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485화 (48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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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계단을 통해 10층까지 올라 온 경호팀원들도 이미숙을 보진 못했다. 그러니까 태진 캐피탈에서 이미숙을 빼돌린 정황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 즉 애초에 이미숙은 여기 없었다. 그걸 직감한 박경철은 바로 이 사실을 비서실장인 민영석에게 알렸다.

-그, 그럴 리가....

상황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가 버리자, 민영석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김명진 회장에게 이 상황을 알린 터라, 그의 입장이 더 난처해 보였다.

-혹시 이성근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닌지, 다시 확인하고 거기 있는 자들도 재차 족쳐 보시오. 혹 모를 일이니.

“알겠습니다.”

박경철은 민영석 비서실장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그가 생각해봐도 그게 최선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민영석과 통화 후 박경철은 아직 이성근이 있는 아파트에 남아 있는 경호팀원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이성근을 더 족쳐서 그가 사실을 말했는지 알아보라고 말이다.

안 그래도 박경철과 경호팀원들이 아파트를 나설 때 거의 초죽음 상태였던 이성근. 그의 수난이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이어질 모양이었다.

그 전화 후 박경철은 이곳 태진 캐피탈에서 제압한 조폭들을 심문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서 건져 낼 건 하나도 없었다.

“하아....”

놈들은 그냥 양아치 새끼들일 뿐이었다.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7명의 조폭들 중에 실제 자기 조직 보스 이름도 모르는 새끼가 5명이나 됐다.

“아니. 이성근이 누군데요?”

“아 C발....자꾸 이성근, 이성근 거리네. 난 모른다고!”

놈들은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무뇌아들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뭘 묻는 거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그걸 알면서도 박경철은 계속 해서 그 조폭들을 심문해야 했고, 아까운 시간만 그렇게 흘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서진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박경철은 당연히 그 전화를 받았다.

“....네? 허어....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청평 별장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전화 받는 박경철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야야! 여기 빨리 정리 해. 우린 지금 즉시 청평으로 간다.”

박경철의 외침에 경호팀원들은, 익숙하게 태진 캐피탈 안에 자신들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고는 곧바로 사무실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우리 얘기 입 밖에 내면....그때는 알지?”

박경철은 자신이 심문했던 조폭들에게 마지막으로 경고를 하고, 맨 마지막에 사무실을 나섰다.

나타날 때처럼 신출귀몰하게 사라지는 박경철과 경호팀원들을 청량리파 조폭들은 무릎 꿇은 채 멍하니 지켜만 봤다.

그들은 그렇게 30분 넘게 무릎을 꿇고 있다가, 침입자들이 그들이 있는 건물에서 완전히 사라진 걸 거듭 확인하고 나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들이 당한 사실을 보스인 이성근에게 알리려했지만, 그들 보스인 이성근은 그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 * *

안 그래도 잠옷이루고 있던 김명진이었다. 백준열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 아니 서진그룹에 싸움을 걸어오는지 모르지만, 그 싸움을 피할 생각은 전혀 없는 그였다.

“백준열이. 많이 컸네.”

녀석의 능력은 김명진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 능력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한국에서 재벌을 상대로 백준열의 그 능력은 먹혀들지 않는다.

“감히....”

그걸 백준열도 알 텐데 그에게 이렇게 싸움을 건 것은 명백한 도전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으면 이럴까? 물론 백준열의 뒤에는,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 중인 삼명그룹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백준열은 삼명그룹의 일원은 아니다.

후계자와도 거리가 먼 백승렬 회장의 막내아들일 뿐.

그 막내아들이 일으킨 싸움에 백승렬 회장이 개입할 여지는 단 1%도 없었다.

삼명그룹도 정계의 눈치는 봐야했다. 그런데 재벌 간의 싸움을 좋게 볼 정계가 아니었고, 또 백 회장이 삼명그룹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이 싸움에 끼어들 리 있겠나?

결국 이 싸움은 얼마간 주식 시장을 시끄럽게 만들고 나서, 정계의 개입으로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김명진은 백준열과 싸우는 시늉만하면 됐고.

여기까지가 처음 김명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백준열이 서진그룹의 주식을 몰래 사 모으고 있었단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 깨달았다.

백준열이 진심으로 그와 붙으려 한다는 걸 말이다. 주식은 곧 기업에 있어 피였다. 그 피를 백준열이 쪽쪽 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즉 생사가 걸린 싸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실탄을 준비해야겠군.”

