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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렇지만 해 봐야지. 나는 후다닥 옷을 챙겨 입었다. 바지와 셔츠만 대충 입고 로얄 스위트 룸을 나선 나는, 복도를 뛰어서 계단실로 향했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를 확인했는데 다 1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올라 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시간보다, 이대로 뛰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게 훨 빨랐다.
다다다다닥!
순식간에 계단을 뛰어 내려간 나는, 24층 계단실에서 계단 문을 활짝 열고 24층으로 들어섰다.
“3호....”
그리고 복도 좌우를 살펴 2호실이 있는 좌측으로 방향을 틀고 내 달렸다. 그때였다.
철컥!
2호실 문이 열리며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밀고 밖으로 나오는 건장한 남자 두 명. 나는 한 눈에 그들이 애견 세바스찬의 주인인 이미숙을 납치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캐리어 가방에서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겼고. 그러니 이건 뭐 더 두고 보고 자실 것도 없었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갑자기 복도에 나타난 나를 보고 납치범들이 다들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며 나는 지체 없이 주먹을 날렸다.
이건 뭐 사실 상 묻지 마 폭행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그걸 당하는 자들이 납치범들이었다.
그들이야 그 동안 폭행을 했으면 했지 당한 적이 거의 없는 그들이다 보니 더 놀란 듯 보였다.
움찔하며 내가 주먹을 날린 납치범이 뒤로 물러섰다. 그때 그 납치범의 안면에 정확히 잽을 날려서 그 놈의 균형을 무너트린 나는 바로 오른쪽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쉬익!
이건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주먹이 아니었다. 빠르게 뻗어 나간 내 정권이 납치범의 코를 가격하고, 순식간에 몸을 틀어서 그 옆에 다른 납치범의 복부에 왼 주먹을 꽂았다.
“억!”
“케액!!”
가벼운 비명과 단말마가 순차적으로 두 납치범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툭!
그 사이 나는 나와 두 납치범들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그 안에 이미숙이라는 사람이 들어 있는 캐리어 가방을 옆으로 차서 치웠다. 그리고 내 주먹에 복부를 맞고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납치범 쪽으로 빠르게 사이드 스탭을 밟으며 돌아 들어갔다.
퍼퍽!
그리고 섬광 같은 내 주먹이, 좌우 스트레이트로 놈의 안면에 작렬했다. 그러자 두 눈에 흰자위를 드러낸 놈이 끽 소리도 못 내보고 맥없이 픽 쓰러졌다.
털썩!
사지를 늘어트리고 바닥에 축 늘어진 그 놈을 훌쩍 뛰어 넘은 나는, 내 주먹에 코를 맞고 쌍코피를 흘리면서, 불과 몇 초 사이에 동료가 당하고 자신도 뒷걸음질 치게 만든, 나를 빤히 쳐다보는 다른 납치범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힉!”
내가 빠르게 접근하자 기겁하며 두 눈이 동그래진 납치범. 녀석은 사람은 납치해도 싸움 실력은 형편없었다. 당장 반격을 한다든지, 아니면 몸을 빼야하는 데, 그런 것도 없이 손만 내 뻗는 게 말이다.
물론 저 손에 내가 잡혀 준다면 힘을 써서 뭐라도 해 보겠지만, 내가 순순히 녀석에게 잡혀 줄 리 없었다.
퍽! 퍼억!
이번 역시 납치범의 안면에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꽂은 다음, 녀석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다시 돌아오는 타이밍에, 정확히 오른쪽 훅이 녀석의 관자노리를 가격했다. 급소를 맞은 녀석은 썩은 고목나무 쓰러지듯 그 자리에서 맥없이 허물어졌다.
* * *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은 슬하에 2남 1녀를 둔 걸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호적에 처로 올려져 있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그렇다는 거고, 그들 외에도 김 회장에게는 1명의 아들과 3명의 딸들이 더 있었다.
자신의 핏줄을 중히 여기는 김 회장은 당연히 그들을 자기 호적에 뒀다. 그러니까 김 회장의 부인인 차미진에게는 자신의 배로 낳은 3명의 자식 말고 4명의 자식이 더 있었던 것이다.
그 혼외자식들이 차미진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탐탁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그걸 티내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김 회장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자기 자식들이 성장하고, 또 서진그룹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게 되자, 차미진의 태도도 돌변했다.
