채권을 비롯한, 현금과 금괴들이 들어 있는 비밀 금고였다.
“거기 금고, 아니다. 경석아. 알아봐 줘서 고맙다.”
-뭘. 우리 사이에....
“이번 주는 좀 그렇고, 다음 주에 필드 한 번 나가자. 내가 풀코스로 쏠게.”
-좋지. 아. 저번처럼 부부 동반은 아니겠지?
“당연하지. 미녀 프로 골퍼로 섭외해 보도록 할게.”
-진짜? 이거 골프 실력 좀 키워 보겠는데?
“기대해도 좋아.”
그렇게 친구와 훈훈하게 전화 통화를 끝낸 민영석. 하지만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큰일이다. 진짜 그 안에 회장님 컬렉션들이 다 타 버렸다면....”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민영석은 차악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건 바로 지하실에 있는 비밀 금고 확보였다.
“금고 안에 있는 현물 자산이 대략 5백억은 되니까. 일단 그걸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
오늘 당장 JYB엔터의 백준열과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데, 실탄도 없이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민영석은 일단 그 돈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박경철 경호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나야. 지금 즉시 청평 별장으로 가. 가 보면 알겠지만 거기 불이 나서 다 탔다는데....확인하고 건질 거 있으면 챙기고.... 또 거기 비밀금고 어디 있는지 알지? 그래. 금고 확보해 놓고 있어. 좀 있다가 회장님 모시고 그리로 갈 테니까.”
박경철과 통화 후 민영석은 길게 한숨을 내 쉰 뒤, 김명진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김명진은 기다리던 민영석 비서실장과 드디어 통화를 했다.
“어. 그래. 어떻게 됐어? 뭐? 미숙이, 아니 학민이 엄마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니. 민 실장. 당신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뭐? 이게 중요 안 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뭐, 뭐라고? 지, 지금 어디에 불이나?”
서재 책상에 앉아 있던 김명진. 그가 너무 놀란 나머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그래서 내 컬렉션들은? 뭐, 뭐? 불, 불에 타? 하아....확실해? 빨리 확인부터 해 봐. 그리고 거기 금고 챙기는 거....그래? 잘했어. 어. 가급적 빨리 회사로 갈 테니까, 회의 미리 소집해 놓고.”
그렇게 민영석 비서실장과 잘 통화를 끝낸 뒤,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던 김명진 회장.
“....아아!”
그가 갑자기 뒷목을 잡더니 충혈 된 눈으로 픽 쓰러졌다.
“회, 회장님!”
마침 서재에 있었던 강 집사. 그가 그걸 보고서 기겁하며, 이미 책상 밑으로 쓰러진 김명진 회장에게 뛰어갔다.
“회장님. 정신 차려 보십시오. 회장님!”
강 집사가 김명진 회장을 깨우려 노력했지만, 김명진 회장은 의식 불명....강 집사가 다급히 119에 연락하고 김명진 회장의 주치의에게도 전화를 했다.
“윤 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지금 쓰러지셨습니다. 네. 빨리 오십시오.”
5분 뒤 김 회장의 주치의가 먼저 왔고, 다시 5분 뒤 119구급대가 왔다. 김 회장의 주치의이자 서진 병원장인 윤태섭은, 김 회장의 상태가 위급하다고 봤다.
“아무래도 뇌출혈 같습니다.”
“의사십니까?”
“네. 서진 병원 병원장이오. 지금 즉시 서진 병원으로 갑시다.”
윤태섭은 구급대원들과 같이 구급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김명진 회장을 서진 병원으로 후송하면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안 과장. 날세. 지금 회장님 모시고 병원 들어가는 중이야. 어. 지금 의식이 없으셔. 어. 맞아. 뇌출혈을 일으키신 거 같아. 어. 그래. 검사 준비해 놓고....수술방도 스텐바이 해 놓게. 언제든지 수술하실 수 있게. 그래. 병원에서 보자고.”