싸움이 자칫 서진그룹의 지분 싸움으로 번진다면, 이는 내부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초반부터 저지선을 확실히 구축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김명진은 그 동안 자신이 사 모은 컬렉션 중, 몇 개를 팔아서 마련할 생각이었다.

해서 오늘 퇴근할 때 민영석 비서실장에게 살짝 얘기를 해 뒀다. 내일 오전에 청평 별장에 들를 테니 준비해 두라고 말이다.

그가 아끼는 만큼 떠나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다 팔 컬렉션을 자기 두 눈에 더 담아 두기 위해서.

“백준열....”

애초에 그 미친 개새끼가 그에게 싸움만 걸지 않았다면, 팔 이유가 없는 컬렉션들이었다.

그렇다보니 백준열에 대한 분노 때문에 더 잠 못 이루던 김명진. 그런 그도 결국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그 잠을 민영석 비서실장이 깨웠다.

“으음....민 실장이?”

뭐 그만큼 급한 일이 생긴 거겠지.

“서재로 가지.”

“네. 모시겠습니다.”

그를 깨우러 온 강 집사의 부축을 받아서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서재로 향한 김명진. 곧 민 실장과 전화 연결이 됐다. 그리고 그는 바로 잠이 확 달아날 소리를 민 실장에게 전해 들었다.

바로 자신의 미욱한 둘째 아들 녀석이 자신의 애첩인 이미숙의 납치했다는 것.

“이것들이....”

안 그래도 이혼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아직은 자신의 법적 아내 차미진 때문에 받고 있는 그의 스트레스가 상당한데, 그 여자의 자식들 중 하나인 김학진이, 넘지 말아야 할선까지 넘어 버린 것이다.

“학진이 이놈....”

아무리 이미숙이 자신의 첩이라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다. 그런 아버지의 여자를 납치하다니....이건 도가 지나쳤다.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차미진과 그 자식들의 패악이 극에 달해서, 김명진도 서서히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안 되겠어. 정리해야지.”

그래도 지금까지 회장 부인 노릇을 잘 해 온 점을 고려해서, 차미진의 일탈을 그냥 참아 넘겨왔었다. 좋게 말로 설득하려 했었고. 하지만 이번 일로 김명진의 인내심이 완전 바닥이 나버렸다.

해서 김명진은 차미진과 그 자식들에 대해 손을 써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차미진이야 갈라서면 남이라지만, 그 자식들의 몸에는 그의 피가 흘렀다. 그러니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노릇.

그러니 자기 말고 차미진의 피도 같이 흐르는 자식들에게, 그 어미인 차미진을 정신 병원에 처넣어 깨닫게 해 줄 생각이었다.

지금은 아버지 배경에 까불고 있지만, 그 배경이 사라졌을 때 너희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들인지 말이다.

“으음....”

아끼는 쿠바산 시거를 하나 더 챙겨 들던 김명진의 입에서 침음 성이 흘러나왔다.

그럴 것이 재떨이에 그가 피운 것으로 보이는 시거 흔적이 3개나 보였던 것이다.

이는 그가 얼마나 고뇌에 찬 상태로, 지금껏 깊게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그 사이 시거 3개를 피우고 또 한 대 더 피려하고 있었다니....

김명진은 들고 있던 시거를 도로 내려놓고 대신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커다란 괘종시계가 보였고 그 시계가 그에게 6시를 알려주었다.

“허어....”

그러니까 그가 깨어 여기 있은 지도 두 시간이 훌쩍 넘었던 것. 근데 민영식 비서실장에게서 여태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미숙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똑똑똑!

그때 서재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와.”

김명진은 노크 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노크 한 사람이 강 집사라는 걸 말이다.

달칵!

서재 문이 열리고 훤한 대머리의 강 집사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회장님. 30분 뒤 윤 원장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서울 서진 병원장인 윤태섭. 그는 김명진이 살고 있는 저택에서 불과 10분 거리의 저택에 살면서, 이렇게 매일 아침 김명진의 건강을 체크했다.

이런 그의 성실함에 반한 김명진이, 그를 서진의료재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진병원의 수장 자리를 맡긴 거고.

“알았어. 물 한 잔 가져 와.”

“네.”

시거만 3개를 피우고 나자, 입 안이 텁텁해진 김명진이 물을 찾을 때였다.

벨레레레레~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김명진이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 * *

서진그룹 민영석 비서실장. 새우잠을 자고 깬 그는, 서진그룹 전략기획실장의 전화를 받고 대노했다.

