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469화 (46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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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응급수술 후 마취가 풀리기 전,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히로시는 잠깐 발악을 했다. 그를 병원까지 데려 온, 백준열의 직원에게 아주 대 놓고 말이다. 하지만 그 직원이 바꿔 주는 전화를 받고 나서, 히로시는 바로 자신의 목숨 줄이 누구 손에 쥐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히로시는 바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굴욕은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굴욕을 못 견뎌 난리를 치다가 죽으면....

‘그게 진짜 개죽음이지.’

히로시는 이렇게 허무하게 자신의 인생을 끝장내고 싶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려서 거기 대표가 되는 게 꿈인 히로시.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엇다.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차분히 말했다. 한일합작드라마는 완전 물 건너갔고, 앞으로 자신과 나나미 볼 일도 없을 테니까, 더는 그녀 데리고 한국 오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백준열은 지금 나나미와 완전히 손절하겠다는 뜻을 히로시에게 전해 온 것이다.

아마도 히로시가 없는 동안, 호텔 방에서 나나미와 백준열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고 간 모양이었다.

“나나미....”

히로시는 나나미가 백준열을 설득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나나미의 애교라면 충분히 백준열을 홀릴 수 있을 거라 봤는데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백준열은 그저 눈먼 투자자였다. 그런 자 하나를 이제 놓친 거뿐이었다.

나나미를 키워 주겠다는 재력가들은 일본에도 여전히 많았다. 단지 그러려면 나나미가 몸을 굴려야 한다는 게 히로시로서는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그때 백준열과 계속 통화 중이던 그의 직원이, 히로시에게 다가와서 일본말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녁 8시 도쿄 행 비행기 예약....지금 출발해야....나나미도 출발했다.”

그러니까 백준열이 도쿄행 비행기를 예약했으니, 나나미와 같이 일본으로 꺼지라는 소리였다.

“알았다. 가자.”

아직 수술 후 마취도 다 풀리지 않았지만, 히로시는 몸을 일으켰다. 여기 더 있어봐야 병원 신세나 계속 지고 있어야 할 판이었다. 그럴 바에야 나나미와 같이 도쿄로 가서, 남은 치료를 받는 게 그로서도 속편했다.

그래서 히로시는 백준열의 직원을 따라 나섰고,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히로시상!”

그때 그보다 먼저 김포공항에 와 있던 나나미가 그를 발견하고 그에게로 쪼르르 뛰어왔다.

당연히 이때까지 히로시는 나나미가 백준열과 거하게 빠구리를 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나미도 굳이 그 얘기를 자신의 매니저이자, 섹스파트너인 히로시에게 할 생각은 없었고.

“코는 괜찮아요?”

히로시에게는 천사인 나나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묻자, 안 그래도 마취가 풀리면서 아프기 시작한 히로시, 그는 마약주사라도 한대 맞은 듯 고통이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히로시에게 있어서 나나미는 마약 같은 존재였다.

둘은 곧 출국수속과 티케팅을 마쳤고, 잠시 대기하다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대화가 현저히 줄었다.

히로시는 백준열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걸 어떻게 잘 소속사 대표 안도 사장에게 설명할지를 두고 열심히 잔머리를 굴렸고, 나나미는 백준열과의 뜨거웠던 시간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연신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히로시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백준열과 인연을 더 이어 나가야겠다고 말이다. 그 만큼 백준열과 빠구리가 너무 인상적이고, 또 좋았던 나나미였다.

* * *

호텔 방을 나서기 전, 백준열은 나나미를 깨웠다.

“아아....준열상....”

딱 봐도 나나미는 그에게 뿅 간 얼굴이었다. 그를 쳐다보는 그녀 두 눈에서 하트가 그냥....

“그쪽 매니저 치료 잘 됐고, 바로 공항으로 간다니까, 나나미도 거기로 가요.”

“지, 지금이요?”

“네. 10분 뒤에 여기로 내 경호원들이 올 겁니다. 그들이 나나미를 공항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테니까, 그 전까지 준비하세요.”