김명진 회장은 정말 운이 좋았다. 그의 주치의가 바로 근처에 살지 않았고, 그 주치의가 서진 병원장이 아니었다면, 필히 뭐가 잘못 돼도 크게 잘못 됐을 상황이었다.
“뇌출혈 맞습니다. 바로 수술실로....”
일반인이라면 응급수술이라도 조금은 시간이 걸렸겠지만, 김명진 회장은 다이렉트로 수술이 진행됐다. 무려 수술실에서 대기 중이던 신경외과 과장이 직접 그의 수술을 집도했고....
“수술이 아주 잘 됐습니다.”
수술까지 완벽하게 마쳐서 그날 바로 중환자실에서 VIP병실로 옮겨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병실에 그의 가족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인과 자식들 누구도 그가 수술 받고 입원한 병실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민영석 비서실장만 급하게 그 병실을 찾았는데, 그때 그의 표정은 영 좋지가 않았다.
* * *
민영석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고 태진 캐피탈을 나선 박경철과 경호팀원들. 그들은 곧장 청평 별장으로 향했다.
“진짜네.”
민 실장에게 듣기는 했지만 청평 별장이 시커먼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그 건물 주위로 폴리스 라인이 폭넓게 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라인을 무시하고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박경철과 경호팀원들.
“잠깐만요! 거기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아직 현장에 남아 있던 경찰의 제지가 있었다. 하지만....
“서진그룹 경호팀장 박경철입니다.”
“아네....”
박경철이 서진그룹 명함을 건네자, 경찰은 더 이상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게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 주소였다. 재벌 앞에 공무원들은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그랬다가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누가 그걸 책임지고 보상해 주나? 없다.
괜히 재벌과 엮였다가 좋은 꼴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 이제 일선 공무원들이 알아서 자기 몸은 자기가 사렸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경찰들이 박경철과 경호팀원들을 모른 척 해 주는 사이, 그들은 다 탄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지하로 내려갔다.
“맙소사....”
여기 지하실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었던 박경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 하면 지하실 안이 시커멓게 다 타 있었으니까. 벽면까지 저렇게 시커멓게 그을렸는데, 이 안에 있었던 김명진 회장의 컬렉션들이 무사할 리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박경철이 경호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샅샅이 뒤져 봐. 혹시 성한 거라도 있는지....”
물론 딱 봐도 없겠지만 그래도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박경철의 지시에 경호팀원들이 쑥대밭이 된 지하실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김명진 회장의 컬렉션들 중, 운 좋게 타지 않고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경호팀원들이 지하실 내부를 뒤지고 있을 때 박경철은 내부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실의 맨 마지막 방의 벽속에 숨겨져 있던 금고 앞에 섰다.
“허억!”
그런데 그 금고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금고 안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사이 누가 금고를 털어 간 거다.
“CCTV!”
누가 이 금고를 털어 갔는지 CCTV를 보면 알 수 있을 터였다. 해서 이곳 CCTV데이터가 저장 되어 있을 보안 통제실로 뛰어간 박경철. 하지만....
“좆도....”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던 통제실은 지하실보다 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성한 기계나 장비는 하나도 없었고 데이터? 그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잠시 넋이 나가 있었던 박경철. 그는 정신이 들자마자 바로 민영석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민영석은 박경철 경호 팀장이 걸어 온 전화를 바로 받았다.
“어떻게 됐어? 금고는 무사하지?”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거기에 대해 민영석이 워낙 잘 알았으니까.
-그, 그게....지하실에 물건들은 다 타서 건질 게 하나 없었고, 금고는....누가 벌써 털어갔습니다.
“뭐, 뭐? 누, 누가?”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CCTV가 있는데 그걸 왜 몰라?”
‘빽’소리치는 민영석.
-거기도 다 탔습니다.
“뭐?”
박경철로부터 보안 통제실의 상태를 전해들은 민영석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망했다.”
금고에 있는 현금 자산마저 없다면 백준열과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쪽은 싸우려 들거고....그렇다고 실탄도 없이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 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뭘 하면 됩니까? 보고 드린 대로 여기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철수해. 본사로.”