“뭐, 뭐? 이혼?”
“네. 이제 나도 내 권리를 찾아야겠어요.”
“허어. 권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네가 한 게 뭐 있다고....”
“됐고. 당신과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저 집 나갈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리고 며칠 내로 변호사가 회사로 갈 거예요.”
그렇게 김명진 회장은 올해 초에 자신의 법적 부부관계인 차미진과 별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혼소송이 진행 됐다.
물론 김 회장은 차미진이 원하는 대로 협의 이혼을 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간 당장 자신의 경영권이 위태로워질지 몰랐으니까. 해서 어떡하든 차미진을 잘 설득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려 했다.
그 과정에서 더 기고만장해진 차미진과 그녀 소생의 자식들. 그 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탈 호텔의 대표이자 김명진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학진이었다.
“학민이 그 새끼....빨리 서열 정리해야겠어.”
며칠 전 부친인 김명진 회장이 막내아들인 김학민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얘기를 제 삼자로부터 전해들은 뒤, 김학진은 아직 대학생에 불과한 김학민을 견제하게 됐다.
안 그래도 자기 위에 하나 있는 장남 김학수와 그룹 내에서 경쟁하는 것도 짜증나는 데, 거기에 첩년의 자식까지 경쟁자로 가세하자, 김학진으로서는 여간 신경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해서 미리 김학민을 자신의 경쟁자에서 털어내 버리기로 작정을 했다.
“이 사장. 나야.”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 시내 한 조폭 조직 두목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미 김학민에 대한 조사는 흥신소를 통해 끝내 놓은 상황. 한데 녀석에게 이렇다 할 약점이 없었다. 있다면 하나....
김학민의 유일한 혈육이라고도 볼 수 있는, 바로 녀석을 낳아 준 모친. 이미숙 뿐이었다.
해서 김학진은 그 약점을 잡아서 김학민으로 하여금, 서진그룹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만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여자 하나 납치 해 줘야겠어.”
-누굴 말입니까?
“내 호텔에 기생충이 한 마리 있거든. 그 기생충 좀 잡아두고 있다가, 내가 풀어주라고 하면 풀어주면 돼.”
-하하하하. 대표님 호텔이면 문 따고 들어가긴 수월하겠군요.
“내가 부르면 사람이나 보네.”
-네.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애들 보낼 테니까요.
그렇게 아는 조폭 두목과 통화를 끝낸 뒤, 김학진은 현재 자신이 대표로 있는 크리스탈 호텔 총지배인을 불렀다.
“대표님. 찾으셨습니까?”
“네. 뭐 좀 물어보려고. 혹시 24층에 기생충. 지금 뭐하고 있는지 압니까?”
여기서 김학진이 말하는 24층 기생충이, 김명진 회장의 여자인 이미숙 임을 아는 총지배인이 바로 대답했다.
“요즘 낮에 호텔에 안 계시는 걸로 압니다만.”
“그래요?”
“네. 대신 밤 10시 전에는 호텔에 오셔서 일찍 주무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총지배인의 그 말에 김학진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됐습니다. 그만 가보세요.”
“네.”
총지배인은 별거도 아닌 걸로 또 바쁜 자신을 대표실로 불러 올린 김학진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뒤돌아서 대표실을 나올 때까지, 일체 표정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그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C발 새끼. 내가 뉘 집 똥개도 아니고....진짜 더럽게 불러대네.”
자기 딴에는 자신이 아버지 여자의 뒤나 캐는, 찌질 한 녀석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이미 호텔 직원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김학진 대표가 24층에 묵고 있는 아버지 여자 이미숙에게, 되게 신경 많이 쓰고 있단 걸 말이다.
그런 일을 알아보는 건 사실 총지배인이 아니라, 대표 비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한데 김명진은 꼭 바쁜 총지배인을 불러서, 이런 식으로 그에게 직보를 받았다.
“내가 너 만한 아들이 있다. 이 새끼야.”
그런 식의 보고를 받는 김학진은 괜찮을지 몰라도 아들 뻘 녀석에게, 굽실거리며 매일 보고를 해야 하는 총지배인으로서는, 그때마다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C발. 더러워서 딴 데로 옮기던가 해야지....”
바로 지금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 * *
이미숙은 원래 김명진 회장의 비서였다. 무려 10년 넘게 김명진 회장을 모셨던 그녀가, 늦게 선을 봐서 결혼을 하려는데, 뒤늦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기라도 한 걸까?