“아니. 그거 하나 똑바로 처리 못해요? 그래서 뭘 어쩌기로 했는데? 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결과적으로 납치당한 이미숙 여사를 구하는 건 실패로 돌아갔다. 전략기획실과 경호팀을 같이 움직이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민영석도 초조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이거 회장님 가만 안 있으실 텐데....”

보나마나 아침이 되면 서진家에 한바탕 칼바람이 불게 뻔했다.

당사자인 김학진 크리스탈 호텔 대표야 당연히 부를 테고, 그 위에 장남인 서진그룹 본사 총괄본부장인 김학수도 같이 불러서 다그칠 게 불을 보듯 자명했다.

그럼 집안이 시끄러울 테고, 그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건 전부 민영석 자신의 몫이었다.

“C발....”

그 뒤처리를 어떻게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민영석. 하지만 보고는 해야 했다.

보나마나 예민한 김 회장은 지금까지 자지 않고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터. 한데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이미숙을 구해냈다면야 부담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전화 걸 면목도 없었다. 그렇게 민영석이 김명진 회장에게 전화 걸기까지 제법 뜸을 들일 때였다. 그의 업무폰이 아닌 개인폰이 울렸다.

“어? 경석이? 이 녀석이 왜?”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이경석의 전화였다. 민영석과는 20년 지기로,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만나 골프를 치던, 술을 마시던, 커피를 한잔 같이 마시든 하는 절친이었다. 근데 그가 이 시간에 그에게 전화 할 일은 암만 생각해도 없었다.

“어. 경석아.”

그렇게 의아해하며 민영석은 일단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야. 너희 회장님 청평에 별장 있지?

“어어. 있어. 근데 그게 왜?”

-거기 불났다.

“뭐, 뭐라고!”

참고로 민영석의 친구 이경석은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이었다.

친구의 전화에 기겁한 민영석.

왜냐하면 거기 지하실에 김명진 회장의 컬렉션들이 보관 되어 있었으니까.

‘침착해! 민영석!“

그는 일단 확인을 했다. 청평에 별장이 어디 한 두 군데인가? 해서 김명진 회장 소유의 그 청평 별장의 주소를 이경석에게 불러주었다. 그랬더니....

-거기 맞아. 지금 소방차 4대가 갔는데 아직 완전히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야. 그나마 인명 피해는 없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인명 피해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기 경비원만 5명이 지키고 있는데.”

-뭐? 초기 진압대의 보고에 따르면, 그 별장에 아무도 없었다던데. 안에 사람이 있었다고? 내가 더 알아보고 연락 줄게.

“어. 그래. 아. 맞다. 그리고 거기 지하실이 있거든. 혹시 거기 어떻게 됐는지도 좀 알아봐줘.”

-지하실? 아아. 거기 뭐가 있나 보네. 알았어. 바로 알아볼게.

그렇게 친구와 통화를 끝낸 민영석은 초조함에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괜, 괜찮을 거야. 거기 문이 몇 갠데....”

청평 별장의 지하실은 내진, 내화 설계가 된 곳이었다. 특히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들은 다들 방화문이었다.

그러니 별장에 불이 나도 거기는 무사할 거란 게 민영석의 판단이었다. 아니 거긴 무조건 무사해야 했다.

“하필 이럴 때 불이....”

오늘 오전에 김명진 회장과 같이 청평 별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김 회장이 자신의 컬렉션 중 몇 개를 팔아서 현금화 할 모양인데, 하필 거기에서 새벽에 불이 났다니 민영석으로서도 불길한 느낌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영석은 친구로부터 지하실이 무사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김명진 회장에게 전화를 걸려고, 이미숙에 대한 보고를 더 늦췄다.

* * *

친구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 이경석이, 딱 10분 만에 민영석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 경석아. 어떻게 됐어?”

급한 건 민영석. 그가 전화를 받자 마자 바로 물었다.

-어. 먼저 불길은 완전 잡혔고, 네 말대로 거기 사람이 있었어. 거기 뒤편 공터 컨테이너에서 5명의 사람들을 발견했고, 그들이 불탄 별장의 경비원들임을 확인했대.

“지하실은?”

지금 민영석에게 중요한 건 경비원들 생사 따위가 아니었다. 그 별장 지하에 있는 김명진 회장의 컬렉션들. 그것들은 무조건 무사해야 했다.

-그게 확인 결과....지하실 안으로 불길이 번져서 그 안에 있던 것들, 싹 다 타버렸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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