백준열은 앞서 문대식과 통화를 할 때, 문대식이 히로시를 트럭에 태우고 XX병원 가기 직전, 그 밑에 경호팀원들이 쉐링턴 호텔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1층 로비에 경호팀원들이 대기 중이라는 소리고, 그들로 하여금 나나미를 김포공항까지 데려다 주라고 시킬 생각이었다.

“10분이요?”

나나미는 샤워 할 때 빨리 씻어도 30분은 걸렸다. 뭐 머리 감지 않고, 몸만 후다닥 씻는다면 10분이면 씻을 수 있을지 몰랐지만....

그 사이 백준열은 자기 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돌아서 객실을 나가려 했다.

“잠, 잠깐만요. 준열상.”

그런 그를 다급히 불러 세운 나나미.

“왜요?”

막 객실 문을 안에서 열던 백준열이 나나미를 돌아봤다. 그러자 나나미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우리 또 언제 봐요?”

“글쎄요.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죠. 사요나라.”

백준열은 웃으며 나나미에게 작별을 고하고, 이미 열어 놓은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백준열을 멀뚱히 쳐다보던 나나미.

“아아....”

그때 10분 뒤 백준열의 경호원들이 올 거란 생각이 든 나나미는, 후다닥 몸을 일으켜서 욕실로 향했다. 그리곤 급하게 몸만 씻고 나온 뒤, 옷을 다 챙겨 입고 얼굴에 살짝 화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고 확인하니 백준열이 보낸다고 했던 그의 경호원들이었다.

나나미는 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그런 그녀를 백준열의 경호원들이 에스코트해서 김포공항까지 잘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히로시와 만난 나나미는, 그와 같이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히로시에게서 나는 병원 특유의 약 냄새가, 오늘따라 너무 역겹게 느껴지는 나나미.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정액을 맛있게 빨아 먹었던 나나미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옆에서 수술 받은 코 때문에, 그가 입으로 쌕쌕거리며 내는 그 숨 쉬는 소리도 듣기가 싫었다.

‘아무래도....’

일본으로 가면 히로시와의 관계도 정리를 해야 할 거 같았다. 한 번 싫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냉정한 나나미였다.

백준열과 빠구리 후 나나미는 갑자기 히로시가 시시해졌다. 매력 없는 남자는 딱 질색인 그녀에게 히로시에게서는,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헤어지는 게 맞았다.

단지 히로시가 자신의 전담 매니저인 게 걸렸는데....

‘대표님께 직접 말해야겠네.’

나나미는 오늘 밤 당장 그녀의 소속사인 하이브 사쿠라 대표, 안도 사장을 만나서 그에게 매니저를 교체해 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나나미가 그런 깜찍? 아니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던 히로시.

그는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먹자 잠이 쏟아졌고,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히로시는 자신이 나나미에게 버림받은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약에 취해서 쿨쿨 달게 잠을 잤다.

* * *

나는 쉐링턴 호텔을 나서며 예상대로 1층 로비에 대기 중이던, 내 경호팀원들에게 나나미를 김포공항에 데려다 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호텔에 남을 인원을 빼고, 나머지 경호팀원들과 같이 인근 XX병원으로 갔다.

막상 XX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약속 시간 보다 좀 빨랐다. 그래서 병원 안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 들러서, 내가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우희가 좋아하는 카페라떼를 테이크 아웃해서 들고, 우희를 만나러 병실로 올라갔다.

우희가 나를 병원으로 부른 건, 그녀의 할머니가 나를 보고 싶어 해서였다. 우희 말에 따르면 내가 할머니를 구해줬다니까, 고맙다는 말을 할머니께서 굳이 꼭 내게 직접 해야겠다고 우기신다나?

그냥 안 해도 되는데 말이다. 우희의 고집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할머니를 꼭 빼 닮은 모양이었다.

“대표님!”

그때 마침 병실 밖에 있던 우희가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그런 그녀에게 테이크 아웃한 카페라떼를 건네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라떼가 당겼는데 잘 됐네요.”

“할머니는?”

“좀 전까지 주무시다가 지금 막 깨셔서 식사 중이세요.”

“그래? 그럼 우리 이 커피 마시고 안에 들어갈까?”

“그래요.”