-네.
원래는 이미숙 여사 찾는 걸 계속하라고 지시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김 회장 첩년이나 찾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박경철과 통화 후 민영석이 막 김명진 회장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응?”
김명진 회장의 장남인 김학수 본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출근도 하지 않은 김 본부장이, 이 시간에 그에게 왜 전화를 걸어온단 말인가? 의아해 하던 민영석. 그는 일단 김학수 본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네. 본부장님.”
-얘기 들었죠?
“네?”
-뭐야? 아직 몰라? 아버지 쓰러지셨다며?
“네에?”
이게 무슨....그때 민영석은 ‘아차’ 싶었다. 자신이 너무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청평 별장이 불타고 그 안에 있던 김 회장의 컬렉션들이, 다 타버렸다는 얘기를 너무 직접적으로 김 회장에게 얘기한 거다. 안 그래도 혈압도 높고 당뇨로 고생 중인 김 회장에게 말이다.
그래도 그와 통화 할 때까지 김 회장은 괜찮았었다. 놀란 건 같았지만 의연하게 대처하는 거 같았고.
하지만 역시 그 말이 김 회장에게는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쓰러지기까지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 사실은 누구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 김 회장이 본가에서 쓰러졌다면 당연히 강 집사가 그에게 전화를 해줬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제일 먼저 간파한 전략기획실 역시 마찬가지고.
‘유성국 실장....’
전략기획실의 유성국 실장이 보아하니 김학수 편에 선거 같았다. 그러니 김학수가 이렇게 자신에게 전화를 건 걸 테고.
김명진 회장의 오른팔이자 현 서진그룹의 2인자는 누가 뭐래도 비서실장인 자신, 민영석이었으니까.
보아하니 능구렁이 유성국이가 김학수에게 시킨 모양이었다. 자신을 빨리 포섭하라고.
하지만 민영석은 김학수 밑에 개가 되긴 싫었다. 그렇다고 차남인 김학진도 별로고. 해서 막내인 김학민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김 회장이 이렇게 쓰러지고 나니, 마음이 심란했다.
* * *
김학수 본부장은 유성국 전략기획실장이 알려 준대로 떠들었다. 근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무슨 앵무새도 아니고....’
사람마다 어투라는 게 있다. 학교 학생의 경우 선생들의 어투를 따라하고, 군대에서나 직장에서도 선임이나 위 상사들의 어투를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김학수는 유성국이 이렇게 말하라고 한 걸, 유성국의 어투까지 따라 말했다. 그러니 그걸 민영석이 눈치 차리지 못 할리가 있겠나?
-....데 민 실장도 이번 기회에 실장 딱지 떼고 사장 소리 한 번 들어 봐야....
사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현재 그의 위치가 회장 다음이다. 즉 서진 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그 앞에서 설설 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자리를 두고 계열사 사장이나 하라고?
“큰 도련님. 회장님 아직 돌아가신 거 아닙니다.”
-뭐, 뭐요?
“너무 설치시진 말란 얘깁니다. 제 충고 잘 새기십시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민영석은 김학수의 전화를 끊어버리고, 곧장 서진家 본가 강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자신의 전화를 강 집사가 받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그는 민영석의 전화를 받았다.
-네.
“강 집사님. 이거 섭섭합니다.”
-....
“회장님 쓰러지신 걸 제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듣다니요. 그것도 학수 도련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눈치 빠른 강 집사였다. 그는 민영석이 뭐를 섭섭해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사과를 해 왔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전략기획실에 연락하면 실장님도 바로 아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잘못을 전략기획실로 돌린 거다. 안 그래도 이제 자신과는 영영 바이바이 인 강 집사였다. 존중 같은 건 더 이상 해 줄 필요가 없었다.
“사모님과 학수 쪽에 붙은 모양인데....회장님 아직 살아 계십니다.”
-실, 실장님....
뭐라 변명하려는 강 집사. 하지만 민영석은 그럴 기회 자체를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