김명진 회장이 이미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결국 그 결혼은 파토가 나고 말았다.
그리곤 김명진 회장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이미숙. 그녀는 지금까지도 김 회장의 여자로 남아 있었다. 그에게 딸과 아들을 낳아 주면서 말이다.
김 회장은 그 아이들을 바로 자신의 호적에 입적 시켰다. 그 두 아이 중 아들녀석이 바로 김명진 회장의 막내아들로 알려진 김학민이었다.
김학민은 제법 영특해서 김명진 회장의 아들들 중에 유일하게, 자기 실력으로 서울 명문대에 합격했다.
그러니 김 회장이 김학민을 예뻐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학진에게 그건 꼴불견이었고, 주제 파악을 못하는 애송이의 치기어린 도발로 비쳐졌다.
해서 김학진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녀석의 주제를 알게 해 줄 생각이었다. 제 어미가 납치 돼서 죽니 사니, 눈물콧물 쏘옥 빼고 나면 애송이 녀석도 알게 될 거였다. 자기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단 걸 말이다.
총지배인을 만나서 그로 하여금 김학민의 어미 되는 이미숙이 밤이나 돼야 호텔 방에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김학진. 그는 곧바로 앞서 통화 했던 조폭 두목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밤에, 가급적 조용히 이미숙을 납치해 가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조건, 그게 언제가 됐건 그에게 알려 달라고 했고.
그 뒤 자신은 일찌감치 퇴근해서 골프를 쳤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재벌가 사람들과 말이다.
골프에서 내기는 빠질 수 없는 법. 오늘 유독 공이 잘 맞았다. OB나 쓰리퍼팅 같은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기 골프에서 이겨 버린 김학진. 그는 곧바로 룸빵에 가서 술을 퍼마시고 즐기다가, 마음에 드는 접대부와 같이 근처 호텔로 갔다.
하지만 그의 집에서 절대 외박은 허락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접대부와 관계 후, 자정이 다 돼서 막 집으로 가려던 김학진에게 조폭 두목에게 연락이 왔다.
“어. 이 사장.”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날 밝으면 전화할까 하다가 빨리 연락 달라고 하신 거 같아서....“
“아냐. 괜찮아. 그래. 어떻게 됐어?”
-좀 전에 애들에게 전화 왔는데 납치 성공했답니다.
“좋군. 좋아....으음....일단 내일은 얌전 있어. 아니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그년 잡아두고 있으라고.”
-뭐 알겠습니다. 근데 저희도 손 빨고 있을 수는 없는 지라....
“알았어. 내일 확인 차 그쪽으로 사람 보낼 때, 수고비 좀 챙겨 보낼 테니까 그만 징징대.”
-헤헤헤헤. 고맙습니다.
“끊어.”
시킨 일은 잘하는 편이지만 한번 씩 가벼워 보이는 게, 뭐랄까? 천박해 보인 달까?
아무튼 안 그래도 조폭두목이 실실 웃는 소리를 극도로 싫어하는 김학진은, 그 조폭두목이 그와의 전화 통화 중 실실거리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새끼가 언제 철이 들려나 몰라....”
자기보다 10살이나 더 나이가 많은 조폭 두목을 한심해 하면서, 김학진은 차 안에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입 꼬리가 자꾸 실룩거리는 게 이따 날이 밝으면, 자기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안절부절 못하는, 막내 김학민의 애타는 모습이 아무래도 자꾸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꾸벅 잠이 든 김학진. 그런 그를 그의 차를 모는 기사가 얼마 뒤 깨웠다.
“대표님? 자택에 다 왔습니다.”
“아아....”
김학진은 잠에서 깨자 차창 너머를 봤고, 그의 집에 도착했음을 확인하자 바로 운전석의 기사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그만 가 봐.”
그 말 후 차에서 내린 김학진은 자기 집 초인종을 직접 눌렀다. 그러자 이때까지 그를 기다린 듯 저택 안에서 대문을 열어주었고, 그가 집안으로 들어 갈 때까지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차. 그 차 안 운전석의 기사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김학진 대표님 방금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네. 중간에 어디로 새거나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네. 전화는 하셨습니다. 이 사장이라고....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자, 그제야 그 차 운전기사가 차에 시동을 걸고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