해서 우리는 근처 휴게실로 가서, 거기서 10분가량 얘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병실에 들어가자, 막 식사를 마친 우희 할머니가 병실베드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를 시청 중이었다.

“할머니. 저희 회사 대표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우희가 몸담고 있는 JYB엔터라는 회사 대표 백준열입니다.”

나는 정중히 우희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그런 나를 우희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와요.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먼저 이 늙은이 살려줘 고마워요. 직접 보니까 훤칠하고 잘 생긴 게....우리 우희가 좋아할만 하네.”

“네?”

“할머니!”

우희가 빽 소리를 쳤다. 아마도 내가 없을 때 우희가 할머니에게 나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호감을 내비친 거 같았다.

우희 말에 따르면 어릴 적 그녀를 쭉 키워 주신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가 우희가 누굴 좋아하는 걸 못 알아볼까? 그런 우희 할머니에게 내가 자백하듯 말했다.

“저도 우희 많이 좋아합니다.”

내 그 말이 마음에 든 듯 우희 할머니가 내게 손짓을 했다. 가까이 다가오라고 말이다. 해서 나는 우희 할머니가 누워 계시는 침대에 바짝 다가갔다. 그러자 우희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우희 잘 좀 부탁드려요. 대표님.”

우희 할머니의 신신당부에 나는 연신 그러겠다고 대답하면서 우희, 할머니의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게 우희 눈에도 다 보인 거 같았다. 할머니가 잠깐 TV에 눈을 판 사이 내게 잘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는 걸보니 말이다.

우희 할머니는 그 나이에 눈치도 빠르셔서, 나를 병실에 오래 붙잡아 두지 않았다.

“바쁘신 양반 오래 잡아 둘 수 있나. 그만 가 봐요.”

“네. 그럼 전 이만....”

“할머니. 저 대표님 바래다 드리고 올게요.”

“어허. 오긴 뭘 와. 그냥 같이 가. 대표님. 우희 집까지 잘 데려다 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렇게 나는 우희를 데리고 XX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XX시네마가 있는 압구정으로 향했다. 거기로 간 이유는 XX시네마에서, 오늘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로 예약을 해 뒀기 때문.

영화가 시작 되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고, XX시네마 근처 식당가에서 대충 분식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우희와 이미 얘기가 끝나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따라 떡볶이와 순대가 당기네요.”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해서 경호팀원을 먼저 XX시네마 근처 식당가로 보내서, 분식집 한 곳을 통째 빌리게 해 놓은 상태.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우희의 빛나는 외모를 가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희 같은 아이돌 탑 스타는 자신의 모습을 숨겨야만 밖에 나올 수 있었다. 아니면 한 바탕 난리가 날 테니까.

그래도 차에서 내려서 분식집까지 갈 때 까지, 우희는 모자와 마스크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물론 경호원들이 있어서 크게 걱정할 거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희를 데리고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을 찾은 거 자체가 미친 짓이긴 했다.

“저 집인 거 같네.”

눈에 익은 외모의 경호원이 우리가 들어갈 분식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우희를 데리고 그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먼저 이곳 분식집을 찾아서 가게를 통째 빌린 경호팀원이, 우희 얘기를 한 거 같았다.

막상 우희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던 분식집 사장. 그가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수줍게 우희에게 말했다.

“우, 우희양. 제 아들이 팬입니다. 이따 나가실 때 사인 좀....”

“네. 해드릴게요.”

우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MP4멤버 중에서도 개념돌로 알려진 우희 다운, 몸에 밴 팬 서비스 자세였다.

* * *

우희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MP4 뒤를 이을 후속 걸그룹이 곧 데뷔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인 게 생각났다.

그 신인 걸그룹에도 내 여자가 포함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MP4에도 우희 말고 다희가 내 여자가 된 상황. 물론 그 사실을 굳이 우희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우희가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건 확실했다.

‘다희가 어떤 식으로든 알릴 테니까.’

다희는 사실 입이 가벼운 편이었다. 거기다 질투도 많았고. 내가 오늘 우희와 저녁 먹고 영화 본 걸 알면, 가만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연예계의 개새끼로 불리는 백준열이었으니까.

‘문제는 여자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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